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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부산의 동화작가 김재원 님이 쓰신
한국아동문학인협회 세미나 참석기입니다.
우리 아동문학계의 이야기이기에 제가 이곳으로 옮겨놓습니다.
<심후섭>
* 세미나에 참석한 여러 회원님들 반가웠습니다.
대충 생각나는 대로 참석한 소감을 적어 보았습니다.
부산의 배혜경씨가 저보다 먼저 잘 정리한 글을 참고로 했으며,
여러 회원님들의 성함을 일일이 쓰지 못한 점은 양해바랍니다.
파주세미나와 환상적인 경주의 밤
( 2004년 10월 16일, 토요일 맑음 )
아침 6시 20분에 우리 아파트 앞으로 최경희씨가 왔다. 최경희씨 남편이 차를 갖고 와서
편하게 안락동 충렬사 앞까지 갔다.
거기서 한국아동문학인 협회 가을 세미나에 갈 부산 회원들을 만났다.
공재동, 박지현, 배익천, 소민호, 홍종관(방파제 횟집 사장), 최영희, 박정숙, 배혜경, 이혜영, 박선미, 석영희, 나, 최경희... 이렇게 13명이었고, 나중에 경주에서 탄 이상문씨를 합치면 모두 14명이 15인승 봉고차를 타고 가게 되었다.
내가 알기로는 부산에서 이렇게 많은 회원이 세미나에 참석한 적은 처음인 것 같다.
그만큼 우리 부산 회원들의 단합이 잘되고 있다는 증거가 되겠다.
7시 정각에 소민호씨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파주로 출발하였다.
날씨가 참 좋아서 이번 세미나는 정말 좋은 때를 잡아서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세미나에는 누가 올까? 어떤 재미난 일들이 벌어질까?
상상만 해도 즐거웠다. 평소에는 열심히 글을 쓰고 이런 세미나에는 꼭 참석해야겠다.
평소에 뼈빠지게 열심히 살았다면 가끔 이런 행운의 보너스는 받아도 되지 않겠는가!
글쓰는 사람들을 만나는 기쁨은 글을 안 써본 사람들은 잘 모를 것이다.
지면에서 본 문우들을 만나면 늘 만난 사람처럼 금방 친해지고 대화가 저절로 통한다.
그게 문학의 큰 힘이다.
차는 우리의 부푼 마음만큼이나 씽씽 잘 달렸다.
고속도로도 우리의 나들이를 아는지 모처럼 확 뚫려서 1시간 만에 경주에 도착하여 이상문씨를 태웠다. 이상문씨는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일부러 1년 동안 흥해에 파견 교사로 나가 있는 중이다. 동시 잘 쓰고 어머니를 잘 모시는 효자 이상문 선생님을
오랜만에 만나니 참 반가웠다.
이제 차는 더 탈 수 없을 정도로 꽉 찼다.
우리는 농담도 하고 우스개도 해가며 지루하지 않게 서울까지 올라갔다.
서울로 진입하면서부터는 홍종관 사장님이 경기도에 살은 적이 있어서 운전대를 잡았다.
점심은 행주산성이 보이는 고양시 별빛 마을 앞에 있는 보리밥집 식당에서 된장찌개를 먹었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반찬이 깔끔하고 맛이 있어서 잘 먹었다.
차가 아주 잘 달려서 마해송 문학비 제막식이 열리는 오후2시까지 파주에 무난하게 닿을 줄 알았는데, 우리는 엉뚱하게도 저녁에 묵을 장소인 ‘유일레저’로 찾아갔다.
해마다 저녁에 자는 곳과 세미나 장소가 같았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러리라고 믿고 아무 생각 없이 숙소로 찾아갔던 것이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보니 제막식 장소는 완전히 다른 곳이었다.
아이고 실컷 고생해서 찾아갔는데 이 일을 어떡하나? 기가 막혔다.
왜 제막식 장소와 숙소가 다르다는 것을 몰랐을까?
우리는 허겁지겁 차를 돌려 제막식과 세미나가 열리는 ‘출판단지’로 달려갔는데 생각보다 훨씬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여기서 묻고 저기서 묻고 정신없이 헤맨 끝에 드디어 출판단지를 찾았지만 그때는 이미 제막식이 다 끝나버린 뒤였다.
우리는 허탈감을 느끼며 세미나 장에 들어가서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준 서울 회원들에게 늦게 온 이유를 일일이 설명해야만 했다.
거기서 고양시에 살고 있는 차영미씨와 서울 친정에 머무르고 있던 최보은씨도 만났다.
그 두 사람까지 합치면 부산 회원은 무려 16명이나 되었다.
부산에서 많은 회원이 간 덕분에 조대현 회장님이 반갑게 맞아주셨다.
