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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 영험 설화’와
정채봉의 동화 「오세암」(五歲庵) 비교1)
정리 : 이 정 석
1. 정채봉의 문학적 삶
정채봉은 우리가 잊고 살아가는 세상의 모습을 동화라는 창을 통해 새로운 모습으로 환기시켜 주었던 아동문학가이다. 1946년 전남 승주의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났다. 수평선 위를 나는 새, 바다, 학교, 나무, 꽃 등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배경이 바로 그의 고향이다.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197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화 부문에 「꽃다발」로 당선의 영예를 안고 등단했다. 대한민국문학상(1983), 새싹문화상(1986), 한국 불교아동문학상(1989),동국문학상(1991), 세종아동문학상(1992), 소천아동문학상(2000)을 수상했다.
깊은 울림이 있는 문체로 어른들의 심금을 울리는 '성인 동화'라는 새로운 문학 용어를 만들어 냈으며 한국 동화 작가로서는 처음으로 동화집 『물에서 나온 새』가 독일에서, 『오세암』은 프랑스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마해송, 이원수로 이어지는 아동 문학의 전통을 잇는 인물로 평가받으며 모교인 동국대, 문학아카데미, 조선일보 신춘문예 심사 등을 통해 숱한 후학을 길러 온 교육자이기도 했다. 동화 작가, 방송 프로그램 진행자, 동국대 국문과 겸임 교수로 열정적인 활동을 하던 1998년 말에 간암이 발병했다. 죽음의 길에 섰던 그는 투병 중에도 손에서 글을 놓지 않았으며 그가 겪은 고통, 삶에 대한 의지, 자기 성찰을 담은 에세이집 『눈을 감고 보는 길』을 펴냈고, 환경 문제를 다룬 동화집 『푸른 수평선은 왜 멀어지는가』, 첫 시집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를 펴내며 마지막 문학혼을 불살랐다. 평생 소년의 마음을 잃지 않고 맑게 살았던 정채봉은 사람과 사물을 응시하는 따뜻한 시선과 생명을 대하는 겸손함을 글로 남긴 채 2001년 1월, 동화처럼 눈 내리는 날 짧은 생을 마감했다.
한편 우리에게 동화 작가로 가장 많이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가 남긴 작품은 동화라는 제한적이고 규정적인 울타리를 훌쩍 뛰어넘는다. 그는 놀라운 창작열로 소설과 시, 에세이 등 다양한 작품을 남겼고, 이들 작품은 하나같이 유례를 찾기 힘든 문학적 향취를 유지하고 있다. 그는 또한 한국 문학사에서 ‘성인 동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여 동화의 독자를 어린이들로 한정하지 않고 성인들로 확장했다. 사실 동화 속에 담긴 메시지, 즉 순수의 회복이라는 주제가 겨냥해야 하는 이들은 어린이가 아니라 성인들이다. 많은 작가 외에도 법정 스님, 이해인 수녀, 김수환 추기경 등 여러 종교인들과 오랜 기간 마음을 나누며 지냈다.
정채봉은 각박하고 흉흉한 세상살이를 겪는 동안 사람들은 애초에 지녔던 동심의 순수한 영혼을 잃고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욕망에 사로잡히게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글로써 이들의 박토처럼 메마른 영혼을 어루만져 주고 위로하고 싶었다. 그래서 쓰게 된 것이 바로 ‘성인 동화’이다. 정채봉의 생각처럼, 어른들은 성인 동화를 읽으면서 비로소 자신들의 망실된 동심과 순수를 깨닫고 자신을 성찰하고 위안을 받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2. 관음영험 설화와 동화 「오세암」의 내용
정채봉의 동화 「오세암」은 본래 전대(前代) 고려시대의 설화 ‘관음영험설화’를 바탕으로 창작되었다.
가. 관음영험설화(재구성)
고려(高麗) 때, 명승 설정 조사(雪頂祖師)가 강원도(江原道) 설악산(雪嶽山) 관음암(觀音庵)을 중수한 뒤 형님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고아가 된 조카를 암자로 데려와 기르게 되었다. 아이의 나이가 5살 되던 해, 겨울이 막 시작되는 10월 하순 어느 날 스님은 산사의 월동준비로 양양의 물치 장터를 다녀오기 위하여 암자를 비울 수밖에 없었다.
오세암에서 양양의 물치 장터까지는 빠른 걸음으로 다녀와도 족히 이틀은 걸리는 장도였다. 그 이틀 동안 혼자 있을 다섯 살 짜리 조카를 위하여 스님은 그 기간 동안 아이가 먹을 만큼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스님은 아이를 불러 무릎에 앉히고 법당 안의 관음보살을 가리키며, "내가 다녀오는 동안 이 밥을 먹고 있으며 저분을 어머니처럼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이라 불러라 '그러면 저 분이 너를 보살펴 줄 것이다'"라고 일렀다.
