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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정맥 제19구간
추령-(380m)-봉룡재-△434.9m-x506m-여시목(x467m)-x414m-두들재(410m)-△556m-개운치(340m29번국도)개운치-△641.4m-x528m-굴재(310m)-x524m-△489.5m-x500m-x476m-사덕골재-x428m-구절재(230m)-왕자산(△442.4m)-방성골
도상거리 : 26.25km
소재지 : 전북 정읍시 순창군
지형도 : 1/2만5천 복흥 칠보 능교
이 구간은 최고로 높이야 600m대의 산이고 대체적으로 4~500m대의 산들을 오르내리지만 굴곡이 상당히 심하고 잦은 편이다
정상적인 운행으로 본다면 추령에서 구절재까지가 적당하지만 홀로 산행이라면 방성골 마을 앞까지 갈만하고 체력에 자신이 있다면 일찍 출발해서 가는정이 까지 도상거리 약 30 여km도 도전해 볼만하다
그러나 최고 높은 곳이 해발 600m대에 불과하지만 오르내림이 심하고 두군데의도로를 건너간다
최초로 힘든 오름구간은 개운치에서 고당산 오름이라 하겠다
이 후 구절재까지 끊임없는 오르내림이 이어진다
구절재에서 왕자산까지도 힘겨운 오름길이 자주 나타나고 왕자산 남쪽의 x427m봉으로 진행하는 우를 범하지않게 조심한다
봉룡재 이 후 이 구간 전역이 온통 무덤으로 덮혀있다시피 특정한 무덤을 포인트로 잡을 수 없을 정도이고,
산행 내내 양쪽 아래로 많은 저수지를 보게된다
대체적으로 부드러운 노송군락지대가 자주 나타나지만 그래도 중간 중간 잡목과 호남정맥 특유의 가시넝쿨 지역도
나타나지만 아래쪽 보다는 덜 한 편이다
방성골앞을 지나는 도로상에는 차량이 거의 지나지 않아 교통이 불편한데 그러나 칠보까지 택시비가 만원 정도면 된다는 칠보택시 기사들의 이야기 다.
◁산행 후기▷
2003년4월13일 (일) 날씨 : 열정적인 연인들의 모습같은 전형적인 화창한 봄 날씨
나 홀로 산행
소요시간 : 식사 25분 알바 8분 휴식 43분 포함 총 11시간52분 소요
3월이 일년에 서 너번있는 다 섯째 주일까지 있는 바람에 지난 번 내장산 구간에서 관리공단 직원들에 의해서
나의 대간과 정맥산행에서 처음으로 구간이 짤라지는 아픔을 맛 본지 21일만의 정맥산행이다
또한 이 후의 두 번의 산행이 많은 인원들과의 산행이었다보니 은근히 홀로산행이 그리워지기도 했었고 혹시라도 누군가가 외로운 산행을 도와준답시고 같이 동행해 주기를 원했다
할지라도 손 사래를 치면서 혼자가기를 고집했을 정도였다
사실 내 체력은 내 스스로 쇳덩이 체력이 아닌가 할 정도로 자신을 할 정도였다
그러니까 금년도 3월초부터 지금까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짬잠이 토막잠자고, 짬잠이 집으로 들리고, 사실 침대에서 편안한 잠을 자는 것은 일주일에 하루정도 다
유일하게 자유스러운 시간은 오전중 사우나에서 몸을풀고 운동하는 한 두시간이다
여럿이 어울려서 산으로갈 때면 일행들이 나를보고 부럽다한다
등만 기대면 잠자는 것이 부럽다고 ...나에게 있어 유일하게 여유롭게 잠자는 시간인줄 모르고,
호남정맥(금남호남까지 통칭)도 막바지에 이른 이즈음 지친몸으로 토요일이 되어서야 지도를 꺼내보고 산행계획을
다시 잡아본다
그 와중에 이제 혼자서 달리는데 대해 부담감이 없어져서인지 구간을 늘려 잡으려 궁상을 떨어본다
토요일 저녁 대강의 준비를 끝내고 잠시 누웠는데 으슬 으슬 떨려온다
하기야 일주일 전부터 오른쪽 발등도 시큰거려 런닝도 하지 않는상태인데 ...
