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지금의 대학생이라는 자리까지 오기까지는 대략 12∼13년의 초·중등 교육을 받고 대학에 진학했다. 수없이 많은 교육을 받아오면서 우리는 '내가 이 수업을 왜 들어야 하나?'라는 생각을 안한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너무나 가지각색인 사람들이 자신들의 의지나 꿈과는 상관없이 다같이 획일화된 교육을 받고 '꼭' 이라는 당위성 없이 대학진학을 목표로 살아간다. 굳이 대학에 가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분야를 살릴 수 있는 방법도 많을 텐데 오로지 대학이라는 간판(졸업장)을, 그것도 더 좋은 대학의 간판을 따기 위해 아주 어려서부터 부모로부터 모든 과목을 다 잘하는 슈퍼맨이 되어야 하는 것처럼 여겨지고 학교에서 역시 모두를 슈퍼맨이 되도록 교육한다. 그러나 세계화와 무한경쟁체제의 현재실정과 부합되는 그런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과연 이런 슈퍼맨교육이 필요할까? 좀더 자신이 관심이 있는 분야를 특화시킬 수는 없는 것일까? 또 우리는 왜 우리나라 초·중등 교육이 슈퍼맨양성 교육밖에 할 수 없는지 생각해보자.
우선 아직까지도 너무나 뿌리깊이 박혀있는 학벌에 얽매이는 사회가 문제이다.
독일의 경우 초등학교를 마치고 다음 교육단계로 넘어갈 때는 대학진학을 위한 학교를 갈지 직업교육을 받는 곳으로 갈지 결정한다. 물론 우리나라도 고등학교때 진로를 인문계고등학교와 실업계고등학교로 나누기는 하지만 독일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우선 독일의 사회에서는 전문가(기술자)의 위치가 상당히 높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천대한다. 반면 소위 뒤에 '사'자가 붙는 고학력자라 불리우는 사람들이 최상위대우를 받는다. 여기서 비롯되어 직업의 귀천이 있는 나라가 되었다. 기술자는 소득도 상대적으로 작고 사회적 위치도 낮게 인식되어 모든 사람들이 높임을 받기 위해 대학을 가려고, 그것도 SKY라 불리는 최상위 대학을 비롯 좋은 대학을 가서 인맥을 넓히고 높이고, 학벌을 따려고 노력을 한다.
자신의 적성과 능력은 생각지 않고 물질만능주의사회에서 좀더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에만 열중이다. 그리하여 돈이 많은 지역 학교 학생들은 고액과외다 뭐다 해서 사교육비로 엄청 투자한다. 그들은 많은 투자에 힘입어 점점 앞서나가고 상대적 빈곤층에서는 그럴 기회를 얻지도 못하고 역시나 대학진학에도 뒤쳐져 점점 그들과의 격차를 벌려나간다. 물론 그렇지 아니한 경우도 있지만 극히 소수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등학교 진학 시에 실업계고등학교를 만들어서 직업교육을 시킨다. 하지만 이나라에서는 실업계고등학교에 가는 사람은 자신의 뜻이 그러하여 가는 사람은 거의 없고 단지 중학교의 성적이 안 좋아서 어쩔 수 없이 실업계고등학교로 가는 학생이 대부분이다. 이렇기에 중학교학생들도 수많은 과외에 시달리게 된다. 더 심하게는 초등학교에서까지 최종목표는 대학으로 사교육을 받는다. 언제나 철저히 본인들의 의사나 꿈은 무시된다. 꿈역시도 사회의 의식에 따라 당연히 대학가서 White collar가 되는 그런 꿈을 꾼다.
우리사회에서 직업의 귀천을 따지고 학벌, 인맥, 지연 등에 의해 사회적 위치와 생활수준이 결정되는 병폐가 교육을 망가트리는 첫째이유라고 생각한다.
초등학교교육이 의무교육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초등학교 교육이 의무교육으로 제정된 것은 1948년의 일이다. 실행은 그로부터 2년후에 되었다. 의무교육이라 함은 '국민의 사회적 신분이나 경제적 지위의 차별 없이 그 능력에 따라 교육을 받을 권리를 인정하고, 국가는 그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하여 학교를 설치하여 교육의 기회를 평등하게 주는 교육제도'를 말한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의의는 국민교육의 보급으로 국력을 확충하고 사회와 국가를 발전시키려는 데 큰 뜻이 있다. 그리하여 초등학교의 교육과목은 사회를 살아가기에 필요한 여러 가지를 가르친다.
