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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소에도 봄이 왔다. 겨울철엔 추위로 인하여 집에서 지내던 사람들이 날이 풀리자 이발소로 나들이를 오기도 하고, 봄철이라 여기저기 봄놀이를 가려는 사람들이 이발을 하기 위하여 몰려들어 이발소 안은 제법 복잡해졌다. 경미는 그러한 사람들에게 세상사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구면인 사람들과는 말동무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 좋았다.
“아저씨는 겨울에 잘 안보이시데요?“
“응! 추워서 집구석에만 있었지. 와 내가 보고 싶었던가?”
“보고 싶기는요. 젊은 사람들 많은 데.”
“젊은 사람 누구? 김양 애인 있나?“
“애인은요. 그냥 해보는 소리지요.”
“빨랑 하나 구해라. 앙 그러면 내가 해줄까?“
“아유 징그러워요.”
“미스 김! 나는 어 떠?“
“아저씬 아줌마나 잘 챙기세요.”
“와? 우리 마누라가 도망 가등 가?“
“그런 게 아니고 잘 해드리라고요.”
“그 건 걱정마더라고. 밤마다 힘이 드니께.“
“아이! 아저씨도 민망하게.”
“민망하긴 그게 다 사람 사는 기다. 자기도 시집가 보더라고.“
“이젠 저 면도합니다. 웃기면 큰일 납니다.”
“알았어. 내 말고는 적당히 허고 마더라고 알았지.“
“예! 그럴 테니 아저씨가 책임 져 주세요.”
“미스 김은 남자들 살 만지면 안 이상 허나?“
“전혀 안 그렀습니다. 그러면 큰일 나게요.”
“그래도 조금은 이상 할 긴 디.“
“걱정 붙들어 매세요.”
경미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하던 일에 집중했다. 얼굴과 턱에 비누칠을 흠뻑 칠하고 왼손으로 가볍게 얼굴을 받치고 면도를 하지만 칼날이 날카로워 자칫 잘 못하면 얼굴에 상처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얼굴에는 별로 상처를 내는 경우가 적지만 턱 밑이나 뒷머리 쪽에는 가끔 상처가 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럴 때면 손님들은 대부분 이해를 해 주지만 그래도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오후 늦게 부산의 완월동 언니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주인아저씨와 손님들의 눈치를 살펴가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여보세요? 이발솝니다.“
“여보세요? 경미니?”
“응! 언니!“
“잘 있었니? 아픈 데 없고?”
“언니는 어때?“
“나? 난 요즘 몸이 많이 아파. 병원에 다닌다.”
“왜? 어디가 아픈데 그래 응?“
“모르겠어. 온 몸이 피곤하고 그래.”
“언니 아프면 안 되는데. 이를 어째.“
“좀 있으면 낫겠지. 넌 아프지 마라. 혼자 있는 데 아프면 서럽다.”
“알았어. 언니. 정말 고마워.“
“그래 잘 살아라. 다음에 보자. 시간 나면 내가 가든지, 아니면 네가 오든지 하자.”
“언니! 빨리 낳아라. 낳거든 전화해주라 알았지?“
“알았다. 바쁜데 전화 끊을게.”
“고마워 언니! 들어 가.“
언니는 경미보다 두 살 위인데 동생들 학비 때문에 사창가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경미는 그곳 사람들 하나하나가 다 어려운 사정으로 인하여 사람들의 눈총을 받아가며 살아가지만 다들 근본은 착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처지여서 안타까움이 더했다.
손님이 없어 경미는 거울 앞에 않아 유심히 자신을 들어다 본다. 삼정에서 나온 지도 십여 년 벌써 나이가 스믈 일곱이나 되었다. 그러나 제대로 배운 것도, 모은 돈도, 자신에겐 아무 것도 없다.
거울에 비친 얼굴모습은 모래밭에 다슬기 기어간 듯 수심으로 얼룩져있고, 속마음은 비오는 날 덜 덥힌 장독 마냥 불안하기만 할 뿐이다. 거울에다 입김을 쏟아 마른종이로 거울을 닦아낸다. 거울을 닦는다고 자신의 얼굴모습이 달라질리 없는 일이지만 공연히 속마음만 태운다.
불편한 과거를 묻어두고 확 누구에게 시집이라도 가버릴까? 하고 생각도 해보지만 문제를 어디서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를 모르게 혼돈스럽기만 하다.
이럴 때 아저씨라도 옆에 계셨으면 이야기라도 실컷 해보련만...
