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⑽ 요컨대 성서에 말씀한 성령은 인간의 심령이 사랑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개조를 받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음에 반해 은혜 받은 많은 사람들은 성령 받는데 대한 표준이 많은 경우 빗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① 하나의 신의 존재의 증거나 ② 한 때의 즐거운 영교나 ③ 성서는 하나님의 말씀이란 증거나 ④ 답답할 때 문제해결의 길로나 ⑤ 나는 훌륭하고 선한 사람이라는 증거를 받아두는 것이나 ⑥ 천국시민의 자격증을 받아들이는 것이나 또는 미래를 모르는 두 려움에서 보호 받고자 하는 마음이나 ⑦ 사실과 잘 맞나 안 맞나 비교하는 호기심이나 ⑧ 하나님의 사랑을 자랑하는 마음이나 ⑨ 사업의 길이나 물질문제에 대한 축복의 기회를 노리는 것 ⑩ 남이 가지면 나도 가져야 한다는 대세에 편승하는 군중심리나 ⑪ 남에게 뒤떨어지면 안 되겠다는 자만심에서 나온 경쟁의식 즉 내 신앙인격과 기능이 더 나을 것이라고 믿는 것이나 ⑫ 하나님은 나를 더 사랑하시지 하고 시샘하는 정신 상태나 ⑬ 위로를 받고자 하는 불쌍한 마음가짐이나 ⑭ 그 밖에 진심으로 심령개조를 받고 봉사하는 참된 사람이 되고자 하는 마음, 선하게 살려는 마음, 죄에서 자유를 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많기는 하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모든 마음가짐은 그 자체가 혈육에 속한 것으로 정욕을 만족시키고자 하니 어찌 이상상태가 안 생길 수가 있겠는가? 이 모두 성령의 근본목적에서 모두 곁길로 나가고 있다. 진실 된 마음은 쏟지 않고 모두 배우와 같이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창조주 삼위 하나님의 근본 목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감당할 줄 아는 사람을 하나님은 찾으신다. 즉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헌신하는 정신자세는 기대해 볼 수 없는 못난 인간, 받는 것만 즐기는 거지근성을 가진 인간들을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하고 하나님께서 탄식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참 도를 따르는 제자의 모습으로 바꾸어지기를 주님은 바라신다. 우리가 참되게 살려고 하면 성령이 따라오는 것이 원칙이지만 성령의 뒤만 쫒고 있는 것은 항상 유치한 상태를 면하기 어렵다. 18. 성령님의 끝없이 넓은 인도 방법 ⑴ 성령님은 시, 공간의 제제를 받지 않으시는 영이시다. 자유롭고 광범위하게 활동하신다. 하나님의 무소부재는 바로 이 성령을 말씀하며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신다.”는 이 말씀의 활동은 시간의 연속성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인간이 어떤 별 세계를 가거나, 바다 속에 가거나, 땅속 깊이 들어가 숨거나 해도 거기도 계시고, 밤중에 홀로 빈들을 헤맨다 해도, 무인도에 있을지라도 거기에도 성령은 계신다. 그런고로 인간은 어떤 경우라도 보호, 양육,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다. 성령은 무소부재의 신으로 시, 공간을 지배하시는 신이시다. 인간이 자유를 가지고 하나님을 향해 선으로 요청하는 여부를 살펴서 합당하면 성령님이 역사하신다. 요청이 없다 해도 선하면 도와주신다. 그러나 동사의 원칙은 언제나 그대로 있으므로 요청을 따르라고 하신다. 십자가와 관련이 없는 선한 영의 역사는 성부적인 성령임을 알아야 한다. ⑵ 성령은 인간의 심령의 각 분야에서 인도하실 수 있다. 성령의 동거동행은 예수께서 말씀하신대로 “내말이 너희 안에 거하고 너희가 내 안에 있으면” 모두 우리 의식 속에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가졌거나 십자가의 정신을 가졌다고 하면 무엇을 구하든지 아무런 요구라도 필요하면 다 주시겠다고 하신다. 우리가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해도 우리에게 필요 될 것이 있다면 그것을 성령은 알아서 해 주시되 아무쪼록 우리의 의식 속에 요구할 인식을 주신 다음에 합력합작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여 주신다. 성경에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일하신다.”고 하신 말씀이 그것이다. 이것이 신자를 양육하는 방법도 되고, 사랑의 교제도 되고, 신자의 질적 향상의 목적도 된다.
심령의 각 분야란 ① 죄를 회개하는 분야 ② 사랑하고 봉사하게 하시는 분야 ③ 기도하는분야 ④ 은사와 은혜를 육성하는 분야 ⑤ 하나님의 사명을 수행하시는 분야(교회일과 각종 사업과 사무) ⑥ 심령향상의 분야(신자의 자질을 향상시키는 분야)등이 있다. ⑶ 성령은 인간의 체감 속에 여러 감관을 통하여 인도하신다. 이것은 체감이지 영감이 아니기 때문에 의식을 통하는 일이 적기 때문에 이유를 확실히 모를 수도 있다. 모른다 할지라도 영은 아시며, 인도하시고, 유익이 된다. 아니 오히려 영감의식 작용이 부족하여 받아들이지 못하므로 육으로 왔다고 논리적으로 말할 수 있는 부분도 약간은 있다. 예를 들어 어린아이들을 교육시키려면 말로 의사를 전할만큼 지혜와 지능이 약하므로 실지로 접촉하여 몸으로 익혀주고 조금 더 자라면 그림을 그려 보여주는 것과 같이 가르치기 위한 것이 환상계시이고, 그것도 잘 모르면 손짓발짓하며 형용하여 일러주는 것이 형상계시이다.
육이 말을 잘 안 들으면 잘 안 듣는다고 자기 손으로 자기의 몸의 각처를 죄를 있다고 하면서 막 때리기도 하며, 또는 견고한 우리 마음을 뜨거운 불로 몸에 부어주어 죄들 소멸하는 불이라고 하지만, 실은 악 성질을 소멸하는 것이다. 또 열심을 내게 하는 불도 된다. 또 정신을 차리게 하여 기억과 지능을 사용케 하려고 생수를 부어 꼭 얼음물 같이 시원하게 머리로 가슴과 배로 흘러내리게 하며 또는 착한 마음을 갖고 주님을 사랑할 마음을 가졌을 때는 향기로운 냄새가 코를 찌르며 감사감격하게 만든다. 믿음이 약해지지 않을 때는 어디서 오는지 힘이(생명력; 능력)온다. 투시로 영안이 열려 지각의 영이 둔한 것을 대신하여 남의 마음먹는 것도 보여주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도 가르쳐 보여 준다. 그렇다고 무엇이나 다 본다고 생각하면 오해이다. 하나님이 비밀로 해둔 것이거나 뜻이 없는 분야, 영감이 포착을 하지 못하는 분야는 안 보이는 것이 원칙이므로 그 영의 형태와 그의 사명분야를 따른다.
때로는 계시(입신)의 세계로 이끌어 가서 천사의 세계와 천국의 세계와 성도가 있는 세계와 음부와 낙원의 세계도 보여 주시지만 모두 다 교육적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체감이나 이 밖에 얼마든지 많은 종류와 많은 조건이 있다. 본론으로 미루고 약하나 우리의 오관을 통하고 제 육감까지 육체의 감관은 곧 영의 감관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 되기 때문에 모든 감각기관은 영감기능을 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몸 내부까지도 영감에 잡힐 때가 있고 때로는 몸 전체가 잡히기도 한다. 이것을 부인하는 사람일수록 더욱 강하게 체험할 소질이 충분하다.
