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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유발 하라리를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그의 주장은 세상의 절반이다
이원영 (국토미래연구소장)
+AI Claude Sonnet 4.6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는 경이로운 책이다. 인지혁명, 허구를 공유하는 능력, 150명의 한계, 농업혁명의 역설 — 이것들은 독자에게 인식의 충격을 준다. 이 책을 사랑하는 독자들의 감동을 나는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그 충격이 가라앉은 후에 물어야 할 것이 있다. 하라리가 본 것은 세상 전체였는가, 아니면 세상의 절반이었는가. 나는 절반이었다고 생각한다.
1. 하라리가 본 농업혁명
하라리는 농업혁명을 '인류 역사상 최대의 사기'라고 불렀다. 밀·쌀·감자 같은 식물이 인간을 가축화했다는 것이다. 농부는 수렵채집인보다 더 열심히 일했고 더 나쁜 식단을 얻었으며, 인구는 늘었지만 개인의 삶은 나빠졌다고 했다.
그런데 하라리가 서술하는 농업혁명의 출발점을 보자. '농업으로의 전환은 기원전 9500~8500년경, 터키 남동부 구릉지대와 서이란, 레반트 지역에서 시작됐다. 밀과 염소가 기원전 9000년경 가축화됐다.' 중동이다. 밀과 목축의 이야기다.
그가 비판하는 '농업혁명의 사기' — 더 많은 노동, 더 단조로운 식단, 단일 작물에 의존하는 취약성 — 이것은 밀농사와 목축 문명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맞다. 4대 문명발상지 —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인더스, 황하 — 가 지금 사막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오랫동안 밀농사와 목축으로 영위된 결과다.
그러나 지구 반대편에서 수천 년간 전혀 다른 원리로 작동한 농업이 있었다. 하라리는 이것을 보지 않았거나, 보았어도 깊이 다루지 않았다.
2. 1909년, 한 미국인이 동아시아로 간 이유
미국 농무부 토양관리국장을 지낸 프랭클린 하이럼 킹(Franklin Hiram King)은 1909년 중국·한국·일본을 직접 돌아봤다. 그가 알고 싶었던 것은 하나였다. '어떻게 이 사람들은 수천 년을 같은 땅에서 농사지으면서도 지력을 유지할 수 있었는가.'
그가 목격한 것에 그는 경탄했다. 버리는 것이 없었다. 인분·축분·볏짚·음식 찌꺼기 — 모든 유기물이 다시 논밭으로 돌아갔다. 대두·콩과식물·피복작물을 활용한 윤작 체계, 그리고 물을 세심하게 다루는 관개 기술. 논에서 여름에 벼를 키우고 겨울에 보리를 키우다 봄에 갈아엎는 방식에 킹은 특히 깊이 인상을 받았다.
킹은 이 관찰을 담은 책 《4천 년의 농부(Farmers of Forty Centuries)》를 집필했고, 그가 세상을 떠난 1911년 출간됐다. 100년이 지난 지금도 이 책의 메시지는 유효하다.
수천 년을 같은 땅에서 수확을 거두면서도 토양을 고갈시키지 않은 비결 — 그것은 기적이 아니라 지혜였다. — F.H. 킹, 《4천 년의 농부》, 1911
하라리가 몰랐던 것을 킹은 알았다. 그 차이는 단순하다. 하라리는 책상에서 판단했고, 킹은 논두렁에서 확인했다.
3. 벼농사가 갖는 생태순환의 원리
킹이 경탄한 동아시아 벼농사의 원리를 차례로 살펴보자.
첫째, 논은 연작 피해가 없다. 밀농사는 같은 밭에 해마다 심으면 수년 내에 수확량이 급감한다. 삼포식 농법이라 하여 1/3은 놀려야 한다. 새 땅이 필요하고, 새 땅은 숲이다. 반면 논은 같은 자리에서 수천 년을 농사지어도 지력이 유지된다. 그 기적의 비밀은 물에 있다. 물이 유기물의 균형을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둘째, 논은 탄소를 저장한다. 2021년 커뮤니케이션스 어스 앤드 인바이런먼트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논 토양은 일반 경작지보다 헥타르당 20% 더 많은 탄소를 저장한다. 물이 토양을 덮어 유기물 분해를 늦추고 탄소를 가두기 때문이다.
셋째, 논은 숲을 보전한다. 벼농사는 물을 필요로 하고, 물은 저수지를 필요로 하고, 저수지는 숲을 필요로 한다. 한국 농촌에는 수백 년간 '송계(松契)'가 있었다. 마을이 공동으로 소나무 숲을 관리하는 자치 조직이다. 벼농사 공동체가 숲을 지키는 제도를 스스로 만든 것이다. 숲 없이는 논농사도 없다는 것을 수천 년의 경험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넷째, 볏짚은 순환한다. 논에서 자란 것은 논으로 돌아간다. 볏짚은 유기물을 토양에 돌려보내고 지력을 보강한다. 이것이 화학비료 없이 수천 년을 연작할 수 있었던 핵심 비결이다.