저녁 무렵 가량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끌리지 않는 발걸음으로 경미는 집으로 향하고 있다. 또 다시 산다는 것에 대한 회의를 느끼며 대나무 가지로 만든 비닐우산 깊은 속으로 얼굴을 집어넣었다.
이발소에서 집까지는 걸어서 십분 거리이다. 큰길가를 따라 걷다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다시 나와 잠시 걸으면 집이 나온다. 머릿속엔 온통 정리되지 아니한 생각들로 채워져서 하마터면 전신주에 머리를 들이받을 뻔하였다.
그때였다. 앞에서 우산에 툭 부딪치는 것이 있었다. 우산을 들어 앞으로 보았다.
“미스 김 이네요.”
다름 아닌 방앗간 집 사내었다.
“어딜 가세요.“
“아니요. 그냥 갑갑 혀서요.”
“예! 그럼 잘 가세요.“
“자 잠시 만요. 저기...”
“무슨 하실 말이라도.“
“저기...저녁 안 하셨음 같이 허시면 안 될까 혀서.”
〈일단 이야기나 좀 들어 보아야지!〉
경미는 정말 이 사내가 자신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걸까? 아니면 한번 건드리고 보자는 심산인지를 확실히 알 수가 없었지만 사내가 악의를 가지지는 않은 것 같았다.
“좋아요. 대신 다음에 또 만나고 하는 그런 말은 하면 안 돼요.“
“그럼요. 알았구만요.”
“어디로 가실래요?“
“저기 저 위에 가 먼 고기 정말 맛있는 집 있어요. 분위기도 좋고.”
“그럼 거기로 가죠.“
“따라 오서요.”
사내는 기분이 좋은지 발걸음도 가볍게 뒤 돌아보기를 자주하며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는 식당으로 경미를 안내했다. 경미는 혹시나 아는 사람이 볼까 주위를 살피며 고개를 돌리고 들어갔다. 연인끼리 온 곳은 아니지만 영업 직종에 근무를 하다보면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자칫 좋지 않은 소문으로 번져 나가기 때문이다.
초저녁이라 사람들이 별로 없었으나 언덕위에 자리를 잡고 있어 전망도 좋고 조그마한 방들이 많아 연인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기에도 좋아 보였다.
“이집에 처음 와보지요?“
“예! 다른 집에도 별로 잘 안 다녀요.”
“뭘 드실 라요?“
“아무 거나 다 좋아요.“
“그래도 먹고 싶은 거 있을 텐 디.“
“알아서 시키세요.”
“그럼 곱창으로 시켜요. 주인장! 여기!”
종업원으로 보이는 삼십대의 아주머니가 다가왔다. 읍내 식당의 종업원 격으로서는 제법 세련되어 보이고, 영업집에 나온다고 화장품이라도 찍어 발랐나 보다.
“뭘 드실 라고요?“
“주인장! 여기 곱창 삼 인분 맛은 끝내주게.”
“알았어요. 밥은요?“
“밥은 좀 있다 시킬 거니께 우선 곱창부터 주더라고.”
“술은 안하고?“
“술? 미스 김! 술 쪼개만 허도 괜찮지요?”
“그러세요.“
“그러면 여기 소주도 한 병 주고.”
“술 좋아하세요?“
“시골사람 치고 술 안 먹는 사람 있답디까.”
“저 여기 같이 왔다고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절대 그리 생각 안 할거구만요. 젊은 사람들끼리 이야기나 허고 술도 한잔 같이 한다고 생각해 버리면 그만이지.”
“고마워요.“
“고맙긴 내가 더 고맙지.”
“저한테 평소에 궁금한 게 있나요?“
“아니! 그냥 솔직히 말씀 드릴라치면 저가 미스 김이 얼굴 예쁜 여자니까 사귀어 보고 싶은 것이 아니고, 어쩐지 마음씨도 고와보이고 무슨 사연도 있는 것 같아서 그게.”
〈이 남자가 그런 생각까지 할 줄 아나? 그런 생각도 들 테지.〉
‘잘 보셨어요. 저는 사연이 많아요. 그래서 사람들 만나기가 겁나요,’
‘그래도 아직 나이도 있는 디. 그건 좀.’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식탁위엔 음식이 차려지고 있다. 사내는 종업원이 준비해 주고 간 곱창을 끓이는 것에 열중하고 있었고, 경미는 물끄러미 창밖에 내리는 빗줄기를 응시하고 있다.
