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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탐구] 아피싯 웻차치와 태국 총리 (하)
Abhisit Vejjaji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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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Reuters/Damir Sagolj) 레드셔츠 시위대가 유혈 무력진압된 후, 아피싯 총리는 2010년 6월10일 정부청사 앞에서 종교행사(고사)를 진행했다. 너무도 많은 사람이 죽었기에 자신의 손에 묻은 피를 조금이라도 닦아보고자 하는 심정이었으리라. 태국의 2010년 봄 학살에는 그 가해자가 명료하지 않다. 다만, 주요한 책임자 5인 정도를 추린다면, 아피싯 역시 분명하게 그 안에 들어갈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크세] |
1. 정치적 저항과 정국의 흐름
아피싯 총리의 재임 중, "2006년 쿠테타"에 반발하며 결성된 "반독재 국가민주연합전선"(UDD: 일명-레드셔츠)가 주도한 수차례의 시위가 발생했다. 레드셔츠(UDD) 운동은 아피싯 정권의 퇴진과 새로운 총선실시를 주장했다.
레드셔츠 시위 중 가장 큰 규모로 발생한 것은 "2009년 4월 송깐 시위"와 "2010년 3~5월 시위"이다. 이 두 시위는 결국 시위대와 군대의 충돌로 번졌고, 2010년 시위의 경우 91명이 사망하고 2,000명 이상의 부상자도 발생했다.(주125)(주126)(주127)
1.1. 2009년 송깐 소요
2009년 4월 초, 탁신 친나왓(Thaksin Shinawatra) 전 총리가 "2006년 쿠테타"는 "태국 추밀원"(Privy Council: 국왕 자문기구) 위원들이 기획했고 이들이 아피싯을 총리에 앉히는 음모를 꾸몄다는 비디오 연설을 했다. 그 직후 UDD는 방콕에서 대규모 항의시위를 시작했다.
태국 전통 설날인 송깐(Songkran, 송크란) 연휴가 시작되면서 방콕의 시위는 고조되었다. 결국 반정부 레드셔츠 시위대와, 친정부 지지자들, 그리고 일반 시민들 사이의 충돌도 발생했다.(주128) 아피싯은 긴장이 고조되자 방콕 일원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반정부 시위대를 "국가적인 적들"이라고 비난했다.(주129) 그는 정부가 TV 방송들을 검열할 수 있도록 하는 총리령도 선포했다.(주130) 한 TV 언론인은 군대나 정부에 해가 될만한 장면은 보도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보고하기도 했다.(주131) 시위기간 중에 탁신은 "D-스태이션" TV에 출연하여 푸미폰 아둔야뎃(Bhumibol Adulyadej: 라마 9세) 국왕이 이 사태에 개입하여 상황을 종식시켜 달라고 청원하기도 했다.(주132)
원래 비상조치 선포에 관한 입법은 2005년도에 탁신 정부가 의회를 통해 제정한 것으로, 당시 아피싯의 "민주당"은 이 법안이 권위주의적인 것이라고 비난했었다.(주133) 어찌되었든 비상조치가 발동되자 5인 이상의 집회가 금지되고, 언론은 우려를 자아낼 수 있는 뉴스들을 보도하는 일이 금지되었다.(주134)
(사진) 이튼스쿨과 옥스포드 대학을 졸업한 아피싯은 세련되고 자연스런 포즈와, 품격높은 서구식 은유가 섞인 화법을 구사한다. 하지만 그의 발언과 정책적 행동 사이엔 너무도 거대한 괴리가 나타난다.
4월12일, 시위대는 방콕의 내무부 청사 앞에서 아피싯의 리무진 차량을 에워싸고 창문에 물건을 집어던졌다. 아피싯은 그곳을 무사히 빠져나왔지만, 참모 한사람이 부상을 당했다. 정부 대변인인 빠니탄 와타나요꼰(Panithan Wattanayakorn)은 이 사건이 잘 계획된 암살시도라고 말했고, 총을 든 복면의 괴한이 시위대가 선팅된 차량의 유리창을 부수길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안당국의 카메라에 촬영됐다고 주장했다.(주135) 하지만 보안당국은 증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4월13일(월) 여명을 기해 "전승기념탑"(Victory Monument) 인근의 딘댕(Din Daeng) 사거리부터 메인 도로를 차단하면서, 시위대 해산에 나섰다. 이 진압작전에서 최소 70명 이상이 부상했다.(주136)(주137)(주138) 정부는 같은 날에 "D-스태이션" TV가 방콕으로 시위대를 모여들도록 하여 충돌을 일으켰다면서, 이 방송국을 폐쇄시켰다. 이 외에도 평소 UDD를 지지하는 것으로 의심받던 몇몇 지역 라디오 방송국들도 폐쇄됐다.(주139)
진압군과 시위대 사이의 충돌은 방콕 시내 곳곳에서 벌어졌고, 탁신 및 시위대 지도부 13인에 대한 체포영장도 발부됐다. 4월 14일, 일부 시위대 지도자들이 경찰에 자진 투항했다.(주140) 정부 청사에서 시위를 벌이던 사람들에 대해서는 사진을 찍어 신원을 확인했다. 그후 태국 정부는 수십 명의 시위대 지도부에 대해 영장을 발부하고, 탁신의 일반여권을 말소시켰다.(주141)
