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평윤씨(坡平尹氏) : 시조 : 윤신달(尹莘達)
시조 신달은 고려 태종때 개국공신으로 삼중대광태사를 지냈으며, 그의 5세손 관이 고려 숙종때 밀직원사로서 병마도총사가 되어 여진을 정벌한 공으로 문하시중에 오르고 영평현 개국백에 봉해짐으로써 후손들이 본관을 파평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왔다.
관은 문무를 겸비한 명장으로 외교술에 능하여 송나라와의 외교관계에서 특출한 재능을 발휘하였고, 어려서부터 시재가 비범하여 일곱 살의 어린 나이에 뽕나무를 글제로 하여 지은 시가 아래와 같이 전해지고 있다.
뽕잎은 누에를 길러 추위를 막게 하고
가지는 굳센 활로 오랑캐를 쏠 수 있다.
이름은 비록 초목이나 참으로 국보일세
베거나 자르지 말라고 아이들에게 타일러야 되리
또한 주전도감을 설치케하여 [해동중보], [동국통보] 등의 동전을 처음으로 만들어 내는데 힘썼으며 만주 대륙을 점령하여 정계비까지 세우는 등 고려조에 우뚝 솟은 인물이다.
파평윤씨는 관의 후대에서 여러파로 분파되었는데 이 중에도 판도공파와 소정공파에서 가장 많은 인물들이 배출되어 가문의 번창을 이루었다.
판도공파 승례의 아들 번은 대사헌, 우참찬 등을 거쳐 판중추원사에 이르렀다.
번의 아들 삼형제중 맏아들 사분은 우의정, 둘째 아들 사윤은 예조판서, 셋째 사흔이 우의정에 오름으로써 형제간에 정승에 오르는 영광을 누렸다.
그러나 사분과 사흔의 두 집안에서 같은 시기에 왕비가 배출되니 왕실을 배경으로 대윤과 소윤으로 갈라져 정치적 대결을 벌이게 되었다.
소정공파의 곤은 정종 때 동지총제로서 제2차 [왕자의 난]때 방원을 도와 좌명공신에 책록되고 파평군에 봉해졌으며 이조판서에 올랐다.
그의 손자 호는 성종비 정현왕후의 아버지로 영원부원군에 봉해진 뒤 영돈령부사를 거쳐 우의정에 이르렀다.
성종 때 영의정에 올랐던 필상은 세조 때 총신으로 도승지를 지낼 때 이시애의 난이 일어나자 이를 진압하는데 공을 세워 우참찬에 특진되고 적개일등공신에 책록되었으며 파평군에 봉해졌다.
이어 좌의정으로 서정도원수가 되어 야인 토벌에 큰 공을 세워 영의정에 이르렀으나 갑자사화 때 화를 당하여 진도에 유배된 후 사사되었다.
필상의 손자 현은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호당에 뽑히고 장악원정으로 [중종실록] 편찬에 참여한 뒤 호조판서, 돈령부사에 이르러 청백리에 녹선 되었으며 시문에도 뛰어나 [국간집]이 전한다.
세종 때 좌찬성, 영중추부사를 지낸 사로는 정현옹주와 결혼하여 영천군에 봉해졌으며 세조 때 좌익공신에 책록되었으며 그의 맏아들 반은 영의정 한명회의 사위이다.
헌주는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택의 아들로 숙종 때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한 후 성주목사를 지낼 때 많은 치적을 쌓았으며 삼도의 관찰사와 호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특히 파평윤씨에서는 이조판서를 지내고 기로소에 들어간 강과 그의 다섯 아들, 지미, 지선, 지완, 지경, 지인 등이 명성을 날렸으며, 그 중에서 현종 때 여러 청환직을 거쳐 병, 이, 공조판서 등을 지내고 좌의정에 오른 지선과 숙종 때 어영대장, 예조판서 등을 역임한 뒤 우의정에 올라 청백리에 녹선된 지완이 뛰어났다.