곱창과 당면이 함께 넣은 양념과 잘 어우러져 깊은 냄새가 향긋하게 코를 자극할 때쯤 사내는 경미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대충 익었네요. 드시면 되겠네요. 자 우선 술 한 잔 받으시고요.’
‘예! 조금만 주세요.’
‘비도 오는 디 좀 드시고 제가 바래다 드릴 생각인 게.’
‘제 잔도 받으세요.’
‘자 듭시다. 하여튼 시간 내주어서 고맙고요.’
‘아니에요.’
‘술이 달달 하네요. 미스 김도 함께 있고 혀서...’
경미는 사내에게 다시 술을 부어주고 있다. 어쩌면 매우 순박한 청년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있으니 너무 어색하구 만요. 전 덕수여요 강덕수. 올해 스믈 아홉 이구요. 뭐 하는지는 아시지요?’
‘저는 이야기해도 되겠죠? 이름은 김경미라고 해요. 나이는 제가 두 살 밑이네요.’
‘그래요? 그럼 우리 친구처럼 지내요. 두 살 차이면 친구허도 되니 께.’
‘그럼 말동무라도 해요.’
‘자! 한잔 더 들어요. 친구!’
‘시골에 사니 갑갑하지요?’
‘사실 저도 여기서 고등학교까지는 다녔는 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방앗간 일도 그렇고 논밭도 있고 혀서 어머니 땜에 객지도 못 나가보고 이렇게 살아요.’
‘그렇겠네요.’
“경미씨는 어디서 왔는지 물어도..
“전 부산에서 왔어요.”
“어쩐지 시골 사람 같지 않더라니.“
“시골 사람이 따로 있나요. 시골에 사니까 그렇지.”
“허긴 지도 도시에 가면 도시사람 같아 보이겠지요?“
“그럼요, 당연히.”
“오늘 분위기 받쳐 주네.“
사내는 정말 기분이 좋은지 연신 헤헤거리며 술을 마시며 경미의 기분을 맞추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한 사내가 경미는 제법 믿음직해 보이고 대화가 통할 듯 해보였다. 처음엔 경미도 술을 먹지 않으려고 마음을 먹었으나 오랜만에 술을 대하니 마음도 풀어지고 조금은 마시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소주가 세 병째 비워지고 있었다. 사내는 별다른 표정이 없었으나 경미는 얼굴이 화끈거리고 발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하고 있다. 사내는 연신 이야기를 걸어온다.
“저 경미씨! 부모님들은 다 계시고요?“
“예! 그런데 제 가족이야기는 다음에 할 게요. 좀 머리 아픈 일이 있어서요.”
“아! 그렇지! 그 이야기는 안 혀야 허는 건 디. 미안케 됐네요.”
“제가 좀 그래요. 그러니까 여기에 따로 나와 있지.“
“그 그러네요.”
“그러니 앞으로 우리 가족 애기며, 결혼 언제 할 거냐 하는 그런 이야기는 안 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그냥 친구로 지내요.”
“알았어요. 미안 허요.“
아홉시가 가까이 되어 식당을 나섰다. 비가 그치고 밤안개가 스프레이를 뿌려 놓은 듯 엷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덕수는 경미의 옆에 바짝 붙어 서서 길을 걸어가고 있다.
“경미씨! 괜찮지요?”
“예! 걱정 안 해도 돼요.“
“다음에 어디 구경 허고 싶으면 이야기해요. 집에 트럭도 있고 허니까. 둘이 가기 싫으면 다른 사람 있어도 되고.”
“그래요. 친구하기로 했으니.”
“어려운 일 있으면 말씀 허시고 지요 이래 뵈도 읍내에선 알아준다고요.“
“알았어요. 이젠 가보세요. 집에 거의 다 왔네.”
“그럼 여기서...다음에.“
“잘 가세요.”
경미는 덕수가 도로 건너편 골목으로 사라질 때까지 한참 동안을 지켜 보았다. 오늘 또 한사람의 말동무가 생긴 것이었다.
자리에 누운 경미는 쉽사리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아직은 밤공기가 차서 방안을 따뜻하게 해서 자야 하지만 술을 마신 탓으로 몸에서 열이 나 추운 것도 모를 것 같았다. 술이란 게 많이 먹어버리면 취해서 골아 떨어져 버리는 데 적게 먹다보면 괜스레 생각도 많아지고 우울해 지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경미는 이런 저런 생각들이 거미줄이 얽힌 듯 머리를 감싸고 풀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갑자기 아저씨가 보고 싶어졌다. 아저씨는 지금쯤 곤하게 잠을 주무시고 계실까? 먹는 것이 부실해서 몸이 더 허약해 진 것은 아닐까?
