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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예수인마을 원문보기 글쓴이: ☆~ 베드로~☆
구 분 |
율 법 조 문 의 율 법 |
생 명 의 복 음 |
목 적 |
죄를 깨달음(롬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
구원(갈 1: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
결 과 |
심판의 요구(갈 3:1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
율법의 요구를 충족(갈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셧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
속 성 |
공의(갈 3:19) 그런즉 율법이 무엇이냐 범법하므로 더하여진 것이라 천사들을 통하여 한 중보자의 손으로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
사랑(요일 4:9-10)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
의의방법 |
자기의(自己義)(갈 3:12)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음이라 |
위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의(롬 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
상호관계 |
원인(갈 3: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
결과(갈 3:25)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 |
형식 |
율법 조문, 형식적 |
내적, 영적(히 8:10) 또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 |
성격 |
예표적, 그림자적, 일시적이며 준비적 |
실체적, 완성적, 영구적(히 9:15)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시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
대상 |
혈통적 이스라엘(출 19:5-6)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
영적 이스라엘(롬 9:6-13)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니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시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심이라 그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임신했는데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
♠ 이신득의의 이해
1. ‘행함이냐 믿음이냐’와 ‘율법이냐 복음이냐’ 사람들은 흔히 두 문제를 같은 문제로 생각하고 있다. 왜냐하면 율법은 그 속성상 인간의 자기 의(義), 곧 행함을 요구하고 있고, 복음은 그 속성상 예수의 십자가 구속의 복음을 강조하며 믿음을 먼저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율법과 복음은 구속사의 전개에 따른 계시의 내용과 형식의 변화, 발전으로서 구약과 신약의 기본적 차이를 보여 준다. 반면 행함과 믿음은 신 ․ 구약의 시대 변화와는 상관없는 인류 구원의 근 거를 보여 주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구속사의 전개에 따라 율법은 복음으로 대치되었지만 신 ․ 구약을 막론하고 행함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는 진리는 전혀 변함이 없다. 곧 구약 시대에 멸망 받은 자도 율법을 다 안 지켜서가 아니라 율법이 말하는 하나님을 믿지 않 아서이고, 신약 시대에 멸망당한 자도 복음이 말하는 명령을 행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복음의 가르침을 믿지 않아서이다.
2. 이신득의의 정의 문자 그대로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이 말은 하나님께서 그의 믿음을 보 시고 의롭다고 인정해 주시는 것을 뜻한다.
3. 이신득의의 중요성
① 성도들로 하여금 외적 업적주의와 형식주의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즉 행위에 의한 구원 을 강조하게 되면 인간의 내면과 인격을 중요시하기보다는 외적으로 드러나는 업적과 공로에만 치중 하는 결과를 낳아 하나님에 대한 전인격적인 헌신이 무시될 수밖에 없다.
② 인간으로 하여금 자랑치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만약 인간이 자신의 행위로 구원을 얻는다면 그 구원은 단순히 행위에 대한 하나의 대가로 전략하게 되며 하나님의 은혜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 게 된다.
4. 이신득의와 교회사 이신득의는 A. D. 16세기 종교 개혁자 루터가 ‘오직 믿음’(sola fide)이라 는 기치를 내세우고 돈을 주고 면죄부를 사면 죄가 사해진다는 억지 주장을 펼치던 당시 카 톨릭의 불의에 대항함으로써 기독교 태동의 출발점이 되었으며, 프로테스탄티즘 (protestantism)의 대강령이 되었다. 이신득의의 근본 정신은 구약의 하박국→바울 →루터→ 개신교로 그 신앙의 대맥을 이어 오고 있는 것이다.
19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 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20 이제는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 ‘율법으로는 좌를 깨달음이니라’에서 본서는 본래 장, 절의 구분 없이 쓰여졌다. 만약 본서를 하나의 논문으로 본다면 ‘믿음으로 얻은 의’라는 결론을 입증하기 위한 전제로 쓰였을 것이다. 즉 모든 사람이 율법이 보여 주는 대로 죄인인데 그 율법은 모든 자가 죄인이라는 것을 보여 주기는 하나 그 죄에서 벗어날 길을 보여 주지는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한 단락을 끝내고, 그 다음 구절인 ‘이제는…한 의가 나타났으니’라는 구절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이다. 사 건 중심으로 전개되는 역사적 및 복음서, 비교적 독립적인 작은 단위로 형성된 시편, 잠언 등과 는 달이 이처럼 한 주제를 일관되게 다루고 있는 욥기나 본서는 문단을 적절히 구분하여 이해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롬 7:7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 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갈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3장 21-22절 ‘증거를 받은’이란 말은 ‘증거를 계속 받아 온’으로 개역되어야 한다. 여기 사용된 시제는 현재분사인데 이는 22절의 ‘믿는 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즉 믿는 것은 한 번 믿고 마는 것이 아니라 ‘계속 믿고 있는 중’인 상태이어야 하는 것이다.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 ‘이제는(헬, 뉘니)’ 혹은 ‘그런즉’(고전 13:13; 14:6)는 사도 바울에게 있어 시간의 두 개 념을 지닌다. 즉 일차적 개념은 단순히 시간적 전후를 의미하지만 보다 깊은 이차적 의미는 신 분의 변이(變移)를 의미한다. 즉 이전 죄 아래에 놓여 있었던 사망의 때와 이후 보혈 아래 놓여 있는 생명의 때로 대별된다. 이런 의미에서 ‘이제는’은 중생의 때, 은혜의 장소, 생명의 시점 을 가리킨다.
