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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비 토마스 잭슨과 크리스토퍼 토마스 겟즈에게 있어 직업은 저주였습니다. 반면 몽상가이자 시인인 스튜어트 데이빗은 시도해보기도 전에 자기가 먼저 직업을 저주했고, 책을 쓰거나 코를 후빌 때만이 유일하게 그나마 손가락 하나라도 까딱하는 경우였지요. 그의 책은 말하자면 『어느 백일몽자의 게으른 생각들』. 1권부터 10권까지. 10년 동안 1년에 한 권씩. 차분한 생각으로부터 자유롭게 흘러나왔던 저 펠트(Felt)의 음반이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그가 그런 생각을 하기 전에 스튜어트 데이빗은 사실 7년 동안 레븐 호수에서 강태공으로 살았더랬습니다. 비슷하게, 드럼을 생각하기 전의 리차드는 7년동안 낮이나 밤이나 당구를 연습했었구요. 그러나 스티비 잭슨은 벌써부터 록큰롤에 빠져있었습니다. 그는 비틀즈를 듣고 있었고 우리 대부분이 사춘기에 접어들기도 전에 이미 열심히 그 방면으로 연습하고 있었지요.
장사를 할 수 있을 만큼 자기 솜씨가 향상된 데 기뻐하며 그는 그가 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자기 기타를 연주했고, 기타를 연주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일했습니다. 그는 저녁 파티장에서 세레나데를 불렀고 그들이 돌아가고 난 뒤엔 설거지를 했습니다. 스티비는 말하자면 자기 우편번호 구역 내에서의 록의 신화였던 셈입니다. 그는 벌써 이른 나이에 자기 미들네임을 '리버브'로 바꾸기까지 했으니까요. 그는 자신의 텔레캐스터를 연주했고, 그런 그의 팔의 핏줄은 마치 록 패밀리 트리처럼 우락부락 불거져 나오곤 했습니다.
벨 앤 세바스찬은 볼품없이 기워 붙인 자본주의의 산물이었습니다. 그들이 사회주의의 후손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정말 근사하겠지만, 하지만 그러면 그건 어쨌든 실없는 뻥이라서요. 그들은 얼마 안 되는 잔돈이 그렇듯 절그럭거리며 함께 굴렀습니다. 뚱보 고양이 같은 어느 시당국 복지 담당 호주머니 속의 잔돈. 청소년 직업훈련 프로그램이란 걸 만들면 자기 상사한테 잘 보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그 남자. 자기 상사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 숫자를 조작한 그 여자. 단지 신용을 얻기 위해 창녀랑 잔 그 사람. 우린 그들 모두에게 삼가 정중히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그 직업 훈련에서 사슬에 묶인 패 혹독히 연습한 덕분에, 덤바튼셔 습지에서 다리놓기 초석공사를 하면서 스티비는 이번에 흑인 영가를 불렀습니다. 당시 근처에서 낚시를 하던 스튜어트 데이빗은 갈대밭 너머 들려온 그의 사랑스런 목소리를 들었고, 리차드는 그 목소리에 심지어 그가 정말 흑인이 되려는 게 아닐까 생각했을 정도라는군요. 어쨌든 그들이 스티비의 노래를 들었을 때, 그들은 둘 다 낚싯대와 당구 큐대를 내려 놓을 정도로 위안을 받았다는 말이지요.
그러는 와중, 크리스는 식당에서 커피와 음식을 서빙하면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직업소개소가 주는 직장이라면 뭐든 닥치는대로 일했지요. 그 당시 그는 자기가 일하던 그 식당을 맘에 들어했는데, 그 이유는 거기 식기세척기가 자기가 태어나서 써 본 것중 제일 좋은 거여서 그랬다나요.
그 식당이 있던 건물엔 마침 전국 대상 프로그램을 방송하는 방송국도 있었습니다. 그곳 스태프들의 태도는 라디오야말로 미래의 미디어라는 식이었지만, 그런 건 크리스를 별로 감동시키지 못했습니다. 그가 아는 건 오로지 그들이 저 멋진 호바트 엘리트 식기세척기를 고장 안 나게 쓰는 한, 그들은 제대로 일하고 있다는 거였거든요.
하지만 그 다음, 크리스 자신이 그 방송을 타게 됐지요. 나는 생각했습니다.