화개는 어떻게 변하고, 의신마을은 어떤 형태로 남아있을까? 그리고 아저씨의 집은 어디쯤에 자리 잡고 있는지 궁금해지고 왈칵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외로움이 겹치며 그녀를 엄습해왔다.
진달래꽃 피던 봄이면 고사리며 산나물 캐려 긴 치마끝자락 허리춤으로 끌어올려 칡덩굴 잘라 동여매고 애기풀잎 총총히 밟으며 친구 손잡고 형제봉과 벽소령 부근 산 능선을 넘나들고, 여름이면 울창한 숲속에서 들려오는 계곡물소리 매미소리 들어가며 도라지 캐다 가쁜 숨 모아 쉬며 이마에 송골 맺힌 땀 닦던 모습들... 가을바람에 익다만 상수리 열매 바위틈새 대굴대굴 굴러 내리고, 고삐 매인 염소는 산들바람에 여름 강풍 떨어져 내린 마른 잎 날아들면 앞발 세우고 작은 뿔 들이대던 산자락 삼정 화전지대의 정경이 시골 곡마단 단막극 하듯 파노라마 되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열 살 때 산 아래 국민학교에 공부를 마치고 집에 와 보니 돌아가신 어머니며, 열일곱 살 때 원인 모르게 돌아가신 아버지의 원통한 모습이 이제껏 잊고 지내려 몸부림쳐대던 경미의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어느 새 경미의 두 볼에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가슴이 가볍게 요동치고 있었다. 새벽녘이 다 되어서야 겨우 경미는 잠이 들었다.
아저씨를 마지막 만난 지 한 달이 거의 다 되어갈 즈음 아저씨가 이발소에 나타났다. 친구를 만나러 온 김에 면도라도 좀 하고 가야겠다고 하신다. 경미는 정성들여 면도를 하였다. 오랜만에 보아서 그런지 조금 야위어 보이기도 하지만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다. 그저 이발소 안에서는 손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게 처신해야 하는 것이다.
면도를 마치고 나가시던 아저씨가 이발소 문을 열고 무엇을 물어본다면서 경미를 잠시 불러내었다.
“일하는 데 이야기하기도 그렇고 그동안 잘 지냈어?”
“예! 아저씨도요?“
“음 그래. 내일 무슨 볼일 있니?”
“아니요. 아무 일 없어요.“
“어디 바람이나 쏘일까?“
“예! 좋아요. 그동안 아무데도 못 갔어요.“
“그럼 내가 열시까지 터미널에 올 테니까 거기서 만날까?’
“기다릴게요. 아저씨!”
“그럼 간다. 내일보자.“
“안녕히 가세요.”
아저씨를 배웅하고 이발소에 들어오니 주인아저씨가 경미에게 물었다.
“뭣 땜시 그러냐?“
“저..알고 보니 예전에 부산에서 살 때 알고 지내던 저희 친구 아빠 분 이시네요.”
“그래? 참 세상이 좁네. 그렇게 아는 사이가 되고. 어디 사신 다냐?“
“건너편 하동에요.“
“하동? 저번 일도 그러고 너하고는 인연이 있는가 보다.“
“그런 것 같아요.참 좋은 분이세요.”
“보통 사람은 아닌 거 같은 디.”
“예! 그런가 봐요. 자세히는 모르지만...“
“너 내일 어디 가냐?”
“왜 그러세요?“
“방앗간 집 덕수 그 친구가 날도 풀리고 해서 강에 낚시를 가자는 하는 디 눈치가 너도 같이 갔으면 하더니만.”
“죄송해요. 전 어딜 좀 다녀와야 되어서요.’
“그거야 네 마음이지. 그럼 그렇기 하기로 하고.”
“예! 아저씨!“
다음 날 연희는 버스터미널로 나갔다. 봄철이라 많은 사람들이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이동을 하고 있다. 이곳의 버스는 군내를 다니는 차들도 있지만, 하동에서 남원을 지나 서울로 가거나, 광양에서 남원을 경유하여 서울을 가는 버스들이 이곳을 경유하고 있다.
물끄러미 터미널의 사람들을 지켜보는 순간 하동에서 서울로 가는 버스가 들어온다. 승객들이 몇몇 내리고 사내가 양손에 무엇인가 가득 들고 내린다. 경미는 버스 쪽으로 달려갔다.