세미나에 참석한 회원들을 보니, 이재철, 문삼석, 이영호, 유경환, 박종현, 강정규, 송재찬, 이상교, 심후섭, 박상재, 홍종의, 박신식, 이상배, 박재형, 이규희, 장문식, 김옥애, 임정진, 채인선, 유효진, 원유순, 정선혜, 길지연, 신현배, 고수산나, 송재진, 황일현, 정두리, 김춘옥, 김경옥, 이가을 등..... 120명이 훨씬 넘었다.
그리고 제자 박윤규가 시간을 내어 나를 만나러 와서 퍽 반가웠다.
세미나가 시작되기 전에 신입 회원들의 인사를 먼저 들었는데, 부산에서 간 이혜영, 최경희, 석영희, 박정숙, 박선미 등도 자기 소개를 하고 박수를 받았다.
이번 세미나의 주제는, ‘마해송 문학의 계승적 탐색’이었는데, 이영호선생님과 박상재씨가 주제 발표를 하였다.
발표가 끝난 뒤에는 배익천씨의 사회로 토론이 이어졌는데 작가의 현실 참여 문제에 대한 질문과 답변이 이어졌다. 토론자는 원유순, 강정규, 심후섭, 송재찬, 이재철, 유경환 님이 나섰다. 열띤 토론이 8시까지 이어지다가 겨우 끝이 나고 저녁 식사를 하였다. 토론장에서는 윤규가 갑자기 발언권을 얻었는데 아무 준비도 없었지만 아주 논리적으로 말을 잘해서 많은 사람들의 박수를 받았다.
윤규가 그동안에 많은 이론을 쌓은 것 같아서 마음 든든했다.
저녁을 먹고 숙소인 유일레저로 이동하였다.
집행부에서 세미나 준비를 완벽하게 잘 했는데 한 가지 흠은 발표장과 숙소가 아주 멀다는 점이었다.
나와 공재동, 소민호- 이렇게 세 사람은 차영미씨가 갖고 나온 차를 타고 숙소로 갔다. 약 1시간 30분 동안 차영미씨 차를 타고 갔는데 부산 거리를 달리고 있는 것처럼 편안하였다.
거리는 멀었지만 그 덕분에 차영미씨와 오래 이야기를 나눈 것도 세미나에서만 맛볼 수 있는 즐거움이었다.
이윽고 숙소로 돌아와서 큰 방에 모여 만남의 자리를 가졌다.
숙박을 하는 회원이 84명이나 되어 그 어느 해보다 참여도가 높았다.
쭉 돌아가며 자기 소개를 했는데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내가,
“부산에서 왔구요. 동화 공부하고 있는 김재원입니다.”
하고 말했더니 이규희씨를 비롯한 여러 사람이,
“아이구, 잘났어! 그럼 우린 뭐야?”
하며 과자를 집어 던져서 모두 웃었다. 나는 늘 아마추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말했을 뿐인데 다들 왜 그러지?
소개가 끝난 뒤에는 노래 자랑이 있었는데, 동시조를 잘 쓰는 신현배씨가 가수처럼 노래를 잘 불렀고, 배혜경씨도 성악가처럼 잘 불렀다.
홍종관씨와 송재진씨의 판소리도 좋았고, 배익천씨와 송재찬씨는 동요를 불러서 박수를 받았다.
그 뒤에 흥이 식지 않은 사람들은 노래방으로 갔는데 나는 피곤해서 자리에 누웠다.
몸만 누워 있을 뿐, 탱크가 지나가는 듯 시끄러운 코고는 소리에다 노래방에서 놀다가 새벽에 들어온 사람들 때문에 잠은 자는둥 마는둥 하였다.
(2004년 10월 17일, 일요일, 맑음 )
잠은 토막잠이 되어 버렸지만 아침에 일어나니 생각보다는 피곤하지 않았다.
몇몇 사람들이 뒷산으로 산책을 가자고 해서 따라나섰다. 나무박사인 심후섭씨와 같이 가고 싶었는데 엇갈려서 같이 못가고 다른 사람들과 같이 갔다.
산으로 난 길은 가을 풍경화였다. 파주는 부산보다 훨씬 북쪽이라 여기에는 이미 단풍이 한창이었다.
상큼한 가을 공기를 맡아가며 문삼석 회장님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파란눈의 내 동생’을 쓴 이지현씨와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침 산책이 끝난 뒤에 아침 식사를 하고 우리 부산팀은 남은 행사에 참석하지 못하고 그만 떠나기로 했다. 가는 도중에 박홍근 선생님을 뵙고 돌아가기 위해서였다.
여러 회원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봉고차에 올랐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반가운 얼굴들을 만날 수가 있어서 먼 곳까지 달려간 보람이 있었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이번에 하필 시사랑 협회에서 시낭송과 동시문학의 밤을 16일 밤에 서울 송파구에서 여는 바람에 많은 동시인들을 만날 수가 없었다.