정부측 발표자료에 따르면, 이 시위기간 중에 총120명의 사람들이 부상했는데, 군인이나 친정부 지지자, 혹은 일반 시민도 섞여 있긴 했지만 부상자의 대부분은 UDD 시위대였다.(주142) 또한 딘댕사거리 주변의 진압작전에서 최소 1명의 UDD 지지자가 총상을 입고 사망했다. 하지만 군측은 사망자의 총상이 군대에서 사용하는 총기와는 다른 무기에 의한 것이라 주장했다. UDD는 나중에 이 소요에서 최소 6명의 시위대가 사망했지만, 진압군이 사체를 수거해가버렸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증거를 제시하진 못했다.(주143) 이후 UDD 시위대 사망자 중 두 사람의 사체가 짜오파야(Chao Phraya: 차오프라야) 강에서 떠내려오면서 발견됐다. 이들은 양손이 뒤로 묶여진 채 심하게 구타를 당한 상태였다. 하지만 경찰은 이들의 사망이 정치적 동기에 의한 것인지에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주144) 아피싯의 측근인 사띳 웡논떼이(Satit Wongnontaey)는 딘댕사거리 진압작전 당시 친정부 지지자 2명이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고 주장했지만, 증거를 제시하진 못했다.(주145)
"방콕 광역시청"은 이 소요로 약 30만 달러의 재산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산했다. 여기에는 파괴되거나 불타버린 31대의 버스들도 포함됐다.(주146) 꼰 짜띠꽈닛(Korn Chatikavanij) 재무부장관은 이 사태가 정부의 채무비용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 주장했지만, 신용평가 기관인 "S&P"(Standard & Poor's)는 태국의 국가신용도를 "A"에서 "A 마이너스"로 낮췄다.(주147)
(주128) MCOT, "Hit-and-run driver plunges car into UDD protesters", 2009-4-9.
(주129) The Age, "Sacrificing democracy won't end Thailand's chaos", 2009-4-15.
(주130) Committee to Protect Journalists, "Thai government issues censorship decree", 2009-4-14.
(주131) IPS News, "With Censorship, Thais Turn to Websites and Foreign Media", 2009-4-19.
(주132) The Economist, "The trouble with the king", 2009-4-16.
(주133) New York Times, "Thailand's Failed Experiment?", 2009-4-16.
(주134) MCOT, "Armour, troops on streets; Gunfire in scuffle after PM declares emergency", 2009-4-12.
(주135) Asia Times, "My friend is my enemy in Thailand", 2009-5-7.
(주136) The Times, "Abhisit Vejjajiva won the media battle but the hardest job is yet to come", 2009-4-14.
(주137) The Times, "Thai troops open fire on protesters in Bangkok", 2009-4-13.
(주138) The Telegraph, "Human Rights Watch calls for Thailand inquiry after riots", 2009-4-16.
(주139) MCOT, "Community radio stations ordered to close temporarily", 2009-4-16.
(주140) The Guardian, "Thailand issues Thaksin arrest warrant over Bangkok violence", 2009-4-14.
(주141) The Telegraph, "Thailand revokes passport of ex-PM Thaksin Shinawatra", 2009-4-15.
(주142) BBC News, "Army pressure ends Thai protest," 2009-4-14.
(주143) Bangkok Pundit, "It Begins", 2009-4-13.
(주144) Straits Times, "Police probe 'Red Shirt' deaths", 2009-4-16.
(주145) The Nation, "One shot dead by red-shirted protesters".
(주146) MCOT, "Bt10 million BMA property damage from protest; religious rites to be held", 2009-4-16.
(주147) XIn Hua, "Thai Minister: gov't borrowing cost to be minimally hit by rating downgrade", 2009-4-16. |
1.2. 2010년 3~5월 시위와 학살
아피싯 정부는 2010년 2~3월에 걸쳐 반정부 시위를 억누르기 위한 검열 및 질서유지에 관한 여러 입법활동을 했다. 그후 3~5월에 레드셔츠(UDD)의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고, 이에 대한 강제진압 과정에서 90명 이상이 사망하고 2,000명 정도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소요는 태국 전역으로 빠른 속도로 확산됐다. 아피싯은 전국적인 검열과 구속조치를 실시했다.