“아저씨! 여기예요.”
“아 벌써 왔어?“
“예! 짊이 뭐 이리 많아요?”
“응! 낚시도구하고 먹을 거.“
“낚시 가시게요?“
“응! 봄철에 천렵 간다고 하는 말 들어 보았겠지. 왜 실망이야?“
“아니요. 좋아요. 우리 이발소아저씨도 고기잡이 간대요.”
“거기로 갈 걸 잘 못 한 거 아니야?“
“그긴 제가 가면 재미없어요. 전 아저씨랑 가는 게 좋아요.”
“그러면 다행이고. 저기 하동으로 가는 버스를 타자.“
“하동으로 가시게요?”
“아니야. 조금 가다가 내릴 거야.“
“짐 하나 절 주세요. 먹을 건 제가 준비해도 되는 데...”
“아는 식당에다 주문했어. 네가 이런 거 할 시간이 어디 있어.“
“저 마음먹으면 잘해요.”
“그러면 다음에 실력한번 보여주고. 자 이리 올라 와라.“
“바로 출발하려나 봐요. 그렇죠?”
“기사양반 이 버스 토지 내동리에 섭니까?“
“예! 손님 그때 말씀 하세요.”
버스가 출발하여 시내를 빠져 나오고 있다. 경미는 집 가까운 쪽으로 오지 고개를 낮추었다. 혹시나 주인아저씨나 아는 사람들이 쳐다 볼까봐 마음이 쓰였다.
버스는 시내를 나와 화엄사 근처인 마산면을 갔다가 승객을 싣고 돌아 내려와 토지면 소재지를 거쳐 하동방면으로 향한다. 토지면을 지나자 사내는 내릴 준비를 하라고 하였다.
버스가 세우고 그들이 내린 곳은 산골로 가는 도로가 있는 섬진강가 삼거리지점이었다. 경미는 사내를 따라 도로아래 강가로 내려갔다.
“여기가 어딘 줄 모르지?“
“예! 저는 전혀 몰라요.‘
“저 위에가 피아골인데, 피아골하면 역사가 많은 곳이야. 계곡 꼭대기가 지리산 등선이거든 이곳은 옛날부터 산이 험하고 골이 깊어서 임진왜란 때도 그랬고, 조선말기, 여순 반란사건, 6.25 사변 등 큰 사건이 있을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죽었지.”
“그래서 피아골이에요? 피아골이라는 말은 어려서 들었어요.’
“사람들이 이름이 그래서 오해를 하지만 사실은 너의 고향처럼 피전이 많아서 피아골이라 하는데 피전은 너희 동네도 예전에는 있었지? 화전을 피전이라고도 부르거든.”
“아! 이곳에도 화전이 많았어요?“
“골이 깊고 험하니까 숨어 사는 사람들이 많았겠지.‘
“여기도 가슴 아픈 사연들이 많겠네요?“
“그렇겠지! 우리나라는 곳곳이 한이 서린 곳이 많을 거야.”
“참! 예전에 6.25사변 나고 나서던가. 오십 년도 중반엔가 피아골이라는 영화도 있었다지 아마. 그 땐 반공영화였었다고 하는데 사실하고는 좀 다를 거야. 나도 이곳에 관심이 많은 데 어려서 일이라 영화는 보지 못하였고, 책에선가 본 기억이 있거든.”
“그래요? 우리 동네랑 비슷한 곳이네요.“
“그런 편이지.”
“아무튼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이 불쌍해요. 그런 사람들이 항상 피해를 보게 되거든요.”
“그렇지 그런 걸 생각하면 괜스레 마음이 우울해져.”
“그럼 이 강물에 고기들도 마음이 우울할 거여요.“
“제 할아버지 할머니 때 이야기니까 까맣게 모를 거야 걱정 마!”
“아저씨 여기가 좋아요. 여기 앉아요.“
“그러자. 날씨도 좋고 물도 참 맑다.”
강가엔 버들강아지는 벌써 피어서 하늘하늘 늘어져있고, 바다를 향해 가는 지리산 자락의 물줄기가 바위에 부딪쳐 은빛 물보라를 만들어내며, 봄날의 따스한 햇볕이 굴절되어 데워진 물속에선 크고 작은 고기들이 봄나들이를 즐기고 있는 듯 했다.
경미는 날씨도 좋지만 아저씨와 함께 호젓한 강가에서 같이 이야기를 하며 즐긴다는 게 너무 기분이 좋았다.
