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이 몽롱합니다. 몇 십분 전 어릴 적 꿈속에서나 보았을 법한 길다란 차를 탄 것 같기는한데 이곳이 어디인지 무엇 하는 곳인지 또 왜 왔는지 정확하게 인지할 수 없습니다. 숨이 차오르기 때문입니다. 매캐한 연기 같은 것이 목 줄기를 눌러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답답하고 죽을 것만 같습니다. 손과 발을 움직여 지옥 같은 이곳을 탈출하고 싶지만 생각처럼 몸이 따라주지 않습니다. 마음은 천리인데 몸은 제자리....이런 걸 신경마비라고 백과 사전에서 본 듯 합니다. 하지만 정신만은 말짱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42년의 삶들이 한편의 영화처럼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전 42살의 건장한 대한민국의 남자입니다. 좋은 학벌은 아니지만 남들 다녔다는 대학 물도 먹어봤고 병역기피 어쩌구 저쩌구 떠드는 것들과는 거리가 먼 현역 병장 제대 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결혼도 했습니다. 그리 예쁘지는 않지만 집안 살림 잘하고 남편 보필 잘하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딸을 낳아주기도 한 아내를 맞이하여 그럭저럭 행복하게도 살았습니다. 결혼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니 지난 11년간의 결혼 생활들이 파노라마처럼 떠오릅니다. 22살의 어린 나이에 시집온 아내는 부엌도 없는 단칸방에서 고생도 많이 했습니다. 겨울이면 수도가 얼어 굶을 때도 있었고 밤에는 떼 국물 졸졸 흐르는 홑이불 하나로 겨울 한 해를 견뎌 내기도 했습니다.
고생한 아내를 생각하니 눈물만 납니다. 왜 이런 상황에 고생한 아내가 자꾸 떠오르는지....고맙고 미안하고....그래서 더욱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둘째 낳고 조금 풀린다 싶던 형편이 IMF 한파로 구조조정의 철퇴를 맞았고 그렇게 시작된 전업, 이것저것 안 해 본 것 없을 정도였지만 그 때마다 바닥을 치고 말았습니다. 일이 풀리지 않자 늘어나는 것은 한숨과 좌절 뿐이였습니다. 자연 술을 마시게 되고 매일 술에 절어 집으로 돌아오면 아내와 아이의 존재가 부담스러웠습니다. 짜증도 났습니다. 심한 짜증에 이제까지 별 말 없던 아내도 싫은 내색을 했고 그 반응은 곧 싸움으로 번졌습니다. 싸움은 집을 뛰쳐나가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술에 절은 상태에서 저질러서는 안 될 남의 여자를 돈으로 사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일은 결국 마음 여린 아내에게 결정적인 치명타가 되며 하늘처럼 믿고 의지했던 남편을 다른 여자에게 빼앗겼다는 자존심 때문에 아낸 총명하던 정신을 놓고 말았습니다.
아무 연관도 없는 옆집 아주머니에게 자신의 반지를 가져갔다며 시비를 걸기도 하고 자신에게 열두 제자가 있는데 이 나라를 구할 거라고도 했으며 대통령이 정치를 바로 해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평소 하지 않던 표현을 하기도 했습니다. 친척들이 자신을 해치려한다 하기도 하고 식사에 독을 탔다고 도망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로부터 시작된 아내의 입원과 퇴원이 시작되었습니다. 한번 입원하면 두어 달의 치료 기간이 필요했고 그러다 보니 자연 병원비가 만만찮았습니다. 원무과에서 계산서를 받을 때마다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술만 마시고 실의에 빠져 지낼 수만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기저기 이력서를 넣었고 다행히도 근무 경력을 인정해 주는 한군데에서 출근하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처우는 형편없었지만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끄자는 심정으로 힘들다는 3교대 부서를 지원했지만 야간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초저녁은 그런 대로 견딜 만 했는데 새벽녘만 되면 속이 쓰리고 신물이 올라와 음식 냄새조차 맡기 싫을 정도였습니다. 일을 마치고 나면 몸은 물먹은 솜이었습니다.
퇴근하고 집으로 오면 아이들 보살피는 것도 문제였습니다. 아이들 밥 먹이고 유아원에 보내고 나면 산더미처럼 쌓인 설거지와 빨래를 해야했습니다. 평소 빨래라곤 해 보지 않아 어떤 것이 손빨래용인지 어떤 것이 드라이용인지 구분하기 힘들었습니다. 청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방 저 방 아이들이 어질러 놓은 잡다한 물건들을 정리하려는데 치워야 것들이 왜 그리 많은지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었습니다. 평소 일 같지 않은 일로 투정한다고 아내를 구박했는데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었는지 절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들은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의 불안정한 정서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우는 통에 피로고 뭐고 제 몸 챙길 여유가 없었고 매일같이 아이를 끌어안고 달래느라 정신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아이의 정서 그리고 교육....아내의 빈자리가 너무나 컸습니다.