참 산에대한 나의 욕심은 대단하다 마치 산이 없으면 죽음인양 말이다
그러니 새벽3시20분 경 정읍역에 내렸을 때는 잠이 덜 깬 상태에서 다시 대합실 의자에 길게 누웠다가 깨어보니 이미 05시 다
늦었다고 허겁대며 택시로 추령까지 이동하는데 이미 날은 밝아온다
13.000원의 택시비로 구불 구불 추령 꼭대기에 올라서니 <정읍15km 내장산6km>의 이정표가 보이고 복흥쪽으로
<정상가든>휴게소옆의 돌계단을 따라오른다(05시48분)
광산김씨 선덕비를 쳐다보며 오르니 <탐방로아님>의 표시를 지나서 정맥의길로 올라서니 싸아한 공기와 활짝핀 진달래들이 나를 반긴다
홀로산행에 대한 그리움을 후련하게 달래려는 듯 기분좋게 달려간다
“가을 단풍이 곱다 하여 추령이라 한다”
<정읍에서 순창 복흥으로 넘어가는 추령>
금새 마을쪽에서 올라오는 큰 길을 만나고 석축으로 된 묘지부터는 급격하게 올려치는데 온갖 이름모를 새들의 울음소리가 산속의 아침을 열고 있다
06시
국립공원 표지석이있는 무명봉지나 바로 바위봉을 오르니 다시 표지석이있고 정맥은 동쪽으로 휘어져 가며 서쪽의 내 왼쪽 발 아래는 조금전 택시로 올라왔던 추령의 구절양장길이 내려보이고 건너편의 서래봉의 칼날같은 능선들이 바라보인다
06시13분
동남쪽으로 x508m봉의 분기점을 이루는 <내무부>표석이있는 봉우리부터 능선은 북쪽으로 바뀌면서 전면의 암봉이 위압적으로 솟아있는데 그 서쪽아래로 <송곳바위>가 눈길을 끌고,
<추령 아래로 내장사가 자리한 골짜기, 뾰족 봉우리는 서래봉이다>
06시20분
동쪽에 막 이글거리며 붉은 해가 떠 오르기 시작하는데 암봉을 오르기 시작한다
급격하게 오르다보니 산죽지역을 통과해서 10분만에 봉우리에 올라선 후 출발이 늦은 관계로 바로 떨어져 내리는데
땀은 이미 온 몸을 흠뻑 적시고 있다
바로 암봉을 하나 지나는데 서쪽 아래로는 내장산 관광호텔지역이 내려다보이고 이 후 급격한 벼랑을 이룬 절벽지역이 나타난다
바위손과 잡을 곳이 많은 바위를 내려서는데 최근의 비 때문인지 미끄러워 조심스럽게 내려설 수 밖에 없음은 홀로산행이라 특히 조그마한 사고에도 신경을 쓰는 편이다
내려서보니 편하게 돌아오는 좋은 길이있는데 애써 바위를 내려오느라...