태국 "대법원"의 "고위정치인 관련 형사부"(Criminal Division for Holders of Political Positions)는 2010년 2월 26일을 탁신 전 총리의 동결자산 760억 바트(22억 달러)의 처리에 대한 최종적인 선고공판을 예정했다. 이 자산의 동결은 "2006년 쿠테타" 직후 군사정권이 실행했고, 이후 수년 간 끌려오던 재판이었다. 이 선고공판을 앞두고 아피싯은 2009년 4월 소요와 같은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북부 및 북동부 지방에 38곳의 보안센터들을 설치하여 폭력사태 발생에 대비했다. 또한 총 2만명에 이르는 병력들도 배치됐다.(주148) 그리고 농촌 주민들에게 종종 불만사항을 제기하고, 시위조직을 안내하기도 하던 지역 라디오 방송국들도 감시하기 시작했다.(주149)
2월 7일, 아피싯 정부의 대변인은 반정부 지도자들을 "개들"에 비유하고, "국가 통신위원회"(National Telecommunications Commission: NTC)로 하여금 친-레드셔츠 성향의 지역 라디오 방송국들을 단속케 할 것이라 다짐했다. 그는 또한 만일 현행법 상으로 NTC가 그러한 단속을 할 수 없다고 한다면, 특별법을 통과시켜 단속이 가능토록 하겠다고도 밝혔다.(주150) NTC의 사무총장 권한대행 역시 정부측에서 2월의 탁신 재산관련 선고공판을 앞두고 설치한 "상황감독위원회"(Situation Monitoring Committee) 위원으로 임명되었다.(주151)
아피싯 정부는 외교가 및 외국 상공회의소들에 대하여, UDD가 "폭력사태를 촉발"시키려 하고 있으며 "정부와 사법체제를 마비시키기 위해 방콕 및 여타 지역에서 선동을 강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주152) 하지만 UDD 측은 선고공판일인 2월 26일에 시위를 하지 않을 것이라 발표하고, 자신들은 3월 14일에 시위를 시작할 것이라 밝혔다.(주153)
3월 14일(일)의 행진계획을 앞두고, 아피싯은 전국적으로 경계태세를 더욱 강화했다. 시위가 있기 한두 주일 전부터 방콕으로 들어오는 차량행렬을 검색하기 위한 검문소들이 설치됐다. 특히 UDD 세력이 강성한 북부 및 북동부 지방으로부터의 유입에 대해서는 더욱 더 그러했다.
아피싯은 자당인 "민주당" 출신 시장이 이끌던 "방콕 광역시청"에 대해, 방콕 일원에서 최소 2곳의 폭탄테러와 30~40개소의 수류탄 공격이 진행 중이란 첩보를 보고받았다며 말하기도 했다.(주154) 그는 또한 3월 14일에 파괴활동을 하려는 테러리스트들이 있다는 보고도 받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육군 대변인인 산센 깨으깜넛(Sansern Kaewkamnerd) 대령은, 이같은 발언에 대한 질문을 받자, 자신을 그런 정보를 알지 못한다고 대답했다.(주155)
3월 9일, 아피싯은 11~13일 사이에 군대가 질서유지를 할 수 있도록 국내보안법(ISA)을 발동하고, 자신은 군부대로 거처를 옮겼다.(주156)(주157) 방콕 주변에는 5만명에 달하는 강력한 보안군 병력이 배치되었다.(주158)
3월14일, 태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시위대가 방콕으로 모여들었고, 시위도 평화롭게 진행했다.(주159) 하지만 대부분 정부 및 군대가 소유한 태국의 공중파 방송은 25,000명만 모였다고 보도했다.(주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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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15일 아피싯 총리의 국회해산 거부 발표가 있은 직후, 오토바이를 탄 UDD 지지자들이 평화유지작전본부로 사용되고 있는 보병 제11연대 본부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AP Photo/David Longstreath) |
시위 전후 수주일간 시위대의 집회장소에서 멀리 떨어진 곳들에서 수십 건의 폭탄이 폭발했다. "라차빠송"(Ratchaprasong, 라차프라송) 사거리에서는 포르셰 1대가 시위대의 오토바이 행렬을 덥쳐 몇 사람이 부상을 입기도 했다. 또다른 곳에서는 한 여성이 시위대 군중을 향해 자신의 차를 몰고 돌진하기도 했다. 하지만 붙잡히지 않은 채 도망쳤다.(주161) 새로운 총선의 즉각적인 실시를 요구한 시위대와 정부 사이에 협상도 진행됐지만, 아무런 결실없이 끝났다. 아피싯은 결국 4월8일에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4월10일 밤, 진압군이 시위대를 농성장인 판파 다리(Phan Fah Bridge)에서 몰아내려 하다가 실패하여 폭력적인 충돌이 발생했다.(주162) 이 충돌에서 23명이 사망했고, 그 중에는 일본인 카메라맨 1명과 군인 몇명도 포함됐다.(주163)(주164)(주165) 부상자는 800명이 넘었다.(주166) 군대는 실탄과 고무탄, 그리고 최루가스를 사용했고, 이에 대해 시위대는 돌을 던지며 맞섰다. 군 당국은 병사 1명이 날아온 돌에 머리를 맞은 후 뇌부종(cerebral edema)으로 사망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주167)
4월16일, 보안군은 시위대 지도자들이 묶고 있던 한 호텔을 급습했다. 수텝 트억수반(Suthep Thaugsuban) 안보담당 부총리는 이들 지도자들에 대해 "테러리스트"라며 공격한 바 있었다. 하지만 시위대 지도부는 검거 직전에 모두 탈출했다.(주168) 같은날, 아피싯은 수텝 부총리를 비상사태 책임자에서 사퇴시킨 후, "왕립 태국육군"(RTA) 사령관인 아누퐁 파오찐다(Anupong Paojinda) 장군을 책임자로 임명했다.(주169)
한편 친정부 시위대까지 UDD 시위대 인근에 출몰하면서 긴장은 더욱 고조됐다. 8월22일에는 방콕에서 일련의 폭탄 공격이 발생하여, 1명이 사망하고 외국인 4명을 포함한 85명이 부상을 입었다. 그 중 일부는 유탄발사기에 의한 공격이었는데, 정부측은 이것이 UDD 시위대의 집회구역에서 발사됐다고 주장했다.(주170)