아아, 조그만 크리스. 네 학교 시절 난폭한 캐주얼파 축구 홀리건들이 그렇게 너를 못살게 굴었지만, 지금 그들은 다 이 방송을 듣고 있겠지. 그들은 자기 애들과 함께 자리에 앉아, 혹은 버거킹에서 마루청소를 하면서 이렇게 생각하겠지. '맙소사! 저 녀석 달리 촌놈 크리스 겟즈잖아!' 그리고 그 크리스는 저기, 전국 라디오 방송의 스타인 웨인 그랜드 피아노 뒤에 고양이처럼 쿨하게 앉아 있구요. 그래도 월요일 아침이 되면 어김없이 너한테 싱크대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이 친구야.
이소벨은 다니던 대학을 그만둘까 생각중이지요. 하지만 이소벨, 혹시라도 우리 꿈이 바위에 부딪혀 산산조각나게 되면, 과연 누가 우리를 먹여 살려 주지? 우린 전부 너만 바라보고 있는데, 그리고 새라. 네 말대로 네가 딴 예술 학위 따위 그게 적혀 있는 종잇장 값도 안될지 몰라. 하지만 넌 비록 오래 가진 못하더라도 언제든 임시 직장을 가질 수가 있잖아. 아님 선생이 되든가....
저는 회사의 견습 직원이었습니다. 시내에서 버스 운전수를 하고 있었지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사람들, 제가 떠나게 돼서 섭섭했을 겁니다. 저는 고객들에 대한 저만의 특별한 서비스가 있었거든요. 우린 정말 얼마나 친밀한 사이였는지! 그들은 나를 쓰레기라고 생각했고 나는 답례로 정류장을 그냥 지나치곤 했지요. 그래서 그들이 나한테 욕을 하면 나는 그들을 치지 않을 정도로만 아슬아슬하게 난폭 운전을 했구요. 하지만 나는 미소짓기가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 십자말풀이만이 그런 저의 유일한 낙이었지요. 욕지거리는 취객들은 물론 회사 사장들한테서도 먹었습니다. 그랬기에 제가 다시 실업수당 생활로 돌아왔을 때 저는 사실 기뻤답니다. 적어도 자기가 어떤 처지인지는 깨닫게 해 준다는 점에서요. 그 처지란 바로 완전 밑바닥. 구렁텅이지요. 저는 잠시 쉬었다가 다시 직업 훈련을 계속 받을 생각입니다. 대장장이 아니면 쇼윈도 장식가가 되는 훈련. 그래도 전 또 아마 버스로 돌아갈지 모르지만요.
이 음반을 사신 분들께;
스튜어트 머독이 위와 같은 글을 썼던 건 어림잡아 1996년 여름. 자기가 속한 밴드 벨 앤 세바스찬의 두 번째 앨범 『If You're Feeling Sinister』(나: "빨강 앨범")의 내지에, 말하자면 밴드를 소개하는 바이오그래피로 읽히길 바란 '듯한' 의도로, 빼곡이 가사가 적힌 부클렛 맨 뒷면에 볼 사람은 보고 말 사람은 말라는 식으로 아무 장식도 설명도 없이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글이었습니다. 당연히 볼 사람은 보고 말 사람은 말았겠지만, 어쨋거나 저 글 이후의 변화라면 그 사이 믹 쿡이라는 청년이, '더 이상은 우리를 도와줘서 고맙다고 말하기도 지칠정도였기에 이젠 아예 정식 멤버로 들어와 달라'는 밴드의 요청에 따라 벨 앤 세바스찬은 7인조에서 8인조가 되었지만 이미 그 점으로부터의 변화를 운운할 계제는 아닌 게, 믹은 이미 이들의 가장 첫 작품이자 데뷔앨범인 『Tigermilk』(나: "파랑 앨범")의 부터 이 앨범 『The Boy With The Arab Strap』(나: "녹색 앨범")의 에 이르기까지 정말 밴드로서 더 이상은 고맙다고 말하기도 지칠 정도로 계속 밴드의 잠정적 '제8의' 멤버로서 자신의 트럼펫과 함께 헌신해 온 인물이었거든요.