“아저씨! 저는 낚시 처음인데요.“
“나도 잘 하지는 못해. 그냥 봄날이라 볕도 쏘이고 물에 발도 담그고 싶어서 나오자고 했어.”
“아무래도 좋아요. 저도 낚시 할래요.“
사내는 벌써 자리를 잡고 앉아 낚싯대를 꺼내고 미끼통에서 미끼를 꺼내어 낚싯대에다 미끼를 끼우고 있다.
“미끼가 지렁이네요?”
“이런 곳에서는 지렁이가 제일이야. 그리고 강에 있는 돌 밑에 벌레가 있거든 그것도 고기가 좋아해.”
“제 것도 미끼 좀 끼워 주세요.“
“이걸 가지고 해. 이리 와 봐 내가 시범을 보여 줄 테니.”
사내는 낚싯대를 등 뒤로 젖혔다가 앞으로 휘둘렀다. 그리고 물살에 휩쓸려 내려가는 찌를 바라보고 있다. 물결의 굴곡에 의하여 찌는 수면을 오르내리고 있다.
“낚싯대를 이렇게 들고 있다가 저 찌가 물속으로 쑥 내려가면 잽싸게 낚싯대를 위로 채는 거야.”
“그런데 저는 찌가 얼마나 내려가야 하는 지 잘 모르겠어요.“
“그냥 기분 당기는 대로 하면 돼. 어차피 전문가가 아니니까.”
한참을 낚싯대를 들고 있어도 경미는 고기가 물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나 물살에 낚싯대 쓸려 내려가면 다시금 위쪽으로 들어서 옮겨야 하니 신경을 안 쓸 수도 없는 노릇이다. 몇 번을 그렇게 하고 있는 데 사내가 근처에서 처다 보더니 한마디 하였다.
“어이! 낚시에 미끼가 없잖아. 고기가 다 먹어 치웠네.“
“엥 그러네요. 언제 먹었지 이 녀석들이.”
“가져와 봐 미끼 끼워 줄게.“
“불쌍한 고기들 오늘 제가 밥이나 많이 줄까요?”
“그렇게 하든지.“
사내는 경미의 낚시에 미끼를 끼워주고 자신의 낚싯대를 주시하고 있다. 간간이 훈훈한 바람이 불어와 얼굴을 스쳐간다. 십 여분의 시간이 흘렀다.
“앗 차! 잡혔다. 이거 봐라 제법 크다.”
“아저씨! 뭐예요? 피리.“
“피라미다. 피라미! 크지?“
“어떻게 하실 거여요?”
“통에다 담아야지.“
“그러면 안 죽나요?”
“잘 안 죽는 데. 죽어도 할 수 없고.“
“죽으면 안돼요?”
“아니 왜? 죽어도 회해먹어도 되고 아니면 매운탕을 하든지.“
“아 안 돼요. 그러지 마세요. 고기들이 불쌍해요.”
“뭐라고?“
경미는 아저씨가 잡은 지은 죄 없고 힘없는 고기들을 자신들이 회를 해 먹고 매운탕을 끊인다는 말에 갑자기 고기들이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오랫동안 피 흘림의 역사를 되풀이한 피아골 골짜기 아래에서 태어나서 자라 온 고기들 이라고 생각하니 서러운 마음이 들었던 것이었다.
“아저씨! 이곳의 고기들을 도저히 잡아먹을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죄송해요.”
“아니다. 죄송할 것 없다. 네 마음을 이제 이해할 것 같다. 먹을 거 많이 가져왔으니 고기는 안 먹어도 된다.”
“심심하니 잡았다가 살려주기로 해요. 사람을 피하는 훈련도 할 겸.“
“그러자구나. 넌 마음도 참 여리다.‘
‘미안해요. 모처럼 낚시 오셔서.’
“아니다. 너 말 들으니 나도 그런 생각이 든다. 개념 치 마라.”
두 사람은 낚싯대를 강물에 걸쳐 놓고 나란히 앉아 강물을 바라다보고 있었다. 한 동안 말이 없다가 사내가 입을 열었다.
“경미야! 네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는데 세상 살아가려면 어릴 적 아픈 추억은 빨리 잊어버려야 하는 거다.“
“그렇게 하려고 하는데 그게 잘 안되어요.“
“쉽지는 않겠지! 나도 자식에 대한 안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거든.“
“그래도 아저씨는 아드님과의 일이니까 정말 안 좋은 생각 하시면 안 되겠어요.”
“그렇겠지! 그런데 내가 너한테 말은 그래도 사실은 나도 잘 안 돼.”