또한 숙종 때 호조참판을 지내고 파평군에 봉해진 비경과 그의 손자로 공조판서에 이른 봉구는 강문8학사의 한 사람으로 추앙받았고, 봉오는 영조 때 대사헌, 우참찬에 올랐으며, 대사간을 거쳐 대제학에 이른 봉조가 유명하다.
당대의 덕망 높은 학자였던 심형은 비경의 증손으로 영조 때 부제학, 예조판서 등을 역임하엮다.
숙종 때 예론에 정통한 학자로 이름난 증은 수차에 걸쳐 대사헌, 이조판서, 우의정 등에 임명되었으나 불취하고, 당시 격렬한 사색 당쟁에 가담하여 소론의 영수가 되어 송시열 중심의 노론에 대항하며 이산으로 내려가 학문 연구와 후진양성에 전념하였다.
그밖에 인종 때 영의정을 역임하고 위사일등공신에 오른 인경과 영조 때 대사간, 이조판서 등을 지내고 영의정에 이른 동도와 학자로 명망 높은 정, 경남, 낙 등이 유명했다.
근대에 와서는 독립운동가로 구국의 일념 속에서 일생을 바친 준희와 해, 현진 등이 있으며, 1932년 상해에서 일본군 시라카와 요시노리대장 등을 폭사시킨 의사 봉길은 투혼의 애국 정신으로 이름을 날려 명문 파평윤씨를 더욱 빛나게 하였다.

황해도 황주군 삼전면 용전리
황해도 송화군 운유면 간촌리
평북 운산군 위정면 풍중동
전남 함평군 해보면 상곡리
경북 예천군 유천면 화지동

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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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공파 |
방 |
여 |
상 |
섭 |
종 치 |
병 석 |
훈 원 |
재 식 |
병 지 |
규 곤 |
종 |
영 수 |
邦 |
汝 |
相 |
燮 |
宗 致 |
秉 錫 |
勳 源 |
在 植 |
炳 志 |
奎 坤 |
鍾 |
永 洙 |
대언공파 |
주 |
영 진 |
토 자 |
의 상 |
수 병 |
중 상 |
석 섭 |
기 여 |
용 식 |
원 섭 |
동 재 |
희 종 |
柱 |
榮 鎭 |
土 滋 |
儀 相 |
水 炳 |
重 相 |
錫 燮 |
基 汝 |
鎔 植 |
源 燮 |
東 載 |
熙 鍾 |
소정공 상호군파 |
|
진 |
자 재 |
상 임 |
병 규 |
중 갑 |
석 봉 |
여 병 |
식 령 |
섭 무 |
재 범 |
종 강 |
|
鎭 |
滋 宰 |
相 壬 |
炳 揆 |
重 甲 |
錫 鳳 |
汝 丙 |
植 寧 |
燮 茂 |
載 範 |
鍾 康 |
소정공 구방파 |
|
화 |
자 영 |
영 왕 |
혁 종 |
현 승 |
한 동 |
근 렬 |
렬 기 |
준 호 |
수 택 |
태 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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禾 |
滋 榮 |
榮 王 |
赫 鍾 |
鉉 承 |
漢 東 |
根 烈 |
烈 基 |
埈 鎬 |
銖 澤 |
泰 杓 |
소정공 한성공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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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
의 |
수 |
주 |
희 |
기 |
석 |
수 |
병 |
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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永 |
儀 |
水 |
柱 |
熙 |
基 |
錫 |
洙 |
秉 |
燮 |
소정공 원평군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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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
병 |
재 |
석 |
영 |
모 |
영 |
규 |
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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相 |
炳 |
在 |
錫 |
泳 |
模 |
榮 |
圭 |
鉉 |
소정공 장령공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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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
자 |
상 |
병 |
중 |
석 |
여 |
식 |
섭 |
달 |
종 |
|
鎭 |
滋 |
相 |
炳 |
重 |
錫 |
汝 |
植 |
燮 |
達 |
鍾 |
소정공 영천부원군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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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 |
현 |
오 |
석 |
원 |
주 |
희 |
재 |
용 |
영 |
직 |
|
植 |