내려서서 잠시 평탄하던 능선은 47분부터 다시 전면의 봉우리로 오름길이 이어진다
<내장사 일원과 뾰죽한 신선봉일대>
좌측으로 쇠 철망과 어른 키 보다 큰 산죽군락을 헤치며 오르는데 오른쪽 아래로 <증산마을>의 전답들과 그 아래 <서마저수지>가 눈길을끈다
06시54분
동쪽으로 백방산(x675m)으로 갈리지는 능선 분기봉으로 올라서고 정맥은 북쪽으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하고 저 아래 하우스 같은 것이 보이고 내려서면 아마 봉룡재일 듯,
봉룡재가 가까워질수록 노송들이 나타나고 자연히 푹신한 갈비도 밟게되고,
07시02분
우측 아래 신성리로 내려설 수 있는 산길이 뚜렷한<봉룡재>로 내려선다
좌측 아래로는 목장의 파란지붕이 내려다 보이는 이 곳에서 철망의 문을 열고 목장안으로 들어서며 문을 잘 걸어 잠가주는 것이 당연함이리라
잠시 후 다시 철조망을 벗어나며 △434.9m봉을 향한 오름짓이 이어진다
07시18분
봉룡재 이후 한 번의 오르내림이 있고 계속 평탄한 능선이 이어지다가 봉분이 망가진 4기의 무덤이 있는 곳부터 다시금 오름짓이 이어진다
시간상으로 보아서 이미 △434.9m봉을 지났어야 하는데 삼각점이있는 봉우리를 지나지 않았으니 갸우뚱하며 지나가는데 오늘 자주보는 <도근석>을 보며 지나간다
07시30분
x506m봉에 올랐으니 434.9m봉이야 지나온 것이 확실하고 북쪽 저 멀리 통신시설물이 눈길을 끄는 △556m봉을 쳐다보며 잠시 지체하지 않을 수 없다
긴소매를 반소매로 갈아입고 물도 한 모금 마시고 8분 후 산행시작,
여시목쪽의 내리막길은 내가 뛰어내리기 좋아하는 푹신한 급경사 내리막이다
다시 4분 후 억새와 가시넝쿨이 어우러지고 우측으로 사기점마을로 내려서는 산길이있는 <여시목>을 지나는데 우측으로 사기점마을에서 사람을 감지한 듯 개짓는 소리 요란하다
<여시목에서 바라본 사기점 마을과 시설물이있는 △556m봉>
마을쪽 사면은 간벌을 한 듯 시야가 확 터져있고 이제 저 위로 시설물이있는 봉우리가 확실하게 눈에 들어온다
여시목에서 산죽사이의 넓은 길을 오르면 바로 467m봉을 오르지 않고 벌목을위해 중장비가 지나간 넓은 사면길을 지나간다
햇볕이 오래쬐는 동쪽은 온통 연녹색으로 치장하고 있고 건너편 그림자를 드리우고있는 송림 숲으로 빨려들어가 듯 걸음을 재촉한다
쌍묘를 지나서 슬쩍 내려서니 바로 우측 발아래 사기점 마을이다
08시
지형이 묘한 곳인데 서쪽으로 사면같은 곳으로 떨어져 내리니 가시넝쿨들이 무성하고 다시금 올라선 봉우리가
서쪽 <내장저수지>쪽의 x415m봉이 분기하는 x414m봉이다
08시12분
시멘트로 포장된 <두들재>로 내려서니 전면에 두 그루의 산 벚꽃이 활짝피어 나를 반기고 있고 통신시설물 때문에 생긴 시멘트길을 따라 오른다
등뒤로 차량의 소리가들려서 한켠으로 비켜주니 드라이브를 왔던지 남녀가 탄 차가 볼 것이 없는 듯 다시 돌려서 내려서는데 우쒸! 언 넘은 땀흘리며 산 오르고 ....
4분 후 길옆으로 헬기장이 보이고 KT 중계소 1km의 이정표가 보이고,
왼쪽 발 아래 <백석마을>과 그 아래<부전저수지>그리고 <개운치>로 오르는 29번 국도가 구불구불 내려보이는 경치좋은 지역을 지나는데 진달래가 화사하다
“정읍에서 둔전리를 넘어오는 한계라 하여 두들재라 한다”
<두들재의 산 벚꽃>
중계소를 오르기직전 남쪽으로 향하면서 서쪽을 바라보니 <내장저수지>위로 내장산의 능선들이 펼쳐져 보이는데
그 어느쪽에서 보는 것보다 멋있게 보인다
08시33분
KT시설물의 정문을 지나서 철조망을 좌측으로 끼고 사면으로 돌아간다
2분간에 걸쳐서 사면을 벗어나니 저 아래 구불구불한 개운치쪽 도로가 보이고 우측으로 자그만 <도암저수지>가 눈길을 끈다
시설물을 지나니 헬기장이 나타나고 손 전화가 울리는데 이 넘의 먹고사는 문제의 전화가 산속까지 걸려오는데
내가 산에서 뭘 어쩌란 말인가? 우쒸!