오늘은 세 번째로 대구에 있는 Y병원에 입원 한 아내에게 병 문안 가는 날입니다. 어제 저녁 "보고 싶으니까 아침 일찍 면회 오세요" 라는 전화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아내의 전화를 받아보니 입원할 때 보단 많이 호전되어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면회 시간은 낮 12시부터인데 왜 아침 일찍 오라 하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일단 기분이 좋았습니다. 아내가 좋아하는 장미 한 다발을 안개꽃과 더불어 샀습니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속 옷 가게에 들러 레이스가 달린 핑크 빛 브레지어도 하나 구입했습니다. 아낸 "뭐 할라꼬 사왔어예 돈도 없을낀데..." 하면서도 환한 웃음을 보일 것입니다. 그런 모습을 상상해보니 평소 잘 해 주지 못한것이 미안할 따름입니다.
울산에서 대구까지 가려면 시외버스를 이용해야 합니다. 밤 새 야간 근무를 한 터라 이른 아침의 고속버스 좌석은 꿀 맛 같은 수면실 역할을 해 줍니다.. 서너 명의 손님들....각자 피곤해서인지 모두들 꿈속에 빠져있습니다. 그들의 모습 보면서 저도 등받이에 머리를 뉘여 눈을 감아 봅니다. 누군가 손을 흔들고 있습니다. 아이얀 속옷을 입은 여인하나가 "차 조심 하이소....차 조심 하이소...."소리치며 다가옵니다. 가까이 가려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조금 멀어지나 싶으면 가까워지고 가까워지나 싶으면 또 그만큼 멀어지기를 반복합니다.
동대구 고속버스 터미널에 내렸습니다. Y병원 行의 차편은 지하철과 버스 그리고 택시가 있는데 버스는 두어 번 갈아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고 택시는 요금이 만만찮아 마음 편히 이용할 수 없습니다. 자연 지하철을 이용하게 되는데 단돈 600원에 시간 절약되는 장점까지 지하철의 교통 수단은 저에게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역내에서 표를 구입한 후 대곡 행 차선으로 내려가니 좀 전에 도착한 듯한 전동차가 꼬리를 살랑거리며 시야에서 멀어져 갑니다. 표를 구입할 때 500짜리 동전만 떨어뜨리지 않았더라도 그 차를 탈 수 있었는데 싶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다음 차를 기다리자니 지루했습니다. 그래서 자판기에서 300원의 고급 커피가 아닌 200원의 일반 커피를 뽑았습니다. 단돈 100원 차이지만 맛에는 별반 차이가 없는 데다 숫자상 비싸다는 느낌.....또는 손해 보는 느낌......그런 느낌 때문에 일반 커피를 뽑아 한 모금의 커피를 입술로 적시니 온 몸에 눌러 붙었던 피로감이 조금은 풀리는 느낌입니다. 한 두 사람의 손님들이 역내로 모여듭니다. 제 각각의 사연을 안고 목적지로 가기 위해 모여들었을 그들...그들의 활기차고 진지한 모습들이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한잔의 커피를 다 비울 즈음 대곡 行 열차가 들어온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몇 초 후 6개의 꼬리를 단 열차가 역내로 미끄러져 들어왔고 그 중 빈자리가 눈에 띄는 5번째의 칸에 몸을 실었습니다. 열차에 올라 자리에 앉자 또 졸음이 몰려왔습니다. 며칠째 하였던 밤샘 작업 탓일 것입니다. 하지만 깜빡깜빡 졸면서도 아내에게 전해 줄 꽃다발과 브레지어가 들어있는 선물꾸러미는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무릎 앞에 올려놓고 있습니다.
