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주제별 예화모음)
▣ 집으로
집으로...
참으로 따뜻한 말입니다. 팔십여 일 집 떠나 병원 병실에서 생사의 기로를 수없이 오고가며
수많은 고비를 용기 있게 이겨 내신 어머니께서 드디어 오늘 집으로 입성하셨습니다.
짜아잔~
대문이 열리니 오색 풍선과 함께 "할머님 퇴원 축하해요"
모처럼 식구들 많이 모여 왁자지껄 사람 사는 것 같습니다.
- 장상식의《청어를 먹던 날 아침》중에서 -
* 따뜻하고 다복한 집의 풍경이 그려집니다. 오랜 투병 끝에 집으로 돌아온 어머니(할머니)의 건강한 얼굴, 맑고 환한 표정도 눈에 선합니다. 아무리 춥고 아파도 돌아갈 집이 있으면 견딜 수 있습니다. 살 수 있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이 행복입니다. 집이 곧 작은 천국이며 사랑과 기쁨입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 살고 싶은 집
성경공부 모임에서 '내가 살고 싶은 집은 어떤 집인가?' 하는 문제를 가지고 서로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한 500평쯤 되는 텃밭이 딸린 전원주택에서 살고 싶다. 침실과 화장실이 두 개씩에 커다란 거실이 있는 아파트에서 살고 싶다. 건강에 좋은 황토 벽돌로 아담하게 지은 현대식 집에서 살고 싶다. 오두막이라도 좋으니 내 이름으로 등기된 집에서 살아보고 싶다. 각자 자기가 꿈꾸는 집에 대해서 신나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집사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아빠가 있는 집에서 살고 싶어요. 요즘 들어 더욱 아빠가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두들 말문이 막혔습니다. 그 집사님은 남편을 사별하고 혼자서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과 살고 있거든요.
잠언 15장에서 솔로몬은 '많은 돈을 들여 지은 멋진 집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더 복되다'고 했습니다.(16절) '채소를 먹으면서 서로 사랑하는 것이 고기를 먹으며 미워하는 것보다 낫다'고 했습니다.(17절) '아이들은 부모를 존경하고 부모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집이 천국'이라 했습니다.(20절)
자, 이제 다시 한 번 '내가 살고 싶은 집은 어떤 집인가?' 하는 질문에 대답해 보시렵니까? 엄마가 있고, 아빠가 있고, 아이들이 있고, 가족들이 서로 사랑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싶어하는 집에서 이미 살고 있는 것 아닌가요?
ⓒ최용우
▣ 담이 없는 집
집을 지을 때 사람들은 높거나 낮거나 담을 쌓지만 더러는 담이 없는 집이 있다. 시골 산기슭 마을이나 달동네 같은 곳 울타리도 담장도 없이 밤이면 불빛과 함께 방안의 말소리가 오순도순 새어나오는 집이 더욱 행복해 보이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까마득히 높은 담장에 가시철망을 쳐놓고도 그것도 못 미더워 이중 삼중의 장치까지 하고 사는 사람들은 담장을 높이 쌓는다는 것이 나를 가두는 일임을 알지 못하는 것일까?
사람과 사람사이에도 담장이 있다. 내 마음의 빗장을 열고 불빛과 말소리를 이웃에 들리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마음을 깊이 감추고 빗장을 열지 않는 사람도 있다. 나의 담장을 먼저 허무는 일이 이웃의 담장을 허무는 일인 것을 왜 모르고 사는 것일까? 담장이 없는 집이 되자 누구든 내 집에 들어서게 하고 나도 밖으로 쉽게 나갈 수 있는 마음의 담장을 허물고 살자 마음의 빗장을 풀어 활짝 열어 제치자
- 김영진 <사랑과 희망의 노래> 중에서
▣ 황금집
한 가난한 소년이 일을 마치고 집에 올 때마다 멀리 강 건너편에 있는 집이 황금유리로 번쩍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소년은 생각했습니다. "야, 저 황금유리집에 사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 저 집에 가보고 싶구나." 그러면서 자신의 처지를 보면 "비참함"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다 하루는 소년이 큰 결심을 하고 그 "황금집"을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그 집과 유리창은 황금이 아니었습니다. 창이 많은 그 집은 노을을 받아 황금빛으로 빛날 뿐이었습니다. 소년이 '허무한 확인'을 하고 멀리 있는 자신의 집을 보았을 때 자신의 집도 노을을 받아 황금빛으로 번쩍이고 있었습니다. 남의 집 잔디가 더 파랗게 보이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행복은 돈, 권세, 명예 등의 조건에 의해서 좌우될 것이라 생각하고 그 뒤를 좇아가려 애쓰나 행복의 자리는 결코 그런 외적인 조건에 있지 않습니다. 행복은 바로 우리의 신앙과 마음속에서 창조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행복의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시127:1-2, 잠8:18)
▣ 집 이야기
어느 날 한 성도님의 가정을 심방하였습니다. 예배를 다 드린 후 성도님의 눈을 보니 눈물이 고였습니다. 무언가 모르지만 감정은 억제되지 못하고 눈물로 응어리져 흘러나왔습니다. 사정은 알고 보니 집을 이사해야만 할 형편이었습니다. 살고 있는 집이 그리 큰 집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집주인이 전세 값을 터무니없이 올려달라고 해 그 집을 비워 주어야 만 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웠을 것입니다.