개운치로 내려서는 능선의 왼쪽은 급격한 벼랑이고 우측은 좀 부드러운 편이다
<시설물이있는 △556m봉>
무덤1기를 지나니 억새가 하늘거리고 대나무밭을 빠져나오니 29번 상의 <개운치>다
<내장산 14.3km> 순창과 정읍의 경계를 이루고 전면에 <개운마을>이 위치한 개운치에는 벚나무들이 심어져 있고
전면의 사면에 밭으로 이루어진 곳으로 정맥이다싶어 오르니 그 흔한 표지기 하나 보이지 않아 다시 도로로 내려서서 산세를 잘 살펴본다
그러나 역시 조금전 올랐던 곳이 맞는 것 같아 다시 출발한 시간이 09시04분이다
철죽묘목을 심어놓은 밭을 지나니 송림사이로 족적이 나타나고 급경사로 오른다
오름길에서도 상당히 빠른걸음으로 그렇게 20분간 숨이차게 올라선다
09시24분
사람 키보다 큰 산죽군락을 눈을 떳다 감았다하는 상태에서 올려치는데 힘겹다
7분 후 무명봉에 올라선 후 살짝 내려선 후 참나무가 빼곡한 능선날등이 평탄하다
고당산 오름길은 넝쿨과 잡목, 산죽들이 빼곡해서 내 팔은 이미 피가 수없이 흐르고 난자가 되어있다
“지형이 높아 구름이 꽃 피듯이 곱게 핀다 하여 개운이라 한다”
<개운치와 개운마을 사진의 깃대 왼쪽 노란부분쪽으로 오르면된다>
09시41분
서쪽으로 칠보산(x469m)으로 갈라지는 능선 분기점을 지나 산죽밭을 3분여 오르니 <정읍316 1986년 재설>의 삼각점이 있고 전북산사랑회에서 세워놓은 스텐레스 이정표에는 <고당산641.4m와(칠보산)>이라 써 놓았는데 칠보산은 이 곳에서 서북쪽 약6.5km지점에 자리하고 있는데 이 곳에 왜! 칠보산이라 써놓았는지 이해가 가지않는다
개운치1.7km 굴재1.2km라 써있는데 급경사 오름길 1.7km라 그런지 개운치에서 꼭 40분이나
소요되어 올라선 고당산 정상에는 잘 다듬어진 무덤이 한기있고 사위가 막힘없이 터져있어 조망은 시원스러우나 햇볕을 막아줄 그늘은없다
아까부터 배가 고파왔지만 고당산에서 해결하고자 참았던 식사와 개운치에서 오를 때부터 신호음을 울리던 메시지를 확인하니 산행이 궁금한 산우들의 메시지 다
“산 형상이 높은 집과 같다 하여 고당산이라 한다”
<고당산 정상에서 바라본 지나온 정맥, 시설물 봉우리에 좌측 멀리 희미하게 뾰죽한 봉우리가 바위손 절벽을 내려선 암봉이다 뾰죽봉 우측은 내장산 일원이다>
10시10분
작은 소주 한 병의 반주까지 겯들인 식사를 끝내고 고당산 정상을 출발한다
저 아래 내려 보이는 햇볕을 받은 <도암 저수지>는 유난히 반짝거리고, 고당산에서 바로 내려서면 짇은 산죽밭으로 떨어져 내리고 뚝 떨어져 내리고
10시21분
잘 정돈된 淑夫人 靑松沈氏 之墓 봉분이있는 x528m봉을 지나 내려선다
왼쪽 아래로는 <수청 저수지>의 검푸른 모습을 바라보며 뛰듯이 내려간다
무덤들이 많아서인지 중장비가 올라온 흔적으로 산들이 망가진 흔적들이 많고 저 위로 최근에 새로 무덤이 생긴 듯 넓은 길이
만들어져있고 굴재를 내려설 즈음 바로 우측에 오룡마을과 밭들을 지나간다
