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표지판 밑을 지나면 체온이 낮아진다. 각성제를 삼키는 기분이다. 어떤 권위적인 자의 영역 표시 같기도 하고, 수도가 지닌 위엄에 대한 경고 같기도 하고, 기분이 저조한 어떤 땐 서울 변두리 집조차도 엄두 못 내는 내 형편에 대한 야유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이곳에서부터 제한속도는 60킬로미터로 줄어들고 단속카메라가 즐비해지고 교차로마다 경찰이 상비하게 된다.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전철에 몸을 싣고 한강철교를 지나가고, 만성 체증에 시달리는 올림픽대로 운전자들은 무료한 듯 차창 문을 내려 무심히 국회의사당이나 63빌딩을 내다본다. 이곳은 대한민국의 수도인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해남 땅끝 마을에서 태어나 광주로 고등학교를 갔고 대학은 평택으로 갔으니 직장은 서울로 갈 수 있으리라. 북진은 내 인생의 유일한 꿈이었다. 어떤 형태의 삶을 구체적으로 꿈꾼 것도 아니었다. 다만 북진. 고구려 유목민들이 말을 타고 수염에 얼음이 맺히도록 춥고 황폐한 땅으로 내달렸던 그 맹목적 피끓음처럼 나는 다만 상행하고 싶었다. 스물 두 살의 일이다. 간절히 바라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은 실패한 기성세대가 만들어낸 거짓말로나 믿는 시절이었다. 숨을 쉬면 불이 펄펄 일만큼 뜨거웠다. 서른 살이 되도록 소도시 반 지하에 살게 될 줄 알았다면 감히 자살을 감행했을 나이였다.
변명거리를 찾으려면 못 찾을 바도 아니다. 대학에 들어가고부터 경기가 나빠지기 시작했고 시간을 벌기 위해 군대를 다녀온 것이 실수라면 실수였다. 80년대 대학을 다녔던 사람들이 최루탄과 삼청교육대를 한탄한 것처럼 우리들은 실패만 거듭하는 아들이 평생을 걸쳐 가난한 태생을 원망하듯 IMF를 문제 삼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도 한 때의 일이다. 서른이 되고부터 어쩐지 그런 변명거리로 핏대를 높이고 나면 뒤통수가 뜨뜻하게 달아올랐다. 햄버거 가게에서 콜라 작은 사이즈를 시키고 나서 유니폼 입은 스무 살 남짓한 계집애에게 콜라를 싫어해서요, 라는 말을 덧붙이게 될 때는, 그런 비겁한 변명을 일삼다간 꼭 이런 식으로밖에 살지 못하게 될 것 같아 아뜩함을 느꼈다.
서른의 시간이, 바닥이 드러난 한 모금의 물처럼, 이렇게 아슬아슬해질지는 차마 몰랐다. 이십대는 제대 후 한 일 년쯤 PC방에 눌러 살았고 이런저런 연애에 실패하며 직장에서 두어 번쯤 일을 그만 두면서 흘러갔다. 그래도 그때는 어떤 자신감 같은 것이 있었다. 무슨 배짱인지 내 인생이 그래도 막판까지는 가지 않을 거라는 확신 같은 것이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전기세 수도세는 안 밀렸다는, 터무니없는 기준으로 내 재복을 점치곤 했다. 내가 반반한 얼굴을 무기로 노인네들을 상대로 가짜약이나 팔게 될지는 정녕 몰랐다. 핸들을 쥔 두 손에 땀이 차오른다. 서부간선도로에 드디어 목동아파트단지 표지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상한 북진이다.