5월 초가 되자, 정부군은 시위대의 메인 집회장인 "라차빠송 사거리" 일대를 장갑차와 저격수들을 배치하여 봉쇄했다.(주171) 이후 5월19일의 최종 진압작전이 있기 직전, 5월 13일 밤 세댕(캇띠야 사왓디폰) 장군에 대한 저격을 시작으로, 이후로 꼬박 일주일간 정부군은 저격수들을 이용한 "인간사냥"을 펼쳤고, UDD 농민들의 흐르는 피가 그들의 옷이 되었다. 이 일주일간 약 50명이 사망하고 300명 가까운 사람들이 총상을 입었다. 그것은 느리게 진행되는 학살이었다. 이 시위기간 중 외신기자만도 2명이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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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이 죽였다. 세계적인 대학인 "옥스포드 대학"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아피싯 웻차치와는, 이제 이 명문대학 최초의 대량학살 책임자 경력을 지닌 동문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
최종 진압이 있은지 4개월 후(9월19일), UDD는 "2006년 쿠테타" 4주년 및 강제진압 4개월을 추모하는 집회를 "라차빠송 사거리"에서 개최했다. 많은 경찰 병력이 배치됐지만 1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여들어 시위 당시 죽어간 사람들을 추모했다.(주172) 2009년 10월 현재도 방콕 인근에는 비상조치가 지속되고 있다. 이 조치는 영장없이 3개월간 구금할 수도 있는 권한을 당국에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아피싯 총리는 "평범한 사람들"은 이 비상조치에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 발언했다.(주173)
[역주] "크메르의 세계"는 2010년 3~5월에 발생한 레드셔츠의 대규모 시위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달한 바 있다. 당시의 기록을 보고자 한다면, 다음의 목록을 참조하라.
(바로가기) ☞ "[목록] 위대한 태국 레드셔츠의 70일 항쟁사" |
(주148) The Nation, "Huge boost in security", 2010-2-9.
(주149) TNA, "38 centres set up to maintain peace in country", 2010-2-8.
(주150) Matichon, "โฆษกมาร์ค อัด "ทักษิณ" เจ้าของฟาร์มสุนัข ให้กระดูกไม่พอเลยกัดกันเอง จี้กทช.หาช่องสะกัดวิทยุชุมชนปลุกปั่น", 2010-2-8.
(주151) The Nation, "Radio stations face closure for agitation", 2010-2-25.
(주152) Bangkok Post, "Asset case 'may spark violence', govt warns foreign diplomats", 2010-2-13.
(주153) Bangkok Post, "UDD won't rally on Feb 26", 2010-2-16.
(주154) The Nation, "Fears of grenade attacks at key sites", 2010-3-9.
(주155) The Nation, "Sabotage threat: PM", 2010-3-7.
(주156) WSJ, "Thailand Braces for Political Rallies in Capital", 2010-3-11.
(주157) Dow Jones, "Thai Cabinet Approves Imposition Of Internal Security Act", 2010-3-9.
(주158) Bernama, "Thailand Deploys 50,000-Strong Force To Maintain Order During Protests", 2010-3-11.
(주159) IPS, "In Convoys of Red, Rural Masses Stage Historic Protest", 2010-3-14.
(주160) CSM, "Biased TV stations intensify divides in Thailand protests", 2010-3-22.
(주161) The Nation, "Woman rescued by police after trying to slam vehicle at protesters", 2010-4-6.
(주162) Robin Henry, "nine dead as Thai troops clash with Red Shirt protesters", Times Online (London), 2010-4-10.
(주163) "Number of fatalities rises to 24; Protesters vow to stay at Ratchaprasong", 2010-4-15.
(주164) The Nation, "Keeper shot dead at zoo believed a victim of political violence", 2010-4-15.
(주165) India Blooms News Service, "19 killed, 800 hurt in Thailand clashes", 2010-4-11.
(주166) Chris Baker, "Thailand Runs Out of Room for Compromise", Wall Street Journal. 2010-4-4.
(주167) Bangkok Post, "Reds 'use women, children as shields'", 2010-4-19.
(주168) Al Jazeera English, "Asia-Pacific - Red shirt leader escapes hotel raid", 2010-04-17.
(주169) BBC News, "Thai PM puts army chief in charge of security", 2010-4-16.
(주170) BBC News, "'Terrorists' blamed for attacks amid Thai deadlock", 2010-4-23.
(주171) CSM, "Thai PM preps snipers, police to seal off Red-Shirt protest site", 2010-5-13.
(주172) Bloomberg, "Thai Coup Anniversary Protests Draw More Than Organizers Expect", 2010-9-20.
