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한켠에 위치한 서재에서 책을 읽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
조경 사업가, 음악 강사, 공연 기획자, 북카페 사장...
자아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인이 '직업'이라고 하지만 최동인씨(45)의 직업은 두부를 자르듯 한마디로 정의를 내리기 불가능하다.
다소 그을린 그의 얼굴을 보노라면 그저 '음지보다는 양지에서 많은 일을 하는 사람이겠거니'라고 혼자 생각해볼 뿐이다.
제주에 정착한지 벌써 10년이 되었다는 그는 사실 서울 토박이.
하지만 제주에서 조경사업을 하던 부친의 손에 이끌려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온전히 이곳 서귀포에서 다녀야만 했다.
"학창 시절만 하더라도 제가 제주도 사람이라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어요. 남들은 억지로라도 사투리를 쓰려고 하는데 저는 고집이 세서 그런지 지금까지도 표준어만 씁니다(웃음)."
학창시절 아침에 눈뜨면 항상 보인 오름과 푸른 바다.
밋밋하고 심심한 풍광이라고 여겼던 제주의 자연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대학진학을 위해 서울로 올라간 후에 머릿속에 깊은 잔상으로 남아 틈만나면 그를 흔들었다.
"서울 생활을 하다보니 제주가 그리워지는 때가 많았어요. 막연하게라도 언젠가는 돌아가야겠다라고 생각했죠."
최동인氏가 커피를 내리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
서귀포시에서 북카페를 운영하는 최동인氏 <헤드라인제주> |
그러던 그에게 제주로 내려갈 좋은 핑계(?)가 생겼다.
제주에서 조경사업을 하던 부친의 가업을 잇기 위해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제주에 내려온 셈이다.
부친과 함께 한때 조경사업에 모든 힘을 쏟았지만, 원래 음악밴드 활동을 했던 그에게 이 일은 쉽게 애정이 가지 않았다.
"조경일은 솔직히 적성에 안 맞아서 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날 때마다 학교에서 방과 후 교사로 아이들에게 악기를 가르쳤습니다."
자신에게 들어오는 일이 점점 많아지면서 조경사업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본격적인 음악 강사로써의 활동이 시작됐다.
서귀포시내에서 회사원은 물론 주부, 농부, 교사까지 다양한 사람들에게 악기를 가르쳐 제자들이 구성한 밴드만도 6개에 달한다.
그러던 그에게 새로운 도전이 찾아왔다.
서귀포시 '좋은책 읽기 운동본부'와 인연이 생겨 난데없이 공연을 기획해야 할 상황이 된 것이다.
"사실 공연 연출을 해본 경험이 없는데, 서귀포시에서 이런 일을 맡길 사람이 없다보니 제가 부득이하게 나서게 됐죠."
지난해 서귀포 김정문화회관과 동홍아트홀에서 열린 두 차례의 '북 콘서트'를 어렵사리 준비하다보니 새로운 사실을 확인했다.
서귀포시가 제주시에 비해 공연 인프라가 너무나도 열악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사실 문화라는 것이 시민들이 많이 참여할 수 있어야 하는데, 서귀포시는 큰 공연장 위주로만 조성되다보니 소극장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시민들의 문화활동이 제약을 받는 경우가 많죠."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지인의 권유로 북카페를 차렸지만 내친 김에 소극장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마침 카페 지하에 빈 공간이 있어서 무대랑 좌석을 조금씩 만들고 있었습니다. 시민들은 물론 올레꾼이나 관광객들이 오고가면서 쉽게 볼 수 있고 참여할 수 있는 공연의 장을 만들고 싶었어요."
서울 대학로나 홍대의 거창한 소극장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자신의 모든 열정을 쏟아부은 아직은 미완성의 공연장을 그는 수줍게 안내했다.
그는 자신을 '표준어를 쓰는 제주사람'이라고 정의내린다.
그러다보니 제주의 앞날과 발전방향에 대한 고민도 적지않게 하고 있다고 밝혔다.
제주의 발전방향이 지나치게 '부(富)의 유치'에만 매몰된 게 아닌가라는 우려를 표시하기도 했다.
"제주가 가장 필요로하는 것은 사람(人)이 아닐까라고 생각해요. 다양한 재주를 가진 여러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제주를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마인드' 정립도 시급하지 않나라고 생각하고요."
얼마전 세상을 뜬 누군가의 '인생은 순간 순간의 점으로 이뤄졌으며, 뒤돌아보면 그것이 운명이다'라는 말을 곱씹으며, 최동인씨의 다음 운명이 어떨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헤드라인제주>
최동인씨의 비밀병기(?)인 지하 소극장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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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조경사업...수익성좋은 사업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