오늘구간은 대체적으로 무덤들이 많은데 오랜된 무덤들도 많지만 최근에 새로 단장한 가족묘들이 많고 새로 생긴
호화 무덤들이 많은 것으로보아 이 일대가 풍수지리적으로 명당지역에 해당되는 모양이다
“산곡이 험준하고 깊은 굴과 같은 재라 하여 굴재라 함”
<오룡마을이 보이는 굴재로 내려서는능선 저 앞의 왼쪽 송림숲으로 이어진다>
10시40분
굴재를 지나는데 밭을 가로지르는 농로에는 서울 넘버의 승용차도 서있고,
여전히 많은 봉분이 서있는 무덤지대를 지나서 x524m봉을 향해 끊임없는 오름이 이어지는데 상당히 가팔라서 힘겹다
11시04분
오룡마을로 내려서는 소로를 지나 한 기의 묘를 지나니 學生 金海 金公 孺人 漢陽 趙氏 호화판 묘지도 지나서 게속 오름길이 이어진다
11시12분
x524m봉에서 다시 떨어져 내리기 시작하는데 능선의 좌측은 여전히 벼랑을 이루고 있고 조그만 <옥촉저수지>가 내려보이고
동쪽으로 평탄한 듯 올라서는게 △489.5m봉 쪽이다
11시25분~30분 사이 삼각점을 확인조차 못 한 것은 고사하고 489.5m봉을 지나친 것이다
한 참 전진하다보니 우측으로 국사봉쪽 능선이 뒤로보이고 전면에 <용전마을>이 내려다 보임으로 이미 489.5m봉을 지난 것을 알 수 있었다
11시50분
잠시 그늘에서 5분 간 휴식 후 저 앞의 산 사면으로 석탄사가 자리한 것이 보인다
3분 후 노송군락 아래로 산죽밭이 펼쳐져있고 동쪽으로 이어져간다
우측아래로 용전마을과 중리마을이 내려다 보이고,
12시02분
좌측 용전마을과 좌측으로 석탄사로 내려서는 갈림길을 지나서 오르기 시작하는데 일대는 노송이 아주 운치있게 자리하고
있고 무덤은 자주 나타난다
무덤가에는 할미꽃이 수줍은 듯 고개숙이고 있는데 요즘은 그런 할미꽃조차 흔치 않아서인지 할미꽃을 쳐다보면
아득한 유년시절의 기억을 떠 올리곤한다
12시15분
봉우리라기보다 그냥 펑퍼짐한 x500m봉에 오른 후 북서쪽으로 내려선다
5분 후 내려선 후 3분간 올라서니 펑퍼짐한 봉우리에 낮잠이라도 자고가면 좋을 것같은 그늘진 노송이 보기좋다
<낮잠이라도 자고픈 운치있는 노송 그늘>
12시28분
무덤이 하나 덩그러이 자리한 x476m봉을 오른 후 북쪽으로 내려서는데 4분 후 노송이 울창한 임도로 따라 내린다
12시40분
사적골재에 내려서니 이름을 확인 못한 암자같은 것이 보이고 우측 전면으로 <사적골 저수지>가 보이고 시멘트길을 따라서 전면의 좌측에 농가를끼고 밭을따라 오르다가 급격하게 다시 오름길이
이어진다
12시54분
x428m봉에 올라서니 노송아래 그늘이 져있고 주위에 진달래가 화려하게 피어있어 배낭을 내리고 쉬어가지 않을 수 없다
<사적골재>
6분간 휴식 후 428봉에서 뚝 떨어져 내리고 이 후 오르내리기를 두 차례 후,
13시13분
<정읍478 1997년 재설>삼각점있는 △366.7m봉에 오른다
이 봉우리 역시 노송이 좋으나 주위에 나무를 베어 아무렇게나 방치해놓아 흉하다
