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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 순백의 사랑(愛情)
* 인생(人生)에 처방전은 없다.
생(生)이란 무엇인가?
네발 달린 소(牛)가 외나무다리(一)에 서 있는 형국이 아닌가? 어찌 어려움과 아픔이 없겠는가,아프기 때문에 인생인 것이다. 살아있는 생존자는 생활을 해야한다. 생활은 현실을 만나게 된다.현실은 매일 해결하여야 문제 투성인 것이다. 나는 현실적인 생활을 외면하며, 버겁게 하루하루를 살아낸다. "왜 사느냐"는 철학적 질문에 "살기 위하여 산다"라는 명답이 있지 않은가? 나는 생존, 지금 살아만 있다. 존재만 하고 있다.
"세월"이 내 인생의 처방전이 될 줄 알았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을 다 해결해 주리라 생각했다.
곧 정상적인 생활인이 될 줄 알았다. 시간은 모든 것을 무너뜨린다.모든 것은 잊혀지기 때문에 세상의 질서는 유지된다. 망각이 있기에 우리의 행복은 유지 된다.
세월은 상처받은 사람의 마음을 치유한다.
"시간"은 모든 기억을 지우고,우리를 늙게하고, 마침내 모든 것을 휩쓸어 사망에 이르게하는 파멸자가 아닌가? 나는 지금 '젊다' 하기에는 좀 늙었고, '늙었다' 하기에는 좀 젊은 나이 대(代)를
지나고 있다. 요새는 내 몸이 내 나이를 알려 주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 당연히 그녀를 잊을 줄 알았다. 잊혀질 줄 알았다. 그녀는 "잊혀진 여자"가 되기를 거부했다. 여러 분도 경험했을 것이다.억지로 잠을 자려고 하면
오히려 머리가 점점 더 선명히 맑아지는 느낌, 그녀를 잊으려 하면 할수록 오히려 더욱 생생한 기억으로 다가 오는 것이다. 그녀의 몸냄새,머리결에서 맡았던 들꽃내음의 삼푸향기까지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단 한번의 키스로 서로 맞닿았던 부드러웠던 혀끝 감각과 달콤했던 침샘의 맛
마저... 오월의 청보리가 익어가는 풋풋한 맛과 진하게 익은 바나나의 향내음,
찐 쌀을 오래 씹는듯한 오묘한 맛......
단 한번의 키스 안에 모든 것이 녹아 있었지요.
세월은 저만치 혼자만 갔지, 기억은 오히려 생생함을 더하고 있다.
그녀는 온몸에 밴 니코틴처럼, 마치 DNA 유전자처럼 내 몸의 일부로 남아있다.
아직도 그녀에 옭매여 사랑의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하루종일 그녀를 따라다니는 해바라기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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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중형에 처하라!
그녀는 단 한번도 내 앞에서 "사랑"이란 말을 끄집어 낸 적이 없으며, 나또한 그녀에게 사랑을 맹세한 적도 없다.
그런데도 그녀는 내 생이 끝나는 마지막 날,
떠올릴 수 있는 단 한 사람의 여자가 되어 있었다. "관계의 부조리함", 그녀는 나에게 있어서 모든 것이 앞서는 "우선권"을 지닌,
다른 모든 것들은 순서를 기다려야 하는 "번호표"를 타야 했다.
인간이 지닌 가장 소중한 것,자부심,인격,교양,분수에 대한 만족,
가정에 대한 의무,삶의 기본적인 것은 다 잃어 버렸다. 오랫동안 내 가슴에 간직해온 삶의 아름다움에 대한 모든 가치는 사라졌다. 치명적인 사랑,단 한번의.....
세상을 살아가면서 인간관계를 맺을 때는,그 관계마다 각각의 질서가
있는데, 그 틀을 벗어난,일탈에 대한 댓가였다. 나는 이미 내면적으로는 죽어 있었다.
삶의 야생력(野生力)을 잃었다.
나의 가장 큰 죄악은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지 못하며,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도둑놈은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안다는데, 나는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도대체 알지 못했다. 아직도 누구에게도 내 자신을 변명한 적이 없다.
