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기도를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들은 한번 읽어보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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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제자들 가운데는 기도의 효능을 의심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제 그런 의심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기도의 효능을 의심하는 이들은 그 효능을 의심하는 순간에도
이미 기도의 효능을 받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적어도 그가 바르게 기도를 했다면, 원망의 마음이 감사의 마음으로
바뀌었을 것이고, 불안한 마음이 편안하게 바뀌었을 것이며,
두려운 마음이 얼마만큼이라도 사라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가 기도의 효능을 의심하는 것은 옛 분들의 말씀대로, 기도를 하는 그의 마음가짐이 잘못되었거나 기도를 하는 그의 간절한 정성이 모자랐기 때문이지 기도의 효능은 너무나 뚜렷해서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일찍이 말씀하셨습니다.
'한가지 착한 마음을 닦으면 백 가지 악업을 파괴할 수 있나니, 마치 자그마한 금강석 한 조각이 수미산을 무너뜨릴 수 있으며,
조그만 불씨가 온 세상을 태울 수 있고, 조그만 독약이 뭇 생명을
해칠 수 있듯, 작은 착한 일도 그런 큰 악업을 지울 수 있는 것이다.'
- 『열반경』 -
또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어떤 중생이 부처님 계신 곳에 한 번이라도 믿음을 갖고
조그만 선근(善根)이라도 심는다면,
끝내 없어지지 않아 아무리 멀고 먼 백천억 세월을 보냈다 할지라도 조그만 한 번의 선근으로 반드시 열반을 증득하게 되리니,
마치 한 방울의 물이 바다 가운데 떨어져서 비록 오랜 세월을
보냈다 할지라도 끝내 훼손되지 않는 것과 같다.'
- 『대비경』 -
그렇습니다. 기도의 효능을 의심하는 것은 스스로 인과(因果)보는
눈을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이는 인과보는 눈을 터득하지 못했음을 안타까워할
따름이지, 어떤 경우에도 기도의 효능을 의심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더구나 예불기도나 참회기도를 할 경우, 기도의 효능을 의심하는 것은
스스로 그 효능을 잘라내는 과보를 짓는 것이니,
그 효능에 대해 결코 함부로 말할 일이 못됩니다.
이에 대해서 옛분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터럭만한 착한 일도 근본은 보리로 나가는 것이니, 마치 칼이나
횃불을 잡을 때 그 자루를 쥐어야 할 것인데,
만약 행위하는 착한 일에 대해 마음으로 상을 짓는다면 마치 칼날을 잡거나 불꽃을 안은 것과 같다.
『법화경』에서도 흩어진 마음으로 염불하는 것이나 낮은 음성으로
찬탄하는 것이나 모래를 모아 탑을 쌓는 일 등 보잘 것 없는 착한 일로도
차츰 공덕을 쌓아 부처의 길을 이루게 됨을 밝히셨다.'
구체적인 바램을 걸고 나름대로 간절하게 구복기도를 했으나, 효능을 입지 못했다고 의심하는 경우에도 돌이켜 생각해볼 점이 있습니다.
나는 과연 간절한 마음으로 한끝 흔들림 없이 기도했던가요?
나는 과연 내가 바래도 될 것을 바라면서 기도했던가요?
나의 바램이 자리이타의 원칙을 어기는 것은 아니었던가요?
나는 과연 올바른 기도법으로 올바른 공양을 올리면서 기도했던가요?
사람들이 자식을 얻기 위해 기도하거나,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 기도하거나, 병을 고치기 위해 기도하거나, 재난을 없애기 위해 기도하거나,
공명을 누리기 위해 기도하거나,
재산을 불리기 위해 기도하는 등, 갖가지 인간사의 바램을 성취하기 위해
기도하면서, 위 네 가지 점에서 자신을 돌이켜보지 않은 채 기도의 효능을 의심한다면, 이는 크게 잘못된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돌이켜보아 잘못된 점이 있다면 오히려 그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은 점에 대해 감사를 올려야 합니다.
그런 바램은 이른바 '나쁜 바램'으로서, 업만 지을 뿐 아무런 공덕도
이루지 못하며, 비록 바램을 이루었다 할지라도 좋은 일은 잠시일 뿐
괴로움의 과보가 곧 뒤따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살생한 대가로 기도의 공양물을 마련하며,
도둑질한 것으로 공양물을 마련하고,
자신의 공명과 부귀를 가지고 전당을 지어줄 것을 약속하는 따위로 기도를 올린다면, 대비평등하신 불보살님께서 어찌 그런 뇌물을 받고
복을 내리시겠습니까?
그런 경우 기도를 하여 바램을 이루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그의 운명으로
그런 것일 뿐, 불보살님께서 그의 바램을 들어주신 것은 결코 아닙니다.
운명이 아니라면 불보살의 시험이거나 마구니의 장난일 따름입니다.
기도는 오로지 선업을 짓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 바램이 이루어진 뒤에는 스스로 가진 모든 것을 불보살님께 바칠 수 있겠지만,
미리 그런 약속을 하여서는 비록 선업을 짓는 것이라 할지라도
불보살님께서는 결코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미리 무엇인가 바칠 것을 맹세하며 조건부로 기도를 올리는 것은
불보살님을 허망한 이매망량의 패거리로 몰아붙이는
불경스러움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굳이 미리 약속하여 바치기를 맹세한다면, 그것은 오로지 자신이
하늘과 땅으로부터 받은 몸뚱이일 따름이니,
몸을 바치겠노라 맹세하는 것은 때로 지극한 기도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 밖에는 관례가 허용하는 이외의 방편으로 기도할 수 없는 것입니다.
기도는 기도를 올리는 순간 이미 그 효능이 시작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효능이 시작되었다고 해서
모든 바램이 이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인연이 닿지 않은 일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럴 경우 기도하는 이는 숙연이라 여길 뿐, 결코 원망심을 내거나 불보살님을 탓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더욱 선업을 지어 결코 물러서지 않으려는 마음을 내어야 합니다.
『지장경』을 살펴보면 기도가 어떻게 효험을 드러내는지
여러모로 증험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21일 동안 지극한 마음으로 지장보살의 형상에 우러러 절하면서 그 명호를 생각하고 불러 만 번을 채운다면,
지장보살께서 가없는 몸을 나투시어 그 사람에게 그 가족이 태어난 곳을
일러주시거나 꿈에 보살이 큰 신통력을 나타내시어 친히 그를 이끌고 모든 세계에 머무르는 그의 여러 가족을 보여주실 것이라 했습니다.
이처럼 몸뚱이에 소속된 바램이 아닌 마음에 엮인 바램은 지극한 정성의
기도를 통해 이루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효능의 대해서는 한치도 흔들림없이 믿어야 하며,
그런 믿음을 가지고 끊임없이 마음으로 선업을 지어나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효능이 자성미타의 성불로 이어지도록 할 뿐, 몸뚱이에
관련된 바램은 들어주시면 한없이 감사할 일이며, 그렇지 않을 경우
자신의 기도와 바램에 대해 돌이켜 보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