이 모든 체험이 ① 心情방향 인도 ② 사명방면 인도 ③ 심령기능 향상을 위한 인도(능력의 향상) ④ 심령개조로 인도 ⑤ 육체의 정욕을 소멸하거나 기피하도록 하는 인도 ⑥ 은혜로운 심정으로 인도 ⑦ 악과 위함과 고난과 죄와 어떤 유혹을 피하도록 하는 인도 ⑧ 마음에 아름다운 사랑의 향기가 항상 떠나지 아니하도록 하는 인도 ⑨ 그 밖에 하나님의 각종 인도를 받도록 하신다. 19. 각종 은사로 인격을 육성하시는 성령 ⑴ 은사라고 하면 고린도전서 12장에 있는 아홉 가지 은사만을 생각하기 쉽지만 그 밖에 더 있으며 더구나 “성부적인 성령의 은사와 성자적인 성령의 은사가 성경적으로” 더 많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모든 것을 한 하나님의 은혜로 생각한다면 구태여 나눌 필요가 없지만, 은사라면 보편적으로 성령의 아홉 가지 은사만 생각하기 쉬우나 그 외에 은사를 모른다면 하나님을 옳게 모르는 것이다. 성령의 은사도 아홉 가지 은사 외에는 은사가 아닌 것 같이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다. 그리고 성령은 그의 영으로 믿는 자 개개인의 재질을 잘 발휘하여 내어 활용하게 한다고 볼 수 있다. ⑵ 여기 성령은사를 예를 든다면 ① 지혜의 은사 -성경의 깊은 뜻과 하나님의 본심 본의와 각종 역사를 알게 하신다. ② 지식의 은사 - 성서를 구체적으로 조직적으로 깨닫게 하는 은사 ③ 믿음의 은사 - 지적인 신앙이 아니고 역사적이고 행동적인 범사 를 믿음으로 행하게 하는 은사, ④ 신유의 은사(병) - 병을 고치는 능력을 받는 은사 ⑤ 능력의 은사 - 심령을 개조시키는 능력과 사건을 처리하는 능력 있는 은사 ⑥ 예언의 은사 - 교회적으로나 국가적으로 개인적으로나 자타 간에 부탁할 때나 자동적으로든지 하나님의 비밀이나 필요하신 말씀이나 일러주실 뜻(권고, 숨은 일, 위로, 책망, 주의 뜻, 사명 알게 함과 또는 기도제목, 앞날에 될 일, 기타 여러 가지를 아는 일) ⑦ 영분별의 은사 - 성령인가? 악령인가?(사신의 역사) 또는 은혜나 은사의 구별과 각종 영의 분별) ⑧ 방언 - 사람이 알아듣는 방언도 나오지만 그것은 오히려 하나의 증거에 불구하고 상용할 수 없는 것이고 하나님과 대화이나 실상은 대화이라기보다 성령이 우리를 위해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여 주시는 은사이므로 기도이며 일방적인 대화이다. 예언이나 통역이 섞여 나오기는 하나 방언만은 기도라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 ⑨ 방언통역의 은사 - 방언을 통역하는 이유는 방언하는 사람이 자기가 무슨 기도를 하나님께 하는지 그 내용을 알게 해준다. 알면 하나님이 내게 향한 뜻과 내가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를 알게 된다. 하나의 예언과 같은 구실을 하게 된다. 또 방언의 귀중함을 알게 하며 방언은 영감의 향상이 오므로 예언이나 통역이나 神意를 영감으로 체험하는 도움을 받을 수 있다. ⑶ 이 밖에 성령의 은사가 많이 있다. ① 환상 - 사건을 그대로 보여주거나 암시로 교시로 해명적으로 보여주는 은사. 사건을 미연에 방지하거나 증거 할 목적으로 보여줌. ② 몽시 - 꿈으로 사건그대로를 보여주거나 암시나 교시나 해명적 으로 보여주는 은사. 사건을 미연에 방지하거나 바르게 처리하거나 기도로 대비 또는 딴 방법으로 준비할 목적과 증거 할 목적으로 주시는 은사이지만 환상이나 몽시는 바른 해석이 필요하다. 해몽과 환상해석의 지혜의 영분별의 은사를 받은 이가 필요하다. 물론 그 자신에게도 기도할수록 영해하게 해 주신다. ③ 구변의 은사 - 설교자나 개인전도자에게나 교사에게 능력의 무기가 되어 감동을 크게 일으킬 수 있는 은사다. (고전1:5) ④ 계시의 은사 - 입신이라고도 하는 계시는 받는 방법도 여러 가지이고 보는 세계도 넓다. ⑤ 문학의 은사 - 바울 선생은 말보다 글을 잘 쓴다는 평가를 받았 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대게 문학의 은사로 사명을 수행하였다. 그 밖에 문필의 은사도 있다. ⑷ 이 밖에 오관을 통해서 받는 것이 너무나 많다. 예를 들면 ① 시각의 은사 - 투시의 은사 ② 청각의 은사 - 종소리, 음악소리, 영음, 음성소리로 주어지는 은사 ③ 후각의 은사 - 향기나, 악취, 가공 냄새로 분별시키는 은사. ④ 미각의 은사 - 각종 식물이 아닌 체험을 하게 하는 은사 ⑤ 촉각의 은사 - 물체가 아닌 영감으로 오는 불로, 생수로 그 밖에 여러 가지로 ⑥ 제 육감으로 오는 은사로 주님에게 안기거나 만져지거나 새벽기도 시간에 맞추어 깨우거나 마귀가 접촉되거나 하는 감을 받는 은사. ⑦ 기타감각 등 ⑸ 여기서 분명히 말할 것은 은사를 크게 나누면 상대적 은사와 일방적 은사로 나눌 수 있다. 전자는 자신이 역사할 수 있는 역사(役事)적 은사이다.(고전12:9) 후자는 수동적으로 주셔야만 받는 은사로 교시적 은사이다. 위에서 말한 후각의 은사와 촉각의 은사가 여기에 속한다. 이것을 삼분하면 첫째, 지능을 동원시키는 것으로 몸의 자유가 있는 환상, 구변, 문학계시이고 둘째는 영만 동원 시키는 것으로 몸의 자유가 없는 입신 계시, 몽시, 환상계시 등이다. 셋째는 육체로 받게 하는 부분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계시로 오관과 육감으로 받는 계시가 있다. 바울이 은사를 말할 때 자신의 소유처럼 하고자 하면 역사할 수 있는 것만을 여러 가지 은사 중에서 골라서 아홉 가지만 말씀하신 것이니 실로 그 지혜가 놀랍다. ⑹ 성부적인 성령의 은사는 구약을 참고하면 알 수 있다. 음악을 잘하는 지혜나 기악을 잘 연주하는 지혜나 악기를 잘 만드는 지혜를 주셨다고 했다. 모세가 성막을 지을 때도 아름답게 만드는 수공예 장식품을 만드는 지혜를 주셨다고 하셨다. 건축기능도 그렇고 성직을 맡기는 일도 모두 은사임을 볼 수 있다. 그 밖에 특별 문화기구, 과학의 발명도 기능을 잘 발휘하는 것도 은사로 볼 수 있다. 선지자나 혹은 부흥사들도 성자적 성령적인 은사자로만 볼 수 없고 성부적인 역사적이고 시대적인 소명의 의의가 있으므로 삼합 일체의 역사를 하고 있다. 왕도 하나님이 세우신다고 하셨는데 치리와 주권의 은사를 주셨다. 부의 축복도 주신일이 있다. 구약의 사사들을 세우신 것을 생각하면 알 수 있다. 그러나 주의할 것은 하나님의 영으로 특별히 주시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보통 인간에게 주신 은사의 기능도 모두 하나님이 안 주셨다고 하면 안 될 말이다. 그러나 은사를 성령으로 주셨다는 말을 붙일 수는 절대로 없다. 우리는 여기서 일반적인 성부적인 은혜와 은사와 특별히 주신 성령적인 은사적 은혜와 은사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또 성부적인 것도 일반적인 것과 특별히 성별 된 것이 있다. ⑺ 성자적인 은사는 엡4:7-12, 고전 12장 전체 그중 28절부터 교회의 성직자를 하나님이 세우신다고 하셨다. 이들은 참된 은사 자들이다. 자세히 살피면 직권적인 봉사자와 성령적인 은사자로의 봉사자를 혼합한 것 같이 보이나 그렇지 않고 그들은 신령한 예배에 등용되어 예배를 집행하는데 봉사를 했던 사람들이다. 14장에 가보면 예언자와 방언 자가 예배 때 어떻게 봉사할 방침과 주의를 시킨 것을 볼 수 있고 유익하다고 권장까지 한 것을 볼 수 있다.