뭐 그리 오래된 사실도 아니지만 그래도 모른 척 '기억을 더듬어 보면' : 1998년에 이들의 빨강 앨범을 처음 들었을 때 저는 정말 아연했습니다. 1998년이라는 시점에서 이런 음악을 듣는다는게 아연했고, 이런 아연한 음악이 심지어 좋아지던 나 자신이 더 아연했지요. 그래도 나름대로 힘껏 평정을 가장하며 - 물론 그렇다고 벽에다 머리를 찧으며 이런 걸 좋아하다니 안돼안돼 울부짖었다는 소리는 아닙니다만 - 언제나 어디서나 조금씩은 목격할 수 있는 바람직한 예외의 사례로 이들의 브릿어워드 신인상 수상이나 미국 순회 공연에 대해서도 "그래 메탈리카도 있고 백스트릿 보이즈도 있는데 벨 앤 세바스찬이 없으란 법 없지"하면 팔짱 끼고서 그럴싸한 얼굴로 끄덕끄덕할 수는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알다시피, 평론계라는 기묘하게 앞뒤 안 맞는 세계의 냉소주의를 깨기란 사실 쉽지 않아서 - 그 일부라고 할 수 없는 저조차 그렇듯 냉소적이었던 것은 더 이상했지만 어쨋든 - 이 족속은 소위 컬트랑 전설 아니면 쉽게 마음을 여는 법이 없잖아요. 그나마도 '뜨는' 밴드나 가수들에게는 어느 정도 비위를 맞춰 줄 수 있을지 몰라도, 일단 '뜬' 후는 더 악화돼 버려서, 전부 상찬 아니면 전부 죽이기 아니면 전부 나 몰라란데. 그리고 명백히, 이 셋 중 어느 것도 뮤지션에게는 달갑지 않은 대접이구요. 허나 벨 앤 세바스찬이 저한테만 아연한게 아니었다는게 증명된 것은 바로 이 점에서였습니다. 그들은 컬트면서도 베스트셀러였던, 바꿔말해 저주받은 컬트가 아니라 사랑받는 - 나아가 팔리는 - 컬트였던 겁니다. 그리고 그건 상당히 '그럴 법하지 않은' 과정의 이상한 스타덤을 통해서였습니다.
빨강 앨범이 선보인 무렵, 각종 음악지들은 작심하고 만점 아니면 칭찬 일색이었고, 거기 화답이라도 하듯 밴드는 죽어라 얼굴을 안 드러냈습니다. 이들의 첫 파랑 앨범이 나오기까지의 소박한 과정은 일부가 생략되고 앞뒤가 뒤바뀐 채 '대학 음악 교재로 쓰일 정도였다더라'의 이상한 전설로 와전되었고, 앨범을 두 장까지라도 낼 수 있다면 어마어마한 성공이라고 생각했던 소심한 스튜어트 머독의 애초 발언은 사후 뭔가 있어 보이는 밴드의 대단한 마스터플랜인 것 마냥 회자되었지요. 하지만 이 반응은 어디까지나 그 사이 착실히 불어난 팬층 내에서만의 '현상'이었을 뿐, 이 팬층은 결코 마이클 잭슨같은 그런 범세계적인 팬클럽이 아니었을뿐더러, 아까처럼 만점을 주고 보한 듯 후하게 나왔던 매체는 실제론 결코 이들을 오아시스처럼, 심지어 최근의 트래비스처럼도 다루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이들의 음반 판매량이 오아시스나 트래비스 급이 못된다 쳐도 그간 이들의 드라마틱한 소위 '성공시대' 급 스토리는 충분히 그렇게 될 만 하고도 남았음에도, 엄밀히 말해 밴드가 죽어라 얼굴을 안 드러낸 바로 그 덕분에, 그들은 그러질 못했던 거지요. 그들은 이들을 혐오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좋아 미쳐 날뛰지도 않았습니다. 냉소적인 평론계와 험구로 악명높은 영국 음악 저널리즘의 시각에서 이것은 분명 있든 말든 별 상관없는, 그리고 지금까지 그리 드물지도 않았던 그저 인디의 컬트덤 쯤으로 간주될 데 뻔했지만, 그러나 그런 매체도 영국의 그래미상이라고들 하는 브릿 어워드의 99년도 신인상에서 이들의 수상이 결정되었을 때는 당사자인 밴드만큼이나 소스라치게 놀라야 했습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전 영국인을 대상으로 한 전화와 이메일 투표수로 결정되는 부문이었기에 이건 더더욱 웃기는 결과였던 겁니다. 아바와 카일리 미노그를 우려먹어 영국 내에선 일단 짭짤한 장사를 한 스텝스라는 아이돌 혼성 5인조를 키워낸 노장 매니저 피트 워터맨이 투표에 부정이 있다며 처음부터 이 부문 수상은 따논 당상이라고 자신했던 스텝스의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매체가 웃기는 소리라고 맞받아치기도 전에 그 호소를 기다렸다는 듯 벨 앤 세바스찬은 자기들도 이 상 받고 싶어 환장항 거 아니라면서 반납할 용의는 충분하다고 그리 불편치 않은 심사를 전했다지요. 사실 아이돌 보컬 그룹이라는 게 영국에서 얼마만큼 말도 못할 판매력을 갖는지 이해할 분이라면, 어린애부터 할머니까지 거느린 스텝스의 팬들을 눌러야 할 정도로 열나게 전화질 및 메일질을 해대야 했던 벨 앤 세바스찬 팬들의 가련한 필사의 노력장면은 상상하는 것만으로 이미 흥미진진할 겁니다.