고급아파트의 공기는 감미롭다. 지폐는 천박하지만 지폐로 이룩된 풍경은 섬세하고 고혹적이다. 단지 내를 걷는 강아지조차도 예절을 아는 듯 군다. 꼬마 녀석들은 첼로를 메고 오가며 늙은이들은 옛 시절 춘궁기의 한 때를 기억하지 못하는 얼굴들을 하고 있다. 돈에 대해 무한히 관대할 수 있는 자들만이 지닐 수 있는 약간 부풀어 오른 방만한 얼굴들. 나는 잉글랜드 메디컬 센터라고 고딕체로 적힌 초록색 마티즈를 주차시키고 층수를 가늠하느라 목을 꺾어 건물을 올려다본다. 베란다들이 거만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삶에 어떤 자세로 복무하게 되면 저런 아파트에서 노년을 맞게 되는 것인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앞주머니의 쪽지를 펴본다. 박금례라는 이름과 함께 주소가 휘갈겨 적혀 있다. 흥분이 깃든 필체다. 입사 하루 만에 받은 일명 러브콜이었다. 부장의 어금니가 모두 금니라는 것을 그때 처음 보았다. 금전에 대한 열망이 이루어졌을 때는 중년의 미소조차 해맑았다. 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잉글랜드 메디컬 센터에 대리로 승진했다. 부장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실적이 높으면 진짜 잉글랜드 본사로 파견을 보내겠네. 간이 무대 위에 올라 핏대 높이며 노래 부르고 무릎이 깨지도록 뛰고구르는 젊은 남자를 장막 뒤에서 지명하고 사라진 할머니란 대체 어떤 사람인 것일까. 앤티크 분위기로 치장한 거실에서 보랏빛 벨벳 카우치에 앉아 기품을 뽐내고 있는 노인? 아니면 끼니마다 수십 개의 알약들을 삼키며 불로장생을 위해 몸부림치는 노인? 그것도 아니라면 혹시 청상과부로 살아왔던 삶에 한 맺혀 젊은 남자들만 보면 사족 못 쓰는 노인? 어느 쪽도 상관없다. 엘리베이터 거울 안에서 입을 비틀고 씩 웃어본다. 성공에는 역시 위악이 어울린다.
현관문이 열리고 할머니가 나타난다.
-이히 후로이에 마히, 지 켄넨주레르넨!
노인이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지껄인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댄다. 내가 박금례요, 어려운 걸음 했소. 노인이 고무장갑을 벗고 악수를 청하며 씩 웃는다. 악취미를 가진 노인이다. 찢어진 눈매와 이가 빠져 안으로 파고든 입에 살이라곤 없이 깡말랐다. 심술궂고 교만해 보이는 얼굴이다.
노인의 안내를 받으며 집안으로 들어간다. 방문들은 꼭꼭 닫혀 있고 복도에는 고가구 몇 점과 가족사진 한 장뿐 별 다른 장식이 없다. 넓고 적막하다. 집에 대한 그런 수식어는 부를 축적한 황혼기를 누리고 있는 자들의 것이다. 대부분의 집들은 좁고 낡고 지저분하다. 어린이와 소녀와 청년과 중년과 노년이 뒤섞인 가족구성원들의 배타적이고 독자적인 생활필수품들 때문에 집안은 아무리 치워도 늘 엉망이 된다.
-복분자요, 강원도에서 산속을 누비며 직접 캔 거라 진국이요, 진국.
노인이 컵을 내민다. 사투리와 표준어와 이국의 억양이 섞인 말투가 이상하다고 느끼면서도 나는 숙맥처럼 앉아서 노인이 주는 대로 복분자즙을 받아 마신다. 노인이 미소 띤 얼굴로 내 앞에 바짝 다가앉는다. 노인을 따라 나도 웃어보지만 어색하다. 이런, 첫손님을 받는 콜걸이 된 기분이다. 노인이 내 입가에 손을 가져다대더니 입가를 문지른다.
- 복분자가 이게 문제여, 진액이 묻는다고.
젊은 남자에게 사족을 못 쓰는 늙은이의 집에 제 발로 걸어와 이렇게 고요히 추행 비슷한 것을 당하고 있는 것을 보면 돈이란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 나는 수치심을 눅이고 사무적인 자세로 서류가방을 연다. 몸뚱어리를 미끼로 실적을 올려보겠다고 마음먹은 내 결심이 가상하다. 본격적인 약 설명을 하려고 입을 여는데 노인이 불쑥 나를 막아선다.
-나가 그 회사 전문가요. 그짝 대리님보다 내가 더 선배라니까요. 내가 미리 살 것들 다 맘속으로 정해놨으니까, 걱정 붙들어 매시고 나 좀 따라 와보쇼.
설마 이 대낮에 사내를 침대로 이끄는 것인가 싶어 깜짝 놀라서 노인의 뒷모습을 쫓는다. 무릎에는 살비듬이 끼어있을 테고 오늘아침은 바빠서 팬티도 갈아입지 못했는데, 싶다가 이게 무슨 미친 생각인가 싶어 머리를 흔든다. 노인은 스스럼없이 앞장서서 걷는다. 돈의 위력으로 무장된 나머지, 치장마저도 귀찮아진 차림이다. 나는 이를 앙다문다. 노인과 돈의 위력을 나누어 가질 수 있다면, 침대 위에서 묘기라도 부리겠다. 스물두 살 동정을 함부로 내팽개친 것이 자랑스럽게 느껴진다.