4. 벼농사는 1년 내내 땅에 묶인 농사가 아니었다
하라리는 농업이 인간을 1년 내내 땅에 붙들어놓았다고 했다. 수렵채집인은 자유로웠지만 농부는 농경지에 종속됐다는 것이다.
벼농사는 달랐다. 모내기(5~6월) → 여름 관리 → 추수(9~10월) → 그리고 긴 휴식. 늦가을부터 이른 봄까지 약 반년, 사람도 쉬고 땅도 쉬었다.
땅의 휴식은 단순한 방치가 아니었다. 논이 마르면서 호기성 미생물이 활성화되고 토양 구조가 회복된다. 다음 해 벼가 자랄 기반이 이 겨울 휴식 동안 만들어진다. 사람의 휴식도 마찬가지였다. 농한기에 마을이 살아났다. 두레패가 모이고, 이야기가 쌓이고, 혼례와 장례가 치러지고, 문화가 자랐다. 서당에서 글을 배운 것도 겨울이었다.
겨울 이모작 보리·밀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단순한 식량이 아니었다. 뿌리가 토양을 붙잡아 유실을 막고, 낙엽이 유기물이 되고, 봄에 갈아엎으면 녹비(綠肥) — 살아있는 거름이 된다. 화학비료 없이 논의 지력이 회복된다. 그리고 노동 강도가 극히 낮았다. 씨를 뿌리고 거의 손을 대지 않아도 됐다. 겨울 추위가 잡초를 잡아주고 눈이 수분을 공급했다. 자연이 일을 했다.
정리하면 동아시아 벼농사의 연간 리듬은 이렇다. 봄 모내기의 집중 협동 → 여름 물 관리 → 가을 추수 → 겨울 이모작과 휴식. 집중과 휴식의 사이, 인간의 노동과 자연의 순환이 교대로 작동하는 농업이었다. 하라리가 이상화한 수렵채집인의 자유는 사실 불확실성의 다른 이름이었다. 벼농사는 예측 가능한 리듬 위에서 일과 쉼의 사이를 정교하게 설계한 농업이었다.
5. 농업혁명은 하나가 아니었다
하라리의 가장 큰 오류는 농업혁명을 하나로 본 것이다.
밀농사·목축 혁명과 벼농사 혁명은 같은 이름을 가졌지만 전혀 다른 문명을 만들었다. 전자는 토양을 소진하면서 새 땅을 찾아 팽창하는 문명을 낳았다. 아마존과 아프리카의 숲이 지금도 불타는 이유의 53%가 소와 대두 사료를 위한 것이다. 밀농사·목축 문명의 팽창 본능이 21세기에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반면 벼농사 문명은 같은 땅을 수천 년간 살리면서 공동체를 유지했다. 논이 있는 곳은 수천 년이 지나도 사막이 되지 않았다. 이앙농법은 마을 전체의 협동을 요구했고, 그 과정에서 두레·품앗이·계(契)라는 공동체 문화가 자랐다. 송계로 숲을 지키고, 두레로 모내기를 하고, 볏짚을 논으로 돌려보내는 — 이 순환의 문명이 하라리의 틀 안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하라리는 중국이 영국과 같은 제국적 힘을 갖추지 못한 이유를 '서구에서 수세기에 걸쳐 형성된 가치·신화·사법 구조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것은 서구 문명의 경로를 표준으로 삼고 동아시아를 '결여'로 보는 시각이다. 그러나 동아시아는 다른 경로를 선택한 것이지, 서구 문명을 갖추지 못한 것이 아니다.
6. 허구의 공유 — 그러나 어떤 허구인가
하라리의 가장 유명한 테제로 돌아가자. 인지혁명의 핵심은 허구를 공유하는 능력이다. 돈, 국가, 종교, 인권 — 모두 허구다. 그러나 이 허구를 공유함으로써 대규모 협력이 가능해졌고 문명이 탄생했다.
이것은 통찰이다. 그러나 하라리는 결정적인 질문을 묻지 않았다. 어떤 허구를 공유하느냐가 문명의 질을 결정한다.
'약속의 땅'이라는 허구도, '이웃과 함께 모내기를 해야 한다'는 허구도, '송계를 통해 숲을 지켜야 한다'는 허구도 모두 공유된 허구다. 그러나 첫 번째 허구는 다른 사람의 땅을 빼앗는 방향으로, 나머지 허구들은 토양을 살리고 공동체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작동했다.
