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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파랑길 8코스(20201111)
상리마을-천자봉해오름길-안민고개갈림목-장복하늘마루산길-진해드림로드 입구
1.늦가을, 鎭海, 드림로드, 萬法歸一, 安民
(2020년 11월 13일 기록)
하늘마루에 올라 산줄기와 바다 풍경을 전망한다. 웅산에서 시루봉을 거쳐 천자봉으로 내리벋는 산줄기와 진해만 바다 풍경을 보면서 천자봉 아래 상리마을로부터 시작해 오늘 걸어온 남파랑길을 회상했다. 숲길을 인공으로 내고 그 길에 이름을 붙인 ㅇㅇㅇ길, ㅇㅇㅇ길, ㅇㅇㅇ길, 새로이 명명된 남파랑길 8코스는 현기증이 날 정도로 무수한 명명의 길들과 겹쳐지고 갈라진 ㅇㅇㅇ길들의 연속이었다. 불모산-웅산-곰뫼바위봉(시루봉)-천자봉-만장대로 이어지는 단순하며 유래 있는 산봉들이 이어진 산줄기가, 복잡하게 뒤얽히며 갈래짓는 숲길에 인간의 꿈과 희망을 투영하여 명명한 숲길을 품고 바다를 굽어보고 있다. 이 풍경은 범어사 말사인 佛母山 靑龍寺 입구를 지나며 읽은, 청룡사 표석에 새겨진 '萬法歸一 一歸何處'(만법귀일 일귀하처, 우주의 모든 것이 하나로 돌아간다고 하는데, 그럼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의 말을 떠올렸다. 이 話頭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佛者가 아닌 사람이 깊이 이해할 수는 없다. 다만 저 단순한 산줄기와 바다 풍경은 그 법어의 의미를 어렴풋이 암시해 주는 듯하다.
천자봉 아래 상리마을 버스정류장에서 상리원 건강 식품점으로 난 길을 따라 오르기 시작한다. 뒤돌아보면 진해만 진해항, 왼쪽 서쪽으로는 8코스 끝지점 장복산 아래가 들어온다.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꼬불꼬불 끝까지 따라 오르면 화장실이 산등성이에 위태롭게 서 있는 지점에서 천자봉해오름길과 만난다. 오른쪽으로는 지난 코스 때 그 담벽 둘레를 빙 돌았던 STX조선해양이 나뭇가지 사이로 들어온다. 이곳에서 오른쪽은 천자봉해오름길3, 4구간으로 이어지고, 왼쪽이 진해드림로드 중 천자봉해오름길1,2구간이며 남파랑길이라고 명명되는 숲길이다. 이곳에서 시멘트 포장도로와 흙길이 교대로 나타나는 숲길을 안민고개 입구까지 걷는다. 숲길은 천자봉, 시루봉, 웅산, 불모산을 북쪽에 두고서 그 허리를 가르는 길이다.
어라, 노랑나비 한 마리가 나풀거리며 날아간다. 서울 지역에서 보는 노랑나비 색채보다 더 짙어 보인다. 남방노랑나비인 듯하다. 여유롭게 팔랑팔랑 남방노랑나비의 날갯짓처럼 남파랑길을 걸어가고 싶다. 단풍이 드는 듯 지는 듯 운치 있는 길이기도 하고 인적 드문 고적한 길을 따라서 왼쪽 남쪽으로 들어오는 진해만 눈부신 풍경을 감상하며 노랑나비의 날갯짓을 잊은 채 빠르게 내달렸다. 鎭海에 지난번에 이어 이번에 두 번째 오면서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가 먼 곳에서 들려온다. 1905년 러일전쟁이 발발했을 때 러시아 발틱함대와 싸우기 위해 일본 연합함대가 첫 출병한 곳이 진해만 진해항이며, 이때 일본 해군 제독이 진해항 출병식에서 일본 해군이 러시아 함대를 물리치게 해 달라고 이순신 장군에게 제를 올렸다고 한다. 그래서였을까? 약소국 일본이 해군 강국 러시아 함대를 물리치며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후 일본은 세계 7대 강국으로 발전하게 되는데 이때 이곳을 현재의 지명, 바다를 제압한다는 鎭海라고 하고 군항 시설을 갖추었다고 하니, 진해항이 일본 해군함대 발전의 초석을 놓은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천자암 입구에서 시루봉을 배경하여 아름다운 추억을 남기고 창원시 진해구 덕산동 해병훈련테마쉼터에 이르렀다. 1949년 4월 15일 해병대가 창설된 지역이 진해 덕산동이라고 한다. 해병 역사의 중심지역을 기념하기 위해 덕산동 주민자치위원회에서 조성한 길이 해병 테마등산로이고, 그 길에 해병훈련테마쉼터가 조성돼 있다. 그곳에서 점심을 먹고 추억의 기념사진을 담았다. 테마훈련쉼터의 대한민국 해병을 안내하는 패널들을 살피고 나서 쉼터 위 약수터에서 약수를 마시고 페트병에 물을 받아서 다시 출발한다.