어느 해인가 전세 파동으로 인하여 교회에 다니시는 집사님 일가족이 유서를 남겨놓고 연탄을 피워놓고 동반 자살한 기사를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 섬기고 있던 교회에서 우리 교회 성도만큼은 집값을 무리하게 올려 받지 말자고 설득했던 일이 생각납니다. 미세한 식물도 제 뿌리 뻗을 곳이 있고 하루 사는 곤충이나 아무리 추하게 사는 동물도 거할 집 걱정 없이 사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기본적으로 해결되어야할 집 때문에 참으로 많은 걱정을 하고 그것을 얻기 위하여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성도님의 눈물을 보니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돈이 있으면 좀 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목사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은 그저 하나님께 기도하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그 다음날 새벽 기도 시간 내내 그 성도님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새벽 설교가 끝나고 마침 기도를 하면서도 이사해야할 분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 당시 우리 성도님 중에 또 한 분이 집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었을 때였으므로 그 기도제목이 한 동안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가끔씩 이면 차를 타고 운전을 하면서도 "하나님 그 성도님들에게 편안히 거할 수 있는 집을 허락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곤 했습니다. 기도하기 시작한 지 거의 한 달이 지난 어느날 전도사님으로부터 그 성도님이 집을 샀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제가 집을 산 것은 아니었지만 너무나 기뻤습니다. 물론 그 성도님이 열심히 기도하고 노력하였을 것이고 주변의 돕는 손길을 통하여 집을 살 수 있었을 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님을 위해 기도한 목사의 마음은 달랐습니다. 새벽마다 때로는 달리는 차속에서 기도한 기도의 응답으로 느껴졌습니다. 얼마 후 또 한 분의 성도님도 집을 샀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쁨으로 방문하여 감사예배를 드렸습니다. 사람들은 모르지만 아마 그 감사와 감격은 기도하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을 것입니다. 언젠가 회사 문제로 아주 어려움을 당하는 성도님을 위해 기도원에 간 일이 있었습니다. IMF 경제 위기 속에서 회사는 날로 어려워 졌고 회사는 부도 위기에 처했습니다. 집사님은 틈만 있으면 금식하며 기도를 하였고 그 어려운 가운데서 희망을 잃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을 바라보았습니다. 옆에서 그 부부 집사님의 고통을 지켜보며 도와주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해보았습니다. 도울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었습니다. 별 수 없이 한 주간 그 가정을 위해 산에 올라가 금식하며 기도해야 하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기도원에서 금식하며 기도하기 시작한 3일이 지난 후 지금은 유학을 간 전도사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모든 것이 잘 될 것같다는 것이었습니다. 몸은 피곤하고 지쳤지만 그 말 한마디를 들으니까 마음 속에서 감사와 기쁨이 흘러나왔습니다. "그래 하나님이 기도를 응답해 주시는가 보다"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더욱 열심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산에서 내려왔는데 문제는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집사님의 가정은 점점 더 어려워졌습니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었습니다. 심방하여 말씀을 통하여 위로하기도 하고 설교하며 어떤 경우일지라도 소망을 잃지 않도록 권면하였습니다. 새벽마다 일년이 넘도록 집사님의 가정을 위하여 거의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정은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것은 경매가 되었습니다. 이제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거리에 내몰려야만 형편이 되었습니다. 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께 떼를 쓰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고통스런 마음으로 기도하던 어느 날 집사님께서 집을 샀다고 했습니다. 