“시간이 필요할까요?“
“아무려면...”
“아저씨를 만나면 전 우리 부모님을 만나는 것 같아요.“
“그래? 그러면 정말 다행이고. 난 늙은 사람이 괜스레 너 시간 뺏는 게 아닌가? 해서 말이야.“
“그렇지 않아요. 아저씨하고 같이 있으면 마음이 편해져요.“
“나도 사실은 처음부터 그랬어. 네가 내 딸이라도 되었더라면 하는 생각도 들더라.”
“고마워요. 마음도 의지할 곳 없는 저를 생각해 주시고...“
“넌 언제까지 그곳에 있을 거니?”
“모르겠어요. 지금은 갈 곳을 정할 수 없어요.“
“나는 가능하면 네가 가까운 곳에서 네 장사라도 했으면 좋겠다. 내가 가계 하나정도는 알아 봐줄 수 있거든.”
“아저씨 고맙긴 한데요. 조금만 더 생각해 보고 말씀 드릴게요.“
“네 마음 편할 대로 해라. 나의 일방적인 생각이니까.“
가져온 보자기를 펼치고 간식을 꺼내었다. 과자며, 오징어와 부침개도 있다. 식당에다 부탁을 해서인지 음식이 맛이 있었다.
오후로 접어들자 햇살이 제법 따스했다. 경미는 다리를 걷고 물속으로 들어갔으나 아직은 강물이 차갑다. 낚시를 하지 않으니 심심하였다. 그래서 피아골 쪽으로 올라가 보기로 했다. 피아골 내동리 입구는 처음부터 좁은 계곡으로 시작된다. 피아골의 최상단은 지리산 능선을 이어지는 삼도봉이고 조금 내려오면 통곡봉도 있다.
골자기는 한없이 길게 들어가고 있어 한 시간 정도를 걸어서 들어가다 길가 잔디밭에 자리를 잡았다. 주변 산허리마다 진달래가 피어나기 시작하여 벌 나비들이 봄철 식생활 준비를 위하여 분주하게 날개를 접었다 퍼덕이기를 반복해 댄다.
예전의 이곳 골자기 사람들의 생활은 어떠했을까? 피치 못할 사정에 있어 세상과 단절된 이 골자기에 숨죽여 살면서도 행여나 세상악연이 묻어 들어올까 전전긍긍하며 살아가야 하는 삶이 아니었을까?
연희는 자신의 고향과 이곳에서의 삶이 다를 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저씨! 이곳에 오니 저희 고향에 온 곳처럼 기분이 이상해요.“
“그래! 이곳도 내가 오면서 이야기 한 것 같이 사람들이 은둔생활을 하며 화전을 일구고 살았고, 그리고 나라의 큰 일이 있을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학살되었던 곳이란다.”
“죽은 사람들이 이곳 사람들이에요?“
“다 그런 건 아니지 바깥에서 잘 못을 저질러 이곳에 숨어 살다 변을 당할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바깥세상에서 사람들을 이곳으로 데려와 집단 학살을 했다고 봐야겠지.”
“골자기가 깊고 산이 험해서 바깥에서는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겠어요.”
“이곳은 아니지만 우리 고향사람들도 이곳 지리산 자락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단다.”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네요. 이런 조용한 사골자기를 그렇게 피로 물을 들이다니...”
“네 말이 맞다. 같은 민족끼리 총칼을 들고 싸우고, 서로 죽이고 죽임을 당하고 하다니.”
“아저씨는 전쟁에 대해 아세요?“
“나도 6. 25땐 너무 어려서 전쟁에 대한 기억은 별로 겪어보진 못했지. 어른들의 이야기나 책에서 읽은 내용을 가지고 대략 아는 거야.”
“저도 어릴 적 그런 이야기를 수없이 들었어요.“
“아마 그럴게다. 가만있자! 시간이 제법 많이 되었네. 이제 그만 내려갈까?”
“그러세요. 아저씨!“
경미는 골자기를 내려오며 정겨운 고향마을과 같은 산골의 흙냄새와 함께 그 옛날의 안타까운 사연에 대한 숙연한 마음이 가슴속에 스며들고 있었다.
부산의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난번에 전화를 할 때 몸이 아프다더니 결국은 병원에 입원을 하였다는 것이었다. 경미는 주인아저씨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하루 시간을 내어 부산을 다녀오기로 마음먹었다. 새벽 일찍 일어나 이발소로 가서 이발준비를 해주고 첫차를 타고 부산으로 가서 부민동에 있는 부산대학병원으로 찾아갔다. 현관을 들어서다 병동 쪽 계단을 내려오는 언니를 만났다. 언니는 예상과는 달리 명랑해 보였다.