봄이 새싹과 꽃의 시절이라면 가을은 단풍과 열매의 시절이다. 오후의 햇살은 단풍잎에서 더욱 곱게 반짝인다. 대원들이 붉노란 단풍에 영탄하는 모습에 길가 조경수 열매들이 더 맑은 빛을 뿜어낸다. '보세요, 우리도 보아 주세요.' 길가의 피라칸다와 남촌 열매가 한껏 맑은 색채를 뽐낸다. 피란칸다 짙노란 열매의 반짝임이 노란 은행나무 잎을 연상시킨다면 남촌 붉은 열매는 붉은 단풍나무 잎에 견줄 수 있을까? 가을의 나뭇잎은 생장의 양분을 끝내고 단풍으로 물들며 죽음으로 간다. 단풍은 종말 직전의 절정의 순간을 빛내며 사라진다. 단풍이 죽음이라면 열매는 새로운 탄생이다. 열매는 종자를 번식한다. 더 많은 번식을 위해 열매는 그 화려한 빛깔로 새들을 유혹하여 후손들을 먼 지역으로 떠나보낸다. 죽음과 탄생, 삶과 죽음의 순환 같은 단풍과 열매의 붉노란 색채들을 즐기면서 안민고개 갈림목에 도착하였다.
이곳에서 창원시 성산구 안민동으로 넘어가는 마루턱이 안민고개라고 한다. 라이딩족들이 산악자전거를 타고 안민고갯길을 넘어간다.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는 고개가 安民고개, 安民을 위하여 저 고통을 감내하는가? 民安을 찾아서 고개로 오르는가? 신라 경덕왕 때 충담사가 지었다는 노래 '安民歌'가 떠올랐다. '임금은 아버지, 신하는 사랑하는 어머니, 백성은 어린아이, 그러면 백성이 사랑을 알 것이로다. 백성들을 잘 먹여 살리면 나라가 잘 다스려져 백성들이 나라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임금답게 신하답게 백성답게 한다면 나라가 태평할 것이다.' 그 시대나 이 시대나 外侵을 막아내고 백성들이 잘 먹고 평화롭게 사는 일이 安民의 길이다. 안민고갯길 갈림목에서 오른쪽 전망대로 가서 풍경을 조망한다. 불모산, 웅산, 시루봉, 천자봉 능선이 산봉들을 하늘로 세우면서 비스듬하게 바다로 이어지는 풍경이 바쁘게 걸어온 몸과 마음을 어루만진다. 진해만 진해항과 그 너머 부산 가거도와 거제도를 잇는 거가대교는 미세먼지 탓인지 흐릿하게 들어온다. 풍경이 평화롭다. 安民하는 나라에서 나는 民安을 향락하고 있는가?
삼거리로 내려와 남파랑길 왼쪽 안민휴게소 '풍경' 옆 사각정자에서 풍경을 즐기며 휴식을 취하는 대원들과 합류하였다. 정자 도리목에 '玉不琢不成器 人不學不知道'(아무리 좋은 옥돌이라도 끌로 쪼아서 다듬지 않으면 제대로 된 그릇이 될 수 없고 사람이 배우지 않으면 도를 알지 못한다.) 가르침과 배움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문장과 '少年易老學難成 一寸光陰不可輕 未覺池塘春草夢 階前梧葉已秋聲'(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려우니 짧은 시간인들 가벼이 여길 수 있으랴. 연못가 봄풀은 꿈에서 채 깨어나지도 않았는데 섬돌 앞의 오동잎은 이미 가을 소리를 내는구나.) 세월은 순식간에 흘러 인생은 짧으니 끊임없이 배워야 함을 권고하는 漢詩가 사각정자 천정 아래 받침목에 붙어 있다. 불모산 산줄기와 진해만 풍경을 조망하는 사각정자에서 이 교훈적인 명문을 읽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떨까? 사각정자를 빨리 떠나야 할까? 사각정자에서 고담준론을 펼쳐야 할까? 남파랑길을 걷는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책상에서 글 읽는 데 매진해야 할까? 모든 만남의 시간은 배움, 남파랑길을 걸으면서 지역과 사람과 풍경과 만나고 새로움을 발견하는 것도 배움, 그래서 남파랑길 걷는 일은 미지의 세계를 알아가는 큰 배움이라는 생각이 든다.