돈이 있어서 산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전 집보다 더 큰 평수였습니다. 집사님 부부는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모르지만 저는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이고 기도의 응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사하여 예배드리던 날 제 집은 아니지만 감격과 감사와 기쁨이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났습니다. 아마 그 감정은 그 가정을 위해 기도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또 다른 행복이었을 것입니다. 최근 일입니다. 어느 집사님이 집 팔기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걱정하시는 집사님에게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머지않아 때가 되면 좋은 길을 주실 것입니다."라고 말하고 기도했습니다. 그 말을 한지 얼마 후 새벽 설교를 마치고 마침기도를 하는데 그 집사님의 이름을 거명하여 기도하고 싶었습니다. 그 집사님의 자존감을 위해 그동안 기도하면서 한 번도 그 집사님의 집문제를 공개적으로 기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날은 공개적으로 기도하고 싶었습니다. 며칠 후 집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해결된 날은 바로 그 날이었습니다. 기도 응답의 기쁨, 그 기쁨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고 기도하는 사람만이 맛볼 수 있는 특권이며 감격일 것입니다.
집 이야기/ 김필곤 목사
▣ 시127편<집을 세우는 자>
인간이 가진 가장 진한 열망의 하나는 행복한 가정을 세워가는 일입니다.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직장에서의 땀 흘리는 수고의 가장 큰 이유도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입니다. 가정은 우리의 행복이 출발하는 장소이고 우리의 행복을 결산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심지어 성경은 천국을 가르쳐 우리의 영원한 집이라고 말합니다. 가정은 이 땅에서의 우리의 집입니다.
그런데 이런 가정들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흔들리는 가정들을 다시 세우기 위한 여러 방안들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어떤 방안은 사회학적인 것이고 어떤 방안은 심리학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신학적인 방안을 제시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다시 가정의 건축가로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그분의 지시하심을 따라 다시 가정생활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집을 지을 때 설계자와 건축가가 엄격하게 구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 서구적인 건축문화의 출발점이었던 로마에서는 설계자가 곧 건축가이었다고 합니다. 그것이 이상적이 아니겠습니까? 훌륭한 건축가는 설계자의 의도를 잘 드러내어 실현하는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설계자가 건축을 지휘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건축 방안이 될 것입니다.
현대 가정의 모든 비극의 출발점은 우리의 가정에서 하나님을 추방한 것입니다. 더 이상 그분은 가정의 설계자도 아니며 가정의 건축가는 더 더욱 아닙니다. 그러나 이제라도 우리는 다시 하나님이 우리 가정의 설계자이심을 고백해야 합니다. 그분이 가정을 설계하시고 만드셨습니다. 이제 그분의 뜻을 따라 부부생활을 하고 자녀양육 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 기도: 가정의 설계자이신 하나님, 당신의 뜻을 따라 우리들의 집을 세워가게 하옵소서. 아-멘
/이동원 목사
▣ 돌아 가야할 집
조선 초기 수양대군에 의하여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사육신 중 한사람인 성삼문이 수레를 타고 형장으로 가면서 읊은 시이다.
擊鼓催人命(격고최인명)하니
回頭日欲斜(회두일욕사)라
黃泉無一店(황천무일점)하니
今夜宿誰家(금야숙수가)하리오
북소리는 사람 목숨을 재촉하는데
돌아보니 해도 지고 있구나
황천에는 주막 한 곳 없다하니
오늘밤은 뉘 집에서 잘거나
세상의 모든 인연을 뒤로하고 떠나는 사람들 그러나 가야할 집이 없다면 과연 얼마나 불안하고 절망일까? 미련한 듯 조물주에 자신을 맡겨보는 것도 크게 손해 보는 일은 아닐진대 늙어가는 길에 아쉬움을 덜어보는 것은 삶의 위로가 아닐는지요.
김인환 / 총신대학교 총장
▣ 사람은 집과 같습니다.