그 자리에서 제자 정갑숙씨가 은하수문학상 신인상을 받았는데 세미나 때문에 축하하러 못 가고 전화 통화만 해서 미안했다.
그리고 박경태, 함영연, 박숙희, 이혜영씨 등...
계몽아동문학 회원들을 만나지 못한 것도 아쉬웠다.
박홍근 선생님은 신대방 1동 보라매 공원 옆에 있는 우성아파트 14동 602호에 살고 계셨는데, 연세가 85세라 건강이 좋지 않아 보였다. 선생님은 앉아 있어도 숨이 가빴는데 우리가 찾아간 것을 기뻐하시며 끝까지 소파에 앉아계셨다.
우리는 선생님과 차례로 기념 사진도 찍고, 최경희씨와 박선미가 선생님이 지은 ‘나뭇잎배’와 ‘모래성’을 부를 때는 같이 불렀다.
나는 박홍근 선생님의 건강이 안 좋은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
선생님은 부산 회원들을 보고 지나간 추억이 되살아나는 듯 그 옛날 6.25 전쟁 피난시절에 해운대에서 2년간 살았던 일을 들려주셨는데, 귀가 잘 안 들리시는지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나는 선생님 댁을 나오면서 오늘 잘 찾아뵈었지만 너무 늦게 찾아뵌 것이 송구스러웠다. 진작 선생님을 찾아갔더라면 선생님과 보라매 공원도 거닐고 밖으로 나가서 식사도 할 수 있었을 텐데 숨가쁜 선생님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고만 오다니....
선생님이 건강할 때 자주 찾아갔어야지 뒤늦게 병문안을 가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내가 이번에 틈을 내어 세미나에 참석한 것은 참 잘한 것 같다. 몸이 건강하고 마음대로 잘 돌아다닐 수 있을 때 부지런히 다녀야지 늙은 뒤에야 마음뿐이지 않겠는가?
차가 고속도로를 타고 달려가다가 시계를 보니 점심 때가 되었다.
마침 천안 부근이라 배익천씨가 천안의 터줏대감인 소중애씨한테 전화를 걸었더니, 소중애씨는 강연 때문에 부산에 와 있다며 그 대신 천안의 유명한 식당을 소개해주었다.
우리는 소중애씨가 가르쳐준 태조산 구름다리 아래에 있는‘들꽃 식당’(천안시 유량동 041-522-0280)을 찾아갔다.
‘들꽃 식당’은 풍경도 좋고 음식맛도 좋았다.
거기서 길지연씨가 준 안동소주를 마시며 오늘 생일을 맞은 박지현 선생님을 축하해주었다.
우리는 점심을 아주 맛있게 먹었는데 밥값 계산은 기사 노릇까지 맡아한 홍사장이 내는 바람에 고맙고도 미안하였다.
배도 부르겠다, 길은 멀겠다, 우리는 차 안에서 동요를 끝없이 불렀다. 최경희씨와 공재동 선배의 선창에 따라 여러 곡을 불렀는데, 노래가 시들해지면 박지현 선생님이 재미나는 이야기를 해서 배꼽을 잡고 웃었다.
박지현 선생님은 스스로, ‘신이 내린 머리’라고 하면서 ‘술이 술술 잘 넘어간다’라든지, ‘와 이리 길겁노(즐겁노)?’, ‘질투는 남자의 생명의 젖줄’, ‘잠이 와서 입이 째질 정도로 하품이 나온다’라는 등...
재치가 넘치는 말을 많이 해서 긴 여행길이 지루하기는커녕 도리어 즐겁기만 하였다.
소민호씨가 노련하게 운전하는 봉고는 쉴 새 없이 달려 오후 6시가 넘어서 경주에 도착하였다. 원래는 이상문씨만 그곳에 내려주고 떠날 계획이었지만 배익천씨의 주선으로 경주의 동화작가 손기원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손기원씨는 ‘다시나는 새’와 ‘물 그림자’를 지었는데 배익천씨와는 안동교육대학에 다닐 때부터 아주 친하게 지낸 친구였다.
손기원씨는 사모님과 함께 ‘요석궁’이라는 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원효대사와 인연을 맺었던 요석공주의 이름을 딴 식당이라 마치 신라 시대로 돌아간 듯 했다.
요석궁은 한옥으로 지어져 있었고 경주에서 손꼽히는 음식점이었다.
입구에 이런 시가 걸려 있어서 수첩에 적어왔다.