짧은 배움을 익히며 안민휴게소 '풍경' 건물 앞을 지나 안민도로 벚꽃길로 내려간다. 아름드리 벚나무들이 줄지어선 벚꽃길을 가을날 오후에 걸으며 벚꽃 피어나는 봄날의 풍경을 상상한다. 그 환상적 풍경은 화려하게 아름답겠지만 오늘 남파랑길을 걸으며 만나는 이 풍경이 이 순간의 내게는 더 소중하고 아름답다. 벚꽃길 아담한 터널 옆을 지난다. 터널 벽에는 앙증한 벚꽃이 그려져 있다. 터널을 지나서 조금 내려가서 남파랑길은 벚꽃길과 헤어져 오른쪽으로 꺾어 길을 건너 장복하늘마루산길로 오른다. 하늘마루까지 이어지는 이 산길이 그날의 단풍 풍경 백미였다. 그중에서도 덕주봉 아래 DREAMROAD 문자 조형물을 지나 왼쪽으로 꺾어 오르는 하늘마루 산길 단풍이 가장 고왔다. 서쪽으로 기우는 햇빛을 받아 단풍잎들이 반짝였다. 몸도 햇빛을 받아 단풍과 함께 곱게 물들었다. 바람이 살랑거린다면 단풍 풍경이 더 빛날 텐데, 이런 생각을 품으며 오르니 하늘마루 광장, 이곳에서 오른쪽으로는 덕주봉과 장복산 등산로, 왼쪽으로 하늘마루 전망대 오르는 길이다. 잠시 망설이다가 180m를 걸어 올라서 하늘마루 전망대에서 걸어온 남파랑길, 천자봉으로 내리벋는 산줄기와 진해만 바다를 조망하며 마음껏 기쁨을 누렸다. 행복이 어디에 있을까? 이 순간이 행복하다. 나는 이 행복에 만족한다. 내가 잡을 수 있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 나의 小確幸이다.
덕의 기둥인 德柱峰과 긴 행복을 주는 長福山 산줄기 등산로 입구인 하늘마루 광장으로 되돌아와서 8코스 끝지점을 향하여 장복 하늘마루 산길을 내려간다. 길가에는 이미 말라버린 쑥부쟁이 꽃들이 내년을 기약하고 있다. 그들 틈새에서 마지막 생명을 바쳐가면서 연보랏빛을 뿜어내는 쑥부쟁이 꽃들이 덕의 기둥인 듯 행복을 길게 누리고 있다. '죽음과 삶, 생명은 경외롭다. 삶과 죽음, 생명체의 한 생애는 각자로서 빛나며 아름답다. 자연의 삼라만상을 함부로 대하지 말라.' 이 소리가 장복산 三密寺 앞을 지나는데 비밀스럽게 들려온다.
숲속나들이길 갈림목을 지나 내려가는데 서녘에 기우는 햇살을 받아 곱게 빛나는 하늘마루 산봉이 정면에서 반짝인다. 이 풍경은 남파랑길 8코스를 마치는 도보객들을 축복으로 맞아주며 환송해 주는 모습 같다. 그 길을 돌아가니 숲속의방 입구가 나온다. '강석경의 소설 제목이 '숲 속의 방'이 아니던가? 첨예한 이념적 대립 속에 갈등하다가 삶의 진실을 찾지 못한 채 주인공 여자는 혼자만의 공간 방에서 동맥을 끊어 자살하던가? 숲속의방은 그 소설과는 다른 치유의 공간이겠지. 수많은 나무들의 숲, 그 속의 비밀스런 방, 혼자만의 고독을 즐기는 방일까? 글쎄! 복잡한 현대생활에 몸과 마음은 긴장과 피로의 연속으로 지칠 대로 지쳐 황폐해지잖아. 지친 육체와 황폐해진 정신을 치유하는 공간이 숲속의방일 것이겠지.' 이런 생각을 품으며 순식간에 숲속의방 입구를 스쳐 지난다. 드디어 진해 드림로드 시작지점에 도착해 남파랑길 8코스를 끝낸다. 그 지점에 설치된 9코스를 안내하는 지도를 보며 다음을 기약하는 꿈을 안고 버스에 오른다.
2. 걸은 과정 영상
오른쪽에 천자봉이 보인다. 왼쪽 뒤 봉긋 솟은 봉이 수리봉, 수리봉 아래 천자암이 있다.
오른쪽의 곶출산과 고절산은 바다로 출항하는 함선 같다.