오늘날은 영적 지식이 부족하여 일반 예배에 등용하고 있지 않는 실정이다. 성경을 보면 교회에 등용된 은사자는 사도, 선지자, 목사, 복음 전파자, 교사, 신유 은사 자, 능력자(말씀의 능력과 기도의 능), 예언자(대중예언과 개인예언 다 유익이 됨), 방언 자(교회 앞에서 방언하고 통역하면 교회의 영적 실정에 따라 기도 됨), 통역자(방언자의 방언을 통역할 때 등용되었음)
여기서 주의 할 것은 설교하는 목자는 설교를 잘 닦고 연마하듯이 예언이나 방언이나 신유까지라도 그 능력과 본질은 그대로 살리고 그 방법은 사람이 잘 다듬어서 眞과 善이 있게 한 위에 美까지 겸하면 德이 되고 조화가 되어 마치 음악의 화음과 같아서 예배가 은혜로울 것이다.
⑻ 성부적인 은사는 대개의 경우 첫째 품성과 본질을 선천적으로 타고나온 것으로 축복된 것이다. 둘째, 후천적으로는 보응적인 원리를 뺄수 없고 셋째, 자신의 양심과 성실한 노력과 타의의 협력에 의하여 사명과 행복이 이루어지고 있다.
다시 말하면 교회 안에서 성자적인 은사를 받는 길은 목자에게 잘 순종하여 충성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성자적인 은사를 받도록 하셔서 교회 안에서 봉사의 직임을 발휘하도록 직분을 주신다. 그러면 자연히 성부적인 은사와 성자적인 은사와 성령적인 은사가 합해지게 되어 적격한 사명자의 소임을 할 수 있게 되니 삼위가 일체로써 완전한 신격이 되는 것과 같이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간 神子도 삼위 하나님의 도움으로 완전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본의를 따라서 영광을 받으시도록 모든 기능을 은사로써 완성시키신다. ⑼ 성부적 은사는 성령적 은사의 기반이 되고 성령적 은사는 그 튼튼한 기반위에서 진, 선, 미가 있고 능력 있는 십자가 사랑의 사상적인 은혜를 통해 그 은사로 성취시킨다. 그러나 성자적인 은사는 교회의 역군인 직분을 주시는 것인데 모든 은사 역사의 주도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하게 된다.
교회가 아니면 대개의 경우 성령의 바른 역사를 향상시킬 수 없다. 결국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천상계와 지상계의 주도권을 교회를 주축으로 하여 잡기 때문에 교회는 차츰 세상을 점령하되 각 방면의 은사 가진 사람들로써 좌우되고 만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주의해야 할 것은 한 개인에게 은사의 주도권을 다 맡기는 것이 아니고 일체의 여러 지체가 있듯 종합적인 조직체로써 세상을 성자가 주권자가 되어 사랑의 역사를 한다.
예를 들면 국가의 주권자가 성령 적 예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과 문장의 은사 자와 보도 잘하는 은사 자를 합해서 나라의 어떤 공포령을 내렸다고 하면 완전한 역사가 된다. 주권자는 선한 목적과 뜻을 세웠고 예언자는 하나님의 뜻과 부합시켰고 문장가는 조리 있는 논법과 감화력 있는 문장을 만들고 보도인은 신속하고 정확한 각종 출판과 각종의 통신수단으로 온 국민에게 공포령을 내려 전 국민에게 기동력이 되게 하는 것이 은사의 종합적인 기능을 완수할 수 있다는 말이다.
사람은 모두가 하나님이 주신 특기의 은사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틀린 말이 아니다. 모두 하나님의 능력과주권이 그 세력을 이루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바울이 제자 디모데에게 주신 말씀 중에 예언과 각종 은사를 계속 연마하고 노력하여 향상시켜 교회를 잘 섬기는데 기동력을 삼아 하나님의 일을 잘하도록 권고함을 알아야 하고 열심히 연구노력해서 사랑의 세계를 건설하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목적은 단 하나 “사랑으로 뭉쳐 서로 십자가적인 사랑과 헌신과 봉사로 살아가는 통일된 이상적인 하나님의 왕국 건설”이라는데 집결되고 순응만 하면 하나님의 여망과 신자의 여망과 현대인의 여망이 일치하게 구성된다는 예언이다. 그래도 깨닫지 못하면 십자가 사랑의 사상 선언을 한 뜻과 그 사랑을 불응하는 자를 처리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위기적인 심판을 분명히 전해 주어야 한다. 이 역사를 맡은 곳이 교회이다. ⑽ 우리는 도덕적인 天命과 사명적인 天命(하늘이 준 사명)을 바로 깨달아 복종하려고 세상에 태어난 것이다. 광범위한 의미에서 우리 모두가 은사를 다 타가지고 나왔는데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일은 은사를 발굴하고, 발전시키고, 사용하여 자신을 닦고, 출세하여 인류에게 봉사하고, 영원한 상급과 칭찬을 준비해 천국 가서 은사의 덕분으로 보상을 받는다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 은사는 천부적인 천직이며, 자신의 생애의 사명이며, 세상에 온 목적이며, 행복의 요소이다. 은사가 하는 일이 무엇인가, 은사를 주시는 목적이 무엇인가를 일반적으로 말한다면 인간 하나하나가 세상에 천국사회를 건설하는 일에 기능 있는 역군이 되어 줄 것을 바라시는 하나님의 의도로 주어진 선물이라 할 수 있다. 다음은 신약의 복음적인 구원을 위주로 하는 것은 성자적인 은사와 성령의 은사로써 심령개조가 주요 목적이 있어서 영적 천국시민 생활화 운동에 중요한 것들이다.
은사의 중요성과 목적은 다음과 같다. ① 하나님의 본심과 본의를 알게 한다.(사랑의 주체 자이신 하나님 을 알게 함) ② 신관과 인생관을 바로 갖도록 한다. ③ 진선미가 있는 신자의 자격 있는 도덕인 양성을 만든다. ④ 영혼 구원을 위한 다각적인 능력 있는 구원의 활동을 이룬다. ⑤ 자신의 심령개조를 위한 목적이 있다. ⑥ 생활과 심령에 수시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처리한다. ⑦ 내 이웃이 되는 사회와 나라와 세계와의 선한 관계를 개선하고 향상시킨다. 위의 말을 통 털어서 표현한다면 은사의 목적은 아담을 닮아 이기주의로 불순종 했던 정과 욕심의 과거의 사람을 청산하고 예수를 닮아 이타주의로 천국시민의 자격 있는 인간으로 변화 개조시키기 위해 성부적인 혹은 천직적인 은혜와 은사와 성자적인 은혜와 은사와 성령적인 은혜와 은사를 가지고 최대한으로 활용하여 선하고 유능한 인격적인 존재로 세상에 덕을 끼치는 존재로 빛을 크게 나타내기 위한 목적이다. 이것이 위에서 말한 “천국 시민의 자격”을 얻게 하는 것이며 “천국사회를 현실화” 시키는 사명을 위하는 목적이라는 말과 일치되는 목적이다.