뜻밖에 노인이 걸어간 곳은 주방이다. 식탁 위에는 마늘과 콩깍지, 고사리 감자 따위가 바구니에 나뉘어 수북이 담겨 있다. 방심할 수 없다. 음험한 비밀이 도사리고 있을 것 같은 노인의 행동을 주시하며 엉거주춤 식탁 의자에 앉는다.
-노인들은 이런 것 하나도 힘에 부치다오.
노인은 자연스럽게 마늘 바구니를 내 몫으로 밀면서 예의 쉰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까 내 앞에 있는 이 노인 얘기의 요지는, 약을 팔아주겠으니 너도 네 처지를 좀 살펴 알아서 비굴해져라, 는 뜻이다. 노인의 얼굴을 바라보고 씩, 한번 웃어준다. 노인의 악취미를 극복하고 싶은 희한한 경쟁심리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나에게도 집에 가면 노인 연배의 어머니가 있다. 환갑 언저리의 노인네들은 모두들 자신의 인생 경험에 비추어 만들어낸 개똥철학과 가치관들을 부적처럼 이마에 붙이고 산다. 그 가치관에 순응하는 자들에게만 ‘이 시대에 보기 드문 바람직한 젊은이’라는 칭호를 부여받는 것이다. 나는 인생의 황혼기에 가족도 없이 돈의 헤게모니를 신앙처럼 믿고 사는 노인의 철칙에 순응하기로 한다. 노인이 무슨 선심 쓰듯 건네는 외제 칼을 받아든다. 독일로 이민간 아들이 해마다 보내오는 선물 중 하나라고 한다. 젊은 사내를 끌어들여 군 시절 k-1을 쥐었던 손에 마늘을 쥐어주고 있다는 사실을 노인의 아들이 알면 머나먼 독일에서도 뒤통수가 화끈 달아오를 것이다. 칼로 마늘꼭지를 베어낸다. 마늘 살점이 다치지 않게 얇게 껍질을 벗겨낸다. 집에 있는 어머니가 안다면 눈물콧물을 훔쳐내실 광경이다.
돈을 쥔 쪽이 결론은 물론 세부적인 과정까지도 결정한다. 이야기를 원 없이 하겠다고 할 수도 있고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며 심지어 목욕을 시켜달라고 할 수도 있고 함께 병원놀이 따위의 변태성향의 놀이에 동참시킬 수도 있다. 노인은 끊임없이 이야기를 시키는 쪽을 택했다. 고향과 나이 졸업한 대학과 첫사랑, 군 복무 지역, 그리고 현재 사는 곳까지를 세세하게 묻고 곱씹고 평가했다. 나는 예상했던 것보다 낮은 수위라 안도하면서도 내내 노인의 눈치를 살폈다. 노인의 기대에 부응할만한 이야기를 꺼내고 싶었으나, 삶이란 원래 그렇게 드라마틱하지 않은지 내가 그토록 지지부진 살아왔는지 재미있을 거리가 없었다. 노인의 얼굴은 무심한 듯 했지만 간간히 섞인 추임새가 여간 날카로운 것이 아니었다. 룰을 알 수 없는 게임에 휘말린 것 같았다.
-서울에 직장을 잡았으니, 서울로 올라오지 않구. 왜 그 먼 평택에서 지내나.
이야기가 끊기자 노인이 당근 한 쪽을 아작아작 씹으며 묻는다.
-평택이 공기가 참 좋습니다. 앞으로 개발이 될 가능성도 있구요…….
노인이 한심한 듯 나를 본다. 무심한 듯 건너다보는 눈빛인 것 같지만 뱃속까지 꿰뚫는 듯한 날카로운 시선이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실토하듯 중얼거린다.
-처음엔 시세도 모르고 동작이나 사당을 기웃거렸죠, 그 다음엔 광명, 안양 언저리. 결국 밀리고 밀려서 터를 잡은 게 평택이었습니다.
노인이 빙긋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제기랄, 원래 노인과는 함부로 대적하는 게 아니다. 휴대전화가 울린다. 변부장이다.
-잘 돼 가십니까?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몰라 우물쭈물하고 있는데 착 내리깐 변부장의 목소리가 이어 들려온다.
-계약 성사 전이면 단감, 성사는 곶감, 성사 실패면 땡감…… .
-아, 아 감이요, 단감.