사람은 집과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도 자신을 가리키는 여러 가지 이름을 지을 때
더러 한자(漢子) 집 '당(堂)' 자를 끝에 붙이기도 했나 봅니다. 옛 애굽의 임금을 가리키는 '바로'('파라오')라는 말도 '집'이란 뜻을 품고 있다고 합니다. 한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 자라서 어른이 되면 생업을 택하고 스스로 가정을 이루어 자기 식구들이 사는 데 조금이라도 더 편하도록 될 수 있는 대로 넓고도 좋은 집을 마련하기 위해서 피나는 노력을 합니다.
그런데, 자기를 만나는 사람들이 안락함을 느끼도록 정작 자신을 끊임없이 넓히고 아름답게 가꾸고 다듬는 일은 소홀히 하기가 쉬습니다. 그리하여 때로 자신이 가족과 더불어 좋은 집에 살지만 자기 자신이라는 집은 전혀 그렇지 못한 수가 많습니다. 힘들여 마련한 집을 계속 아름답고 깨끗하게 관리해야 그 집에 사는 내 가족과 그 집을 드나드는 부모형제자매 친척 친구들이 편안함을 느끼고 기쁨을 누릴 수 있다면 내 자신이라는 집도 그렇게 관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이라는 집의 껍데기를 가꾸고 다듬기 위해서는 애씁니다만 그 속 알맹이를 아름답게 하는 데에는 그렇지 못한 수가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내 자신이라는 집의 겉과 속을 나날이 더 넓히고 잘 관리하고 유지하는 것은 내 힘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그 집은 본디 내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것이므로 하나님이 손질해 주셔야 넓힐 수 있고 하나님이 잘 다듬어주셔야 아름답게 유지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마음 놓고 드나들며 이 집을 아름답게 가꾸시도록 늘 기다리고 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도 고린도교회 신자들에게 "너희는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전3:16)"라고 말했나 봅니다.
<박동현 교수/장신대학교 구약학>
▣ 호텔과 집
세상 만물을 바라보는 두 개의 관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호텔이요 하나는 집입니다. 호텔은 임시 머물고 쓰고 버리는 공간입니다. 집은 항시 머물고 쉬고 닦고 유지하는 공간입니다. 현대인들은 이 세상 우주를 호텔처럼 여기고 있습니다. 이기적이며 자기 중심적입니다. 그러다가는 인간 자신이 버림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주연
▣ 지금 짓는 집이 곧 내 집입니다.
어느 늙은 목수가 기력이 쇠하여 일을 그만둘 결심을 하고 사장을 찾아갔다.
"집을 떠나 외지에서 너무 오랫동안 일했습니다. 이젠 늙어서 건축 일을 하기도 힘들고…….
집에 돌아가서 아내와 도란도란 여생을 보내고 싶습니다."
사장은 솜씨 좋은 목수를 보내기가 아쉬워 몇 차례 더 설득해보았지만 목수의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결국 사장은 어쩔 수 없이 목수의 뜻을 받아들이고, 마지막으로 한 번만 집 짓는 일을 도와달라고 했다. 목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을 하는 동안 다른 일꾼들은 목수의 마음이 이미 고향 집에 가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목수는 목재를 고를 때도 예전처럼 엄격하게 따져보지 않았고, 목재를 다듬을 때도 예전의 솜씨를 발휘하지 못했다. 하지만 사장은 목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얼마 후 집이 완공되었다. 사장이 목수를 불러 말했다. "이 집은 바로 당신 거예요. 제가 드리는 선물입니다." 목수는 사장의 말을 듣고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마치 꿈을 꾸는 듯 멍한 기분이었다.
- 열린편지/허샨/인생을 움직이는 천년의 철학 중에서-
▣ 천국의 집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고 존경을 한 몸에 받던 사람이 죽어서 천국에 당도하자 한 천사가 그 사람이 살 집으로 안내했다. 크고 아름다운 저택들을 지나며 그 사람은 그 중 하나가 자기에게 천국에서 살 집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나 그 집들을 그냥 지나쳐 변두리에 있는 집앞에 이르르자 “저것이 네 집이다.” 안내하는 천사가 이렇게 말하자 그 사람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 집은 오두막보다 나을 것이 없는 허름하고 곧 쓰러질 것 같은 집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사람은 화를 내며 소리쳤다. “뭐라고요? 저 집이라구요? 난 저기서는 살 수 없어요.”