나를 중형에 처하라! 아직 한번도 아내에게 사과나 변명을 한 적이 없다. 젊은 여비서와 놀아나다 들켰으면,직장을 잃고 패가망신을 했으면,고개를 숙여
용서를 빌든지, 아님 변명이라도 해야지,
혼이 다 빠져나간 허수아비 남편을,어처구니없는 사랑에 중독되어
생활을 잃고 사는 남편을 어찌 용서할 수 있겠는가? 아내는 딱 한번 냉소와 조소를 보낸 적이 있다. "당신은 매년 4월만 되면 생기가 피어나더군요, 봄버들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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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이시여!
올해도 나는 어김없이 사월 열사흘 날에 레스트랑을 찾았다. 이제 친숙해 진듯, 반가운 웃음을 만면에 띄며 "달빛속의 하우스" 여주인이
다가왔다. 그녀는 종업원을 시키지 않고 직접 오더를 받고,"깔루아"를 본인이 서빙하였다. 곧 내 옆자리에 앉을 것 같은 자세을 취하면서 그녀는 말문을 열었다. "지난 해 선생님이 하루종일 이 자리에 있다가 떠나신 후, 말이에요, 그 다음 날,어떤 젊은 여인이 혼자 오셔서 이 자리에 앉더니,"깔루아"를
시키는 것이 아니겠어요!!!" 여기까지 말해 놓고 그녀는 나의 표정을 한번 살펴 보는 것이었다. "하루종일, 선생님처럼 바다를 내려다 보다 가셨어요" "절세 미인이셨어요"
"선생님을 이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제 선생님은 저의 카페에 '전설'이 되었어요." 그녀의 수다스런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이미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
가슴이 벅차올라 터지는 줄 알았다. 눈에서는 레이저 빛이 발산 되는 것 같았다. 어찌, 하루가 엇갈렸단 말인가? 어찌, 시간의 엇박자란 말인가? 나는 그 순간 머리를 치며 스쳐가는 섬광같은 깨달음이랄까, 흥분이랄까,
어떤 확신이 내 머리를 쳤다. "그녀도 나를 사랑하고 있구나!!!" "그녀도 나를 그리워하고 있다......"
"그녀도 아직 나를 잊지 못하고 있구나, 15년이란 세월의 강이 흘렀는데........"
나는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보상받은 것같은 가슴벅찬 환희,절정감으로
멀티플 오르가즘에 온 몸을 떨었다. 그렇다! 그녀가 어찌 토요일을 일요일로 착각했겠는가? 그녀는 두려워 했던 것이다. 일부러,의식적으로 일요일에 왔던 것이다.
* 무소는 자기가 코뿔소인지 모른다.
무소는 자기가 코뿔소인지 모르듯이, 나는 나를 모른다. 감정은 이성보다 3배가 강하다더니, 나는 논리를 잃었다. 세상 전부가 나를 포위하고 있다.아니 내 자신이 스스로 나를 묶어놓고 있다. 나를 둘러싼, 옛날에 그렇게 익숙했던,나름대로 꽃을 피웠던
세상과 화해할 길이 없다. 자기 경멸,자존 상실.....자기연민에 빠져버린... 나는 없다.
그러나 기억되고 싶다. 그녀가 준 불행마저 사랑한, 순백한 사랑으로,
지구에 남아있는 유일의 로맨티스트이자, 카우보이로...
나는 당신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Without you, I,m nothing.)
노바디(nobody)입니다.
그러나 나를 더욱 어렵게 하는 것은, 밀렵꾼이 총을 쏘는 방향으로 달려오는 아프리카의 "무소"처럼, 아직도 그녀를 잊지 못하고,
거의 무의식적으로 매 5초마다 가슴에 그리움을 한 보따리 안고,
지금도 초원을 달려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단원.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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フランク永井 -俺は淋しいんだ (후랭크나가이 - 나는 쓸쓸해 ) |
첫댓글 가슴이 짠~하네요. 그렇게 결말이 나는군요....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글을 올리자말자 바로 댓글을 달아주신 쫑구님의 부지런함과
처음부터 끝회까지 댓글을 달아주신 님의 끈질긴 일관성과 적극성에 감사드리며,
사이버영토에서 행복하고 건강하게 사시기를......
세월이 내인생의 처방전이란 글귀가 가슴에 와 닿습니다. 잘보고갑니다. 감사합니다.