-계속 수고하십시오.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전화가 끊겼다. 내가 알지 못하는 게임의 룰을 변부장은 알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잘하라는 게 아니라 수고하라는 말도 수상쩍다. 수고, 라는 단어에는 약에 대한 능숙한 설명이나 구입을 설득하는 것을 넘어선 어떤 것, 이를테면 약을 팔기 전까지의 노역과 비위 맞추기 같은 것이 담겨 있는 것이다. 마늘의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못가진 자의 비의의 냄새다.
-변부장이구만.
콩깍지에 시선을 둔 채로 나직한 목소리로 노인이 말했다. 나는 어정쩡하게 웃었다. 세상을 어떻게 살면, 이런 때 능숙하게 포커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게 되는가.
-그 눔의 단감은 바뀌지도 않어.
노인이 웃었다. 기어이 내 얼굴이 화끈거린다. 능숙하지 못한 것은 애교가 아니라 다만 무능력일 뿐이다. 수치심 어린 얼굴로 마늘 바구니에 고개를 박는다.
콩깍지를 다 깐 노인이 일어난다. 쌀을 내오고 밥솥을 꺼낸다. 노인은 휘휘 빠른 속도로 밥을 안친 뒤 도로 감자 바구니를 끼고 앉는다. 그리고 눈을 들어 나를 바라보더니 이제 여동생 얘기를 해보라고 채근을 시작한다. 나는 노인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시가 10억을 호가하는 아파트에 살면서 마음만 먹으면 동년배 친구도 수대로 살 수 있는 노인이, 삼류 인생 이야기에 저렇게 관심을 가지는 것은 도대체 어떤 심리인 것일까. 모든 것을 다 가진 노년의, 생에 대한 유희인가. 이유를 알 수 없는 굴욕감이 목구멍에 치받혀온다. 나는 이를 앙다문다. 이것은 굴욕이 아니라고, 호재인지도 모른다고 여기면서. 유희의 대상이 되어 부의 찌꺼기를 나눌 수 있다면, 나는 실수로 과자를 땅바닥에 떨어뜨려 못 먹게 해버린 여동생의 머리를 후려쳤던 과거도 말할 수 있다.
누구에게나 자기의 역사는 눈물겹다. 그것을 어떻게 인내하느냐의 방식이 다를 뿐이다. 잊은 척하는 것은 내 쪽이고, 들춰내는 쪽은 여동생이며, 미래를 꿈꾸는 쪽은 어머니다. 나는 고통이라고 생겨 먹은 기억들은 모두 우겨넣어 씹어 삼켜버렸다. 꾸역꾸역 킨 고통으로 가슴과 목구멍이 꽉 찼다는 것을 핑계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 그것이 대학 진학과 함께 홀어머니와 여동생까지 낯선 타지로 끌고 온 뒤 가장 노릇도 못하고 변변치 않게 굴러먹는 삼류 인생이 사는 법이었다.
어머니는 달랐다. 평택에 올라온 뒤 어머니는 고향에서 겪었던 수모에 대해서 깡그리 잊은 듯 굴었다. 대신에, 어머니는 끊임없이 자신의 소망을 꿈꾸었다. 어머니의 소망은 죽기 전에 단 한 번만, 02국번이 찍힌 전화번호를 갖고 싶다는 것이었다. 평택에 터를 잡을 때만해도 어머니는 사 년만, 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아들이 가장 노릇을 할 때까지만 수도권 언저리에 얹혀사는 것이라 장담했다. 어머니는 변두리 빌라촌에서 십수 년을 눌러앉은 여자들을 대놓고 경멸했다. 구질구질하게 평생을 사느니 차라리 시골로 내려가겠다는 것이었다.
어머니의 소망은 치밀하고 천연덕스러웠다. 그냥 좋은 집에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정도가 아니었다. 화분은 물론 상추나 깻잎 같은 것을 키울 수 있게끔 베란다는 넓어야 하고, 이른 아침 햇빛 속에서 눈 뜰 수 있게 침실은 동향이어야 하고, 재봉틀 놓을 자투리 공간을 갖춘 부엌에, 집안 어디라도 한군데쯤 창을 열면 아득하게라도 산 하나쯤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식이었다. 어머니는 불시에 소망을 물어올 누군가를 대비하기라도 하듯이 끊임없이 당신이 꿈꾸는 인생을 첨삭하고 다듬었다. 나는 어머니를 비웃었다.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노년의 소망은 그 자체로 비극적인 것이었다. 게다가 소망을 이뤄줄 방법이 묘연하기만한 시절의 꿈은 능력 없는 가장을 자괴하게 하는 면이 있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야 머리통 위에 노란 풍선 하나가 연등처럼 매달려 있는 것 같아야. 괜히 마음이 설레고 코끝이 시큰거려야.