<요석궁>
임채수
요석궁 와보니
요석은 가고 없네
오고감 없음이 인생인 거
지금 천 년 큰 사랑
미소 짓고 있구려
반월궁 달빛 아래
원효님 기다리던 하늘같은 큰 사랑
그대 신라의 큰 어머니
만고에 빛난 자애
설총의 큰 위업
만백성의 환희라
그대 보러 여기 왔기에
선경에 계신 그대
오시여 고운 모습
한 번 보이소서
이곳 최곤 어르신
계신 곳 숭상하며
예찬하노라.
‘요석궁’은 반월성 끄트머리에 있는데 첨성대와 가깝다.
그동안 박태준 포항제철 사장이랑 유명한 사람들이 많이 다녀갔다고 했다.
우리는 仙客遊室(선객유실; 신선이 노는 방)이라는 액자가 걸려있는 방에서 음식을 먹었다.
비싼 한정식에다 교동의 고급술이라는 ‘교동법주’를 마시며 다시 한번 세미나 참석을 무사히 마친 것과 박지현선생님의 생일을 축하하였다.
맛있는 반찬이 끊임없이 나왔지만 낮에 어찌나 잘 먹었는지 많이 못 먹어서 비싼 반찬이 아까웠다. 우리는 부른 배를 쉬어가며 최경희씨의 축가도 듣고 박지현 선생님의 유머에 또 한 번 배꼽을 잡고 웃었다.
박지현 선생님이 일하는 여종업원들을 보고 “이리 오너라!”
하고 말했더니, 어느 재치있는 여종업원이 요즘에는 “니가 오너라!”라는 대답을 한다고 해서 한바탕 웃음보를 터뜨렸다.
여행이 마치는 자리라서 그런지 채울과 배혜경, 석영희 등도 교동법주를 여러 잔이나 마셔서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이 저녁 식사도 뜻밖에 손기원씨 부부가 사는 바람에 우리는 차마 거절을 못하고 고마운 인사만 여러 번 드렸다. 이게 모두 배익천씨 덕분이니 이 고마움을 어떻게 갚아야 할까?
이번 세미나는 배익천씨 덕분에 한층 더 품격이 높아졌다.
식사와 술자리를 끝내고, 우리는 손기원씨 부부의 안내로 안압지 밤풍경을 보러 갔다.
새로 복원 공사를 마친 안압지의 밤 경치는 한 마디로 끝내주었다. 이런 황홀한 경치를 못보고 여태 경주를 다 보았다고 말했으니.....
참 대단한 경치였다. 조명등이 휘황찬란하게 누각과 정자를 비추어 주고 호수에는 정자의 채색된 빛깔이 용처럼 어른거렸다. 마치 물속에도 정자가 서 있는 듯 물위의 정자와 또 다른 정자가 쌍둥이처럼 버젓이 서 있어서 어느 게 진짜인지 분간을 할 수가
없었다.
안압지 호수가를 한바퀴 도는 동안에 조명 불빛에 빛나는 소나무, 대나무, 단풍 등이 정말 환상적이었다.
이렇게 몽환적인 분위기에 젖는다면 아무리 크게 싸운 부부라도 당장 화해하고 말 것만 같다. 이렇게 좋은 경치 앞에서 어떻게 웃지 않고 배길까!
안압지는 새벽 1시까지 문을 연다고 하니 안 가본 분들은 꼭 한 번 가보기를 권한다.
부산에서 시간을 내어 달려가더라도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이만한 경치라면 외국인들도 엄지손을 치켜세우면서 몇 번이고 ‘원더풀’을 외칠 것이다.
우리는 마음 같아서는 밤새도록 그곳에 머무르고 싶었지만 집으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아쉬운 마음으로 안압지를 나왔다.
부산에 도착한 시각은 밤 11시경. 마침내 충렬사 앞에 도착하여 헤어졌다.
다른 회원들은 마지막 뒷풀이를 하기 위해 호프집으로 향했지만 나는 병원에서 퇴원한 아내를 위로하기 위해 그만 집으로 향했다.
부산 회원들이 많이 가서 퍽 즐겁고 보람 있었던 세미나였다. 차 운전하느라 고생한 홍사장과 소민호 후배가 고마웠고, 회비를 모아서 돈을 관리하느라 애쓴 석영희씨도 수고가 많았다. 최영희씨는 멀미 때문에 고생하면서도 다른 회원들을 일일이 챙겨주려고 애써서 역시 왕언니다웠다.
그리고, 공재동 선배는 콧병 때문에 수술을 받은 지 이틀밖에 안 되는데도 세미나에 참석하는 열정을 보여주었다. 공선배는 그런 뜨거운 열정을 지니고 있기에 오랜 세월 동안 변함없이 좋은 동시를 쓰고 있다고 본다. 다른 회원들도 그런 열정을 본받아야 되겠다.
이 달 말에 금정산성에서 열릴 부산아동문학 세미나도 벌써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