그러는 동안, 그러나 그저 저간의 사정은 전혀 모른 채 (이상 적은 것들 대부분이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었으므로), 저는 제대로 우편주문으로 이들의 다음작 녹색앨범을 별 생각 없이 구해 들었고, 역시나 다름없이 아연함("얘네들 아직도 이러고 있네! 정말 진심일지도?")에 시달렸습니다. 그로부터 좀더 시간이 지난 후 레코드점에서 구입한 『Lazy Line Painter Jane』,『3...6...9Second Of Light』,『This Is Just Modern Rock Song』의 이들의 EP 석 장(석 장 한꺼번에 사면 조금 깍아준다고 하기도 해서)과, 감사할 만한 누군가의 친절함에 극구 힘입어 데뷔작인 파랑 앨범도 테입으로나마 들을 수 있게 되었지요. 그리고 그들의 가장 첫 EP였던 『Dogs On Wheels』까지도 저는 부끄러운 줄 모르고 손에 넣었습니다. 이로써 저는 저도 모르는 새 엉겹결에 벨 앤 세바스찬의 모든 디스코그래피를 갖추게 되었고, 이 시점에 이르러서 저는 과연 저 자신이 벨 앤 세바스찬의 팬이어야 하는가를 당연히 심각하게 고민해야 했습니다. 왜냐면 이건 그전 단순한 수집가의 '다 모으기' 노이로제만은 확실히 아니었거든요. (그리고 저는 수집가일 정도로 그렇게 집요한 성격도 못되구요.) 스스로의 놀랄만한 변덕증을 아무리 감안한다해도, '펜은 칼보다도 강해서 난 당신을 죽일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어찌된 셈인지 나는 이런 말로 다만 장신을 울릴 뿐'이라는 말에 정말 보란 듯 울 뻔 했던 빨강 앨범에서의 첫 아연함은 지금도 흠 하나없이 유효합니다. 이 정신없이 돌아가는 현대사회에서, 냉소와 혼돈이론의 포스트모던 세상에서, 이것은 정말 신기한 일이지요. 더 신기한 것은 가장 최근에 듣게 된 『Dogs On Wheels』EP마저 제 인생 최고의 레코드 중 하나로 꼽게 된 가관이겠지만.
허나 이런 저의 볼품없고 영양가없는 자기고백으로 벨 앤 세바스찬을 설명함에 불필요한 누가 되는 우를 범하는 것은 전혀 저의 의도가 아닙니다. (벌써 누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분들께 역겹다고 외치시기 전에 가만히 이 윗부분 제 사설을 잘 찢어 버리는 방법을 추천하는 바입니다.... 가만있자.... 여기 어디쯤 절취선이 있을텐데.....?) 우선, 벨 앤 세바스찬이라는 이름의 의혹부터 설명해 드릴까 랍니다. 벨과 세바스찬은 결코 아이크와 티나 터너처럼, 혹은 소니와 셰어처럼, 혹은 장소팔과 고춘자처럼 듀오가 아닙니다. 아까도 언뜻 언급해 드린 것 같은데 실은 그 이름도 가증스럽게 이들은 여덟명이라는 대식구지요. 이런 혼란이 오게 된 원인은 십중팔구 스튜어트 머독이 제공했습니다. 그는 스코틀랜드의 글라스고우애서 자란 청년으로, 아마도 여러분이 들으실 벨 앤 세바스찬의 이름으로 된 대부분의 곡들에서 노래를 불러주고 있을 바로 그 목소리의 주인공입니다. 그는 아까 자신의 말처럼 생계를 위해 글라스고우 시내에서 버스를 몰던 운전수이기도 했지만(그리고 모르긴해도 아마 이 점이 그의 애용 교통수단인 자전거와 함께 그의 노래에서 버스가 그렇게 자주 등장하는 이유일 겁니다.), 그보다 더 전에 스미스와 펠트의 음반에서 무한한 자양을 얻은 음악팬이자 밸 앤 세바스찬이라는 제목의 프랑스 만화(세바스찬이라는 소년과 그의 양치기 개 벨이 주인공이었다는군요)를 좋아했음이 분명한, 그래서 같은 제목으로 자기 버전의 소설(그러나 파랑 앨범의 부클릿과 동명의 곡을 보건대는 벨이란 소녀와 세바스찬이라는 소년의 이야기인)을 쓰기도 했던 준-문학소년이었습니다. 