그러자 천사는 “안됐구나, 하지만 네가 천국으로 올려보낸 자재들로는 저 집밖에 지을 수가 없었다."
▣ 하나님의 집 사탄의 집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체션트 칼리지 학장이었던 모건 박사의 이야기다. “제가 결혼하자마자 아버지께서 제 집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는 집안 구석구석을 둘러보셨습니다. 저희 부부는 방이며 거실이며 주방을 다 보여드렸습니다. 이곳 저곳을 둘러보신 아버지께서 큰 소리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집이 크고 좋구나. 하지만 이곳 저곳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네가 하나님께 속한 사람인지, 사탄에게 속한 사람인지 종잡을 수가 없구나’ 저는 그 말씀을 듣고 집안 이곳 저곳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아버지 말씀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두 사람은 마음을 고쳐 먹고 방마다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그림을 걸고 장식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삶을 통해 드러나고 확인된다. 그리고 신앙과 삶은 환경의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의 가정이라면 소장품이나 장식에서부터 차별화되어야 한다. 집안 분위기가 신앙생활과 동떨어진 것이라면 문제가 된다. 그리스도인은 실내장식과 공간분위기부터 바꿀 수 있어야 한다. 둘 것은 두고 치울 것은 치워야 한다.
/박종순 목사(충신교회)
▣ 노인과 오두막집
한 사막에 조그만 오두막집을 짓고 사는 노인이 있었다. 그곳에는 맑은 샘물과 우거진 야자수가 있었는데, 그 노인은 나그네들에게 시원한 샘물을 퍼 주며 기쁨과 보람을 느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나그네들은 물을 얻어먹고 노인에게 몇 푼의 동전을 건네주었다. 처음에 노인은 이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금고에 동전이 쌓여가면서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노인은 어느 사이엔가 돈을 모으는 것에 몰입했다. 그리고 샘물을 철저하게 관리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나그네들에게 노골적으로 돈을 요구하는 일도 있었다. 어느 날 노인은 샘물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잎이 무성한 야자수가 샘물을 흡수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야자수를 몽땅 잘라 버렸다. 결국 샘물은 말라 버렸다. 야자수가 만들어낸 그늘도 없어졌다. 그렇게 되자 아무도 노인의 오두막집을 찾지 않았다. 노인은 뜨거운 햇볕을 견디지 못한 채 죽고 말았다. 과욕은 죽음을 낳는다. 인간은 남을 섬기는 데서 진정한 행복을 얻도록 창조되었다. 행복하고 싶거든 먼저 남을 행복하게 해 주어야 한다.
- 행복의 문을 여는 193가지 이야기 / 임한창
▣ 오두막과 대저택
밴 다이크의 소설 `대저택'에 등장하는 이야기입니다. 웅장한 집에서 살던 한 부자가 죽어서 하늘나라에 올라갔다. 그런데 자신의 집은 비가 새는 허름한 오두막이었다. 마침 그 옆에 으리으리한 대저택이 건축되고 있었다. 부자가 천사에게 물었다. 도대체 저 웅장한 집은 누구의 것입니까 당신의 옆집에 사는 가난한 의사가 살 집입니다
부자는 깜짝 놀랐다. 그 의사는 동네에서 조그마한 병원을 운영하는 보잘것 없는 사람이었다. 의사는 마을 사람들의 질병을 무료로 치료하느라 평생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천사는 놀란 표정을 짓는 부자를 향해 말했다. 땅에서 쌓은 선행들은 모두 하늘나라로 배달됩니다. 당신의 선행은 오두막의 지붕을 씌우기에도 부족할 정도예요. 당신은 자신을 위해서만 살았어요. 그러나 저 의사는 평생동안 남에게 사랑을 베풀었어요. 그가 베푼 사랑은 대저택을 짓고도 남을 분량입니다.
사랑은 실천이다. 사랑은 희생이다. 우리가 베푼 사랑은 반드시 하늘에 배달된다.
