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웰빙’ 어때요 |
[속보, 사설/칼럼] 2003년 12월 04일 (목) 22:00 |
[한겨레] 신문과 잡지 기사에 ‘웰빙(well-being)’이란 단어가 넘쳐나고 있다.
웰빙은 건강과 마음의 안정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새로운 생활 방식으로,
우리나라에도 이를 지향하는 웰빙족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언론에 나타난 웰빙족의 생활은 대체로 이렇다.
유기농 야채와 곡식으로 만들어진 신선한 건강식을 섭취한다.
또 육류보다는 생선을 즐기고 화학조미료와 탄산음료, 술,
담배 등 몸에 나쁜 것은 가까이 하지 않는다.
대신 와인이나 허브티 같은 것을 마신다.
퇴근 뒤엔 약속을 피하고 헬스클럽이나 요가센터를 찾아
운동과 정신 수련을 하며 심신의 안정과 건강을 관리한다.
바쁜 시간에도 틈틈이 아로마테라피와 스파, 마사지를 즐긴다.
문화 행사를 즐겨 찾는 것은 물론 다양한 레포츠와 주말 여행을 시도한다.
웰빙족을 겨냥한 관련 산업도 번창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미용, 요가, 명상, 스파, 레저, 헬스케어 관련 업체들이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나고,
호텔이나 음식점들은 웰빙 패키지, 웰빙 푸드 등 관련 상품 개발에 열을 올린다.
심지어 웰빙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는 잡지까지 창간됐다.
기존 소비재 생산업체들도 이에 뒤질세라 잇따라 웰빙 사업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식품업체들은 너도나도 기능성 식품과 건강식품 사업에 나서고,
화장품업체들과 생활용품업체들은 천연 성분 화장품, 스파용품, 두피케어 제품 등으로
소비자를 유혹하고 있다.
이런 흐름을 반영해 주5일 근무제에 맞춰 개편된 각 신문의 주말섹션도
웰빙과 관련한 기사를 많이 다루고 있다. 웰빙 열풍이 확산되고 있다며,
다들 ‘웰빙’하라고 은근히 권유한다.
개인적으로는 이처럼 웰빙이 화두로 떠오른 데는 기업 마케팅과 언론의 영향이 컸다고 본다.
기업으로선 기존 소비 시장이 포화된 상태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필요했고,
제품과 서비스의 질을 업그레이드시키면서 가격을 대폭 높인 프리미엄 상품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이를 ‘웰빙’ 마케팅으로 포장한 것이 성공을 거둔 것이다.
늘 기삿거리에 목말라 하는 언론은 새롭게 감지된 트렌드에 환호하며 앞다퉈 기사화했고,
기업의 홍보와 기자들의 취재가 서로 상승작용을 하며 ‘웰빙 열풍’ 보도로 이어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아직 우리 사회에 하루하루 살아가기조차 버거운 빈곤층이 많긴 하지만, 과거 먹고 살기 위해
아둥바둥하던 시절과는 달리 이제 삶의 질을 따지며 살아갈 여유가 생긴 건 분명하다.
잘 먹고 잘 살자는데 누가 반대할 사람이 있겠나.
그런데 언론에 보도되는 웰빙 관련 기사를 보면 여유로운 삶에 대한 부러움과 함께,
한편으론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남보다 좀 느리더라도 한걸음씩 쉬어가며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는 생활을 추구한다’는 웰빙의 정신이 상업적으로 변질되면서 부유층의 문화로
왜곡되고 있는 것 같아서다.
종류에 따라 가격이 수십만원씩 하는 호텔의 웰빙 패키지 상품은 서민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꼭 호텔 상품이 아니더라도 언론이 전하는 웰빙족의 생활을 따라하려면 적지 않은 돈이
들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누구나 웰빙 하면 요가, 스파, 마사지, 아로마테라피, 유기농 식사, 건강보조식품,
피트니스 등을 떠올리듯 웰빙의 방식이 너무 천편일률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어떻게 삶을 즐겨야 한다는 공식은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웰빙족에 어울리지 않으며,
웰빙의 삶은 규정된 스타일이 없는 게 아닐까. 돈을 많이 들이지 않으면서 나름의 방식으로
잘 먹고 잘 사는 웰빙족을 보고 싶다.
또 내 건강을 위해 유기농산물을 소비만 하는 데서 한 발 더 나아가, 좋은 먹거리와 맑은 공기,
깨끗한 물이 만들어져 보다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웰빙’할 수 있도록 환경 문제,
빈곤층 문제 따위에도 관심을 기울이길 웰빙족에게 기대해본다.
윤영미 문화생활부 차장youngmi@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