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천팔경(寒泉八景) 월류봉을 다녀와서!
2017년 올해의 4월이 마지막인 날 송년이니 정유년 새해맞이이니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눈속에서도 피는 꽃이라하여 설연화(雪蓮花)라고도 하고 황금색
으로 핀다고하여 금잔화(金盞花)라고도 한다는 복수초꽃이 봄맞이 꽃으로 활짝 피더니
개나리 진달래 매화 벚꽃이 터널을 이루기도하고 화려한 꽃동네 꽃동산을 이루더니
어느덧 꽃잎이 날리다가 겨울내내의 나목(裸木)들이 연초록 숲을 이뤄 제 몸을 가리
더니 이제는 꽃과 잎이 함께 피어나는 하얀 빨강 노랑 등의 각색으로 군락(群落)을
이루며 자태를 뽐내는 철쭉꽃이 봄의 절정을 이루는 시기에 사월은 가면서 만춘(晩春)
을 알리는 장미의 계절 5월을 부르니 내가 이 연륜(年輪)으로 앞 길이 10년일까 20년일까?
오던 길 되돌아보면 사연도 많았고 구비구비 돌아온 인생길이 참으로 허망한 세월이었음을
느끼는 마음 지울 수가 없음니다!!!~~
25대 무열왕의 후손이 일본에 나라를 새웠다고도하는 700여년의 백제의 역사와
한을 안고 흐르는 금강 상류인 한천 수변의 월류봉은 산과 물이 어우러지는 절경에 달도
머물다 간다는 유래가 전해지는 곳 죽장망해 단봇짐에 도포자락 나풀거리며 삼천리 방방
곡곡을 주유(周遊)하는 풍류객인들 어찌 지나쳐갈 수 있으리오? 우암 송시열이 시원한
한천을 내려다보면서 은둔의 세월을 보내며 학문에 정진했다는 그 자리에 후학들이 정자를
지어놓아 누각이 위치한 그 곳의 경관이 더욱 돋보이고 유래를 아름답게 이야기를
만들어 놓은 듯 하니 유서깊은 곳으로 인식이 되어서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게 되나
봅니다. 그래서인가? 2017년4월30일 인터넷 카페 "5060아름다운사람들"의 산행동호회
에서 갈바람 대장의 안내로 44명의 회원이 아침 일곱시 종로3가역 8번 출구밖에서
07:10분에 명성관광버스[경기76 자8718]에 승차하여 천안휴게소를 거쳐간 월류봉
주차장에 도착된 추정시간 오전 열시반에 월류봉 주차장에 도착 하차하여 한천
건너의 강안덕과 같은 작은 봉우리 위에 소나무가 터를 에워싸는 듯한 한천정사라는
누각과 함께 펼쳐지는 주변 경관이 한천팔경 중에 한천제일경이라는 수식어(修飾語)를
붙여도 손색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절반으로 나뉘어진 걷기 일행은 한천수변을 걷고
산행 일행은 월류봉 들머리로 진입하여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는 1봉에서 5봉까지
등산을 하다가 하산하여 한천 징검다리를 건너서 월류봉주차장에 도착된 시간은
예정시간이 지켜진 13:30여분 조금 늦게 도착한 걷기일행과 합류하여 뒷풀이 장소로
이동 늦은 중식을 겸한 뒷풀이는 음식이 나눔이 매게(媒介)가 되니 모두가 가족같은
열린 마음으로 주거니 받거니하는 나눔의 즐가움은 정겨움이요 같은 세대를 함께
살아가는사람들의 사랑하는 모습들이었습니다. 오는 길에 노근리와 와인코리아를
경유(經由)하여 밤 여덟시경에 종로3가에 도착하였습니다...
영동군 황간면 월류봉(月留峯)
높이는 400.7m이다. 깎아지른 절벽산인 월류봉 아래로 물 맑은 초강천(草江川) 상류가
휘감아 흘러 수려한 풍경을 이룬다.‘달이 머물다 가는 봉우리’라는 뜻의 월류봉(月留峯)
이란 이름처럼 달밤의 정경이 특히 아름답다고 알려져 있다. 예로부터 이 일대의 뛰어난
경치를 ‘한천팔경(寒泉八景)’이라 하였다.