(주173) Channel News Asia, "Thailand could hold early 2011 elections, says PM Abhisit", 2010-9-25. |
1.3. PAD 및 UDD와의 관계
2009년 4월 21일, 아피싯 정부는 송깐시위 기간 중에 "레드셔츠"(UDD) 시위대가 제기한 논란거리들을 일소시키기 위한 "미디어 전쟁"을 개시했다. 또한 이 시위에 대한 정부측의 입장을 담은 VCD 수백만장도 배포했다. 당시는 정부가 선포한 비상조치령과 검열령이 여전히 발효되어 있던 상태였다.(주174)(주175) 2009년 4월 24일에 검열령은 그대로 유지한 채 비상사태 선포만 철회되었다.(주176)
UDD에 대한 아피싯의 태도는 자신의 지지세력인 "옐로우셔츠"(PAD) 운동에 대한 태도와 비교하여 이중적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고 하는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아시아인권위원회"(Asian Human Rights Commission: AHRC)는 "옐로우셔츠 세력과 레드셔츠 세력을 명백하게 차별하는 일은 반정부 세력으로 하여금 더욱 더 불법적인 방식을 통해 자신들의 길을 가도록 만들게 될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당시 정부는 UDD 시위가 폭력사태로 번진지 불과 몇시간만에 그 지도부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한 데 반해, 그보다 몇달 앞서 PAD가 일으킨 "공항점거농성"이란 준-테러적 행위에 대해선 여전히 영장발부를 미뤄두고 있는 상태였다.(주177)
아피싯은 <파이낸셜 타임스>(Financial Times)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PAD에 대한 절차가 느리게 진행되는 데 대한 [UDD 측의] 기분은 이해한다. 하지만 그 문제는 나의 정부가 들어서기 전에 발생한 것이고, 이제 조사를 시작한 상태"라고 말했다. 이에 인터뷰 기자가 공항점거가 아피싯이 총리가 되기 불과 2주 전에 발생한 일임을 지적하자, 아피싯은 "경찰 총수를 불러서 이 사건처리가 늦어지는 데 대한 나의 우려를 전했다. 그들이 약간의 진전을 일궈내고 있다"고 답변했다.(주178)
국회 내 투표를 통해 아피싯이 빠차 뽐녹(Pracha Promnok) 장군을 235 대 198로 누르고 총리에 당선되자, 레드셔츠 시위대는 아피싯의 사퇴와 총선실시를 요구했다.(주179) 이러한 투표결과는 국민의 손으로 뽑은 것이 아니므로 민주적 정당성을 결여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피싯 이전에 사막 순타라웻(Samak Sundaravej) 총리와 솜차이 웡사왓(Somchai Wongsawat) 총리 역시 동일한 방식으로 총리에 오른 적이 있었다.(주180)(주181)
2008년의 "PAD 시위기간" 중에 아피싯은 제1 야당인 "민주당" 총재를 맡고 있었다. 혼돈 중에 사막 총리가 결국 솜차이 총리로 교체됐지만, PAD 시위대는 솜차이 총리가 탁신 친나왓의 꼭두각시라며 시위 해산을 거부했었다.(주182)(주183)(주184)
2010년 5월 초 UDD 시위기간 중에, 아피싯은 "국가화합 로드맵 5개항"을 발표하기도 했다.(주185)(주186)
PAD는 종종 아피싯이 총리로 선풀된 것이 자신들의 시위 덕분이라고 주장했고, 아피싯의 "민주당"도 친-PAD 성향을 가졌다고 믿었기 때문에 수많은 요구들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그들의 많은 요구를 묵살하기도 했다.
아피싯은 정책 우선순위를 국민에 두고 있다면서, "국민의 의제" 정책을 통한 국민 및 하층민의 이해에 주된 초점을 맞출 것이라 발언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정부는 모름지기 "정직하고 진실된 민주정부"가 돼야만 한다고 말했다.(주187)(주188) PAD는 이에 반발하여 독자 정당인 "티엔 헝 탐마"(Thien Hang Dhama)를 창당했다, 후에 "새정치당"(New Political Party)으로 당명을 변경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새로운 "이념"을 선양하기 위해 창당했다고 했지만, 그 정치적 지지기반은 "민주당"과 중복되는 성격을 갖고 있었다.(주189)(주190) PAD는 "민주당"이 오직 자신들의 이익만 보호하려고 하며, 국가의 문제들에 대해서도 비효율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 한다며 비난했다.(주191)
(주174) The Nation, "Govt to launch media war countering red shirts".
(주175) Bangkok Post, "UDD's planned video show self-defeating", 2009-4-21.
(주176) Reuters, "Thailand lifts emergency, plans charter reforms", 2009-4-24.
(주177) AHRC, "Thai courts' use of legal double standards encourages extralegal means by opposition", 2009-4-25.
(주178) Financial Times, "Interview with Abhisit Vejjajiva", 2009-4-23.
(주179) Money Channel, "Abhisit named Thailand’s new prime minister after winning 235 votes", 2008-12-15.
(주180) People's Daily, "Thailand's newly-elected Prime Minister Somchai Wongsawat", 2008-9-17.
(주181) NewYork Times, "Turbulence Is Predicted for New Chief in Thailand", 2008-1-29.
(주182) The Nation, "PAD proposes "People Revolution Government"", 2008-9-15.
(주183) Bloomberg, "Oxford Graduate Abhisit Elected in Thai Power Shift", 2008-12-15.
(주184) The Nation, "Question loom over new Prime Minister's legitimacy", 2008-12-17.
(주185) Time, "Thailand PM Gains Upper Hand in Protest Crisis", 2010-5-5.
(주186) Prachathai, "เสนอ 5 ข้อแผนปรองดอง ลั่นถ้าทุกฝ่ายยอมรับจะมีเลือกตั้ง", 2010-5-5.
(주187) Asia Times, "The choice of a new generation in Thailand", 2007-12-7.