5살의 어린 조카에게 이렇게 신신당부를 하고 설정스님은 관음암을 내려와 물치 장에 들려 겨우살이를 포함하여 이 것 저 것을 구입한 후 신흥사에 들려 하루를 묵게 되었다.
스님은 다음날 조카가 기다리고 있을 관음암으로 돌아가려 일찍 일어났으나 밤샌 폭설로 엄청나게 쌓인 눈 때문에 도저히 암자로 돌아갈 수 없었다. 스님은 어쩔 수 없이 그곳에서 머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스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야속한 눈은 그 뒤에도 그치지 않고 계속 쌓여만 갔다.
'엄동설한 폭설에 혼자 남겨둔 조카가 어떻게 됐을까'하는 생각만이 화두처럼 온몸을 감싸고 돌았다. 스님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부처님께 조카의 무사를 서원하는 기도를 열심히 드리는 일 뿐이었다.
이렇게 고통스런 몇 며칠을 보내다 도저히 안되겠다는 생각에 억지로라도 관음암으로 돌아 가려하니 사중의 모든 스님들이 말렸다. '이러 폭설에 길을 나서면 죽을 게 뻔한데 왜 가려고 하느냐'며 적극 만류하여 결국 스님은 눈길이 트일 때까지 신흥사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에도 무정한 시간은 유수처럼 흘러 어느덧 봄이 오고 눈이 녹아 산길이 트이게 되었다.
서둘러 바랑을 챙긴 스님은 뜀박질을 하듯 달려 암자에 들어섰다. 암자에 들어서니 죽었을 것이라 생각하였던 아이가 목탁을 치면서 가늘게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있었고 방안은 훈훈한 기운과 함께 향기가 감돌고 있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조카가 살아있다는 반가움에 스님은 어쩔 줄 몰라했으며 어찌된 것이냐고 물으니 조카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 어머니가 언제나 찾아와서 밥도 주고 재워도 주고 같이 놀아도 주었어요'라고 답을 하였다. 그러자 갑자기 환한 백의여인이 관음봉으로부터 내려와 동자의 머리를 만지면서 성불의 기별을 주고는 한 마리 푸른 새로 변하여 창공으로 날아가 버렸다.
놀란 스님은 마음을 가다듬고 부처님 전에 큰절을 올리고 조카를 안아 보려 하자 품에 안기지도 않은 채 조카는 그대로 사그라져 승천을 하였다. 나중에 살펴보니 법당 경상에 놓여 있던 책장이 스님이 집을 비운 딱 그만큼의 날짜만큼 찢겨져 나가있었다. 부처님의 신통력으로 종이 한 장으로 그날 하루를 지내게 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모든 것을 목격한 설정 스님은 다섯 살 어린 조카가 맑고 무구한 마음으로 삼촌인 스님이 시키는 대로 무념무상의 '관세음보살'을 계속하자 관음보살이 감응하고 그 가피로 영생불멸의 길로 접어든 것을 알게 되었다.
비록 5살 밖에 안된 동자였지만 그 순진무구한 마음이 동자를 성불케 하였으며 이 도량에 관음보살의 영험이 있음을 길이 전하기 위해 관음암을 중건하고 절 이름을 오세암으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나. 동화 「오세암」 줄거리
거지 남매는 수만 마리의 하얀 나비 떼처럼 날리는 포구에서 때 지난 나물국 빛 승복을 입은, 그리고 머리카락 씨만 머리에 뿌려진 스님과 만난다.
스님은 거지 남매와 대화하는 동안 아이들의 무색무취한 마음에 감복한다. 누나의 댕기를 잡아당기는 바람의 손자국, 발자국, 초롱에 넣은 흰 구름, 돌부처님 입김으로 피어난 꽃 등에 대한 동생 길손이의 사물에 대한 인식에 놀라며 그들을 절로 데려간다.
절에 살게 된 거지 남매 중 동생 길손이는 골방에서 연꽃을 떠받치고 서 있는 관세음보살(탱화)을 보게 되고 그 탱화를 엄마로 생각하며 얘기를 나눈다.
길손이를 절에 남겨 두고 겨울 양식과 땔감을 구하여 하산한 스님은 폭설로 한 달 스무날을 산 밑 마을에 묶여 있다가 관음암에 오르게 된다.
굶어죽었으리라 생각한 길손은 관음암 관세음보살의 젖과 유희로 생부처가 된다. "이 어린아이는 곧 하늘의 모습이다. 티끌 하나 만큼도 더 얹히지 않았고 덜하지도 않았다. 오직 변하지 않는 그대로 나를 불렀으며 나뉘지 않은 마음으로 나를 찾았다. 피면 꽃아이가 되고, 바람이 불면 바람아이가 되어 바람과 숨을 나누었다. 이 아이는 이제 부처님이 되었다."