왼쪽 붉은점부터 곶출산, 고절산, 산성산, 평지봉, 장복산, 덕주봉
8코스는 덕주봉 아래를 거쳐 장복산 아래 진해드림로드 서쪽 입구가 종착지이다.
오른쪽으로는 만장대, 왼쪽 안민고개 방향으로 남파랑길은 이어진다.
오른쪽 붉은점부터 안민고개, 덕주봉, 장복산, 걸어가야 할 목표지점이 분명히 보인다.
뒤쪽의 수리봉이 멋지게 들어온다. 천자봉은 오른쪽으로 조금 더 멀리 있는 듯하다.
오른쪽 맨 뒤 두 산봉은 왼쪽부터 산성산, 평지봉, 산성산 앞은 제황산
오른쪽 앞 두 곳은 왼쪽부터 소죽도, 소죽도는 주변이 매립되었다. 오른쪽은 진해만 북쪽의 진해루
왼쪽 두 산봉은 곶출산과 고절산(오른쪽), 그 아래 오른쪽은 속천항, 왼쪽 바다에 대죽도
13:19~13:47 이곳에서 가을볕을 받으며 점심을 먹었다.
진해만 북쪽으로 흘러드는 신이천(新泥川)의 꼭대기 물이 되는 듯.
이곳에서 페트병에 물을 채워 출발한다.
놀이를 겸하는 훈련시설과 대한민국 해병 관련 패널들이 전시되어 있다.
입구에 '해병의 혼'이라 불리는 시루봉(곰뫼바위봉)의 유래와 전설을 설명하는 안내판이 있다.
해병훈련체험 테마쉼터에서 500m 지점에 있으며 시루봉 오르는 등산로가 있다.
시루봉 1.6km. 안민고개 5.4km
느티나무와 배·벚꽃 형상의 조형물이 멋지며 마음이 활짝 열린다. 그러나 바다가 보이지 않고 시야가 좁다.
청룡사 표석에 새겨진 '萬法歸一 一歸何處'(만법귀일 일귀하처)
우주의 모든 것이 하나로 돌아간다고 하는데, 그럼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
위쪽으로 700m를 오르면 창원시 진해구 석동과 창원시 성산구 안민동을 이어주는 안민고개에 이른다.
안민고개 입구 삼거리에서 안민고개 오르는 방향의 전망대로 가서 조망하고 안민휴게소로 내려간다.
왼쪽 붉은점부터 불모산, 불모산·웅산 갈림목, 웅산, 웅산 구름다리, 시루봉, 수리봉, 천자봉
왼쪽 뒤부터 대발령, 행암고개, 그 앞 진해제1부두, 그 앞 제2부두, 그 앞 소죽도,오른쪽 대죽도, 오른쪽 곶출산
맨앞쪽 예전 해병신병훈련소였던 진해 해군교육사령부, 그 뒤 해안의 진해루가 보인다.
안민도로 벚꽃길에서 장복하늘마루 산길로 들어섬
뒤 맨 왼쪽 진해해양공원 솔라타워, 그 오른쪽 두 곳은 거가대교, 그 앞쪽 움푹 파인 곳은 행암고개, 그 앞은 행암항
중간 왼쪽부터 앞쪽으로 진해항제1부두, 제2부두, 방조제 끝의 소죽도, 앞에 진해루, 오른쪽 대죽도
맨 뒤 진해해양공원 솔라타워, 그 앞 왼쪽 대발령, 오른쪽은 행암고개, 앞쪽으로 소죽도와 진해루
바다의 대죽도, 그 오른쪽은 곶출산, 오른쪽 맨앞 붉은점은 진해의 랜드마크 제황산공원(탑산)의 진해탑
맨왼쪽부터 대죽도, 그 오른쪽 곶출산과 고절산 그 오른쪽 아래 제황산공원 진해탑
진해탑 아래 위쪽부터 백범친필시비가 있는 남원광장, 그 앞 중원광장, 그 앞 진해역, 그 앞 여좌천 로망스다리
오른쪽 두 곳은 이순신 장군 동상이 있는 북원광장, 맨 오른쪽은 진해공설운동장
거제도 옥포만은 남원광장 앞 산기슭의 해군사관학교 앞쪽으로 멀리 흐릿하게 들어온다.
임진왜란에서 조선수군의 첫 해전 승리는 거제도 옥포만의 옥포해전이다.
정면의 곱게 물든 하늘마루 산봉이 8코스를 끝내는 도보객을 축복으로 맞이하고 환송해 준다.
남파랑길 8코스 끝 지점이자 9코스 시작 지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