신천역을 지나 칠성역 그리고 대구역에 도착했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오며 선잠을 흔들어 깨웠습니다. 입구 위쪽에 붙어있는 노선도를 보니 다섯역만 더 거치면 Y병원입니다. 가슴이 뜁니다. 혼란스럽던 정신을 이겨내 준 아내를 한 시라도 빨리 만나보고 싶습니다. 만나 사랑한단 말은 못하더라도 미안하단 말은 해 볼 참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뜻대로 되지 않으면 사 가지고 간 꽃다발과 선물로 대신 할 참입니다. 아내는 꽃다발을 받고 부끄러워하면서도 사랑한단 말을 표현 못하는 제 마음을 이해 해 줄 것입니다. 담당의사 선생님과 면담도 해 볼 생각입니다. 어느 정도 상태가 호전되었단 진단이 내려지면 조만간 퇴원도 시키고 아이들과 함께 바다도 구경하고 산도 여행하며 제대로 된 아빠 제대로 된 남편 노릇도 해봐야지 생각하고 있는데 커브길을 도는지 전동차가 꿈틀거렸고 무릎 위에 고이 얹어 뒀던 꽃다발이 그만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대구역을 떠난 전동차가 다음역인 중앙로역을 향해 달립니다. 아침나절이라 그런지 車內에는 조간 신문을 펼쳐 보는 사람, 휴대폰으로 문자 입력하는 사람, 친구와 웃으며 통화하는 사람, 두 눈을 감고 모자란 잠을 채우는 사람 등 모두들 제 각각의 행동에 몰두 해 있습니다. 잠시 후 중앙로역에 도착하겠다는 안내 방송이 나오자 사람들의 움직임이 바빠지기 시작합니다. 시내 중심가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내릴 모양입니다. 잠시 후 차가 정차하고 차 문이 열리는 순간 메케한 연기 같은 것이 5, 6호 객차 사이 연결 통로에서 물밀 듯이 들이닥쳤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곧 있으면 출발합니다" 라는 멘트와 함께 문이 닫혔습니다. 내리지 않은 모든 사람들은 맞은편 열차에서 불이 났기에 입과 코를 가리며 빨리 출발하기를 기다릴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5분이 흘렀을까요? 전철 형광등이 깜빡거리다가 소멸되었고 역내는 일순간에 암흑천지로 변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연기가 객차 안으로 스며들어 숨쉬기는 힘듭니다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입니다. 사람들은 동요합니다. 우왕좌왕하며 유리창을 발로 차는 사람, 살려 달라고 울부짖는 사람, 문을 뜯으려고 손톱으로 긁는 사람들로 아비규환입니다. 몸은 점점 뜨겁고 정신은 혼미해지며 숨은 몇 초도 견디기 힘들만큼 답답합니다. 여기 저기서 휴대 통화를 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엄마, 사고가 난 것 같아요 숨 못 쉬겠어… 구해줘요 엄마" "아빠! 불이 났어요 어떻게 해야 해요?" "오빠! 너무 뜨거워 죽을 것 같애......사랑해" "여보! 문이 안 열려요 火魔(화마)에 죽을 것 같아요" 모두들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중일까요? 죽음의 문 앞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에게 마지막 말을 남기는 걸 보면 말입니다. 그러고 보면 전 참 불쌍한 놈입니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사랑해" 라는 그 흔한 말 한마디 말도 전할 수 없는 무 휴대폰 소지자이니까요. 뭔 떼 부자 되겠다고 그 흔한 휴대폰 하나 장만하지 못했는지 원통하고 원통할 뿐입니다.
몇 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제 객차 內는 쥐 죽은 듯이 조용합니다. 오로지 타다다닥 불타는 소리만 들릴 뿐 살려고 몸부림치던 사람도 휴대폰을 걸어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저 편안히 잠들려는지 쓰러져 있을 뿐입니다. 저도 이제 어릴적 가마솥 아궁이에서 활활 타오르던 불길 같은 것이 몸 위로 기어올라 정신이 혼미합니다. 손과 발도 오그라들고 가슴도 엉덩이도 얼굴도 불꽃 속에 휘감겨 옴짝달싹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마음은 왜 이리 편안할까요? 다만 아내에게 아이들에게 또 부모님에게 남편으로써 아버지로써 자식으로써 책임을 다 하지 못하고 떠나는 것이 미안하고 고통스러울 뿐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렇게 마지막 한마디 말도 전하지 못하고 떠나면 나 하나만 믿고 살아온 사랑하는 아내는 누굴 의지하고 살며 정신이 온전치 못한 엄마를 둔 두 아이는 또 어떻게 험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지.......너무나 불쌍해 눈을 감을 수가 없습니다. 왜 하늘님께선 나쁜 사람 놔두고 이 불쌍한 사람을 먼저 데려가려 하는지......제가 이렇게 세상과 이별하였단 소식을 전해 듣고 통곡할 아내를 생각하니 눈물이 납니다. 되찾았던 정신 다시 놓게 되는 건 아닌지.....저 때문에 병을 얻었고 저 때문에 고생한 아내........미안하고 또 미안하고....
이제 눈 감을랍니다. 눈감으며 제 마음의 표현인 어느 시인의 시를 떠 올려 제 아내에게 텔레파시로 보내 보렵니다. 물에 빠진 사람 지프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보내 보렵니다. 당신에게 나는 할 말이 없네/무뚝뚝한 나는 당신에게 정말 할말이 없네/당신의 아픈 마음 하나 건사할 줄 모르는/나는 정말 당신에게 할말이 없네/세일 때 싸구려 옷을 골라 입혀 주어도/당신은 그 옷이 아름답다고 하며 웃어 주던 것이/내심 나를 더 슬프게 하네/당신 마음이 고와서/나는 더 슬퍼지네/당신에게 핀잔만 주어도/당신은 나를 위하여 무던히도 참고 살아 주었으니/당신에게 더 할말이 없네/나는 정말 할말이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