/임한창
▣ 집을 잘 짓는 지혜
우리 모두는 집을 짓고 삽니다. 육신을 위해 집을 짓고 살면서 동시에 영혼을 위한 집도 짓습니다. ‘영혼을 위한 집을 짓는다’라는 것은 ‘인격’이 집을 짓는 것이며 ‘성품’이 집을 짓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은 어떤 인격을 가지고 있느냐, 어떤 성품을 가지고 있느냐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인격과 성품이 바로 그 사람 전체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재료를 똑같이 주셨습니다. 집을 짓는 데 필요한 철근, 목재, 시멘트, 타일, 유리 등 모든 것을 동일하게 주셨습니다. 같은 재료를 가지고 두 사람이 집을 짓기 시작했는데, 1년 후에 큰 차이가 났습니다. 한 사람은 그 재료를 잘 이용해서 쓸모 있고 아름답게 집을 지었으나, 다른 한 사람은 집을 짓지 못하고 재료를 그대로 방치한 것입니다. 세월이 지났지만 그 사람은 지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는 나이를 먹어도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 예전과 똑같은 사람을 의미합니다. 또한 건축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설계도입니다. 집을 지을 때 절대로 설계비를 깎으면 안됩니다. 또한 설계도를 무시하고 시공하면 안됩니다. 설계도대로 해야 제대로 된 집을 지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말씀대로 행하는 자가 복된 것입니다. 말씀을 듣는 것으로 끝나지 말고, 말씀을 믿고 그대로 행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 행복의 시작 예수 그리스도 / 하용조
▣ 사람을 만드는 집
어느 날 소크라테스는 골목을 지나다가 한 청년을 만나 길을 물었다고 합니다. 신발을 만드는 가게를 물어도 잘 가르쳐주고. 옷장을 만드는 집 등 이것저것 여러 가지 것을 다 물어보아도 아주 상세히 길을 가르쳐 주더랍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사람을 만드는 집이 어디냐고 물었을 때는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더랍니다. 이는 물건에 대해서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상세하게 알고 있으나. 인간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등한시한다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하나의 풍자입니다. 그렇듯이 양말 한 켤레나 돈 천원. 만원을 잃어버리면 크게 신경을 쓰면서도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 사는 것에 둔감한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모습에서 사람을 낚는 어부로서의 소중함이 절실히 요망됩니다. 우리는 근대화와 경제건설의 경쟁적 추세에서 사람낚는 일보다 고기잡는 일에 너무나 많은 것을 유보하고 망각하고 있습니다. 생활비를 얻기 위하여 사람짓기를 포기한 것처럼 분주하게만 살아갈 따름입니다. 예쁜 옷을 마련하기 위하여 정신없이 돌아다니다 보니 자신의 얼굴을 잃어 버렸다는 슬픈 이야기처럼 우리는 삶의 중심이 흐트러진 세상에서 갈팡질팡 생활하고 있습니다. 고기잡이도. 장사도. 과학기술도 엄밀히 말해서 생활의 수단이지 목적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잡던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람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그러자 그들은 가족과 생활터전을 버리고 예수님의 뒤를 따라 나섰습니다. 어부에게 있어서 물고기는 곧 돈이며 생활인에게 있어서 돈은 마치 전부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생활방식을 바꾸었습니다. 우리도 생활 전체에 새로운 방향을 설정하고 사람낚는 일에 나서야 할 것입니다
▣ 육신의 장막이 무너지면
어머니의 뱃속에서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에게 누가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하자. "너는 지금 네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죽을 것이다. 그것을 우리 인생에서는 태어난다고 한단다." 이 태아는 이렇게 항의할는지 모른다. "싫어요. 난 여기가 좋아요. 먹을 것도 있지요. 따뜻하지요. 사랑받지요. 보호받지요. 너무 편하고 좋아요. 여기서 나가는 건 싫어요."