그가 80년대의 거의 알려지지 않은 컬트중의 컬트 밴드 펠트에 얼마나 몰두했는지는 그가 펠트의 리더였던 로렌스를 만나기 위해 런던으로 하경했던 에피소드에 그대로 드러나는데, 거기서 그는 로렌스를 찾아내지 못했음은 물론 갖고 있던 돈까지 다 써 버려 그냥 빈손으로 글라스고우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펠트는 음악보다도 로렌스의 기벽으로 유명했던 밴드였는데요 (물론 에코 앤 더 버니멘, 아니 스미스의 자니 마마저도 부끄럽게 만들 만한 정말 투명한 기타 사운드의 그들의 음악이 전혀 별볼일 없었다는 건 아닙니다만) 로렌스 자신의 마크 E스미스-루 리드 계파의 중얼중얼 보컬은 일단 차지하고, 그 사람은 처음부터 1년에 한 장씩 열장의 앨범을 만들도 해산하겠다는 자신의 데뷔 때 선언을 그대로 실천에 옮긴 보기드문 팝사상가이자, 반면 곱슬머리라는 단 하나의 이유로 자기 밴드 드러머를 해고하는 데 전혀 주저함이 없었던 알 수 없는 성격의 소유자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로렌스에게 머독이 어떤 식으로 매혹되었는지는 저도 그를 붙잡고 물어보지 않는 이상은 자세히 그 흑막을 알 수 없으나, 어쨋든 그는 그렇게 헛수고하고 글라스고우로 돌아왔고, 이 후 아까 자기 입으로도 그랬듯 어느 나라든 놀고먹는 젋은이들을 아무래도 곱게 못 보는 정부의 친절한 손길에 따라, 정부-시당국 주관의 무슨 '청소년 직업 재교육 프로그램'같은 데서 시도 쓰고 소설도 쓰고 노래도 하는 문학가지망생인 스튜어트 데이빗을 만남과 거의 동시에, 그곳 커피 바나클럽에서 발견한 사람들을 하나하나 섭외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성공하고야 말테닷!' 등의 프로페셔널한 밴드의 전략같은 건 전혀 안중에 없었고, 그저 자신이 쓴 노래를 같이 한번 연주해 보고 싶다는 욕구 외엔 달리 동기랄 것도 없었던 모양입니다. 헌데 그것이 바로 현재 보시는 바와 같은 벨 앤 세바스찬이 되었디요. 글쎄, 머독의 입장에서는 '되고야 말았지요'라고 하고 싶을지도 모르지만, 어쨋든 이건 그다지 불상사라고 할 수 없는 일. 안 그렇습니까?
이윽고, 이들이 녹음한 데모가 조그만 인디 레이블 집스터 사원 한 사람의 호감을 사게 되었는데, 이 사원은 당시 스토우 대학의 음악 경영학을 수강중이던 학생이었습니다. 이 학과는 80년대 영국에서는 그래도 돔 알려졌던 어소시에이트(Associate)란 밴드 출신의 앨런 랜킨이 학과장(그렇다고 해 두죠)으로 있었고, 그는 매년 졸업 작품 비슷하게 자기 과 결산을 대학내 레이블인 일렉트릭 허니에서 자신이 프로듀스한 싱글 한 장씩을 발매하는 걸로 굴리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아까 그 회사원 대학생의 영향에 힘입어 96년도엔 벨 앤 세바스찬이 선택되었는데, 알고봤더니 얘네들은 싱글 한 장이 아니라 아예 앨범 분량이 넘는 자작곡을 갖고 있음이 드러났고, 그렇게해서 예외적으로 파랑 앨범 『Tigermilk』가 벨 앤 세바스찬의 이름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학교에서 운영하는 레이블이란 게 뭐 그리 돈이 빵빵하게 많겠습니까. 게다가 어디까지나 학과 성격을 벗어나지 않는 비영리성이 아무래도 우선이었을텐데. 그래서 이 파랑 앨범은 당연하다는 듯 천 장만 찍었고 그것도 CD, 테입, 아무것도 없이 LP 레코드판으로만 나왔습니다. 그저 기념품쯤으로 간주한 밴드 당사자들의 주위 친구나 친지들 선을 별로 심하게 넘지 않았을 당시 배포권의 열악한 사정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집스터에 픽업되었고(모르긴해도 아까 그 사원이 자신의 영원한 졸업작품으로 아예 팍 찍었나 봅니다.), 이후 이들은 공연을 병행하며 다음 앨범인 빨강 앨범 『If You're Felling Sinister』도 만들었고, 갑자기, 너무도 의외로, 기다렸다는 듯 사람들이 음반을 사기 시작했고, 이후 녹색 앨범 『The Boy With The Arab Strap』도 내고.......... 그리고 그 이하는 보시는 바와 같습니다. 이렇게 된 것이지요. 여러분의 손에까지 이들의 음악이 닿게 된.