중학교에서도 역시나 과목명만 약간 변형시켰을 뿐 그 가르치는 부분은 같은 것을 배운다. 물론 2004년까지는 전국이 중학교까지는 의무교육이 된다고는 하니 의무교육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려면 그래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오면서 우리네 부모님들이나 주위의 친지들을, 또 주변 이웃들을 보면서 자신의 분야가 아닌 다음에야 우리가 그렇게 머리싸메고 배웠던 수학공식들(코사인법칙, 미분, 적분 등등....)을 쓰는 것을 보지 못했다. 또한 각각의 과목에서 심화시켜 우리를 괴롭히던 것들은 그것들이 현재 지식으로 남아있는 어른들일지라도 그런 지식들은 현재 먹고사는데 사치에 불과하다고 생각이 든다. 물론 알면 나쁠 것은 없다고 하지만 그럴 시간에 일단 자신이 알기 원하는 분야에 대해 좀더 심층적으로 파고들었다면 지금 각기 자신의 일에서 배우며 소비했던 시간을 단축시켜서 그 분야에서 좀더 세계적으로도 우위를 점하였을 거라 생각한다. 누구나 슈퍼맨을 꿈꾼다. 하지만 슈퍼맨은 말 그대로 슈퍼맨이다. 초인적인 힘을 가진! 현재 우리나라의 학생들에게 모든 것을 다 잘하는 슈퍼맨이 되길 바라며 고통속에 교육시키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분야에서 단지 그 분야에 서만이라도 최고라는 칭호를 얻을 수 있도록 옆에서 도움을 주는 것이 교육을 하는 것이 훨씬 세계화와 무한경쟁에 맞는 교육방법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 교육의 문제점이라고 생각한 그 두 번째는 모두를 슈퍼맨으로 만들려다가 불필요한 낙오자만 더 많이 만들고 경쟁력을 잃게 만드는 교육정책이다. 모두를 슈퍼맨으로 만들려다가 모두가 획일화와 단순화를 경험하고 그렇게 변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문제점에서 말했었던 획일화와 단순화는 대학이라는 곳에서 한번쯤 집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듣는 어떤 수업에서는 어떤 TOPIC에 대해서 조사를 해오고 자유로운 토론을 유도하려했던 교수님이 계신다. 그러나 그분의 의도와는 다르게 다들 그전부터 경험해왔던 교수나 선생이 주고 학생들은 받아먹고 외우는 그런 방식에 익숙해져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토론에 참여한 사람은 그나마 대학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고 사회에 경험도 많은 고학번선배님들 몇 명과 한두 사람의 입이 트인 00이하학번의 학우였다. 고학번의 경우나 나머지 토론에 참여한 약간명은 수업을 이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했다는 모습이 역력했고 나머지는 왜 저러는지 이해 못한다는 듯 불만을 토로했다.
위에서 알 수 있듯이 대학에 와서야 자율을 경험하고 자율성이 전제되는 행위에 대해서는 배타적이고 적응을 잘 못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교도소로 사용하려고 지어진 건물을 완공을 거의 앞에 둔 상태에서 갑자기 공원을 갖춘 주민 체육시설로 용도를 변경한다면 엄청난 부분 개보수가 불가피 할 것이고 건물을 짓는 것보다는 시간이 적게 걸릴지라도 상당한 시간을 소모하게 될 것이다. 우리들은 교도소로 지어져오다가 용도변경을 당해 개보수 공사를 하고있는 시기이다. 이시기 때문에 외국의 유수대학의 학생들처럼 자신의 분야를 즐겁게 공부하지 못하고 점점 경쟁에서 뒤쳐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우리나라에서 대학생은 먹고 노는 그런 계급으로 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 고등학교 때까지 대학가기위해 정말 공부의 노예가 되어 공부하던, 그래서 지쳐서 대학 들어와서는 놀기바뻐 정작 중요한 공부는 뒷전인 그런 부류로 낙인 되었다. 정작 공부를 해야할때가 언제인지는 모두들 잘 아는데 너무 노예생활에 지쳐버렸다. 그들에게 개보수의 시간이 필요 없었다면 훨씬 그 재능을 그 좋은 머리를 잘살릴수있었으리라 생각된다.
획일화하면 생각나는 두 글자가 있다. 물론 남자에게만 국한되어있을수도 있지만. '군대' 가 바로 그것이다. 본인은 아직 군대를 갔다오지 않아서 어떻다고 판단할 입장은 아니지만 중·고등학교에서 지겹도록 경험했던 자유를 억압당하고 주어진 틀에 맞춰지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하는, 그에 맞춰지지 않으면 죽을것같은 시련에 맞닥뜨리는 그런 곳이 군대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대학에 다니다가 이제 자율에 약간이나마 적응될 때쯤 끌려가서 다시 타성에 흠뻑 취해서 돌아와 힘들게 다시 적응하면 벌써 나이는 훌쩍 먹어버린다. 군대에대해 정확하게 알고 이 글을 썼다면 좋았겠지만 똑같은 옷에 똑같은 생각과 행동을 강요받는 그런곳은 자유경쟁에서는 필요치 않는 타율성을 키우기에 알맞다는 생각을 했다.
위와 같이 셋째로 말하고자 하는 점은 자율을 처음부터 몸으로 느끼며 배워나갈 수 있도록 아주 어렸을 적 교육부터 초점을 맞춰서 그 자율을 한껏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해야한다는 것이다.