“언니! 어떻게 된 건데?”
“응! 경미야 왔니? 뭐 하려 먼 곳까지 왔어?“
“이렇게 다녀도 괜찮아?”
“그저께 검사를 했는데 위암이래. 그런데 다행히 초기라서 앞으로 치료만 잘하면 된다고 하더라.”
“정말 다행이다. 나 얼마나 걱정했다고.”
“고맙다. 그래도 여길 떠나도 이렇게 찾아와 주고. 그래 견딜 만하니?“
“그런대로. 힘든 줄은 모르겠어. 언닌 어때?”
“몸도 아프고 해서 이젠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돈 모아 놓은 것도 없고 사는 게 서글프다는 생각이 든다.”
“다 그렇지 뭐. 나도 그래.“
“어디 좋은 사람 있으면 결혼해서 살아. 지난 일은 조금도 생각하지 말고. 여기 있던 애들도 더러 결혼해서 잘 살더라.”
“그래도 난 조금도 결혼 하고 싶다는 마음은 없어.“
“언제까지 혼자 살아갈 수 있겠니 너도 너 혼자라면서.”
“몰라...사는 게 다 그래 보여.“
“여기 있어라. 나 잠시 검사실에 다녀올게.”
“알았어요. 언니!“
환자복을 입고 복도를 걸어가는 언니의 뒷모습을 바라다보니 경미는 마치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만 같았다. 아니 자신은 저 보다도 더욱 비참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는 그래도 부모형제는 있지 않는가?
검사실을 다녀 온 언니는 표정이 밝아 보였다. 자신의 병세에 관한 좋은 결과를 얻었나 보다.
“검사 결과가 조금 불안해서 다시 검사를 했는데 생각보다는 좋다고 하는가 봐. 어쩌면 빨리 퇴원을 하게 될 것 같아.”
“언니야! 정말 다행이다. 이제 퇴원하면 무조건 고향집으로 들어가라.“
“몰라! 나도 이런 모습으로 들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어.”
“누가 안다고 그래. 우린 그래도 열심히 산 죄밖에 없다고 생각해. 못 배우고 가진 것 없으니까 이런 생활을 했지. 누가 하룬들 하고 싶어서 했어?”
“그야 그렇지만...”
“언니! 우리 같은 사람들 모진 마음 안 먹으면 이 세상 못살겠더라. 난 언니보다 나이 적어도 경험이 많잖아.”
“그래 넌 생각하는 게 나보다 낫더라.“
“나은 건 아니고.”
“어디 가서 점심이나 먹고 갈래. 나 옷 좀 갈아입고 내려올게.”
“그래도 돼?”
“간호원한테 이야기 하면 돼. 음식만 가려 먹으면.”
“그래도 병실엔 한번 가보자. 여기까지 왔는데.“
“그렇게 하든지.”
엘리베이트를 타고 병실로 올라갔다. 소독 냄새가 병실 안에 가득하다. 옷을 갈아입고 병원 후문을 나와 식당으로 들어갔다. 경미는 언니를 생각해서 육고기와 짜거나 매운 음식을 피하여 주문을 하였다. 먹고 살기 위해 사는데 먹는 것을 피해야 한다니. 어쩌다 이런 병까지도 없는 사람을 잘 알아보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언니는 밥을 덜어 경미에게 준다.
“언니 왜 덜어?“
“난 어차피 많이 먹으면 안 돼. 너나 많이 먹어 먼 길 왔는데 배고프겠다. 갈 때도 그렇고.”
“하긴 오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
“언니 빨리 병 낳고 밥 많이 먹고 건강해라.”
“걱정 하지 마! 너나 잘해.“
밥을 먹고 병실까지 올라갔다 가겠다는 경미를 여인은 자꾸만 병원현관 앞에서 가라고 하였다. 경미는 그러한 언니의 손을 붙잡고 한참동안 있다가 손을 흔들며 돌아섰다.
“언니! 잘 있어.”
“경미야! 잘 가라. 다음에 또 보자.”
경미는 눈시울이 뜨거워져 오고 있음을 느꼈으나 언니에게 보일까봐 돌아서서 손을 흔들며 병원정문을 빠져나왔다. 시외버스를 타고 구례로 돌아오는 경미의 시선은 내내 창가를 향하고 있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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