이 녹색 앨범은 1998년에 나왔습니다. '아랍 스트랩의 소년'이라...... 저도 실은 첨엔 뭐 이런 제목이 있나 싶었는데 - 지금도 뭐 이런 제목이 있나 그럽니다만 - 음반이 나왔을 당시 벨 앤 세바스찬이 이걸 녹음하던 장소 아주 가까이에 아랍 스트랩이라고, 벨 앤 세바스찬 역시 스코틀랜드 출신인 젊은 듀오가 역시 자기들 신보를 녹음중이었다는 사실을 듣고 보면 은근히 뭔가 풀릴 듯도 하더군요. 사실 아랍 스트랩이라는 이름의 물건은 원래 섹스 기구라는데요(화끈), 그것을 밴드명으로 택한 이 듀오는 특히 보컬을 맡은 에이던 모팻의 철저하게 자백(내지는 자학)적인 가사로 악명이 높습니다. 겉으로 보긴 멀쩡하세 생겼는데, 얘가 그 음침하게 중얼거리는 소리로 들려주는 대부분의 가사는 끊임없이 여자한테 채이고 바람맞고 배신당하는 얘기, 짝사랑하는 여자한테 딱지맞고 엉뚱한 여자와 잔 얘기, 그래서 여자를 저주하는 얘기, 그리고 술취하고 절망하고 토하고 술깨고 다시 취하는 얘기, 자기가 살던 스코틀랜드 폴커크 지방의 지긋지긋한 비 등으로 일관되어 있고 더군다나 그 필체는 아무런 잔손질도 없는 그야말로 구어체 그대로의 독백들입니다. 그리고 이 구어체는 '트레인스포팅'의 시나리오에 맞먹을만큼 지독한 스코틀랜드 사투리의 100%구요. 벨 앤 세바스찬이 다른 친한 밴드들과 곧잘 교류를 벌인다는 건 아는 분은 아시겠지만, 상기한 저런 가사를 가진 아랍 스트랩의 음반에도 이들이 부분적으로 참여한 적이 있거든요 - 뭐, 어차피 같은 지방 씬 출신이다 보니 예전부터 서로 익히 알고는 있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정말 벨 앤 세바스찬이 이 아랍 스트랩의 에이던 모팻을 염두에 두고 타이틀 곡 을 쓴 건지는 저도 장담 못하겠군요. 여러모로 그런 심증은 가지만, 글쎄요, 노래는 역시 노래 그 자체로 들려지는 게 더 좋을 테니까. ...........으음, 하지만 아랍 스트랩의 곡에서까지 이런 부분을 발견하게 되면 사실 누구나 좀 의아스럽지 않을까요?: "그런데 스튜어트라는 친구가 자기 밴드 벨 앤 세바스찬을 보러 오라며 우리에게 티켓을 주었고/ 우리는 완전히 취한 채 공연이 끝난 뒤 인사나 하려고 백스테이지에 들렀다/ 헌데 거기서 나는 내가 반했던 그 여자앨 보게 됐는데/ 그녀는 그 밴드의 첼로 주자(이소벨)의 친구인 것같았다" (아랍 스트랩, )
뭐, 아랍 스트랩은 그렇다칩시다. 다른 곡들은? 도대체 어떻게들 생겼길래 그렇게 코빼기도 안 보이는 걸까 하고 이들의 얼굴을 보고 싶어한 사람들의 기대를 무참히 깨 버렸던 의 비디오가 우선 기억이나는군요. 이 곡은 밴드의 첼로 주자이자 스튜어트 머독 뒤에서 곧잘 화음을 넣어주곤 하는 이소벨의 보컬인데, 넘겨짚어 보자면 곡 역시도 그녀의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벨 앤 세바스찬이 알고보면 스튜어트 머독의 1인 체제가 아닌가 하고 의심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아무리 그가 대부분의 곡을 짓고 부른다고 해도 그것은 부당한 진술입니다. 예컨대 머독과 가장 처음 만났던 스튜어트 데이빗이(실은 스티비 잭슨일지도 모른다고 혼자 헷갈려하고는 있지만) 스미스의 기타리스트였던 자니 마가 갑자기 중간에 등장하는 (이 타이틀은 스미스를 픽업했던 레코드사 사람 이름입니다)과 , 그리고 에서 리드보컬 및 낭독을 하고 있는 걸 보면요. 