6분 후 <154.000V 정광분기T/L NO 38>의 고압 전신주를 지나내려서니 2분 후 소로가 있는 <미리재>를 지나서 잡목이 무성한 전면의 능선으로 올라서니 4기의 무덤이 보이고,
13시30분
힘겨운 오름길끝에 무명봉에 올라서고 잠시 방향이 북쪽으로 휘어지며 평탄하다
5분 후 무덤을 1기 지나고 3분 후 다시 쌍묘가 자리한 <장군봉x280m>분기봉을 지나서 본격적으로 <구절재>쪽으로의 하산이 시작된다
< 구절재로 내려서는 부드러운 송림숲>
13시44분
무명봉 하나를 올라서 남쪽으로 꺽으며 뛰다시피 내려서는 송림숲은 부드럽기 그지없고,
남쪽 <윗 허궁실>마을로 내려서는 소로를 지나니 붉은 벽돌로 봉분을 쌓은 <유인 여산 송씨> 무덤이 눈길을 끌고,
잠시 후 돌을 깍아서 봉분을 지탱한 <전주 최공 우주 황씨> 합장묘가 눈길을 끈다
그리고 이 일대의 무덤앞의 비석에는 한글로 새겨진 것이 독특하다
13시54분
<유인 남평 문씨 진주 최공> 합장묘가 있는무명봉을 힘겹게 오르고 내려서면서 이제 구절재 이겠지 했으나 다시 뽀쥭한 봉우리를 힘겹게 다시 올라야한다
15분 후 <154kv 광주 T/L No125> 고압 송전탑 아래를 지나 구절재로 내려선다
<독특한 여산 송씨 무덤>
14시13분
<임실38km>의 이정표가 붙어있는 30번 국도상의 <구절재>에 내려서니 차량이 빈번하다
건너편으로 올라붙으니 대단위 무덤지역이고 저 아래 <구절리>마을이 보인다
나무 그늘을 찾아서 마지막남은 캔 맥주 하나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며 나머지 일정을 생각해 보기로 하는데 사실 구절재까지 도상거리 거의 20km의 거리이기 때문에 이 곳에서 짤라주는 것이 당연하나 너무 일찍 도착했기에 구간을 늘려보기로한다
지도를 펼쳐보니 짤라 줄 곳은 왕자산을 지나서 <방성골>마을앞의 비포장 길이다
하산 후 확인한바로는 얼마전에 포장이된 749번 지방도로였다
아무튼 도상거리 6.5km의 방성골까지는 진행하기로 결심을 굳힌다
그러나 구절재에서 왕자산까지는 굴곡이 심한 묘한 지형인 것을 사전에 알았다면 이 곳에서 자르고 말앗을 것이다
... 그러니 모르는게 약이다 ^^
“아흔 아홉 구비로 되어 있어 구절재라 하였다”
<구절재>
구절재로 내려서기전에 누군가에 의해서 많은 정맥 표지리본들이 한꺼번에 뭉치로 던져놓은 것을 목격했다
사실 오늘 구간은 표지기가 몇 개씩 붙어있지 아니해서 적당하다고 생각하면서 진행했는데 누군가에 의해서 솎아내진 것이다
사실 솎아진 상태가 적당하다고 생각했으니 그간 얼마나많은 표지기 공해였을까
생각해보는데 표지기를 꼭 달아야겠다는 팀들은 한 구간에 다 섯개 정도를 붙인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그래도 그 많은 팀들이 붙여놓아도 엄청날테니 말이다
또 한가지 ... 왜! 표지기를 남들이 붙인 곳에 같이 붙이는걸까?
