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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함께 하시던 劉灐心 元老牧師님이 別世하셨습니다. 장례를 치루느라 카페에 들어와 빈소도 차리지 못하였습니다. 목사님은 지난 10일 토요일 오후 6시 20분경에 주님의 품에 안겼습니다. 그날 저는 주일 준비를 하다가 문득 목사님이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전도사를 불러서 같이 가자고 하였습니다. 사실 우리교회 김현용 전사사님은 아직 우리교회 원로목사님을 한번도 뵌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같이 가고 싶었습니다. 같이 가서 목사님을 뵌 시각이 오후 4시 30분경이었습니다. 저는 목사님께 가면 제일 먼저 하는 말이 [제가 누구입니까? 알아보시겠습니까?]라는 말입니다. 그 날도 저는 내가 누군지 물었습니다. 목사님은 예전과는 달리 정신이 또록하셔서 하시는 말씀이 [우리교회 목사님 아니요] 하셨습니다. [그래 맞습니다. 목삽니다.] 라고 인사를 주고 받았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찬송 338장 [내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을 두번이 불렀습니다. 목사님의 목소리는 우렁찼습니다. 그리고 손을 잡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목사님의 손과 발은 많이 부어 있습니다. 기구를 통하여 소변을 배출하고 있었지만 목사님의 손과 발이 많이 부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기도를 끝내자 목사님은 -아멘- 소리를 크게 하셨습니다. 목사님은 이 젊은 목사가 가서 해 주는 기도를 매우 좋아 하셨습니다. 옆에 있던 물티슈로 목사님의 눈과 이마를 딲아 드렸습니다. 목사님은 묶여 있는 손을 풀어 달라고 하셨지만 전 그것을 풀어 드리지를 못했습니다. 목사님 이것을 풀면 목사님도 모르게 손이 호스 있는데로 가서 호스를 건드립니다. 그래서 간호사들이 손을 묶어 놓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잠깐이라도 풀어 드렸으면 좋았을 것을...... 그리고 집에 와서 주일 준비를 하고 있는데 큰 따님 유미숙 권사님으로 부터 위급하다는 전화가 왔습니다. 아니 조금 전에 [제가 가서 뵙고 왔는데요] 하였지만 전화는 다급하였습니다. 추석 전이라 앞에 갈 때 시내가 많이 밀려서 이번에는 지하철로 가기로 하고 지하철을 타고 서대신동쯤 가고 있을 때 아니 벌써 목사님이 별세 하셨다는 전합니다. 조금전까지 찬송을 같이 했고, 조금전까지 기도를 같이 했고 조금전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가니 최종정 장로님과 유미숙 권사님 그리고 유진열 집사님 내외가 와 계셨습니다. 동아대병원 영안실에 연락을 해서 시신을 옮기고 집에 와서 주일 준비와 장례 준비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추석연휴 때문에 5장을 하게 되고 이제 목사님을 우리 부산성동동산에 어제(9.14) 모든 성도들의 애도 속에 모셨습니다. 장례 예배는 교회당에서 함해노회장으로 치루게 되었습니다. 서울에서 노회장님과 안동신 회계장로님이 직접 오셔서 장례에 참여하여 주실 뿐만 아니라 그 밖의 많은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이 서울등지에서도 오셔서 같이 애도해 주셨습니다.
우리교회 60주년이 있기 전에 언젠가 제가 목사님을 심방하였습니다. 그 때 내가 목사님께 말씀을 하였습니다. 목사님 올해 우리 교회가 몇살인지 아시나요.... ...... 목사님! 올해 우리교회가 60주년입니다.... 그래서 60주년 행사를 크게 합니다. 꼭 예배에 참석하세요.....
그렇지만 목사님은 그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시고 사모님만 참석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목사님께 말씀했습니다. 목사님 꼭 60주년 행사를 지날 때 까지는 건강하셔야 합니다... [그래, 그래야지...] 목사님은 그 약속은 지키고 가셨습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목사님 고마왔습니다. 목사님 미안합니다.....
고인의 약력 및 유족 사항 1923년 2.6일 함남 출생 1943년 함흥영생중,고교 졸업 1944년 평양신학교 본과 입학 1952년 장로회 신학대학교 졸업 1963년 일본 동경청산학원 대학 카운셀링 연구소 수료 1963년 일본 동경 국립위생연구소 연구 1964년 일본 동경신학대학 대학원 조직신학석사 1964년 일본 상담심리학회 회원 1981년 7.3 미국 린다피스타 신학대학 명예신학박사(D.D) 교회사역 1947년 가편교회 전도사 1948년 함흥중앙교회 전도사 1949년 함흥 북부교회전도사로 시무 중 1950년 흥남 철수 작전 때 성도들과 월남 1951년 거제이북교회를 설립하고 대광중학교 거제분교장을 역임 1952년 부산 한양교회목사(한양공대에서 설립) 1954년 현 부산성동교회(구,관북교회) 목사로 부임 1993년 부산성동교회 은퇴 원로목사 추대 1994년 대한예수교 장로회 함해노회 공로목사 추대
활동사역 1956년 장로회 부산신학교 강사(1990년까지) 1964년 장로회신학대학 목회상담학 강사로 출강(1966년까지) 1968년 1970년까지 장로회 부산신학교 교장서리 1966년 부산목회연구회를 조직, 강사역임 1967년 부산 YMCA 이사로 6년간 활동 1967년 부산기독교 사회윤리위원회 및 부산 크리스찬 아카데미 원장 1974년 부산목회신학대학원 교수 및 원장(1979년까지) 1985년 동의대학교 행정대학원 강사 1985년 부산카운슬러대학 강사 1989년 서울 한국임상목회대학원 출강 1989년 부산임상목회대학원 원장(1990년까지) 저서 목회심리학(1979년,도서출판 한글) 임상목회상담(2001년, 쿰란출판사) 역서; 죽음과 사랑(빅터 E. 프랭클러 저) 1980년, 3,15
가족 미망인: 김순이 사모
삼열(장남):관동대학교 교수 정진영(자부)
미숙(장녀):부산대,고신대학교 강사 최종정(사위):경남정보대학교 교수
진열(차남):건축사 이정임(자부)
미영(차녀) 오기봉(사위):서울대학교 교수
손자,녀: 성현,기현, 민호, 아현, 희현, 지유 외손자,녀: 최지호, 최지용, 오대현, 오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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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목사님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