顯 |
五 |
錫 |
源 |
柱 |
熙 |
在 |
鏞 |
泳 |
稷 |
판도공 제학공파 |
영 |
채 |
훈 |
기 |
용 |
태 |
상 |
희 |
규 |
종 |
락 |
병 |
永 |
采 |
勳 |
起 |
鏞 |
泰 |
相 |
熙 |
奎 |
鍾 |
洛 |
秉 |
판도공 부윤공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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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 |
현 |
순 |
모 |
희 |
기 |
탁 |
호 |
집 |
덕 |
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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圭 |
鉉 |
淳 |
模 |
熙 |
基 |
鐸 |
浩 |
集 |
德 |
球 |
판도공 정정공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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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배 영 |
의 선 교 |
수 영 선 |
주 수 제 |
희 용 채 |
기 덕 병 |
백 령 중 |
태 성 의 |
렬 범 순 |
효 강 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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土 培 榮 |
儀 善 敎 |
水 永 善 |
柱 秀 濟 |
熙 容 采 |
基 德 炳 |
伯 寧 重 |
台 成 義 |
烈 範 淳 |
孝 康 相 |
함안파 |
검 |
희 |
석 |
영 |
림 |
용 |
재 |
종 |
원 |
상 |
섭 |
기 |
儉 |
喜 |
錫 |
泳 |
林 |
容 |
在 |
鍾 |
源 |
相 |
燮 |
基 |
남원파 |
태 |
병 |
섭 |
재 |
호 |
영 |
상 |
현 |
배 |
종 |
원 |
수 |
泰 |
秉 |
燮 |
在 |
鎬 |
永 |
相 |
顯 |
培 |
鍾 |
源 |
秀 |
신령파 화산군 |
희 |
재 |
종 |
원 |
동 |
환 |
규 |
강 |
재 |
중 |
규 |
용 |
熙 |
在 |
鍾 |
源 |
東 |
煥 |
圭 |
康 |
宰 |
重 |
揆 |
用 |
덕산군파 |
여 |
래 |
희 |
규 |
종 |
태 |
상 |
렬 |
재 |
두 |
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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汝 |
來 |
熙 |
奎 |
鍾 |
泰 |
相 |
烈 |
在 |
斗 |
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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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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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
영 |
익 |
혁 |
석 |
순 |
수 |
렬 |
재 |
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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永 |
榮 |
익 |
赫 |
錫 |
淳 |
秀 |
烈 |
在 |
鉉 |
태위공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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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
태 |
식 |
병 |
기 |
종 |
영 |
동 |
묵 |
용 |
석 |
|
成 |
泰 |
植 |
炳 |
基 |
鍾 |
永 |
東 |
默 |
用 |
錫 |
소부공파 |
병 |
헌 |
대 재 |
효 현 |
진 태 |
영 영 |
상 병 |
희 기 |
재 호 |
용 락 |
영 동 |
표 환 |
秉 |
憲 |
大 在 |
孝 鉉 |
鎭 泰 |
永 榮 |
相 炳 |
熙 基 |
在 鎬 |
鎔 洛 |
泳 東 |
杓 煥 |

첫댓글 파평 윤씨는 이의동을 빛낸 역사적 인물은 안 계시지만 이곳 작은안골에 저의 시아버님인 윤병철님과 윤원병님 윤중호님 윤태중님 이 사셨고 그리고 구시기에 윤광열님이 살고 계십니다 저희는 소정공파 문석공 할아버지의 34대손 입니다 우리집은 (윤용중) 2000년에 수원시에 수용되어 두릉리 버들치에 살고 있습니다
아침에 나물을 씻다보니 이의동에 살고 계신 尹 님들이 생각났어요 어머나 위의 꼬리말 내용은 저의 집안 이야기 입니다 이의동에 살고 계신 尹님들께 죄송합니다 용서해주세요 ^^ ^^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