기왕이면 남들이 붙이지 않는 곳에 붙인다면 보기도 괜찮고 후답자들에게 진짜로 도움이 될텐데 ...
꼭 보여주기위한 표지기 붙임이란 생각을하니 좀 그렇다
그런면에서 본다면 이 구간을 산행한 g산악회 나 j산악회는 후미들이 회수를 하며 진행했던지 어쩌다가 보이는 것이
반갑기까지한다
이 모든 것은 내 개인의 생각일 뿐이지 내가 옳다 그르다라는 판단은 아니다
<누군가에 의해서 솎아져서 버려진 표지기들, 이 것을 버린 사람은 후답자들에게 무언가 메시지를 전달하고자하는 의미에서 눈에 띄는 곳에 버린 것같다>
14시25분
12분이라는 충분한 휴식시간을 가진 후 구절재를 출발해서 무덤을 지나 숲으로 들어서면서 다시 올려치는 정맥의 날등이다
급격하게 5분간 치고 오르니 동쪽으로 방향이 바뀌며 내려서는데 저 앞에 다시 올라설 봉우리를 보니 끔찍스럽다
대수롭지않게 생각했는데 지도를 다시 꼼곰히 쳐다보니 등고선의 간격 이라든지 여러모로 오르내림이 심하고 요상한 지형이다
14시50분
정말 힘겹게 20분동안 빠른 걸음으로 가파른 오름이 이어졌는데 봉우리를 올라서자 다시 내려서고 전면에는 나무들을 벌목하고 삼나무 회양목 등으로 수종 교체를해서 이상하게 보이는 지역을 지나자니 우측 저 아래<소군실 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방향은 거의 북쪽으로 이어지면서 다시 떨어져 내린다
<구절재를 지나서 급격하게 올랐다가 내려서면서 바라본 △416.5m봉 분기봉 쪽>
급격하게 내려섰다가 살작 봉우리 하나를 올랐다가 완전히 내려선 후 전면의 △416.5m봉으로 분기하는 봉우리로 힘차게 올라서야 하는데 다시금 힘겨운 오름이다
15시20분
힘겹게 힘겹게 서북쪽으로 △416.5m봉 분기점 봉우리에 올랐다
그러니까 도상거리 약2km의 오름길을 1시간5분만에 올랐을 정도니 힘에 겹다
8분간 휴식을 취하며 마시고픈 물도 아끼느라 마음 껏 마시지 못하고 다시 출발이다
잠시 남쪽으로 향하는가 했더니 다시 동쪽으로 떨어져 내린다 ... 에고 아까워라
다시 전면의 두리뭉슬한 봉우리를 올라섰는가 했더니 무덤이 나타나고 능선이 아닌 급사면으로 남쪽의 방향으로 내려서는데 <윗 보리밭 마을> 방향이다
<윗 보리밭로 내러기전의 전경들 우측은 왕자산 일원>
급사면을 뛰어내리니 최근에 새로생긴 무덤이 나타나고 우측 아래로 계곡을끼고 송림숲 아래로 내려서니 커다란 고목나무가 서있는 <윗 보리밭 마을> 최 상단의 안부인데 인근에는 역시 많은 무덤들이 바라보이고 저 아래 외딴 민가가 보이고 논에 거름을 뿌리는 일가족이있어 물병을들고 내려서본다
마침 지하수를 논으로 보내는 호스가있어 식수를 보충하고 거름을 뿌리는 농부에게 이 곳의 지명을 물으니
역시 윗 보리밭 마을이란다
식수가 걱정없으니 여유롭고 기운이 펄펄 나는 것 같다
<윗 보리밭 상단부 안부를 지나서 두 번째 고목나무>
15시51분
비석이 난무한 무덤지대를 지나니 송림이 우거지고 저 아래 진달래와 잡목이 무성한 지역으로 들어선다
광산 김씨 가족묘를 지나니 정맥은 아슬 아슬하게 이어지며 치고 오른다
16시05분
무덤이 많은 지역에서 급격하게 전면의 봉우리에 오르니 다시 남동쪽 평온한 숲길로 평탄하게 이어진다