20. 성령은 교회 안에서 통일 된 인격자를 육성한다. ⑴ 교회를 통한 하나님의 뜻의 섭리적 역사를 하는 통일 사업. 세계 인류사회의 역사를 무질서하게 이끌어가고 있는 인간의 적고 좁은 지혜나 권력에 맡기지 않으시고 인간을 영적으로, 친히 통일적인 계획으로 섭리하시고, 모사에 능하신 솜씨로 동사하시며, 계획적으로 하나님 본의대로 인류를 인도하신다. 하나님의 인도는 영의 역사로 선용 및 활용하여 창조주 하나님의 감춘 뜻을 태초부터 만대를 명정하시고 예정하신 하나님의 경륜을 의식적인 이념과 조직과 역사로 통일 된 아름다운 낙원을 만들고자 하신다. 이 일을 교회를 통하여 “사랑의 씨”인 십자가를 가슴 안에 겸손하게 안아 들이는 “神子”를 통하여 이루신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역사를 저력 있게 창조주의 통일적인 섭리로 구주 예수의 성실한 사랑 속으로 이끌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간들은 점점 똑똑하게 보고 시인하게 될 것이다. ⑵ 예수의 십자가 사상운동으로 교회가 통일의 새 질서를 세움. 사람이 없는 인류의 역사와 낙원을 상상할 수 없듯이 참된 인간이 없는 참된 새 역사와 낙원을 또한 상상할 수 없다. “참 사람”을 만들 목적이 아니시라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인간으로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는 하나님과 사람을 통일 시킬 심령을 가지셨다. 그 자신이 하나님과 인간이 되신 목적도 그 때문이다. 그는 진리와 그 방법을 잘 알고 계셨다. 인간누구나 그의 심령과 그의 진리와 그의 방법을 가지면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을 통일시키는 세기에 빛나는 의인이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창조주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과 인간계에 완전통일의 이념을 구현시키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와 그의 십자가의 사상과 그의 십자가의 지혜와 그의 십자가의 진리와 그의 십자가의 능력 있는 새 도덕과 그의 십자가의 참 사랑으로 인간들의 얼음장과 같은 마음을 뜨거운 사랑의 불 곧 성령으로 변하게 하시는 새 질서를 하나님의 아들로써 기초를 삼으셨다. ⑶ 교회를 통해 십자가의 사상과 성령으로 역사함. 성경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성전의 머릿돌이 되신다고 하였다. 여기서 성전은 지상과 천국의 예루살렘 성전을 의미하는 말도 되지만 새 역사 사상운동의 초석이라는 뜻과 앞으로 이루어질 통일의 초석이 될 만한 인격자들의 회집단체를 의미하는 말씀도 된다. 과연 성자 예수님이 유언하신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시고 또 “성령 내리심을 기다리라”고 하시더니 “예루살렘에서 십자가를 지신 그 자리에서 생명의 원자탄, 성령의 원자탄이 터졌는데 거기서 120명의 중생한 자들과 일차로 신생의 기쁨을 맛본 자들이 나왔다.
이 신생활동을 위한 사명을 다하도록 은사를 내려주셔서 베드로 이하 모든 제자들이 일약 구변이 능한 달변가가 되었고 예언에 능한 선지자가 되어 과거에 어떤 선지자에게서도 볼 수 없었던 성령의 불로 죄를 소멸하는 신생의 새 물결을 단 시간에 광범위하게 퍼뜨려 이스라엘에 사랑의 새 바람의 광풍이 일어나게 하였던 것이다. 성령의 불도가니가 된 이스라엘에 사랑의 새 바람을 하나님께서 직접 역사하사 불치의 난치병자와 죽은 자까지도 능력으로 척척 살리는 것을 볼 때 과학과 의학의 적은 힘만 의지하고 살아오던 그 시대는 갑자기 십자가에 달리신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도, 병마도 놀라서 도망하고 십자가의 희생의 사랑을 가슴에 안은 감격한 신자들의 사랑을 초석으로 하는 “새 예루살렘 운동”의 시대로 변해진 것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이와 같은 역사적인 기독교운동을 별명 짓는다면 “새 예루살렘 운동”이라고 할 수 있으니 그 당시에도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새 종교인 기독교”가 건설되었고 앞으로도 새 이스라엘 나라를 건설하여 그 속에서 또 “새 예루살렘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 “늦은 비”의 성령의 역사가 이번에는 세계적인 이스라엘운동으로 벌어질 것이다. 따라서 정치, 문화, 과학, 군사, 교육, 사상, 종교, 각 분야에서 기독교화가 된 성령운동을 뒷받침 하는듯한 양상으로 세계적인 신앙 사상을 정치화하고, 생활화로서 사상통일화 및 평화통일에 이바지 하는 헌신적인 역사가 일어날 것이다. 이것은 성경에 예시되어 있고 시대적인 기운이 그 시운을 보여주고 있다. ⑷ 교회는 성령으로 “새 예루살렘 운동”을 세계적으로 전개하여 성취함. 성경에 말한 이른바 “이른 비”(조우; 식물의 발아기에 내리는 비)는 초대교회의 성령세례(침례)이다. “늦은 비”(만우; 추수기의 비)는 천년왕국 전에 있을 말세교회의 성령세례(침례)를 의미한다. “이른 비”의 시대나 “늦은 비”의 시대가 똑같이 불려질 “새 예루살렘 운동”이라는 말이 될 것이다. 따라서 “이른 비”는 발아기로서 “새 예루살렘 교회”가 탄생되었듯이 “늦은 비”는 성숙기로써 천년왕국 종족으로 들어갈 기초를 위해 “새 예루살렘 운동”이 일어날 것이다. 따라서 성도의 교회가 탄생이 될 것이다. ⑸ 교회는 성령운동으로 성도를 육성하여 천년왕국에 입국하게 함. 신도와 구별되는 성도는 성숙한 성자 예수의 신부(신령한 의미)의 자격으로 (계19장) 신자의 자질을 옳게 갖춘 하나님의 사람을 위해 “늦은 비”의 성령이 새로운 은혜와 새로운 진리로써 새 사람을 만들 것이다. 새 시대란 천년왕국을 의미한다. “새 시대의 역사”란 “늦은 비”의 성령의 역사로써 천년왕국의 자민육성(성도와 신도)을 통한 성령역사로 세계를 푸근히 적시는 “늦은 비”의 새 역사이다. 마지막 시대 인류 역사 속에 사는 모든 인생은 이 “늦은 비”로 말미암아 성숙한 인격미에 대한 선망으로 가슴이 부풀어 이 거친 말세를 아름답게 장식할 것이다.
이 말세란 말은 그 시대를 끝맺음 한다는 의미가 되고 동시에 새 시대를 탄생시킨다는 의미도 된다. 구약의 말세는 신약시대 예수님이 오시므로 의문으로 된 옛 계명의 시대와 삶은 이미 정리를 받은 것이다. 동시에 신약시대로서 새 계명의 새 사랑의 성령으로 살아가는 시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어 살아가는 새 시대가 됨을 의미한다. ⑹ 교회는 사랑의 가족을 육성하는 도장임 신약시대의 새 역사적인 인물인 예수그리스도는 새 역사의 초석으로서 새로운 인류애를 심고, 가꾸어, 마침내 새로운 우주가정을 형성하시기를 바란다. 그는 창조주가 목적한바 이상을 실현시켜 위로는 창조주를 성부로 모시고, 아래로는 자신의 십자가 사상의 피를 받은 성도를 아내로 삼고, 십자가의 속죄를 입은 신자로 백성을 삼아, 새로운 사랑의 가족사회를 건설하시려 하신다.