(주188) tsamjournal, "PM Abhisit’s speech at the Foreign Correspondents’ Club of Thailand", 2009-1-23.
(주189) Bangkok Post, "PAD names new political party", 2009-6-2.
(주190) The Nation, "Time is approaching for the Democrats to pay the PAD piper", 2009-3-11.
(주191) Wikipedia, "New Politics Party", 2010-9-29. |
1.4. 보궐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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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010년 8월에 실시된 방콕 지역의 지방의회 선거결과 도표. 지도는 각 구(켓) 별로 당선된 시의회 의원의 성향을 표시해 준다. 하늘색 구들은 아피싯 총리의 "민주당" 소속 시의원들이 당선된 곳이고, 붉은색 표시 구들은 친-탁신계 야당인 "프어타이 당"(Puea Thai Party) 소속 시의원들의 당선지역이다. 그리고 검은색 표시 구는 "독립당" 후보가 시의원으로 당선된 곳이다. 우측 하단의 그래프는 전체 구의원 선거결과로 각 소속정당별 의석 수를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한 국가의 수도는 다양한 인구가 모여들기 때문에, 비교적 지방색에 영향을 덜받는 방식으로 정치적 의사결정을 하곤 한다. 그러나 태국의 수도 방콕의 경우엔, 전통적으로 태국의 보수 기득권층이 압도적인 우세를 보이는 곳이다. 따라서 이들의 정치적 시각이 태국을 바라보는 외국인들에게도 영향을 주어, 외국인들이 태국 사태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매우 어려움을 겪게 만들기도 하며, 때로는 태국 기득권층의 시각을 고스란히 전수받기까지도 한다. 어쩌면 태국이야말로 국가 발전을 위해 수도의 천도가 꼭 필요한 나라일지도 모른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이 선거에서 "프어타이 당"은 비교적 선전을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특히 이 지방선거와 더불어 "제6선거구"에서는 국회의원 보궐선거도 치뤄졌다. 아피싯의 "민주당" 소속 후보가 당선되긴 했지만, 득표율은 9만여표 대 8만여표로 큰 차이가 나지는 않아, 방콕의 민심 역시 녹록찮음을 시사해주었다. [크세] |
아피싯 웻차치와 정부가 출범한 후 실시된 보궐선거들에서, 아피싯의 연립정당들은 29석 중 20석을 차지했다.(주192) 2009년 6월에 실시된 사콘나콘(Sakon Nakhon) 도 보궐선거에서는, 연립 여당들 중 하나로 내무부 장관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붐짜이타이 당"(Bhum Jai Thai Party) 소속 후보가 유력할 것으로 예측됐다. 하지만 "붐짜이타이 당" 후보는 친-탁신계인 "프어타이 당"(Puea Thai Party) 후보에게 보기좋게 패하고 말았다.(주193)
2010년 8월에는 방콕광역시 시의원 및 구의원 선거가 치뤄졌다. 수도권 선거구는 전통적으로 "민주당"이 압도적 우위를 보인 지역이다. "민주당"은 방콕 시의원 선거에서 45석을 획득했고, "프어타이 당"이 15석을 차지해 2위, 그리고 "독립당"(Independent Party)이 1석을 차지했다. "민주당"은 구의원 선거에서는 210석을 획득했고, "프어타이 당"은 39석, "독립당"이 7석을 획득했다.
2. 스캔들과 비판
2.1. 부정부패
아피싯 정부는 몇몇 부정부패 사건에 대한 혐의를 안고 있다. 특히 경기부양 정책인 <강성한 태국>(타이 켐캥, Thai Khem Khaeng) 사업과 관련하여 그러한 점이 더욱 부각되었다. 대중적 여론의 강력한 압박이 있자, 아피싯은 반루 시리빠닛(Banlu Siripanich)을 위원장으로 하는 조사위원회를 꾸려 "공중보건부" 내의 문제를 조사토록 하기도 했다. 반루의 조사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발견했다.
구급차 공급자들로부터 받은 뇌물
공기정화기 구매과정의 규정위반
건물 신축 과정에 있어서 과도한 지출
기계 및 장비 구매 과정에 과도한 가격 산정 |
반루의 조사위원회가 <강성한 태국> 사업에 투여된 정부예산 860억 바트(약 3조원)가 잘못 운용되었다는 점을 된다는 점을 밝혀내자, "민주당" 의원이자 공중보건부장관을 맡고 있던 위타야 깨우파라다이(Witthaya Kaewparadai, วิทยา แก้วภราดัย: 사진)와 "붐짜이타이 당" 출신 부총리로서 이 사업을 총괄하고 있던 마닛 놉아몬폿(Manit Nop-amornbodi)이 조달과정 스캔들의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주194)
남부지방의 파탈룽(Phatthalung) 도에서는 홍수로 인한 수재민들이 "사회개발 인간안전부"에서 지원한 생선 통조림을 먹은 후 탈이 났다. 야당 대변인인 프롬퐁 너파릿(Prompong Nopparit)은 "민주당" 소속 위툰 남붓(Vitoon Nambutr, วิฑูรย์ นามบุตร) 장관이 생선 구매과정에서 부정을 저질렀다며 비난했다. 위툰 남붓은 규정위반도 없었고 "사회개발 인간안전부"에서 이 생선을 일부러 나눠주려고 구매하지도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결국 이 사건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주195)(주196)(주197)
아피싯 정부는 <충족경제론 공동체>(Sufficiency Economy Community) 사업에 투여된 260억 바트(약 1조원) 규모의 예산을 두고도 부정부패 혐의로 비난을 받았다. 이에 대해 아피싯은 "명백한 배임행위는 이 부처가 <대중소 기업 육성사업>(SML project)을 할 당시에 발생했었을 수 있는데, 그 사업은 탁신 정권 시절에 행해진 것"이라 답변했다.(주198)
(주194) Bangkok Post, "Coalition relations sour after Manit steps down", 2010-10-1.