5분후 두 번째 고목나무가 나타나고 우측으로는 윗 보리밭 마을로 내려서는 길을 지나고 전면의 넓은 능선으로 접어드니 길은 Y자로 갈리는데 우측으로 오른다
그리고 다시 5분 후 벌목을 해서 시야가 확 터지는 지역을 지나 올라서는데 비석과 석물들이 오래된 무덤이 눈길을 끌고 사면으로 올라친다
왕자산 오름은 초반부터 멋진 노송들이 군락이룬 지역을 지나는데 역시 잘 가꾸어진 무덤앞에서 후손인 듯한 동네 노인분을 만나서 인사를하며 지나친다
잠시 산불이 난 흔적들이 있는데 크게 번지지 않았든 듯 다시금 노송군락이 펼쳐진다
한 순간의 실수로 저 무성한 노송군락이 불타버렸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아찔하다
16시33분
<갈담 453, 1991년 복구>의 삼각점이있는 왕자산 정상에 오른다
오늘 구간은 무덤도 많고 노송군락도 많고 호남정맥 특유의 가시넝쿨로 많고,
갈길이 바쁘니 물 한모금 마시고 그대로 산행을 진행하는데 8분 후 우측으로 파란 지붕이 내려다 보이는 아랫 보리밭 마을로 내려서는 소로길이있고 무덤이있는 지역을 지나가고
2분 후 다시 우측으로 소로길을 지나가고 전면의 높은 봉우리로 오른다
그러나 이 곳에서 방향을 동쪽으로 꺽으며 사면같은 곳으로 뚝 떨어져 내려야 하는데 남쪽의 x427m봉 쪽으로 힘겨운 오름짓을 하는 우를 범한다
16시55분
사실 이미 잘못되었지만 왕자산 보다 더 높다고 생각되는 봉우리에 올라섰다가 내려선다
그리고 10분 후 x427m봉에 올랐을 때야 아차! 잘못이라는 생각을하고 되돌아선다
홍문리쪽 하산길로 갔다가 되돌아 나오니 17시11분이다
무려 왕복 28분간의 힘겨운 오르내림의 알바가 오랜만에 이루어진 것이다 ...자존심...
17시20분
가족무덤이 많은 지역을 지나서 전면을 오르는데 역시 노송지역이다
7분 후 사면같이 급격히 떨어진는데 밭 지대가 나타나고 저 앞으로 마을이 보인다
방성골 마을을 지나며 지게를 지고오는 촌로와 이야기를 나누며 엉겹결에 마을을 벗어나서 포장된지 몇 달이 되지 않았다는 715번 지방도로로 나와서 건너편을 살펴본다
공식적으로 오늘의 산행을 끝내는 순간이기도하다
<방성골 마을>
이 곳 저곳 건너편 들머리가 어디인가 살피는데 마을쪽으로 버스가 한 대 들어온다
그렇잖아도 차량이 전혀 다니지 않는 도로상에서 정읍으로 나갈일도 걱정이 되든차에 버스가 들어와서 나가니
얼른 올라타고만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마을앞길로 벗어날 것이 아니라 마을 뒤쪽의 야산 능선을 따라야 할 것이지만 워낙 다급하게 버스로 오르고 말았던 것이다
정읍-신태인간의 버스였는데 신태인에서는 예매된 새마을 열차를 탈 수 없기에 칠보에서 정읍행 버스로 갈아탄다
정읍행 버스 운전기사가 산에 상당한 관심이 잇는 듯 여러 가지 질문을 하더니 버스 정류장도 아닌 역과 가까운 곳에서 세워준다
식사에 소주한 병으로 서울까지 세상 모르고 잠에 빠져들 수 있었으니 그 것도 복이다. -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