어머니는 내 조소에 아랑곳하지 않고 소녀처럼 웃었다. 그리고 하늘 저 편에서 일거수일투족을 내려다보고 있는 신의 비위라도 맞추는 듯 삶에 성실했다. 출근할 곳도 없는 아들을 위해 아침부터 콩나물국을 끓이고 두부를 지지고 고등어를 구웠다. 나는 아침에 눈을 떠 일어나지도, 잠들지도 못한 채 팔베개를 하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팔을 괴고 옆으로 돌아 누워보기도 하고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벌떡 일어나보기도 했으나, 결국은 한숨 끝에 다시 누울 뿐이었다. 어머니의 도마소리가 오래된 원한을 잘근잘근 다지는 것 같이 들려왔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머니는 한 평생 몸을 혹사시키며 살았다. 삼십 년 쓴 재봉틀이 어머니를 대신해 녹슨 몸을 삐걱대며 세월의 지난함을 호소했다. 여름이면 모시이불을 수놓고 봄가을 철에는 혼수예단을 도맡아했다. 자잘한 수선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들을 원망하고 운명을 한탄하는 순간, 당신이 이제껏 품고 있던 모든 희망이 사라져 버릴까봐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반드시 될 거라고, 어떻게 키운 자식인데 이렇게 주저앉겠느냐고 호언장담을 했다. 그럴 때면 작달막한 어머니가 여장부처럼 늠름해보였다. 막막한 것은 오히려 내 쪽이었다, 어머니의 지당한 소망조차 허락되지 않는 내 현실에 벽에 머리라도 찧고 싶은 심정이었다.
압력밥솥에 벨이 울린다. 돼지고기를 양념하고 고사리와 감자를 볶았다. 점심 때 손님이 오기로 되어 있는 모양이다.
-약은 좀 드셔보셨어요?
손님이 와 번거로운 와중이라면 어영부영 물러나야할 판인지도 모른다.
-응, 응. 내가 그쪽 약 효능 좀 봤제. 이번 주에 새로 출시된 ‘관절큐’인가 뭔가 하는 거 있잖은가. 세 박스나 주문했는데 벌써 효능이 온다네, 그거 먹고 관절염이 싹 가셨네. 저번 달에 먹은 ‘가시오가피 플러스’도 효과가 빠르고. 홍삼이랑 쑥이랑 내가 열심히 먹고 덕 좀 봤다네.
기껏 해봐야 비타민과 신경안정제와 값싼 진통제 종류를 적절히 섞어 담았을 뿐인 약이 노인에게 어떤 효험이 있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운명은 가끔 눈이 멀어 생각 없이 멍한 치들에게 엄청난 부를 안기고 사라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 집에 그런 운명의 방문이 있었더라면 나 역시 좋은 여자와 결혼 하고 독일로 이민을 갔을는지도 모른다.
얼추 점심시간이 되어가고 있다. 전화가 오거나 초인종 울리는 일 없이 집안은 조용하다. 잠깐이라도 대화가 끊기면 적막감이 찾아든다. 새삼스레 방안을 둘러본다. 혼자 사는 집 특유의 단정한 질서가 곳곳에 배어 있는 집이다. 집을 어지럽히는 아이와 양말이나 속옷나부랭이를 함부로 벗어놓는 식구들이 사라진 지 오래된, 내려앉은 공기. 아들내외와 나란히 앉아 찍은 가족사진이 있지만 빈 벽을 매우긴 역부족이다. 뒤로 몇 발짝 물러나야 윤곽을 알아볼 수 있는 커다란 가족사진이 휑뎅그렁해 보인다.
음식 냄새가 풍긴다. 반찬이 한두 가지씩 식탁에 놓이기 시작한다.
-누구 안 오시나요?
-으응, 잠깐 기다려와. 올 거야. 이 노인네 이래 뵈도 친구는 있다네.
돼지갈비에 고사리나물에 감자부침개에 완두콩 넣은 밥까지, 소박한 손님상이 완성된다. 노인이 바지에 젖은 손을 쓱쓱 문지르고 거실로 나가 전화기를 든다. 돼지갈비에 윤기가 자르르 해 식욕이 당긴다. 염치없는 식욕을 부끄럽게 여기며 큼큼, 목을 가다듬는다.
-응? 뭐라고 못 온다고?……뭐? 아들이 병원에 입원했어? 아이고 이런 변이 있나, 원.