하라리는 허구의 존재를 설명했지만 허구의 방향을 묻지 않았다. 도구를 발견했지만 도구의 윤리를 묻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 오류의 귀결을 눈앞에서 보고 있다.
7. 지금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
미국과 서구가 수백 년간 공유해온 허구들이 있다. '문명의 전파자'라는 허구, '자유세계의 수호자'라는 허구, '선진 농업으로 세계를 먹여살린다'는 허구. 하라리의 언어로 하면 이것들이 수억 명을 결집시키는 공유된 서사다. 그리고 이 서사는 제국을 만들었다.
그 제국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아마존의 숲을 불태워 소를 키우고, 아프리카의 수백만 헥타르 숲을 밀어내고 있다. 열대 삼림파괴의 53%가 고기와 사료를 위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기후위기를 만들었다.
하라리가 암묵적으로 '더 발전한 문명'으로 전제한 서구 문명이, 실제로는 킹이 경탄한 동아시아 벼농사 문명보다 생태적으로 훨씬 파괴적이라는 것이 지금 드러나고 있다. 허구를 공유하는 능력이 문명을 만든다는 하라리의 테제는 맞다. 그러나 어떤 허구를 공유하느냐에 따라 그 문명이 지구를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을 그는 깊이 보지 못했다.
8. 하라리가 놓친 것 — '사이'의 문명
하라리의 문명론에서 빠진 것을 한 단어로 말하면 '사이'다.
그의 분석 단위는 결국 개인이고, 그의 서사는 개인들이 허구를 공유해 집단을 이루는 이야기다. 그러나 도시와 농촌 사이, 인간과 토양 사이, 마을 사람들 사이, 봄의 집중과 겨울의 휴식 사이 — 이 관계의 질이 문명의 지속가능성을 결정한다는 것을 그는 깊이 보지 못했다.
人間 — 사람 인(人), 사이 간(間). 인간이란 사이에 있는 존재다. 동아시아가 수천 년간 공유한 이 직관이 하라리의 정교한 서양 문명론에는 없다. 주역의 음양, 공자의 인(仁), 벼농사의 공동체 — 이것들이 만든 문명은 팽창이 아니라 순환을 원리로 삼았다. 그것이 수천 년을 지속한 이유였다.
벼농사 공동체는 인간과 벼와 물과 숲이 하나의 생태 시스템 안에서 '사이'를 유지하며 공진화한 문명이었다. 이것이 사기가 아니라 지혜였다.
결론 — 하라리를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하라리는 훌륭한 종합자다. 수천 권의 문헌을 읽고 인류 역사를 하나의 서사로 꿰는 능력은 경이롭다. 그러나 그가 읽은 문헌들이 편향되어 있었다. 서양 고고학·인류학·역사학이 중심이었고, 동아시아 벼농사 문명을 깊이 다룬 문헌은 거의 없었다.
하라리 자신이 말했다. 무지를 인정하고 탐험하려는 태도가 근대적 사고의 출발점이라고. 그렇다면 그 기준을 하라리 자신의 농업관에 적용해보자. 그는 동아시아 벼농사 문명에 대해 얼마나 알았는가. 그는 논두렁에 앉아본 적이 있는가. 볏짚이 마른 논에서 호기성 분해를 거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겨울 보리 뿌리가 봄의 논을 살리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100년 전 킹이 미국에서 동아시아까지 배를 타고 간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모르는 것을 알기 위해, 책상을 떠나 현장으로 갔다. 킹이 그 여정을 통해 발견한 것을 하라리는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인류 역사상 가장 지속가능했던 농업 문명을 '사기'라고 불렀다.
책상에서 읽은 세상은 세상의 절반이다. 나머지 절반은 논두렁에 있다.
하라리의 주장은 세상의 일면에 지나지 않는다 그의 문명관은 현재의 미국과 서구가 보여주는 바와 같다
수천 년을 같은 땅에서 수확을 거두면서도 토양을 고갈시키지 않은 비결 그것은 기적이 아니라 지혜였다. — F.H. 킹, 《4천 년의 농부》, 1911
참고
Yuval Noah Harari, 《Sapiens: A Brief History of Humankind》, 2011
Franklin Hiram King, 《Farmers of Forty Centuries: Organic Farming in China, Korea and Japan》, 1911
Rice paddy soils are a quantitatively important carbon store, Communications Earth & Environment, 2021
C.R. Hallpike, Review of Harari's Sapiens, 2017
Slate, Yuval Noah Harari, the sage of Silicon Valley, 2018
Our World in Data, Drivers of Deforestation, 20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