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중국 경제의 또 하나의 흐름, 지대공유(地代共有) 방향으로의 전환
ㅡ맨해튼 사례처럼 주목받는 글로벌 모델
ㅡ한국 인재강국의 원동력은 해방 직후 농지개혁
이원영 (국토미래연구소장)
중국은 그동안 토지 국가소유제 아래 토지출양제(土地出让제)를 골격으로 성장해 왔다. 이는 50~70년의 토지 사용권을 일시불로 판매하는 시스템으로, 단기적으로는 지방정부 재정을 풍부하게 했으나 장기적으로는 지대의 자본화와 부동산 투기 의존도를 심화시키는 치명적 약점을 안겨주었다.
최근 헝다(Evergrande) 사태로 상징되는 부동산 버블 붕괴는 이러한 구조의 취약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2024~2025년 들어 출양 수입이 급감하자, 중앙정부는 토지재정의 구조조정과 불로소득 환수를 최우선 과제로 삼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등장한 토지연조제(土地年租制) 실험은 토지를 단순한 개발 재원이 아닌, 공동체가 순환적으로 공유하는 '자산'으로 재정의하려는 구조적 전환의 신호탄이다.
선전(深圳)의 '1위안 임대'와 산업 인큐베이터로서의 토지
개혁개방의 상징인 선전(深圳)은 이미 토지를 산업 정책의 전략적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첨단산업단지 내 스타트업과 미래 기업들에 대해 장기 일시불 대신 매년 사용료를 부과하거나, 상징적으로 '1위안 수준의 임대료'만 받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2025년 들어 선전, 항저우, 수저우 등 주요 도시로 확산 중인 '제로 렌트(2~5년 무료)' 및 저가 임대 정책은 토지를 투자 소득 창출 수단이 아닌 '기술 축적의 인큐베이터'로 삼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이는 부동산에 묶여 있던 자본을 실물 경제와 혁신 산업으로 강제 이동시키는 강력한 유인책이 된다.
지대 회수 메커니즘: 투기에서 활용으로
토지연조제는 매년 지가 수준에 연동해 사용료를 납부하게 함으로써, 사회 인프라와 공공투자로 형성된 사회적 지대(Social Rent)를 공동체가 지속적으로 회수하는 구조다.
과거 출양제에서는 단순 보유만으로도 막대한 시세 차익이 발생해 투기가 구조화되었으나, 연조제 하에서는 지가 상승과 함께 임대료가 자동 조정되므로 '보유 이익'은 줄고 '활용 이익'이 강화된다. 이러한 메커니즘은 투자 여력을 AI, 바이오, 반도체 등 미래 제조 산업으로 재배분하려는 중국의 15차 5개년 계획을 뒷받침하는 핵심 장치다.
'공동부유'를 향한 선순환 구조로 체질개선
지대공유 성격의 실험은 거시경제 체질을 바꾼다. 기업은 초기 토지 비용을 장기 분납하거나 저가로 공급받음으로써 R&D와 고용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할 수 있고, 가계는 주거비 부담 완화로 소비 여력을 회복한다.
최근 중국의 ‘공동부유(共同富裕)’ 구호는 결국 토지와 주거의 불로소득 구조를 타파하여 사회적 자본의 독점을 막겠다는 철학적 지향을 담고 있다. 성장의 과실을 사회화하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될 때 비로소 내수 확대와 혁신 투자의 선순환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한국은 보유세 사후납부제로 제2의 농지개혁을
중국의 실험은 한국에도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토지를 여전히 세습적 자산 축적의 매개로 둘 것인가, 공통 자산으로 간주하여 지대를 환원할 것인가.
한국은 토지사유제가 확고하므로 직접적인 연조제 도입은 어렵지만, 보유세 강화와 사후납부제(Deferred Payment)를 결합하면 동일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사후납부제는 토지 소유자가 매년 산정된 보유세를 장부에 기록만 하고, 매매나 상속 시점에 일괄 정산하는 방식이다.
이 제도는 현금 납부 능력이 부족한 고령층의 반발을 줄이면서도 미실현 이익 과세에 대한 논란을 잠재울 수 있다. 정부는 확정 채권을 통해 장기 재원을 확보하고, 청년 세대에게는 '지대 독점의 장벽'을 낮춰주는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게 된다.
공유부 시대의 전환을 향하여
이미 자본주의의 심장인 맨해튼 배터리파크시티(Battery Park City)에서도 공유부형 지대시장제가 성공적으로 실행되고 있다. 우리 역시 해방 직후 농지개혁을 통해 '교육받을 기회'를 평등하게 제공함으로써 인재 강국으로 도약했던 성공의 DNA를 가지고 있다.
이제 현대판 투기 세력을 차단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제2의 공유부 시대'를 열어야 한다. 다주택자 중과세 같은 단편적 처방을 넘어, 지대 공유를 제도화하고 지가를 안정시켜야 경제의 맥박이 다시 뛴다.
정부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세금이 아니라 지대의 독점이다. 시장 원리를 존중하되 토지의 공공성을 회복하는 '지대시장제'로 나아가는 용기 있는 결단이 필요한 때다. 그것이 부동산 투기의 늪을 탈피하고 진정한 공유부(共有富)의 시대를 여는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