노인의 커다란 소리가 거실을 쩌렁쩌렁 울린다. 손님이 오는 것도 거슬리는 일이었으나 손님이 약속을 펑크 내는 것도 역시 문제다. 전화를 끊은 노인이 시무룩해진 얼굴로 식탁에 와 앉는다.
-그냥 대리 양반하고 듭시다.
노인은 일언반구 설명 없이 식탁에 앉는다. 나도 못이기는 척 자리에 앉는다. 노인이 말없이 돼지고기와 감자부침개를 내 밥그릇 앞으로 밀어준다. 돼지고기를 한 입 베어 문다. 간이 배어들지 않아 싱겁다. 보기엔 괜찮더니 맛은 형편없다. 인상이 저절로 구겨질까봐 마음에도 없는 칭찬을 늘어놓는다.
-허허, 친구들이 이 고기를 못 먹는다고 지금 병원에서도 발을 동동 구른다오.
노인, 어이없는 구석이 있다. 그 친구라는 노인이 이 맛없는 고기를 먹지 않으려고 거짓말을 하는 것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이고, 잘 먹네, 저번 대리 양반은 반 공기 먹고 나가 떨어지더구만.
그럼 이따위 음식을 잘 먹어줄 만큼 수더분한 사람이 또 어디 있겠느냐는 생각이 들다가, 순간 아연해진다. 그렇다면 저번에도 노인의 친구가 약속을 펑크 냈단 말인가? 어쩌면 노인은 친구들 사이에서 왕따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약을 파는 일만 남았다. 어느덧 두시. 오전 아홉시에 마늘을 까고 오전 열한시에 치욕스러운 과거를 까발렸으며 오후 한시에는 내 생에 최악의 돼지갈비를 먹었다. 이제 보상을 받을 차례다. 노인이 커피를 타는 동안 나는 서류를 가지고 와 식탁에 앉는다. 커피를 손에 든 노인이 격하게 커피 잔을 내려놓으며 나를 만류한다.
- 대리 양반, 뭐가 그리 급하오, 젊은 양반이 그렇게 급하면 못 쓰오.
나는 서류를 든 손을 엉거주춤 내려놓는다.
- 아니, 할 일이 태산 같은데, 그렇게 휭 하니 가면 나는 어쩐단 말이오.
노인의 시선이 겅중겅중 집안 이곳저곳을 휘젓는다. 처음엔 텔레비전이 잘 안 나온다고 하더니 바늘귀에 실 꽂는 일이 먼저라고 허둥댄다. 텔레비전은 안테나만 조정하면 화면이 안 나올 리가 없고 바늘귀에 실 꽂는 일은 몇 분 걸리지도 않을 만큼 대수롭지 않은 것이다. 이제 됐죠? 내가 일어서려고 하는데 노인이 다짜고짜 당신 곁에 있는 장식장을 흔들어보더니 이게 영 시원찮다고, 곧 무너질 것 같다고 또 푸념이다. 노인 하나 살고 있는 고요한 집에 장식장이 왜 무너진다는 말인가. 마지못해 다가가 장식장을 흔들어본다. 몇 십 년 묵은 나무판이 아귀가 안 맞아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들릴 뿐이다.
-정 불안하시면 나사를 좀 조여보시든가요.
심드렁한 내 말을 노인이 반갑게 받아친다.
-그려, 아무래도 요 나사가 문제인가보우
노인은 장식장을 열어 드라이버를 찾는다. 낡은 손수건과 효자손과 위장약과 바늘쌈지가 담긴 어지러운 속에 드라이버가 없다. 노인이 베란다를 가리킨다. 저쪽 귀퉁이에 보면 아들놈이 보내온 공구함이 있을 거라고 했다. 노인이 짝을 맞춰 챙겨주는 슬리퍼를 신고 베란다 끝으로 갔다. 대자리와 찜솥과 싸구려 옥매트 따위가 빼곡히 들어찬 베란다에 공구함을 쉽게 찾을 수 없었다. 이것저것 들쑤시고 들여다보다가 창고로 보이는 문을 열었다. 아래쪽에 ‘made in Germany' 라고 찍힌 공구함이 보였다. 공구함을 들어 올리는데 아래 쌓인 물건들이 균형을 잃고 와르르 무너진다. ‘관절큐’와 ‘가시오가피’.
노인이 복용해서 효험을 봤다던 약상자들이 포장을 뜯지도 않은 채 수북이 쌓여 있다. 푸른색 스티커가 붙은 클로렐라와 붉은 홍삼그림이 크게 박힌 홍삼 엑기스, 석류추출액……모두 이름 없는 제약회사의 엉터리 건강식품이다. 돌아보니 쌓인 건 약뿐이 아니다. 지압기와 안마의자, 전기매트까지 비닐도 뜯지 않은 채 고스란히 방치되어 있다. 거실 쪽에서 아직 못 찾았냐는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황급히 대답하고 베란다를 빠져 나온다.