새 역사를 낳고 길러서 추수하여 천년왕국으로 모아들여 즐거운 생활을 도모하시고자 하심이 하나님의 뜻으로 고정되어 있다. 여기에 수반하여 필연적인 조건으로 교회를 예수그리스도가 친히 창설하셨다. 수제자 베드로에게 본명이 시몬인데 베드로라는 새 이름을 지어 주신 것은 반석이라는 뜻으로 “네 위에다 내 교회를 세우리니” 라는 의미로 지어 주신 새 이름이다. 교회는 반석이라는 돌이 기초가 아니고 인격이며 연약한 인간 베드로라는 인물이 소유한 위대한 신앙위에다 교회의 기초를 두신 것이다. 그리고 음부의 권세가 흔들지 못하게 하신다. 예수님의 교회 창설의 목적이 이상에 말한 바와 같이 천년왕국의 사랑의 낙원(애락원)의 일원이 될 가족을 얻기 위해 가정 식구를 생산하고, 육성하고, 선정하여, 시상하고, 천년왕국의 일원이 되게 할 목적에서 교회를 만드심을 알아야 한다. “잘나도 내 아들 못나도 내 아들”이라 함과 같이 교회는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이 구별 없이 피차에 사랑의 천국운동을 하는 곳이다. 그리고 가장 중대한 것은 이 교회를 육성하기 위해 제일선에서 활약하는 하나님이 성령이시다. ⑺ 교회는 예수를 왕으로 하는 새 왕국을 성령의 능력으로 건설함. 교회와 창조주의 무한대한 권세의 역사에 따라 그의 사랑을 받은 인간 속에 내응되어 진실된 그 십자가의 사랑으로 통일을 이루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며, 그 큰 사랑을 받은 신자들은 그 열정을 바치고 일하는 것이다. 하늘이 땅과 결혼하여 열과 물로 입 맞추어 생물을 소성케 하는 생식작용을 하는 것처럼 인격의 하나님은 인격인간과 입 맞추어서 애락원을 소생하게 하는 교회를 생식번성하게 하는 작용을 하는 것이니 입 맞춘다는 것은 십자가의 진리와 은혜 안에서 사랑을 맺고 주고받는 것을 말한다. 에베소서 1장에는 우주통일의 과업을 교회를 통하여 이루는 그 순서를 잘 말씀하셨다. 교회는 최후에 예수그리스도를 왕(머리)으로 하여 만물을 지배하게 되어 있다. 예수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가 되어 그 교회를 지배하는데서 교회를 영화롭게 하고, 영광을 받으시는 방향으로 나가시고, 죄악이 없는 밝고, 맑고, 아름답고, 참 된 저 지상낙원인 천년왕국을 건설하러 다시 오신다. 그러므로 교회의 본질을 성령의 능력과 그 은사로써 십자가적 사상으로 변화시킬 것이 확실하다. ⑻ 교회는 영육의 마찰 속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도덕적인 구원을 완성시킴. 인간은 육체를 소유하였다. 육체가 과학적이기 때문에 과학으로 된 물질을 요구할 뿐 아니라 그 물질적 요구를 위해 과잉충성을 하려하고 영적이고 정신적인 요구도 물질적인 요구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대부분 이므로 물질적인 요구의 도는 높아진다. 여기서 자연히 생기는 것은 육체적 요구와 정신적 요구를 위해 노력한 결과 비옥한 토지와 정리된 공원과 같은 아름다운 산야와 해변과 과학문명이 낳은 생활문화의 각종 기구들과 다듬어진 정신문명에 필요한 기구와 물건들이다. 또 그 모든 물건들의 질과 양을 좋게 하고 적은 시간에 능률적인 생산을 많이 하고자 하니 그 결과로 각종 공업을 위한 공장이 발전 된 것이며 골고루 손쉽게 갖게 하기 위해서는 상업이 발달 된 것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육체의 소욕이지 직접적으로 심령의 소욕은 아니다.
이 모든 것을 충족하고도 오히려 마음에 만족을 구하지 못하는 것이 마음이다. 성경에 “육은 육이요 영은 영이니”라고 하여 영과 육이 하나가 되면서도 그 영역이 다르다고 하였는데 과연 그렇다. 육의 욕구를 채워주시는 분이 영의 요구를 채워주시는 것은 그 요구의 주인공이 한 하나님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물질과학이나 정신과학의 이치는 꼭 같다. 곧 진리성과 도덕성이 꼭 같은 것이며 한 우주 안에 유일하신 한 분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의 본성에서 나온 것이다. 그래서 영과 육을 일체로 묶은 것이 우리 인간이다. 그러면 영의 요구를 채워주시기 위해서 창조주 하나님은 무엇을 하셨나? 첫째, 육을 지어주셨다. 육의 욕구를 위해서 인간에게 지혜를 주셔서 스스로 과학을 발달하게 하셨다.
둘째, 예수그리스도를 주셨다. 예수와 같은 사랑의 사람을 만드는 천국을 소유한 새 영을 만드는 고향과 같은 교회를 주셔서 영적활동을 하게 하시고, 공장에는 각색기구가 필요하듯 성령의 은사를 주시고, 동력이 필요하므로 성령의 불같은 능력 있는 열심의 불과 권능을 주신다. 성령은 능력이 있어서 쉴 새 없이 이동하여 품질 좋은 물건을 만드는 것과 같이 품위 있고, 사랑스러운 신앙인격들이 산출되어 나오는 곳이다. 또 만물에게는 자체가 생식하는 지구와 항상 쉼 없이 비취는 태양과 월색과 비와 바람과 이슬 등으로 조화를 이뤄 생식시키듯이 영은 영의 식량인 진리의 말씀을 주시고 각종 은혜와 각종 은사와 감화와 감도의 조화 있고 기동력 있는 성령의 역사로 중심, 양심, 성품의 심령상태와 심령생활의 행위와 육체도 성령이 도와주시고 천사와 천군들이 도와주시므로 은혜 받은 사람이나 모든 사람을 선용 또는 이용하셔서 도와주시되 교회를 통한 성령의 역사로 도와주신다.
그러므로 심령의 곤핍으로 생을 저주하거나 자살하거나 실망낙담하거나 또한 심령이 죄악으로 완악해지고 강퍅해지고 또는 간사나 교만이나 혈기와 고집과 불의와 불신과 부도덕과 욕심으로 이기심에 잡혀 죽어가는 이웃을 돌아보지 않는 박정함으로 육적으로 고통 속에 빠져 삶의 의욕을 잃었거나 삶의 희망을 잃고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원망하며 또 겹쳐서 생활고로 살아갈 길이 아득하여 자살해야겠다고 생각할 때 그 찰나 성경에 “지금은 구원의 날”이라고 하신 말씀이 기다리고 있다.
구원이 필요한 순간과 구원이 꼭 필요한 인생을 위해 구주이신 예수를 마련하셨다. 그는 말씀하시기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라고 하셨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고 말씀하셨다. 눅15자의 탕자의 비유의 둘째 아들에게는 “구원의 날”과 “편히 쉬는 길”과 참된 “길”과 “생명”되는 길은 돼지 치는 중에 배고파 더 견딜 수 없는 순간 회개하는 시기임과 동시에 새 결심을 하니 자비하신 하나님 기다리고 계시는 아버지 품으로 들어가 영원한 축복을 누리는 참 평안의 새 시대가 찾아 왔다.
그에게는 그 고통의 때가 구원의 날이요, 은혜 받은 날이요, 평안히 쉬는 때요, 참 도를 찾은 때요, 심령의 자유를 얻은 때였다. 만일 그가 회개하는 것이 힘들다고만 생각했더라면 구원 받을 날이 왔어도 구원받지 못했으리라. 이것이 예수가 본 대신관계를 바로 가르치고 하나님의 자비를 바로 가르쳐 준 성서이다. 창조주 하나님은 그 탕자 같은 그 모든 인생들을 향하여 오늘도 외치고 계신다. 교회는 오늘날의 탕자들 속에서 재물이 아닌 심령을 도적맞고, 헐벗고, 더러워지고, 굶주린 신세가 가련한 인생들을 향하여 부자요, 인격자요, 자비가 많으신 영혼의 아버지 하나님은 인생들이 돌아와 참 평안을 누리고 안식하기를 원하시며 기다린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그 방법과 역사의 종소리를 들려주는 곳이 교회이다. 이처럼 교회는 인생의 문제를 포착 하고 해결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설치하신 사랑의 중개소이다. 성령은 이런 교회를 통해서 개인과 단체들을 다각적이면서도 광범위하게 역사하고 계신다. 교회가 만일 신과 같은 신령한 사람들만 있다면 세속인이 가까이 하기 어렵겠지만 교인도 똑같은 인생이므로 접촉하기가 어렵지 않다. ⑼ 교회는 평소부터 삶의 부요를 영육 간에 주심. 교회는 평소부터 삶의 기갈이 안 될 양식인 믿음을 주시는 하나님이 주인 된 곳이다. 하나님은 믿음을 주시는 배경이 든든한 부자요, 인격자요, 주무시지도 않으시고, 주야로 돌아보고 계시는 하나님이시다. 그 분은 믿기만 하면 능력을 주시며 믿는 대로 되게 하시는 은혜의 주인공이시다. 이 하나님과 함께 하면 인생을 개척할 수 있다. 의욕도 갖게 하는 믿음을 갖고, 의욕적이고, 희망이 있는 새 가나안과 새 하늘에서 살게 되므로 죽음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게 된다.