고전 13: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고전 14:6 그런즉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방언으로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 나 가르치는 것으로 말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 ‘믿음으로 말미암아’에서 ‘말미암아’에 해당되는 헬라어 원어는 도구 ․ 방법 등을 나타내는 ‘디아’라는 전치사이다. 따라서 믿음 그 자체에 무슨 큰 값어치나 공적이 있어서 믿음의 대가로 구원이 당연히 지불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통하여 구원이 거저 주어지는 것임을 강하게 암시 한다.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는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서 피조된 인간 의 원상태, 혹은 본래적 상태를 의미하는 말이다(고전 11:7). ‘이르지 못한다’는 말은 부족, 결핍의 뜻으로서 이 구절의 의미는 ‘하나님의 영광을 누릴 자격이 부족하다’, ‘자격이 상실되었 다’는 뜻이다(마 19:20; 눅 15:14).
고전 11:7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를 마땅히 가리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마 19:20 그 청년이 이르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나이까
눅 15:14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롬 3:9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 라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 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 ‘속량’은 정당한 몸값을 치르고 노예를 자유인으로 풀어 줄 때 사용되는 말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속량은 분명 거저 얻은 것이지 자기가 무엇을 주고 획득한 것이 아니다.
행 15:11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엡 1: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3장 25-27절 칭의가 하나님의 넘쳐 흐르는 사랑에서 출발하였음을 감격스럽게 표현하고 있다. 즉 하나님은 당신의 공의의 권위로 심판하시기 전에 먼저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를 원하셔서 우리가 그 의를 얻을 수 있는 길까지 마련해 주셨다. 더욱이 그 방법은 당신의 아들이신 예수를 화목제물로 제공한 것이다. 구약에서 보면 화목 제물은 인간이 준비해서 바치는 것이었으나 여기 예수라는 화목 제물은 하나님이 준비하셔서 당신과 인간 사이의 벽을 허무는 속전으로 사용하셨다.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은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 곧 그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롬 2: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니
27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고전 1:29-31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 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기록 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엡 2: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 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 ‘의롭다 하심’은 하나님 편에서의 칭의이고, 이를 얻는 인간 편에서는 득의이다. 의롭다 하심 은 ‘의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의롭다고 간주해 주는 것’이다. 즉 칭의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지위를 밝히는 것이다.
♠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 = 이신득의(以信得義 )의 이해
1. ‘행함이냐 믿음이냐’와 ‘율법이냐 복음이냐’ 사람들은 흔히 두 문제를 같은 문제로 생각하고 있다. 왜냐하면 율법은 그 속성상 인간의 자기 의(義), 곧 행함을 요구하고 있고, 복음은 그 속성상 예수의 십자가 구속의 복음을 강조하며 믿음을 먼저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율법과 복음은 구속사의 전개에 따른 계시의 내용과 형식의 변화, 발전으로서 구약과 신약의 기본적 차이를 보여 준다. 반면 행함과 믿음은 신 ․ 구약의 시대 변화와는 상관없는 인류 구원의 근 거를 보여 주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구속사의 전개에 따라 율법은 복음으로 대치되었지만 신 ․ 구약을 막론하고 행함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는 진리는 전혀 변함이 없다. 곧 구약 시대에 멸망 받은 자도 율법을 다 안 지켜서가 아니라 율법이 말하는 하나님을 믿지 않 아서이고, 신약 시대에 멸망당한 자도 복음이 말하는 명령을 행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복음의 가르침을 믿지 않아서이다.
2. 이신득의의 정의 문자 그대로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이 말은 하나님께서 그의 믿음을 보 시고 의롭다고 인정해 주시는 것을 뜻한다.
3. 이신득의의 중요성 ① 성도들로 하여금 외적 업적주의와 형식주의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즉 행위에 의한 구원을 강조하게 되면 인간의 내면과 인격을 중요시하기보다는 외 적으로 드러나는 업적과 공로에만 치중하는 결과를 낳아 하나님에 대한 전인격적인 헌신이 무시될 수밖에 없다. ② 인간으로 하여금 자랑치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만약 인간이 자신 의 행위로 구원을 얻는다면 그 구원은 단순히 행위에 대한 하나의 대가로 전략하게 되며 하 나님의 은혜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된다.
4. 이신득의와 교회사 이신득의는 A. D. 16세기 종교 개혁자 루터가 ‘오직 믿음’(sola fide)이라 는 기치를 내세우고 돈을 주고 면죄부를 사면 죄가 사해진다는 억지 주장을 펼치던 당시 카 톨릭의 불의에 대항함으로써 기독교 태동의 출발점이 되었으며, 프로테스탄티즘 (protestantism)의 대강령이 되었다. 이신득의의 근본 정신은 구약의 하박국→바울 →루터→ 개신교로 그 신앙의 대맥을 이어 오고 있는 것이다.
약 2:18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29 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갈 3: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30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 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 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 ‘도리어 율법을 굳게’는 복음과 율법과의 정립이다. 예수님은 ‘내가 율법을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완전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다(마 5:17). 이것이 양자의 올바른 관계이 다. 즉 양자는 배척의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발전 승화의 관계에 있으며 계시의 점진적 발 전 과정에 따라 율법이 복음으로 수용, 대체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