공구함을 들고 거실로 들어간다. 묵묵히 장식장 나사에 드라이버를 꽂아 돌린다. 반 바퀴도 돌려지지 않는다.
-대리 양반이 이렇게 해주니 내가 걱정을 좀 덜겠네.
그제야 노인의 태도가 수상해 보인다. 아침부터 찾아온 직원에게 부엌일을 시키고 밥을 해먹이고 이야기를 해달라고 보채고 이것저것 말참견에, 이제는 강짜 부리듯 당찮은 일들을 벌이고 있다. 나는 의혹의 눈길로 노인을 천천히 뜯어본다. 노인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이렇게 이상한 진심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여하는지 나는 배우지 못했다. 노인의 얼굴을 외면한다. 미묘한 정적이 흐른다. 나는 노인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노인에게 지금 필요한 건 이 넓고 휑한 방안에 함께 있어줄 누군가,인지도 모르겠다.
-저…… 좀 있다 갈까요?
노인의 얼굴이 삽시간에 밝아진다. 하루 내 경직되었던 내 얼굴이 그제야 조금 말랑해지는 기분이다. 노인이 발그레해져서 주책맞은 줄도 모르고 또 답삭 내 손을 부여잡는다.
-대리 양반, 조금만 더 있다가 응?
노인의 눈이 환해진다. 자신의 진심이 적나라해진 것이 창피해할 여력도 없이 저렇게 노골적인 노인의 애걸이 가상하다. 나이가 들면 다들 저렇게 주책스러워지는가. 나는 서류가방을 내려놓고 앉고 만다. 돈이 몇 십 억 있는 노인이나 궁상맞은 빌라촌 늙은이나 어쩌면 저렇게 하나도 다르지 않은가 싶어서다.
오후 다섯 시에 나는 독일로 이민 간 노인의 아들이 얼마나 잘생겼는지에 대해서 듣고 일곱 시에 점 백 원에 고스톱을 쳤으며 여덟시 반에는 일일 연속극을 본다. 변부장에게 걸려온 전화는 노인이 빼앗아 끊어버린다. 내가 지난 주 놓쳤던 회는 노인이 알려주고 노인이 기억하지 못하는 오래전 이야기는 내가 거들어준다. 노인은 한없이 깔깔거리고 피박을 슬그머니 감추려다 들키고 일일연속극 속 기러기 아빠를 핏대 높이며 두둔한다. 저렇게 한국에 혼자 내버려두면 누가 배겨나겠냐고 혀를 차다가 말없이 바늘 쌈지를 뒤져 담배 한 대를 피워 문다. 그렇게 담배를 피워대니 목소리가 걸걸해지는 게 아니냐고 내가 농담 섞인 핀잔을 던졌지만 이번만큼은 노인 쪽에서 대꾸가 없다. 담배 연기를 뿜는 노인의 주름진 옆얼굴이 공허하고 외로워 보인다.
담배 한 대만, 내가 그렇게 부탁한 것은 노인의 그 옆얼굴 때문이다. 그것은 구겨진 이력서를 주름진 손으로 문질러 책상 위에 올려놓고는 말없이 앉아 있었던 내 어머니, 회사에서 잘렸다는 얘기를 듣고 우두망찰해 하다 티가 들어간 듯 슬쩍 눈가를 훔쳐냈던 어머니의 얼굴과 닮아 있다.
-마음에 없는 소리라도, 같이 가자는 말을 한번만 꺼냈어도 내 속이 이라고 징그럽진 않았을 것인디.
노인은 바닥으로 가라앉을 것 같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나는 씁쓸하게 웃는다.
-띠어준 돈을 도로 달라기도 치사하고, 서울서 살면 숨 막혀 못 살것다는 며느리한테 나 데리고 가라는 말은 차마 입이 안 떨어지드라고……그래서 그랬제. 그래, 너들이라도 좋을 대로 살어라. 새처럼 그렇게 날면서 살어라…… 내 살 같은 아들래미를 그라고 허망하게 보내고 난께, 내가 어디 제 명대로 살것능가…….
노인의 말투는 언제부터인가 낯익은 것으로 달라져 있다. 목동아파트단지에서는 생소한 말투, 저기 남녘으로 한참을 내려가야 들을 수 있는 사투리다.