그로 인해 눈이 멀었던 누나 감이는 눈을 뜨게 되고 때 아닌 꽃은 피어나며 산짐승들은 관음봉으로 치닫는다. "스님, 파랑새가 날아가고 있어요....모든 게 보여요. 햇빛도 보이고, 스님도 보여요. 마루 위에 잠이 들어 누워 있는 길손이도 보여요."
도를 얻은 길손의 장례식날 사람들은 구름떼처럼 몰려들어 성대한 다비식을 거행하나 감이는 연기되어 사라지는 동생 길손을 붙들어 달라고 운다. “저 연기 좀 붙들어 줘요.”
3. 설화와 동화의 비교
관음영험설화는 불완전한 인간(아이)의 순수성과 성불이라고 한다면 정채봉의 「오세암」은 어린이의 성장 체험과 동심(童心)의 강조라고 할 수 있다.
관음영험 설화에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주체가 ‘스님’과 ‘관음암(오세암)’이다. 어린 조카는 스님이 돌보아할 불완전한 존재이다. 이 설화의 생성과 전승 의도는 ‘아이’에게 맞추어진 것이 아니라, 불교적 깨우침(대오각성), 또는 믿음(신앙)에 맞추어져 있다. 어린 아이와 같이 거짓 없고 진실한 마음의 신앙심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설화는 수도자(인간)와 깨우치는 자(성불)라는 수직적 관계를 의도하고 있으므로, 작중에서 부수적 인물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삼촌(설정스님)이라는 존재는 수도자(인간)와 깨우치는 자(성불)를 이어주는 매개자, 교량으로서 의의를 지닌다. 신앙의 관점에서, 이 설화는 구도자의 순수한 믿음과 이에 응답하는 관세음보살의 자비가 강조되어 있다. 즉 국교가 불교이던 고려시대를 배경으로 포교의 임무를 수행해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설화에서 왜 다섯 살 먹은 조카, 어린 아이와 같은 수도하는 사람의 조건에 저연령의 아이라는 제한을 달아 놓았을까. 설화에서 주인공 ‘아이’의 의미는 오늘날 문학에 등장하는 아동(兒童)에 대한 개념과는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설화에서 ‘아이’는 인간 중에서도 부족하거나 불완전한 개체라는 의미를 띠고 있다. 설화에서 관음암과 더불어 스님이 강조된 것도, 양자 모두 불완전한 존재와 부처님을 연결해주는 매개공간과 매개자로서 의의가 있기 때문이다. ‘스님’은 한 겨울 외진 암자에 아무 것도 제대로 할 수 없는 ‘불완전한 존재’를 혼자 남겨둠으로써, 그리고 ‘관음암’은 부처님의 영험이 실현될 수 있는 만남의 장이라는 점에서, 양자 모두 불완전한 존재가 부처님에게 온전히 귀의(歸依)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설화에서 ‘아이’는 오늘날과 같이 귀엽고 소중한 의미의 ‘어린이’가 아니라 ‘불완전한 존재 조건을 가진 인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결국 이런 불완전한 아이에서 순진무구한 마음으로 무념무상의 경지를 이르고 대오각성한 부처로 성불함으로써 관음신앙의 완성이라는 전범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관음영험 설화가 신앙에 초점을 맞추어 전개된 포교(布敎) 목적의 이야기라면, 정채봉의 「오세암」은 어린이에게 초점을 맞추어 전개된 동화이다. 정채봉 동화「오세암」의 주인공 ‘어린 아이(길손)’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다.
첫째, 작중 어린 아이는 독자적 인격체이다. 주인공 소년은 ‘길손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소년과 스님이 우연히 마주치는 도입부를 통해, 정채봉은 소년이 스님과 혈연적 종속관계가 아니라 대등한 개체로서 독자적인 주체임을 보여준다. 스님이라는 매개자에 의한 불완전한 인간(아이)의 불생불멸의 과정을 보여주는 관음영험 설화에 비해 정채봉의 동화는 어린이의 시련과 성장을 어른(스님)의 것과 동일한 차원에서 취급한다.
둘째,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천진한 어린이의 체험이 강조된다. 작품이 ‘길손’의 죽음과 장례식으로 귀결됨으로써, 종교적 신성성이 약화된다. 설화에서 소년의 오도(悟道)는 이적성(異蹟性)을 띠고 있으나, 동화에서 소년의 성불(成佛)과 장례는 인간의 ‘깨달음’과 ‘죽음’을 보여준다. 소년이 성장에 이르는 과정에는 여러 가지 역경이 있다. 소년은 집도 없고 가족도 없다. 소년이 소경인 ‘감이 누나’와 동행한다는 사실은 소년의 여정이 고행(苦行)이며 이타적인 길로 나아갈 것임을 시사한다. 특히 소년의 깨달음 과정에는 설화에 존재하지 않았던 ‘골방’과 ‘탱화’가 제시되어 있다. 암자에서, 공포와 금기의 공간인 ‘골방’과 그 곳에 있던 그림 ‘탱화’는 소년의 통과의례를 보여주는데 일조한다. 소년은 스님에 의해 금기시 되었던 공간 “문둥병 스님이 묵고 있다가 죽은 곳”(무서운 곳)에 들어감으로써 자신의 꿈(엄마와의 만남)을 실현한다. 그러므로, 소년의 깨달음과 누이의 개안(開眼)은 어린 아이의 성장 지표가 된다.