2001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지고 성적이 공개된 후 우리나라 사람들은 적잖이 실망했다. 국가고시에 만점자가 39명에 다랐다. 이일이 있은 후 이런 말을 들었다. 수능의 난이도는 '대통령의 친인척중 수험생이 있을 때 그 사람의 실력에 따라 높아지고 낮아진다.' 고...
물론 이 말이 진실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런 말이 나돌 수 있는 것은 교육부장관이나 정계의 중심세력이 바뀔때마다 신호등처럼 바뀌는 교육정책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말인 것 같다. "백년지대계"라는 교육이 이렇게 쉽게 휘둘린다니... 물론 기본 골격과 그런 것들에는 변함이 없을지라도 당장의 이익을 위해 쉽사리 바뀌는 정책.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대입정책이 거의 매년 바뀌면서 그 밑의 하등 교육기관에서는 골머리를 썩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과연 어느 엿장수의 맘에 맞춰야한다는 말인가?
"국민을 교육시켜 국력을 확충하고 사회와 국력을 증진하기 위해 의무교육"을 펼친 것처럼 정말 국력을 향상시키려 좀더 진취적이고 능력 있는 인재를 얻으려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대통령이 바뀌고 국가명이 바뀔지라도 확고부동한 정책이 수립되어야하고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백년지대계'라는 말처럼 정말 백년, 그 이상을 바라보며 끝까지 지켜질 수 있는 그런 교육정책을 수립해야 일선 교사는 물론 학생들과 학부모까지도 흔들리지 않고 살아나갈수있을것같다. 모 침대의 카피처럼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이 있어야 외국국적을 취득해 좋은 곳에서 교육받으려고 임신 후 외국에서 애를 낳는 것 같은 병폐가 사라지리라 생각된다.
우리 교육의 문제점에서 대두되는 문제중 사람들의 의식문제인 직업의 귀천, 학연, 지연 등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찌해야 할까? 여지껏 해왔지만 하기 힘들었고 하지 못했지만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사람들의 의식을 개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직업의 귀천이 없다고 대외적으로는 그렇게들하지만 실제로는 귀천이 있는 나라, 그 나라 사람들의 의식개혁을 위해 법을 제정한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 집권세력은 그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며 살기 때문이다. 지금의 상황도 빈익빈 부익부가 단지 경제적 지표만이 아닌 교육적 지표로도 나타난다. 자신의 능력에 맞는 대우, 그 능력이 사람을 고치는 능력이던 기계를 수리하는 사람이던, 하수관을 만지는 사람이건 간에 능력에 맞는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한다. 기술자들이 우대 받지는 못하더라도 지금처럼 천대받지는 말아야한다는게 근시안적인 선택이다. 차근차근 의식을 개혁하여 직업의 귀천이 있다는 생각을 바꾸고 자신의 적성과 관심에 따라 교육받고 자신을 키워나가게 해서 정말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면서 살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만들도록 의식을 개혁해야한다.
두번째 문제점도 첫번째 문제점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것저것 다 배워서 슈퍼맨이 되기를 바라는 것보다 자신의 적성과 관심에 맞게 교육받고 그 교육받은 것을 좀더 어렸을 때부터 심화해서 배워 사회에 나가서는 정말 그 분야의 엘리트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실력으로 인정받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선 우선 어떤 직업도 무시못받는 사회풍조가 우선되어야한다.
마지막으로 문제삼았던 시도 때도 없이 엿장수 맘대로 바뀌는 교육제도(대학입시제도라는 것이 맞을수도있겠지만...)를 정말 '백년지대계'로서 인정해 주는 것이다. 흔들림 없이 받쳐주는 제도 위에서만이 불필요한 높은 교육열로 인한 불필요한 교육(고액과외)으로의 서민의 가계의 누출을 막는 길이 인재양성과 더불어 시민생활안정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대략적으로 생각해보았던 세 가지의 문제점들의 대안을 생각해보던중 합치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세가지가 각각 개별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연계되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움직인다는 것이다. 또한 교육의 문제가 단지 교육의 문제로만 끝나지 않는 다는 점이다. 외국식 교육을 우리나라 교육실정은 알지도 못한 채 단순비교로 비교도 비교국의 좋은면과 우리나라의 그렇고 그런 부분을 비교하여 그 제도가 좋다고 도입하는 마치 국방부에서 우리나라에 맞지도 않는 전투기를 수입하고서 고생하는 것처럼 불 보듯 훤한 일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사회의 가장 큰 문제들의 동기가 되는 학연 등에 얽매이는 사회가 변하지 않는 이상, 또 상위대학만을 대학으로 취급하는 풍조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이상, 하등교육의 변화도 그리 큰 힘을 얻지 못할 것이다. 모두들 화려한 겉치레를 위해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실력을, 무한한 잠재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게된다면 또, 그러한 노력이, 노력의 땀방울이 진정으로 인정받게 되는 사회가 온다면 어느 시대, 어느 정책에나 비판이 따르겠지만 그 사회는 막강한 인재들로 초강대국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