-아니, 고향이 전라도셨습니까?
-……완도라는 덴디, 혹시 앙가?
나는 이를 드러내고 웃는다. 아침까지만 해도 알아먹지도 못할 이국 말을 해대던 노인의 입에서 완도라는 단어가 나왔다.
-아주 촌동네에서 오셨네요, 전 그래도 해남인데요.
-워매…해남이야말로 땅끝 아닌가, 완도는 그래도 땅끝은 아니제.
노인의 얼굴에 그제야 웃음기가 돈다. 노인의 꿈도 북진이었는가. 완도와 강진과 해남과 여수 땅에서 보퉁이 하나를 들고 성공해보겠다고 상경했던 청춘이었는가. 가슴에 알싸한 바람이 분다. 노인의 성공이 부럽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다. 이렇게 부자로 늙지 않았다면 아직도 노인의 아들은 서울 어느 작은 회사에서 넥타이로 목을 조이며 박봉에 시달리고 있었을는지도 모른다. 어느쪽이 행운이었는지는 가늠할 수 없다.
-이히 후로이에 마히 지 켄넨주레르넨, 처음 뵙겠습니다.
노인은 또박또박 나에게 독일 말을 가르친다. 나는 더듬더듬 노인의 말을 따라한다.
-아우프 비더제엔 취쓰, 안녕히 가세요.
-아우프… 비더제엔… 취쓰, 안녕히 가세요.
-이히, 콤메 아우스 코레아, 나는 한국인입니다.
-이히, 콤메… 아우스 코레아, 나는 한국인입니다.
-이히 하베덴 벡 훼어로넨, 길을 잃었습니다.
-이히 하베덴 벡 훼어…로넨, 길을 잃었습니다.
-보 이스트 디 네히스테 반 호프, 가장 가까운 역은 어디 입니까.
-너무 어려워요, 딴 거요.
독일 말은 짧고 간결하여 한없이 매정하다고 내가 우스갯소리를 했지만 노인이 이번에는 웃지 않았다.
노인은 관절큐와 가시오가피를 다섯 상자나 들여놓는다. 노인이 알아서 계약서에 싸인을 하고 주소를 적어 넣는 것을 나는 지켜만 본다. 내게는 양심을 지킬 여력이 없고 노인도 그것을 모른척해준다. 노인은 나의 만류에도 상관없이 주차장까지 따라와 내 차가 단지를 빠져나올 때까지 그 자리에서 배웅한다. 변부장에게 전화를 건다. 나의 실적에 감탄한 그가 잉글랜드 본사 파견 근무자로 나를 추천하겠노라고 추켜세운다. 변부장을 따라 웃다가 전화가 끊기자 문득 기분이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이히 하베덴 벡 훼어로넨……똑똑치도 못한 내 머리에 어쩐지 그 구절이 사라지지 않는다. 길을 잃었습니다. 길을 잃었습니다. 차는 어느덧 서울을 빠져나가고 있다. 이 길을 따라 가면 잉글랜드 메디컬 센터로도, 집으로도 갈 수 있다. 적어도 나는 길을 잃지 않았다.
그러나, 이 길을 따라가면 내가 원하는 꿈을 이룰 수 있는가. 내 어머니처럼 가난한 노인네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돈 많고 외로운 노인들을 꼬드겨 가짜 약들을 팔고 나면 나는 진정으로 잉글랜드 메디컬 센터로 파견갈 수 있는가. 아니, 어쩌면 그곳이 진정으로 있기나 한 것인가.
운전석 창문을 연다. 트럭과 승합차와 승용차들이 얼키설키 도로를 메우고 있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 서울 직장에서 하루 내 일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간선도로를 탄 사람들이다. 노란 연등 같다는 꿈을 차 뒤꽁무니에 달고 신바람 나게 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노란 연등이 사라져버린 삶에 절망하는 인간들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노인의 독일도, 나의 잉글랜드도, 어머니가 보는 노란 연등처럼 덧없고 허망한 것인지도 모른다. 저 멀리 켜진 노란 연등이 도대체 언제 가까워지는가. 생을 다 살아도 도대체 만져지기는 하는 것인가. 나는 담배 한 대를 피워 문다. 열린 창문 틈으로 밤공기가 차갑다. 밤바람이 콧속을 찡하게 파고든다. 동편 하늘에 솟아 있는 노란 초저녁달이, 연등처럼 아득하고 애틋한 꿈인 것 같아서, 나는 한동안 브레이크를 밟고 달을 바라보고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