헌옷을 벗고 새 옷으로 갈아입는 것 같이 내 육체가 낡아졌거나 고장이 나면 벗어버리고 새 옷으로 갈아입듯 새집 고향 천국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면 죽음이 두려울 까닭이 없다. 교회생활 속에서 살면 무엇을 하든지 희망이 있다. 희망이 있는 곳에 삶의 발전이 있고, 창의력이 있고, 조화가 있다. 희망이 있는 곳에 사랑도 믿음도 있고, 이타정신이 있으며, 연구와 발명과 봉사가 있다. 희망이 있는 곳에는 고통도 낙이 된다. 인내하기가 쉬워지고 능력으로 변한다. 사람들이 사회가 괴롭지 않고 서로의 긍휼로 말미암아 협력관계를 이루어 하는 모든 일에서 보람을 느낀다.
교회에서 계속적으로 받는 능력 중에는 인생들이 가장 희망하는 참된 아가페의 사랑이 있다. 사랑받고 싶은 심정은 사랑하고 싶은 심정으로 발전한다. 즉 이기적인 사랑에서 이타주의적인 사랑으로 사상의 변화가 생기고 하나님의 사랑을 의식 할수록 향상되고 가속화 되어 참된 사랑의 가치를 알게 된다. 하나님의 사랑도 깨닫게 되고 동시에 기갈당한 인생들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의 능력도 향상이 되어 진다. 따라서 자신에게 말할 수 없는 평화와 즐거움과 희망과 믿음이 더해지게 되니 교회는 이와 같은 하나님의 사랑을 계속 공급하는 곳이 되어 사랑도 메마르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 생활을 잘하면 피곤하지 않게 살아가며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느끼며 그 사랑을 위해 “말씀의 떡”과 “은혜의 생수”와 “기도의 요리”로 넘친다. 또한 은사의 일군인 봉사자들과 찬송이라는 사랑의 향기와 교회가 세운 주의 은사 자들과 주님의 직분 자들과 함께 분주히 활약하여 심령에 소생이 있게 되어 남까지 기쁘게 만드는 일이 창조주 하나님이 예수를 통해 세운 교회를 통해 일어나는 일이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 증산된 신자들의 사랑의 역사로 마침내 우주통일의 과업을 속히 진전시켜 새 우주를 만드신다. 많이 성숙하고 진전된 사랑의 사람 중에서 극상품 포도를 바라시는 포도원 농부가 되시는 창조주 하나님 과수원 주인의 야망도 성취될 것이다. ⑽ 교회는 진리와 은혜를 풍성히 공급받게 하는 성령의 역사가 있음 이 모든 것이 진리의 주재이신 창조주 하나님의 통일성을 가지신 영, 육간 온전한 인격육성을 원하시는 도로써 인간을 영, 육간에 양육하시는 하나님의 솜씨이시다. 진리의 주재가 되시므로 동시에 은혜의 주재가 되사 진리와 함께 그 교회 안에서 인간을 진리와 은혜로 양육하시고 계신다. 성령님은 교회 안에서 성령의 인도와 역사를 잘 받는 종들과 더불어 더욱 효과적인 역사를 하고 항상 진리와 은혜에 기갈을 당하지 않도록 역사하며 이 교회 속에 있는 양 무리를 살피시는 성령께서 교회의 신실한 제사장인 목자와 함께 손잡고 성령님의 요구를 받을 수 있는 정도를 살펴 가시면서 항상 쉬지 않고 함께 역사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신자는 역사를 쉬지 않고 꾸준히 줄기차게 하는 가운데 실제적인 효과를 얻기 위해 성령님과 동사하여 거두어야 한다. 천계의 보좌에서는 24장로와 네 영물과 일곱 영과 천군과 천사 모두 현실사회를 영적으로, 육적으로, 세상 전체로 인간배후에서 교회를 육성하는 일에 성령과 함께 지도, 결재, 지원하고 계신다. ⑾ 성령님은 교회를 통해 신자를 보호, 양육, 인도하심. 교회의 몸 된 사람은 못났지만 교회의 머리되시는 예수님은 훌륭하시다. 몸 된 사람들끼리 서로 붙들어 주는 자체의 사랑운동과 머리되신 예수님의 뜻을 잘 받을 수 있는 진리의 지혜와 지식을 받아 조심스럽게 그 뜻의 실천으로 고귀하신 사랑의 교제를 나누어 사랑과 순종의 참 도가 마음과 몸인 생활체 속에서 이루어지기 까지 노력하여야 한다. 성령께 의뢰할 수 없는 것은 성령은 우리가 힘쓰지 않는데 일방적으로 역사하거나 일하지 않으신다.
우리 머리의 이상을 몸이 거절하지 않고, 몸의 욕구를 맞게 하고, 지나치지 않게 하여 이성으로 심신의 보조를 같이해야 하는 것은 육체 지배의 이성적인 조직과 같이 되어 있음과 같이 우리 머리의 주인공이신 하나님의 명령과 존의(尊意)를 잘 받들면 그 머리되신 심령의 주재이신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 몸 된 인간을 이상적으로 잘 돌보게 하셔서 목적은 아름답게 살리고, 현실은 현명하게 만들고, 육체의 생활은 건강하게 만드신다. 또 검소 절제하게 되면 영육이 아울러 통일 된 생활 속에서 심령의 참 즐거움을 얻는 교회나 신자 개체의 생리적인 잘 사는 이치를 이루게 하실 것이다.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그리스도는 신자 개개인의 머리가 되사 일일이 그 몸을 보호, 양육, 인도하신다. ⑿ 교회는 예수의 신부 자격을 위해 온갖 준비를 하는 곳임. 보이는 육이 없으면 영이 혼자 독립하여 살지 못하듯이 보이는 교회가 없으면 하나님의 신령한 역사는 어렵다. 보이지 않는 참된 교회는 인간이 세우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보이는 교회는 보잘 것이 없는 인간의 구성체이며 교회당이다. 그러나 창조주의 크신 섭리 속에서 예수의 영적인 머리에 붙어 있는 몸이 되는 교회는 십자가의 기념탑으로 세워주셨고 성령은 그 교회를 무대로 신자의 참된 신부자격과 백성의 자격을 위해 활동하신다. 그리고 불원한 장래에 재림하실 때에 교회는 우주의 주체세력으로 등장하여 머리되셔서 왕의 보좌에 군림하실 예수의 주권을 위하여 온갖 준비가 필요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교회에서 원하는 일군은 오실 임금 예수를 위해 신자를 양육하는 일에 성령과 함께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하며 또 아끼지 않도록 십자가 사상으로 무장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노력 자체가 신자의 의무이면서도 고난의 세례(침례)가 되어 예수의 심령인 겸손하고 온유하고 관용한 성품의 심령이 육성되어 예수의 신부자격을 육성하는 것이 된다.