한천팔경은 제1경인 월류봉을 비롯하여 사군봉(使君峯)·산양벽(山羊壁)·용연동(龍淵洞)
·냉천정(冷泉亭)·화헌악(花獻岳)·청학굴(靑鶴窟)·법존암(法尊巖)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대부분 월류봉의 여러 모습을 지칭한 것이다. 화헌악은 월류봉이 진달래와 철쭉으로 붉게
물든 모습을 가리키고, 용연동은 월류봉 아래의 깊은 소(沼)를 말하며, 산양벽(산양암)은
월류봉의 가파른 절벽을 이르는 것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제16권 충청도 황간현
(黃澗縣) 불우조에‘심묘사(深妙寺)의 팔경(八景)’으로 기록되어 있는 곳이 바로 한천팔경이다.
우암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은 한때 이곳에 머물며 작은 정사를 짓고 학문을 연구
하였는데 월류봉 아래쪽에 우암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한천정사(寒泉精舍,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28호)와 영동 송우암 유허비(충청북도기념물 제46호)가 있다.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원촌리에 있는 조선시대 누각.
1999년 9월 15일 충청북도문화재자료 제28호로 지정되었다. 우암(尤庵) 송시열
(宋時烈:1607~1689)이 한때 은거생활을 하며 학문에 몰두했던 자리를 기념하여
건립하였다. 원래는 그를 배향하는 한천서원이 있었는데 1868년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된 후 후학들이 유림회(儒林會)를 결성, 한천정사를 건립하였다. 누각이
위치한 원촌리 일대는 경관이 아름답기로 유명한데, 이곳에 한천정사가 있어
한천팔경(寒泉八景)이라고 이름붙였다 한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기와집으로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양쪽에 방을
들이고 전면에는 툇마루를 놓았다. 자연석 주춧돌 위에 네모기둥을 세우고
, 가구형식은 3량가(三樑架)에 주위로 막돌담장을 둘렀다. 송시열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영보(英甫)이다. 병자호란 때 왕을 남한산성
으로 호종(扈從)하였고, 1649년 당파싸움에 휘말려 벼슬을 잃고 낙향, 후진양성에
전념하였다. 이후 다시 중용되어 1671년 우의정, 이듬해 좌의정을 역임하다가
한동안 화양계곡에서 은거하였다. 1689년 왕세자가 책봉되자 이에 반대하는
상소문을 올렸다가 제주로 쫓겨나고, 다시 서울로 이송되던
중 정읍에서 사약을 받았다.
월류봉(月留峰)의 유래
월류봉(높이 400.7m) 충북 영동군 황간면소재
풍광이 수려하여 달도 머물다 간다는 충북 영동의 절묘한
월류봉을 들른다.월류봉은 충북 영동군 황간면인 금강 상류를 굽이쳐
흐르면서 그윽한 산수의 풍경과 경관을 연출하는데 그 일대중에서도
여덟 경승지를 한천8경이라 부른다. 한천8경은 월류봉, 화헌악, 용연동,
산양벽, 청학굴, 범존암, 사군봉, 냉천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중에
서도 월류봉이 으뜸의 경승지라 말하고 있다. 월류봉은 봉우리에 달이
걸려 있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달이 봉우리에 걸려 잠시 쉬어간다'는
뜻으로 달뜨는 밤 월류봉 산자락에 걸린 둥근 달과 그 달이 초강천 냇물
에 교교하게 비쳐 어우러지는 밤의 풍치를 생각할 때 예나 지금이나 시인
묵객이 아니어도 감성에 젖어 시 한 수 읊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월류봉 주차장에 세워진 원촌마을 유래비에 상세하게 기록되었듯 조선
시대 우암 송시열 선생은 천혜의 비경에 사로잡혀 이곳에 머무르며 강학을
하였으며 그를 기리는 유허비와 함께 한천정사가 세워져 있고 지금도
많은 관광객들이 다녀가고 있는 곳이다. 월류봉이 내다보이는 인근 황간교
다리 냇가에서 간단하게 라면으로 점심 요기를 하고 월류봉 주차장에
도착하여 바라보는 일대의 운치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장관이
빼어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