시간은 해결사이지요.기회는 타이밍이구요.시간은 현대를 지배하는 독재자,
"무소..."도 시간이 되어 이제 끝이 났지요.
행복충전 많이해서 행복한 나날되시길..그 동안의 댓글에 감사드리며........답글 | 수정 | 삭제 | 신고
신부동 카페는 뉴턴의(만유인력의 법칙) 발견에 해당되는 기쁨...
진부한 소재에서 "환상과 사실" "픽션과 논픽션을 넘나드는 이야기" 를 토해 낸.
순백의 사랑..."무소~" .작품내용과 필자를 혼돈할 정도로 현실감이 있는 작품,
초하 풋보리님은... 세상에 남아있는, 유일한 로맨티스트이자 카우보이 입니다.
님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는, 기나긴 고뇌를 견뎌야 하는 아픔이 있군요.
귀환을 기다려 봅니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지요!!
그동안 행복했습니다. 모두들. 안녕히 계십시오...
제 스스로 존경심이 우러나오는 단설님 !! 조그마한 고향카페에 님의 격조높은 품격으로
깊은 애정을 보내주신 단설님께 고향님들의 감사한 마음을 정중히 전해드림니다.
아름답고 훌륭한 시 한편도 낭송가로 말미암아 더한층 시에 생동감이 살아나듯이
단설님의 품위넘치는 댓글이 소설 무소를 더욱 빛나게 한것같습니다
단설님 !! 신부동 카페에 끊임없는 사랑과 단설님의 좋은글 기대합니다...
딱 분질러서 말해도, 연재 도중, 4회부터였던가, 단설님이 신부동카페로 이사를 온 후,
우리동네는 갑자기 뜨거워졌습니다.온천물이 개발되었나.......
언젠가는 주인공 '가음정'모양 홀연히 마실에 나타나리라 기대합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고향선배님이 집필하신 소설 무소- 가 최종회로 마감된다니 섭섭한마음 가눌길 없습니다.
독서로의 여행이 많아서인지 경험을 바탕으로 한 수기보다 더 현실감있는 러브스토리는
저의 심금을 울린 감동의 소설이었습니다.우리삶에 있어 사랑보다 아름다운것이 또 있을까요.
사랑이 있기에 삶은 향기롭고 아름답습니다. 소설속 어구중 이별후에 훨씬 더 자란 사랑,
달빛에 젖은 아스팔트엔 비만 내린다는 문구가 저의 가슴속에 긴여운으로 남을듯 합니다.
선배님 !!! 고향을 소재로 고향님들의 가슴을 적셔주는 그리움의 글들도 감히 부탁드려 봅니다...
살아있는 것이 "로또"라고 했습니다.구름나그네의 필명같이 자유롭고,멋진 삶이 되시길 바라며,
사람들은 삼겹살을 좋아해도 직접 돼지를 잡지는 않지요.읽기는 쉽지만 댓글 달기는 어렵지요.
그 동안의 관심과 격려에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사람의 행복에 필요한 것은, 사람에 대한 따뜻한 관심이 아닐까요! 영국의 존 러스킨은,
인간이 아름다움을 소유할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아름다운 대상에 대한 관심어린 관찰이래요.
"무소~" 가 있었던 신부동 카페.... 고마운 님들....잊지않겠습니다.
고백합니다.깊은 산속 옹달샘, 물만 먹고간 다람쥐였죠, 마지막회에야 겨우 용기를 냈습니다.
그 동안 주인공 "가음정"에 푹빠져 일주일간을 인기드라마 기다리듯이 "무소.."를 읽었습니다. 여러 번 읽었죠.
지고지순한 사랑이야기가 음악과 그림,소설이 한데 어울려 가슴이 찢어지는 카타르시스를 경험했습니다.
작은 고향카페가 이렇게 역동적이다니,조회 숫자에 감동했습니다.댓글도 멋졌고요.
그동안 꿈을 꾸는 듯했습니다. 행복했고요.초하풋보리님! 큰 성공을 기도하는 것으로 고마움을 전합니다.
아마도 현대인의 인스턴트식, 패스트푸드식 사랑때문에 무소의 순수한 사랑이 사랑을 받은 것 같습니다.
행복하셨다니,고마울 뿐, 과분한 칭찬..., 용기를 주는 훌륭한 댓글에 감사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