(주195) Bangkok Post, "Witoon quits over fish", 2009-2-4.
(주196) Thai-Asean News Network, "New Health Minister to be Named after New Year", 2009-12-29.
(주197) Suranand Live, "PM Abhisit is monopolizing the moral high ground", 2010-1-8.
(주198) Bangkok Post, "Abhisit moves to hose down sufficiency projects scandal", 2009-8-6. |
2.2. TPI 불법 기부금 스캔들
2009년 초, 야당은 "민주당"이 기업인 출신 정치인인 빠차이 리야우파이랏(Prachai Leophairatana, ประชัย เลี่ยวไพรัตน์: 사진)으로부터 2억 5,800만 바트(약 80억원) 규모의 불법 기부금을 받았다고 폭로했다. 빠차이는 원래 실패한 시멘트 및 석유화학 기업인 "TPI Polene"와 그 광고대행 자회사들인 "메시아 비지니스"(Messiah Business) 및 "크리애이션"(Creation) 사의 설립자이다. TPI는 "금융기관 개발기금"(Financial Institutions Development Fund)의 감독 하에 회생절차를 밟고 있었다.
아피싯이 "민주당" 부총재로서 2005년 총선을 앞두고 있던 때, TPI는 "메시아 비지니스" 및 "크리애이션" 사에 자금을 이체시켰고, 이후 70개의 은행구좌를 통해 이 돈이 "민주당"의 고위 지도자들 혹은 그 측근들에게 200만 바트(약 7천만원) 이하의 규모로 전달이 됐다. 태국 법률에서는 200만 바트가 "돈세탁 방지국"(Anti-Money Laundering Office)에 신고하지 않아도 되는 금액의 상한선이다.(주199) 야당에서는 이 기부금이 법정 상한선을 엄청나게 초과하는 금액임에도 불구하고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하지 않았다고 고발했다.(주200)
이러한 주장에 대해, 아피싯은 사실을 부인하면서 "민주당"이 감사들의 검토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또다른 "민주당" 지도급 인사들은 "기부행위가 없었다"고 주장하면서, "당이 그 돈을 결코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주201) 불법 기부금을 수수했을 경우, "민주당"은 해산되고 주요 당직자들은 <정당법> 위반으로 5년간 정치활동을 금지당할 수도 있다.
야당은 이 문제를 불신임투표와 연결시켰고, 아피싯이 선관위에 제출한 2004년 및 2005년의 잘못된 보고서를 승인하여 거짓된 정보를 보고했다고 공격했다.(주202) 야당이 폭로한 "민주당"에 불리한 증거들에 대해 보수 영자지 <방콕포스트>(Bangkok Post)는 "꼼짝달싹할 수 없는"(overwhelming) 것이라 했고, 심지어는 친-민주당 성향의 극우지 <네이션>(Nation) 지까지 야당의 증거가 "명백하다"(clear-cut)고 했지만, 그럼에도 아피싯 정부는 국회 내 불신임 투표에서 승리했다.(주203)(주204)
그렇지만 이후 "특수수사국"(DSI)이 이 사건을 조사하게 되었다. DSI는 2010년 초에 7,000쪽에 달하는 보고서를 "선거관리위원회"(EC)에 제출했다. 그러나 선관위는 DSI의 보고서에 많은 허점이 있다고 주장했다.
(주199) The Nation, "Prachai cash claims may hit govt", 2009-2-18.
(주200) Bangkok Post, "EC: Donation case may go to court", 2010-2-9.
(주201) The Nation, "Probe into Democrat funds incomplete: EC", 2009-2-14.
(주202) The Nation, "Chalerm details 'undeclared TPIPL donation'", 2009-3-19.
(주203) The Nation, "Democrats will survive vote, but...", 2009-3-20.
(주204) Bangkok Post, "A 'donation' that will continue to haunt the Democrats", 2009-3-23. |
2.3. 로힝쟈 난민 문제
2009년 1월, CNN 방송은 심층취재를 통해, 미얀마를 탈출한 1,000명의 로힝쟈(Rohingya) 난민들이 "태국 해군"(RTN)에 나포되어 구타를 당했고, 엔진이나 한해장비도 없는 상태로 약간의 식량과 식수만 지닌 채로 바다로 버려졌다고 보도했다.
