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나주 여행이야기를 하기 전에 잠깐, 하나만 짚고 가자.
나주의 슬로건은 '천년 목사의 고을'이다.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목사라고 하면 옛날 벼슬아치의 하나라는 걸 알겠
지만 일반 여행자들은 고개를 갸웃거릴 것이다. 여기서
뜬금없는 질문 하나를 하겠다. 차장검사가 높을까, 부장
검사가 높을까? 정답은 차장검사이다.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숱하게 나오는 검사이지만 그 직급과 관련된 자세한 것은
검찰 관계자가 아니면 잘 모른다.
군대에서 병장이 높은지 하사가 높은지 모르는 여자도 많다.
아니 관심 조차 없다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러니 일반인들이 목사에 대해 얼마나 알겠는가? 두 번째
질문은 조선시대 그 목사가 당시 얼마나 높은 직책인가? 하는
질문이다.
우리 역사를 살펴보면 고려 성종 998년에 전국 12개 주요
고을에 12목을 설치했고, 그곳의 최고 수장으로 목사를
파견했다고 한다. 그 목사를 지금으로 치면 도지사쯤 되겠다.
나주시에서 지금 내세우는 그 슬로건을 요즘 말로 바꾸면
'나주는 1,000년 동안 도청 소재지였다.'쯤 되겠다.하지만
이 말에 대해 '됐거든…, 난 왕도 서울에서 왔다고!'라는
반응의 여행자도 있을 것이다. 물론 나주의 찬란한 역사를
깔보는 것은 아니지만 도청 소재지보다 급이 높은 서울
특별시와 당시 나주와 같은 급인 광역시에 사는 도시인들
만 합쳐도 우리나라 전 인구의 절반 가까이 될 것이다.
전라도라는 말이 전주와 나주에서 나왔고, 나주가 호남의
웅도라는 것이 사실이기에 이곳 나주 사람들의 자부심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일반 여행자의 입장에선
'천년 목사의 고을'이란 슬로건에는 호소력이 없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그말은 생뚱맞다.
그럼, 일반 여행자들은 이곳 나주 어디에서, 어떤 점 때문에
감동을 받을까?
서울에서, 대도시에서 볼 수 없는 것이 이곳 나주에 있다.
나주를 다녀온 여행자들이 가장 놀라워 하는 게 음식이다.
음식으로만 국한해서 볼 때 전라도는 특별시다. 호남의 맏고을인
나주 역시 음식문화가 발달됐다. 그 이유는?
이곳은 들[野]이 넓어 농산물이 많았고 바다가 가까워 해산물도
풍부했기에 그렇다. 그리고 과거에는 이곳 나주의 영산포까지
바다의 배가 올라왔다고 한다.
나주의 특산품인 '나주배'를 제외하고도 이곳 나주의 3대
먹거리를 손으로 꼽는다면 ①영산포 홍어 ②나주 생고기와 곰탕
③구진포 장어 등이 그렇다.
'홍어'하면 신안 흑산도이지만 과거 그 홍어의 최대 소비지는
나주 영산포였다. 이는 마치 양양, 울진, 봉화가 송이버섯의
주산지이지만 그 송이버섯이 가장 많이 팔리는 곳은 서울 강남
백화점인 것과 같은 이치다.
과거 흑산도 앞바다에서 잡은 홍어를 나주 영산포까지 배로
가져오는 데 달포 걸렸다고 한다. 그리고 이때 잡은 홍어가
저절로 삭았는데(발효되었는데), 정약전의〈자산어보〉에서는
'나주 고을 사람들이 삭힌 홍어를 즐겨 먹으며, 복결병이 있는
사람은 그 홍어로 국을 끓여먹으면 낫고, 숙취 없애는 데도
효과가 있으며, 뱀 물린데에 홍어 껍질을 붙이면 낫는다'라고
나와 있다. 여기서 복결병은 배 속에 어혈이 생긴 병을 말한다.