또한 고난의 동참으로 말미암아 주와 함께 성도의 자격으로 왕 노릇 하는 영광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천년왕국에서부터 정식으로 왕이 될 것이다. 이런 왕국건설에 앞서 그 자격구비와 함께 왕의 재림을 위해 지상 준비에 이바지 하는 길이 되며 자격구비가 자연히 되는 길이다. 실로 교회가 가지고 있는 神子에게 주는 천국 길은 다양성이 풍부한 신자의 육성기관임이 틀림없다. 교회야 말로 인간에게 우주 본체권 회복과 영광목적에 적당한 곳이며 하나님과 성령으로 동사하여 이루어지는 신자의 온전한 자격을 육성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神子를 육성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곳이다. 성령은 그 역사의 동사자이시다. ⒀ 교회 사명의 다각적인 역사 교회의 사명을 열거한다면 다음과 같다. ① 교회는 심령구원과 세상의 구원을 위해 복음을 전하는 곳이다. 하나님의 말씀 곧 사랑의 음성을 전파하는 곳이다. ② 하나님의 백성을 양육하고 배양하는 곳이다. ③ 신민을 성령으로 인도하여 은혜와 진리로 성민을 만들기 위해 경천애린의 사상화와 생활화를 원만히 하도록 도모하는 사명이다. ④ 심령개조를 철저히 하여 정과 욕을 십자가에 못 박고, 자기를 이기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온전히 주를 따르는 생활을 할 수 있는 고상한 신앙 인격자를 육성하는 사명이다. ⑤ 진리를 가르쳐 진리의 사람이 되게 하고 진리를 가르칠 수 있는 진리적 인격구현과 능력 있는 각종 지도자를 육성하는 사명이다. ⑥ 교회 내 신자들의 이상적인 신앙생활의 횡적인 협력관계의 고도 화를 시켜 천국 생활화 하는 습성을 도모하는 사명이다. ⑦ 사회복지사업을 경영하여 예수님의 사랑을 사회적으로 실천한다. ⑧ 복음을 세계적으로 선교하는 동시에 세계를 복음화 하는 유기체 를 실질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세계교회를 통일체로 만들고 기동력 있게 생명운동을 일으키는 사명이다. ⑨ 새 예루살렘 교회를 완성하여 세계교회를 통일적이고 일률적으로 지도 육성 하여 천년왕국 건설의 준비에 임하는 사명이다. ⑩ 교회는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을 사랑으로 통일시켜 평화롭 게 주님을 왕을 삼고 살면서 창조주 삼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교회의 현실적 사명이다. 21. 성령의 역사로 보는 교회의 본질과 역사 교회건설의 주체는 창조주 성부하나님이시며, 교회건설의 주관자는 성자 예수시며, 성부와 성자 예수님이 보낸 영이 성령님이시다. 이 삼위 하나님은 교회 안에서 역사하시는 것과 같으시다. 성령은 두 가지 방향으로 교회 안에서 역사하시는데 첫째는 진리며, 둘째는 은혜다. ⑴ 진리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중심으로 인격적으로 예수를 모시고 영접하는 사람마다 예수와 그의 십자가와 삼위하나님이 진리의 신임을 강단에서 진리의 성령이 증거를 강하게 하신다. 어디서나 신자와 함께 진리를 말하거나 보거나 생각하는 자와 함께 역사한다. 물론 받아들이는 순수한 마음의 정도만큼만 역사가 일어날 것이다. 그래서 모든 성경에 나타난 진리가 오착이 없는 창조주 하나님의 섭리적인 지혜로 인간의 경험과 지능의 손을 빌려 영감으로 써졌다는 것과 영원히 살아있는 진리로서 오고 오는 세대의 모든 인간들에게 가야 할 길이며, 생명이며, 진리의 지혜라는 것을 심령으로 밝혀준다.
신앙을 할수록 순종되고, 순종될수록 신앙해짐과 함께 하나님의 진리가 사랑으로 인간 속에 체험된다는 증거를 강하게 얻게 하신다. 진리는 진리로 인도하여 더욱 깨닫게 하여 현명한 신자를 만들며 인생의 교사를 만든다. 진리는 인간을 고상한 인격자를 만든다. 예수의 품성으로까지 끌어올린다. 하나님의 본성이 사랑이고 보면 진리도 사랑이고 표현도 진리를 증명해 주시는 방향에서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을 열심히 가르쳐 준다. 사랑은 그 자체가 숨어 있을 수 없는 것이고 사랑받고 사랑 받을 사람이 사랑을 느끼지 못하면 헛수고가 되기 때문에 반드시 느끼게 하되 인간 속에 있는 모든 감관과 생활경험을 전부 활용하신다.
지능, 체감, 오관, 영감, 육감, 혼(정신: 마음)으로 생활, 명예, 자녀, 기능, 처세, 사업 등 우리가 관심을 더욱 가지는 편을 통해 더욱 사랑을 증명해 주신다. 그 어떤 것이든지 시작과 끝은 다 진리로 귀결 짓고 싶은 것이 인생의 본능적 본심이니 이것이 하나님의 본성의 반증이다. 이 진리로 영계의 진위를 분별하며, 이 진리로 자유와 평화를 얻으며, 이 진리로 은혜의 길을 열고, 인격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여러모로 성장시키며, 하나님의 지혜도 받는다. ⑵ 삼대 은혜의 기초 예수의 오심은 창조주와 동일한 진리를 가지고 지상에 오셔서 인류위에 진리를 증명하기 위해 진리의 내용이 되고 진리의 목적이 되는 사랑 곧 은혜를 함께 가지고 오셨다. 그 은혜는 성부적인 은혜나(생활문제를 중심으로) 성자적인 은혜(교회를 통해 오는 인격)를 중심으로 성령적인 은혜(심령문제를 중심으로)를 한 몸에 담아가지고 해결을 지으려고 오셨다. 은혜는 神子로 말미암아 오므로 예수이후의 시대를 은혜시대라고 규정짓고 예수 이전은 율법시대라고 한다. 은혜의 규범은 그의 생활로 교육 삼아 보여주셨지만 은혜의 새 출발은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통해 은혜의 새 기초를 만드셨다. 이상의 삼대은혜는
첫째 십자가로 인류 스스로가 처리하지 못하고 심판받아야 할 죄인들의 원죄와 자범죄와 유전죄의 속죄와 심리상의 죄와 행위상의 죄를 대신 속죄하는 길을 열어주시니 큰 은혜이며, 둘째는 죄의 저주는 사망의 보응을 받았는데 죽어도 더욱 좋은 영적 자유를 온전히 누리는 신령체로 하나님의 영광을 받을 새 몸을 만들어 주시기 위해서 죽으셨고, 또 죽으면 음부에 가야할 몸을 낙원으로 들어가게 하는 길을 열어주시고 그 다음에는 영원무궁한 천국에 들어갈 길을 사망으로 대속하시고 열어주셨고, 부활하시므로 성취시켜 주신 은혜가 한없고 셋째 부활하시므로 말미암아 영생의 소망을 (천국 상속)받을 뿐 아니라 믿음과 속죄의 길과 성령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초대 교회에 열려서 우리에게 전해줌과 동시에 오늘날도 그와 꼭 같은 순서와 조건으로 우리에게 현재는 영의부활로 역사하시고 장래에는 영생의 부활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다. 그뿐 아니라 천년왕국시대로 눈앞에 둔 우리에게는 죽음 없이 천국에까지 갈 수 있는 길까지 열려서 사망의 고통 없이 신령체 로 부활하게 되는 길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위에 말한 삼대역사의 기초를 닦아 주셨으므로 그의 사명적인 역사는 신인동사의 원칙으로 성령과 신자들에게 꼭 같이 지워주시므로 오늘도 은혜를 체험한 우리에게 이 위대한 생명적인 사명을 성령과 함께 지상에 시현시킬 의무와 권리와 축복을 동시에 받게끔 약속 받은 것이다. 생각할수록 영광스럽고 감사한 하나님의 은총이다. ⑶ 은혜의 양면은 사랑의 심정과 사랑의 역사임. 은혜라고 하면 곧 성령이란 말로 알만큼 성령은 은혜의 역사를 맡으셨지만 위에 말한 대로 삼위의 은혜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 은혜란 말은 사랑의 응답을 받음을 말하지만 사랑의 감정과 사랑의 역사적인 응답의 두 가지로 확실히 구별 지어 생각해야 한다. 사랑의 감정과 심정만 가지고 기뻐하게 되면 심정이 식어지거나 처지가 바뀌어 지면 은혜도 소용이 없다는 말이 되기 쉬우며, 마귀는 이러한 변태(變態)자를 잘 이용하는 것이니 예수님의 제자 가룟 유다의 경우와 같이 선생을 팔아먹는 행위도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⑷ 더욱 감사한 것은 은혜는 진리를 열어주고, 진리는 은혜를 열어주는 것이 마치 뿌리가 가지를 도와주고, 가지는 뿌리를 도와주면서 같이 비중을 맞추어서 커가는 것과 같이 은혜와 진리도 서로 근원을 두고 있으니 서로 뿌리의 이치가 있으므로 함께 크지 않으면 안 된다. 공존공영하고 동고동락하는 이치와 같다. 성자 예수의 십자가의 사랑은 진리로도 기초적이며, 전체적이며, 근본적인 문제의 해답을 체계화, 구조화시켜 주셨고 은혜로도 기초적이며, 전체적이며, 근본적인 문제의 활력소를 불어넣어 주신 것이다.