그러고보면 스튜어트 데이빗은 음악 업계와 관련된 것들에 대해 어느 정도 시니컬한 시각을 드러내고 있는 것도 같군요(그는 최근 싱글 <누가 Y2K를 두려워 하는가>를 담은 자신의 다른 밴드 루퍼의 새앨범 및 신작 소설 『Nalda Said』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여러 군데서 보여지고 들려지는 벨 앤 세바스찬의 스토리와 얼마전 국내에 발매된 이전 빨강 앨범을 접해 본 분들은 이들이 한없이 여리기만 하고 동화같기만 하고 무슨 쑥맥 집단으로만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라 쳐도, 그래도 저는 이들의 유머 감각마저 그렇게 간과돼 버리는 게 아닐까 해서 조금은 걱정이기도 합니다. 예컨대 나 은 좀만 눈 부릅떠도 금방 울먹울먹할 것 같은 소심한 어린애처럼 벨 앤 세바스찬을 간주할 사람들에겐 상당히 즐겁고 의외스러운 블랙 코미디일 수 있을 겁니다. 게다가 머독 자신이 밴드의 웹사이트에 올려 놓은 글을 한번 볼까요: "나는 열 두살때 내 방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며 '나는 영원토록 AC/DC를 사랑할꺼야!'하고 맹세했었다. 이것은 내가 결코 소심한 멍청이로 빠지지 않겠다는 스스로의 의식적인 노력이었다. 물론 나도 베드로가 예수를 부인하듯이 본 스코트를 부인할 뻔한 위기가 그 사이 몇 번 있긴 했지만, 그래도 나는 '아직까지는' 내가 소심한 멍청이로 빠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확신할 수 있다. 아직도 나는 AC/DC를 사랑한다. 물론 자나깨나 그들 음악을 끼고 산다든가 하는 건 아니지만 (......) 요즘은 누구나 산악용 자전거에 열광하지만, 나는 로라라고 이름붙인, 11년이나 됐지만 아직도 잘 달리는 롤리 자전거를 탄다. 씩씩거리며 가고 있는 산악 자전거파 애들을, 나는 로라를 타고서 바람같이 쌩 단숨에 앞지르고, 그럴 때마다 나는 프레디 머큐리와 그의 곡 를 생각하면서 그가 이 두 바퀴짜리 물건에 관한 곡을 도저히 짓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던 당시의 그의 기분이 바로 이렇지 않았을까 믿게 된다." 벨 앤 세바스찬의 이 (지난 빨강 앨범 해설지에서의 표현을 빌면) '성가대 소년같은' 목소리를 AC/DC와 퀸에 연결시킬 수 있을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진 모르겠지만, 어쨋든 사물은 언제나 표면만이 아니니까요. 그리고........ 재밌지 않습니까! 이 녹색 앨범은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인디씬에 바람을 일으킨 벨 앤 세바스찬이나 분노의 록계에 순수의 시대를 표방한 벨 앤 세바스찬이 아닌, 벨 앤 세바스찬의 벨 앤 세바스찬 말입니다. 한때 '내 최고의 꿈은 최고로 슬픈 노래를 부르는 거였고 만약 그 노래를 누구라도 따라 불러 준다면 나는 행복해질텐데' 빨강 앨범의 )라고 이들은 독백했지만, 슬픈 노래를 부르는 것만이 벨 앤 세바스찬 세계관의 전부는 아닙니다.