셋째, 어린 아이의 이타적(利他的) 정서가 강조된다. 설화에서 어린 아이는 엄마를 만나고 성불(成佛)한 데 그치지만, 정채봉의 동화에서 어린 아이는 엄마를 만나고 누이의 눈을 뜨게 하고 스님의 부처님 공부에 도움을 준다. 정채봉은 시종일관 ‘어린 아이’에게 이야기의 초점을 맞추고 있음은 물론, ‘어린 아이’의 마음에 역동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 결과 작중 어린 아이는 주변 인물들은 물론 독자에게 교훈을 준다. 마지막 장 ‘연기 좀 붙들어 줘요’에서 소년은 성불(成佛)함으로서 누이의 개안(開眼)을 돕는다. 반면, 스님은 부처님 공부를 반성하고, 누이는 막상 눈을 뜨고 본 세상이 아름답지 않아 실망한다. 정채봉은 어른(스님)을 능가하는 뛰어난 개체로서 어린 아이의 존재를 강조한다.
정채봉은 어린이의 마음(童心)이야말로 종교의 교리를 능가하는 생명의 진리로 본다. 그렇다면 정채봉이 강조하는 동심(童心)은 과연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작중에서 어린 아이가 거지라는 상황 설정은 정채봉이 추구하는 동심(童心)이 어떤 것인지 시사해 준다. 작중에서 거지 남매는 집도 없으며 부모도 없이 얻어먹고 다니는 아이들이다. 사회적 편견에 의하면, 얻어먹는 아이는 근본을 알 수 없는 아이이며 교육받지 않은 아이를 의미한다. 정채봉이 작중 소년을 얻어먹는 아이로 설정한 것은 동심(童心)이 가공적이고 인위적인 현실의 영역과 거리가 먼, 자연(自然)의 영역에 속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이때 동심(童心)은 아이가 가정과 학교를 비롯한 제도로부터 사회화되기 이전, 어떤 주의나 관념에도 치우치지 않은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것, 말 그대로 자연(自然)의 시선이다.
4. 동화 「오세암」의 동심
설화 「오세암」이 구도자의 ‘신앙심’을 강조하고 있는데 비해, 정채봉의 「오세암」은 어린 아이를 주인공으로 하여 ‘동심(童心)’을 강조한다. 정채봉은 훈육되어야 할 존재로서 아동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동을 통해서 세계에 대한 올바른 태도를 제시한다. 정채봉에게 있어서 동심(童心)은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이를 현실에 실현하는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개념이다.
자아는 세계에 대해 우위의 입지에 있다. 이른바 불성(佛聖)과 같은 신비한 동심(童心)을 구비한 아이가 이 세계의 고난을 평정한다는 것이다. 정채봉은 ‘동심(童心)’이 어린이 뿐 아니라, 성인들에게도 다시 소환해야 할 정서적 덕목임을 보여준다. 그는 거지 아이의 동심(童心)을 신성하고 깨끗하게 형상화함으로써, 어린이의 성장 서사라기보다 인간 삶의 보편적인 양태를 보여준다. 왜냐하면 ‘동심(童心)’이 ‘세상을 정화시킬 수 있다’는 무거운 명제는, 어린이보다 현실에 찌든 어른들에게 더욱 적합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정채봉의 「오세암」은 어린이를 독자로 하기에는 관념적인 성격이 강하다. 간결한 문체와 신선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정채봉의 「오세암」은 현실적인 어린이의 구체성이 결여되어 있다. 정채봉의 「오세암」에서, 당면한 세계에 대해 갈등 없이 관계를 정립해 나가는 주인공 ‘어린 아이’는 완결된 인격체이자 절대적 존재이다. 정채봉은 거지 아이를 통해 동심(童心)의 무한한 역량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1) 이 글은 정채봉의 '오세암'에 담긴 불교사상을 이해하기 위해
http://blog.daum.net/ahnyou/5959083 안미영의 논문‘「오세암」 이야기의 변천과정과 인물의 성격 변화’의 연구 방향을 주된 근간으로 삼고, 유한근의 ‘오세암 불교사상의 수직적 수용미학’등을 참고하여 필자가 정리한 것임.(안미영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