지금도 나주 영산포에는 홍어 거리가 있다. 전라도에선 집안
잔치를 앞두고 '떡 맞추듯이' 홍어를 예약해서 사간다고 한다.
이곳의 홍어집은 식당이라기보다 홍어 판매상에 가깝다.
홍탁삼합(홍어+막걸리+신김치)은 이제 서울에서도 먹을 수
있지만 이곳 나주가 아니면 맛보기 힘든 음식이 '홍어애보릿국'
이다. 봄철 보리수확 전에 홍어내장과 보릿잎을 함께 넣고 끓인
된장국이 '홍어애보릿국'이다.
나주는 생고기로도 유명하다. 큰 고을에는 큰 우시장 하나쯤
달려있는 법, 나주 영산포 우시장도 그 규모가 크다.
나주 사람들은 "막 잡은 소 엉덩이 살을 잘라 생선회처럼 먹은
것에서부터 생고기 문화가 시작됐다"고 자랑한다. 그리고
그것은 양념육회와도 다른 것이다.
이제 이곳 나주의 볼거리 딱 세 가지만 얘기하겠다.
①불회사와 운흥사 ②메타세쿼이아길 ③다야뜰.
그 세 가지가 그렇다.
나주에는 큰 절이 없다. 이곳에 있는 불회사와 운흥사도
그 규모가 작다. 한데 그 절의 역사는 깊다. 중국 동진의
마라난타가 백제에 불교를 처음 전해준 곳이 전남 영광의
불갑사인데, 그 불갑사 다음으로 지은 절이 불회사다.
운흥사는 불회사와 언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절이다.
이곳에서 꼭 봐야 할 게 불회사와 운흥사 어귀에 있는
돌[石]장승인데, 그 장승은 유쾌하게 웃고 있으며, 표정
또한 해학적이다. 불회사 가는 길은 편백나무 숲이 좋다.
운흥사는 터만 남았던 자리에 10년 전 주지 혜원이 들어와
법당을 세웠다고 한다. 이 절은 다성 초의선사가 출가한
절이기도 하다. 다음으로 전남 산림 환경연구소의 메타세
쿼이아길을 소개할까 한다. 이 길은 직선길로 400m 정도
되며, 사진찍기에도 좋은 곳이다. 다야뜰에는 10만평이나
되는 양귀비 꽃밭이 조성되어 있다. 나주 영상테마파크가
다야뜰을 조망할 수 있는 좋은 포인트다.
▲ 여행길잡이
* 토·일요일 오전 10시 광주역에서 나주시 주요 여행지를
도는 관광버스가 다닌다. 1주일 전에 예약을 해야 한다.
* 나주시는 2008년 말부터 목사 내아를 숙소로 개방하고
있다. 숙박요금은 5만원에서 15만원 정도이며, 나주시
관광과에서 예약받는다.☎061-330-8107
* 불회사는 나주시에서 남평 쪽으로 가다가 13번 국도를
타고 다도면 쪽으로 넘어가면 있다. 관련 홈페이지에
지도와 대중교통편이 나와 있다.
* 55번 지방도로변 산포면 산제리 전남산림자원연구원
內에 메타세쿼이아 길이 있다. 이곳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개방하며 연중무휴이다.
* 영산포 홍어 거리에서는 홍어1번지(☎061-332-7444)와
홍어마을(☎061-334-6556)이 유명하며, 홍어애보릿국은
5,000원이다. 영산강홍어는 식당없이 판매(택배)만 한다.
* 생고기는 세지면 화탑마을 유명하며 매장에서 생고기를
사서 식당에서 구워 먹는 식이다.
* 곰탕은 남평식당(☎061-334-4682)과 하얀집(061-333
-4292)이 유명하다.
곰탕의 가격은 6,000원 정도하며 금성관 주변에도 곰탕
파는 식당이 있다.
* 장어요리는 대성장어(☎061-336-1265)와 신흥장어
(☎061-335-9109)에서 잘한다.
- 2009년 05월 13일자 경향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