이에 대한 언급은 더 확실하고 깊게 하나님의 섭리와 그 본심본의와 그의 지혜와 능력이 무엇인지 앞으로 더 나타날 것이다. 사실 이 진리는 남성적이고 은혜는 여성적이다. 성자 예수에게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 하더라”고 성경에 말씀했듯이 사랑의 구현에는 이 남성적인 진리와 여성적인 것이 합해져서 합리적인 사랑의 완성된 애자(愛子)가 탄생된다. 이것은 두 이성을 말함은 물론이다. 한 사람 안에는 두 가지 상대를 출생시키는 소질이 있듯이 한 사람이 두 가지를 소유해야 한다. 한 사람 속에 두 가지가 원만하지 못하므로 인격성장이 안 되고, 고정 되어진 사람이 너무 많고, 어떤 한 쪽만 고집하는 신자도 너무 많은 것을 보면 탄식이 절로 나온다. 성자 예수님도 성부에게 순종하므로 여성 격이 되고, 사람을 사랑하니 남성 격이 되어 주권자가 될 수 있다. 순종과 사랑, 진리와 은혜를 함께 가지고 계셨다. 참된 은혜 속에는 참된 진리가 있어야만 하며 참된 진리 속에는 참된 은혜가 나와야만 참된 진리로 인정된다. 그것이 안 나오면 사리에 맞는다고 할 수 없다. ⑸ 은혜 받는 자의 정상적인 심리상태 인생이 십자가와 은혜에 눈이 떠졌을 때 다시 말해서 크신 사랑 앞에 자신이 홀로 서게 되었을 때 죄인의식이 강해지면서 사죄의 요청이 커지고 용기를 내서 용서를 구하며 회개 할 때 그만큼 큰 감격을 누린다. 이 때 함께 부끄러움과 감사와 죄송스러운 생각이 뒤범벅이 되는 찰나에 눈물이 나오는지 콧물이 나오는지 모르며 자신의 처지를 잊고 그 위대한 사랑에 감사함과 아울러 사죄의 은총이 믿어지게 되는 동시에 새로운 자기가 발견되면서 자신의 처신과 위치가 달라짐을 느끼게 된다. 생애의 가치관이 바꿔지는 동시에 새로운 자기가 발견되면서 자신의 처신과 위치가 달라짐을 느끼게 된다.
생애의 가치관이 바꿔지는 동시에 저열한 과거를 부끄러워하고 고상하시고 자비로운 주님 안에서 재발견 되는 것이다. 이 구원 받은 감격의 날을 영영히 안 잊으려고 일기책이나 특수 기록장에 감사한 말을 기재하고 자기의 위치를 재정리해서 대신관계나 대인관계나 대 가족관계나 대 사회, 사업, 친지와의 관계를 전부 개선하려는 마음을 갖는다. 이런 마음을 얼마 안가서 상대방이 속히 이해하여 주면 전과는 다르게 대하게 된다. 사죄 받은 자의 심리상태는 양심의 개선, 성품에의 안존, 중심의 확립, 범사에 감사, 범사 신앙, 항상 기뻐함, 성실한 예배, 하나님께 대해서, 교회에 대해서, 은혜 갚는 일과 봉사할 것을 찾게 된다. 즉 사랑을 드리고 싶어진다.
감사하고 싶은 심정을 갖고, 이 은혜를 같이 나누고 싶은 마음에서 전도하고, 받은바 은혜를 간증하고 싶은 마음가짐을 갖는다. 진리에 대해 눈이 떠져 성경의 뜻이 밝히 알아짐과 동시에 성경이 보고 싶어지고, 대 사회 대 국가를 하나님의 나라(신국) 만들려는 운동이 하고 싶어진다. 이상국가관이 세워진다. 여기서 회개를 더욱 깊게 연장시키면 선한 양심이 향상되어진다. 그렇게 되면 회개로 마음이 청결하여짐에 따라 하나님을 보는 눈이 그만큼 열리게 된다. 그러므로 진리를 더 깊이 알고 싶다면 더욱 깊이 회개하면 된다.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더욱 깊이 회개하려면 양심을 고상하게 이끌어줄 성경의 말씀과 진리가 더욱 요청된다. ⑹ 은혜로 결론 되는 심령통일의 세계 이상에서 말한 모든 것을 다시 추려서 말한다면 성령은 교회를 통해 진리와 은혜를 가르쳐주며 회개와 함께 역사를 하신다. 그래서 새로운 인생관을 갖게 해 준다. 따라서 나의 안에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가 내재함을 자각하게 하므로 두렵고도 조심성이 생기면서 창조주의 섭리가 점점 크게 깨달아지며, 마침내 통일이 없이 불화한 세상에 사는 인간들의 절규하는 소리가 들리며, 따라서 삼위 하나님이 인생과 더불어 통일로 화평을 맺고자 하는 하나님의 노력이 보이고 자기의 개체 속에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 되는 통일의 역사가 성령역사의 목적임을 알게 된다. 모순 없는 사랑의 통일천하가 마음속에 이루어지는 것이 은혜와 진리와 신앙인의 성장인줄 알게 되며, 창조주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그리스도와 성령께서 바라시는 인간에게 대한 기대가 무엇임을 알게 될 것이다. 즉 우주를 십자가 사상으로 통일시키고자 하시는 神意와 성령역사의 목적을 깨닫게 된다. ⑺ 은혜의 도덕화가 생활화가 되게 하자. 교회 생활이 오래될수록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십자가적인 참 사랑의 통일된 생활습관을 통해 은혜의 도덕화가 잘 되어 인격적인 사랑의 도를 잘 지키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반면에 심령으로는 진리와 은혜를 위한 회개에 부딪히는 성령의 역사를 적게 하거나 형식적으로 나가면 영의 역사는 적음으로 형식과 무능과 영의 빈곤만이 남는다는 것도 상식적으로 알아야 할 것이다.
영의 역사는 神人이 동사하는 까닭에 사람이 사랑을 강하게 하면 하나님도 강하게 역사하시지만 약하게 하면 성령도 약하게 하시므로 죄악과 세상 권세와 자신의 인간성을 정복할 힘이 없어질 때 신앙인격에 적신호가 오는 정도가 아니고 때를 따라서는 큰 파탄이 와서 전 생애가 뒤흔들리는 수도 있다. 그러므로 오랜 교회생활은 오랜 은혜로 튼튼한 신앙인격을 다듬어 올려서 진리와 함께 그 빛을 찬란하게 세상에 비춰야 하며 은혜의 도덕화가 생활화가 되게 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