그러나 태아는 자궁 속에서 예정된 시간을 끝내고 출산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새로운 세상에 나오게 된다. 그러면 아기는 아름다운 엄마의 사랑스런 두 눈동자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사랑스런 엄마의 품에 안기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 참 좋구나. 세상이라고 부르는 이곳이 내가 태어나기 전의 그 곳보다 더 좋아. 이곳 생활이 옛날보다 훨씬 좋아." 이렇게 해서 행복한 유년시절이 흘러가고 아이는 청년이 되어 보람차고 의욕적인 젊은 시절을 보내며 성인이 된다. 그러다가 나이를 먹고 노화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의 위협을 받는다. 그때 "나는 죽고 싶지 않아. 난 여기가 좋아"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죽음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그것은 죽음이 아니라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그의 앞에는 어머니보다 더 아름다운 얼굴이 그를 내려다보고 계신다. 그는 영원하신 주님의 품에 안기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사람은 복이 있다. 육신의 장막이 무너지면 손으로 짓지 아니한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신재국)
▣ 찬송가 438장(통495장)
1. 내 영혼이 은총입어 중한 죄짐 벗고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3. 높은 산이 거친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후렴: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 가장 소중한 가정
세계적인 자동차 제작회사 포드의 창설자이자 자동차 왕으로 불리는 헨리 포드는 사업에 성공한 뒤, 처음으로 자신의 집을 지었습니다. 그 집은 자신이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어렸을 때 뛰어 놀던 밭 가운데 지은 작은 집이었습니다.
어느 날 주택이라고 하기엔 너무 초라한 그의 집에 방문한 한 부하직원은 물었습니다.
“사장님의 저택답게 다시 건축하시면 어떻습니까?”
그러자 헨리 포드는 “건물을 세우는 것은 문제가 아닐세. 그 속에 가정을 세우는 것이 문제지”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또한 그가 80세 생일 만찬에서 “당신이 이룬 일들 가운데 가장 크고 중요하게 여기는 일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그는 “바로 나의 ‘가정’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바쁜 삶속에서 가정을 소홀히 하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가정을 소홀히 하다보면 직장뿐만 아니라 나라까지도 안정을 찾을 수 없게 됩니다. 그만큼 가정은 너무나 소중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아름다운 가정, 그리스도가 주인 되시는 믿음의 가정을 세우십시오.
* 기도: 주님! 가정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 하소서.
* 묵상: 가정을 소중히 여기고 있습니까?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 집, 장막, 가정에 관한 성경 말씀
0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 24:15)
0 그가 지은 집은 좀의 집 같고 파수꾼의 초막 같을 것이며(욥27:18)
0 내가 영원히 주의 장막에 머물며 내가 주의 날개 아래로 피하리이다 (셀라)(시61:4)
0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시118:22)
0 자기 집 문에 앉으며 성읍 높은 곳에 있는 자리에 앉아서(잠9:14)
0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주추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치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하시니라(눅6:49)
0 너희도 아는 바니 집 주인이 만일 도둑이 어느 때에 이를 줄 알았더라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눅12:39)
0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찌니라(갈6:10)
0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공손함으로 복종하게 하는 자라야 할지며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리요) (딤전3:4,5)
0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며, 자녀와 자기 가정을 잘 다스리는 사람이라야 합니다.(딤전3:12)
▣ 집, 가정에 관한 금언
0 행복은 우리 집 화롯가에서 자라는 것이지 남의 집 정원에서 따오는 것이 아니다.
0 가정이 없는 사람은 둥지가 없는 새와 같다.(A man without a home is a bird without a nest)
0 비록 아무리 초라(보잘 것 없어도)해도, 내 집과 같은 곳도 없다.(Be it ever so humble, there's no place like home)
0 집에서 마른 빵(거친 음식)이 밖(남의 집)에서 불고기보다 낫다.(Dry bread at home is better than roast meat abroad)
0 동(東)쪽이든 서(西)쪽이든, 내 집이 최고다.(East or west, home is best)
0 그가 임금이든 농부이든, 자기 집에서 평온(平和)를 찾는 자가 행복하다.(He is happy, be king or peasant, who finds peace in his home)
0 항상 집에서 사는 사람은 가정 이외는 아무 것도 모른다.(He that lives always at home, sees nothing but home)
0 가정이란 애정(愛情)이 있는 곳에 있다.(Home is where the heart is)
0 가정은 가정적이어야 한다.(Home is homely)
0 가정을 다스리는 자, 로마를 지배하리라.(Home rule, Rome rule.)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0 가정은 위대한 사람이 종종 작아 보이며, 소인(小人)이 종종 위대하게 보인다.(Home is where the great are often small, and the small are often great)
0 내 집에서, 내가 임금(王)이다.(In my own house I am king.)
0 집을 만드는 것은 나무나 돌이 아니라 마음(애정)이다.(It's not wood or stone, but hearts, that make a home.)
/한태완 목사 360 주제별 예화모음(메일: jesuskore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