아피싯은 최초 반응을 통해 이 보도가 "과장됐다"면서, 난민들이 "엔진도 없이 떠내려가거나 좌초할 위험이 있어서, 당국이 육지로 가도록 도왔다"고 주장했다. 아누퐁 파오찐다 육군사령관은 이러한 유린행위를 부정했다.(주205)
1월20일, "유엔 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은 태국 정부에 대해, 보호시설에 수감되어 있는 난민 생존자 126명에 대해 UNHCR의 접견이 가능토록 허락해달라고 요청했다.(주206) 이에 대해 아피싯은 "국제기구와 공조하게 되어 영광"이라 말하면서, 하지만 그러한 국제기구도 태국 정부의 적절한 절차에 맞춰서 일해야만 할 것이라고 답했다. 군부는 보호시설에 수감된 난민들에 대한 "확실한 정보다 없다"고 답했다.(주207)
언론의 추가적인 탐문들은 난민들이 구금시설에서 퇴거된지 얼마되지 않았다는 사실과 더불어, 이후 그들이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폭로했다. 인터뷰에 응한 한 태국 해군 장교는, "우리는 엔진을 떼내거나 혹은 그들을 돌려보냈다. 아마도 바람의 방향에 따라 인도나 그밖의 어딘가로 갔을 것"이라 말했다.(주208)
이후 아피싯은 군대에서 철저하게 조사토록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그와 동시에 군대를 위해 인권침해를 변호하는 방어막도 쳤다. 아피싯이 지시한 조사는 "국내안보작전사령부"(Internal Security Operations Command: ISOC)가 담당했는데, 이 부대가 난민들의 태국 도착에 관련된 바로 그 부대였다.(주209) ISOC의 조사는 이 사건과 관련된 모든 관계자들을 무혐의로 처리했다. 결국 ISOC는 이후로도 난민 문제에 대해 지속적인 비난을 받게 되었다.(주210)
아피싯 정부의 수텝 트억수반 안보담당 부총리는 이 사건이 태국의 이미지를 손상시키기 위해 날조된 것이라 주장하기도 했다.(주211) 까싯 삐롬야(Kasit Piromya) 외무부장관은, CNN의 보도는 부정확하며 "이 세계가 로힝쟈 문제에 관해 말하는 것을 믿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고 발언하기도 했다.(주212)(주213) UNHCR의 친선대사인 영화배우 안젤리나 졸리(Angelina Jolie)는 태국 정부가 로힝쟈 사람들의 곤경을 묵살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태국 정부가 버어마 난민들을 잘 보호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까싯 외무부장관은 UNHCR이 "[로힝쟈 문제에 대해] 권한이 없다"고 힐난하면서, 이 문제에 대해 "손님들"은 말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주212)(주213)
아피싯이 난민들에 대한 군대의 인권유린을 옹호하고 나서자, 국내외의 전문가들이 그를 비판했다. "쭐라롱꼰 대학"의 정치학 교수 티띠난 뽕수티락(Thitinan Pongsudhirak) 씨는 "우리는 군부의 뒤만 바라보는 아피싯을 보고 싶지는 않다. 왜냐하면 그의 그러한 행동이 그가 곧 자리에서 도구 역할만 함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주216)(주217)
(주205) Bangkok Post, "PM: Rohingya reports 'exaggerated'", 2009-1-20.
(주206) The Nation, "UN asks Thailand for access to Rohingya boat people", 2009-1-21.
(주207) The Nation, "Thailand 'happy to cooperate', but Army plays dumb on detainees", 2009-1-22.
(주208) Al Jazeera, "Thais admit boat people set adrift", 2009-1-27.
(주209) ABC, "Thailand promises army-led probe of Rohingya scandal", 2009-1-29.
(주210) Phuket Wan, "Boat People: Military Officials Cleared, says PM", 2009-5-17.
(주211) Reuters, "Burmese Boat People Scandal Exposes Thai PM's Debt to Army", 2009-1-26.
(주212) The Nation, "Don't believe what the world says about Rohingya", 2009-2-4.
(주213) Matichon, ""กษิต"เมินซีเอ็นเอ็นตีข่าวโรฮิงญา ยันยึดสิทธิมนุษยชน", 2009-1-27.
(주214) The Nation, "UNHCR warned over Angelina Jolie's criticism on Rohingya".
(주215) The Nation, "Thai govt warns Jolie and UNHCR over comments on Rohingyas", 2009-2-11.
(주216) Reuters, "Burmese Boat People Scandal Exposes Thai PM's Debt to Army", 2009-1-26.
(주217) Bangkok Post, "Military Obligation: Thai PM's Baggage Confronts His Political Inheritance", 2009-1-30. |
3. 훈포상
아피싯 총리는 다음과 같은 훈장을 받았다.
1999 Knight Grand Cordon (Special Class) of the Most Exalted Order of the White Elephant
1998 Knight Grand Cordon (Special Class) of the Most Noble Order of the Crown of Thailand
Silver Jubilee Medal of B.E. 2514 (AD 1971)
Commemorative Medal of HRH Prince Vajiralongkorn's Investiture as Crown Prince
Commemorative Medal on the Occasion of the Elevation of HRH Princess Sirindhorn to the title of "Princess Maha Chakri"
Commemorative Medal on the Occasion of the 72nd Birthday Anniversary of HM Queen Sirikit
Commemorative Medal on the Occasion of the 60th Anniversary of the Accession to the Throne of HM King Bhumibol Adulyadej |
* [전문] 아피싯 태국총리 고별연설문 (방송연설 영문 자막용 원고 2011-8-4)
외부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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