그리고 그점이 바로 제가 벨 앤 세바스찬에 대해 아직은(혹은 지금도?) 흥미를 잃지 않고 있는 이유입니다. 아까 매체가 이들에 대해 거리를 두고 있다고 했는데 - 물론 곧 6월쯤에 신보 발표를 앞두고 있는 밴드이므로 정작 음반이 나오게 되면 또 어떻게 판도가 돌아갈지는 모르겠습니다만 - 그것은 말하자면 이들에게 매체가 애무하거나 혹은 씹을 만 한 것이 없어서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곧 전략의 부재, 만약 벨 앤 세바스찬도 스미스나 스톤 로지즈가 그랬던, 혹은 펠트가 그랬던 것과 같은 그런 확고한 '주의'나 '선언'을 처음부터 추구하고 나왔더라면, 상황은 달랐을 겁니다. 그들은 대서특필되고, 단숨에 총아가 되고, 그리고 까발려졌겠지요. 물론 정도의 차이가 있을뿐 이들이 그 과정을 조금도 겪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최근 어렵사리 응낙한 단 한 번의 영국내 유명 TV쇼 출연에서, 이들은 생방송이라고만 들었는데 반 이상이 미리 녹화된다는 사실을 알고 아연했고, 언더월드와 칼 콕스의 관중 앞에서 자신들의 신곡을 연주해야 하는 데 당혹했고, 그나마도 두번째 녹음을 방송해 달라고 부탁했는데 실수가 있었고 두려워했기 때문에 아예 전략을 없애 버렸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전략의 부재가 이들에게는 전략이라고나 할까요.
.......아아, 뭐든 좋습니다. 전략이고 나발이고 모든 건 노래로 이해되는 법이고 또 그래야만 합니다. '사람들이 나를 잘못 알고 있다고 말할 때 그 말에 신경쓰지 않는 게 그렇게 심한 걸까?' 저는 말합니다. 그렇지 않다고, 하지만 우리 모두는 알고 있지요 - 누구나 사랑받기 원한다는 걸. 하지만 이들은 그 말을 하기가 조더 부끄러울 뿐입니다.: '미소짓기가 왜 그리 힘든지' 머독의 이 말처럼.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음반을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00214. 벨 앤 세바스찬의 어떤 팬 드림.
■추신:어..... 헌데 저의 헛갈리는 장광설 덕분에 뭐가뭔지 도저히 모르겠다고 역정내실 분들을 위해 동아전과판 밴드 핵심 파일을 덧붙입니다.
BELLE AND SEBASTIAN members (ABC순):
이소벨 캠벨(Isobel Campbell) : 첼로, 보컬
리차드 콜번(Richard Colburn) : 드럼, 퍼커션
믹 쿡(Mick Cooke) : 트럼펫, 기타
스튜어트 데이빗(Stuart David) : 베이스, 아코디언, 낭독(헌데 안타깝게도 자기밴드 루퍼에 의 전념을 위해 벨 앤 세바스찬을-이들의 우정어린 격려 를 받으며-올 봄에 탈퇴한 것으로 전해지네요.)
크리스 겟즈(Chris Geddes) : 키보드, 피아노
스티비 잭슨(Stevis Jackson) : 리드 기타, 보컬
새라 마틴(Sarah Martin) : 바이올린, 피리
스튜어트 머독(Stuart Murdoch) : 어쿠스틱 기타, 보컬
BELLE AND SEBASTIAN discography (시기순):
『Tigermilk』: 96년. 그리고 99년에 재발매. 호랑이 인형에게 젖을 물린 소녀의 파란색 재 킷. 본문에서의 파랑 앨범.
『If You;re Feeling Sinister』: 96년. 카프카의 소설 『심판』곁에 앉은 소녀의 빨간색 재킷. 본문에서의 빨강 앨범.
『Dogs On Wheels』EP: 97년. 제목처럼 바퀴달린 장난감 강아지를 들고 있는 소녀의 노 란 색 재킷.
『Lazy Line Painter Jane』EP: 97년. 책을 읽다 잠시 창 밖을 바라보는 소녀의 핑크색 재킷.
『3..6..7 Seconds Of Light』EP: 97년. 한 곳을 쳐다보며 함께 미소짓는 소년과 소녀의 흰색 재킷.
『The Boy With The Arab Strap』: 98년. 가슴에 창을 맞은 (듯한) 소년의 녹색 재킷. 본문에서의 녹색 앨범.
『This Is Just Modern Rock Song』EP: 98년. 바닥에 앉아있는 소년의 갈색 재킷.
『Lazy Line Painter Jane』EP: 2000년. 『This Is Just Modern Rock Song』을 제외한 이전 석 장의 EP를 모은 편집반. 그래서 제목처럼『Lazy Line Painter Jane』에서의 그 소녀가 다시 등장한 오렌지색 재킷.
그리고 현재 신보를 녹음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