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을 따라가다 / 김성옥
일상에 지루한 생각이 들면 자동차를 타고 길을 나선다.사람을 만나는 기쁨보다 자연을 접하며 나누는 시간은 참으로 아깝지 않다. 특히 태평양을 옆에 끼고 올라가는 1번 도로는 가도 가도 질리지 않고 심심치 않다. 적재적소에 간직해 놓은 비경에 인간들의 솜씨가 섞여져 이루어 놓은 수많은 볼거리는 모든 감각을 되살리는데 부족함이 없다. 다나 포인트(Dana Point) 에서 시작하여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 레깃(Leggett)까지 관통되어 있는 1055,480Km 의 PCH(Pacific Coast Highway)는 관광지의 모음이다. 사계절을 따라 변화무쌍하게 이어지는 하나님의 솜씨는 오묘하기 그지없다.
LA 근교의 산타모니카 비치를 따라 북상하면 유명 인들의 집과 별장이 퍼져있는 말리부 비치를 지난다. 산불과 홍수 피해로 무너져 내리고 검게 타버린 저택들이 참으로 아깝고 허망하다는 생각이 든다. 산등성이에 펼쳐진 페퍼다인 대학교 건물을 바라보며 달려 딸기와 채소 농장이 줄선 옥스나드 마을에서 채널 아일랜드 가는 배를 타본다. 아나카파, 산타 크루즈, 산타 로사, 샌 미구엘 4개의 섬 중 어느 섬이건 선착 시간이 맞는 곳에 가볼만 하다. 모두 무인도 섬에 등대지기 한사람만 살고 있다. 세상과 오염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과 갈매기의 산란 장소로 생태계가 제대로 보존되어 있고 희귀한 동식물이 가득하다. 남가주 인근에는 섬이 많지 않다. 샌디에고 인근의 샌 클래멘테와 롱비치 맞은편에 카타리나섬 그리고 위의 4개해서 모두 6개 정도 뿐이니 더 깊고 넓어 보이는 태평양이다.
고속도로에서 다리도 쉴 겸 내려 캘리포니아에 세운 21개의 미션 중 1786년에 10번째 지은 산타바바라 미션(Old Mission Santa Barbara)을 구경한다. 그 곳에서 시무하다 죽은 사제들의 무덤이 건물 뒤 정원에 안치되어 인디언들을 전도하며 생활을 같이하던 그분들의 모습을 그려보게 된다. 그런대로 잘 꾸며진 박물관도 한 바퀴 돌아보았다. 빼 놓고 가기 서운한 산타바바라 법원(Santa Barbara Courthouse)의 3면의 벽화와 시계탑 전망대에서 둘러보는 시내경치와 바닷가로 내려와 피어에서 맞는 해풍은 싱그러운 바람이다. 1~3월 사이에는 바하 캘리포니아에서 새끼를 낳고 북쪽으로 올라가는 2만여 마리의 회색고래 무리 중 한 때를 쉽게 볼 수도 있다.
아빌라 비치의 생선시장도 들리고 나서 온천에 들어가 몸을 풀고 나오면 개운한 기분으로 솔뱅을 향해간다. 1911년 이주한 덴마크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자국의 문화를 지탱하며 관광지로 만들었다. 빵, 치즈를 들고 앞치마와 머리 수건을 쓰고 고깔 신발을 신은 여인을 만나게 될까? 풍차는 과연 돌고 돌까? 튜울립 꽃은 가득 피었겠지! 안데르센과 인어공주도 어디선가 만나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샌 루이스 오비스포에서 모로베이의 거대한 돌섬을 지나 가다보면 캠브리아 해변을 만난다. 해변 모래등성 위에는 옥돌들이 부셔져서 청옥색, 고동색의 빛깔로 널려있다. 한 주머니 퍼 와서 수경재배 식물아래 깔아주니 보기도 괜찮았다. 이런 공짜 선물이 여행의 멋과 추억을 더한다.
열 번을 가 봐도 또 가고 싶은 Santa Lucia 산맥 중턱에 뉴욕 언론재벌인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의 캐슬은 늘 새롭고 부자들의 삶을 동경하게 된다. 스페인의 수도원을 해체해서 배로 실어다 다시 지어놓은 건물에 방이 146개나 갖춘 어마어마한 저택은 한 번에 다 볼 수도 없고 4부로 나누어진 투어 코스로 하나씩 다녀봐야 한다. 허스트 씨의 본처는 한 번도 와보지 못하고 애인이었던 무명 영화배우가 안주인 노릇을 하고 산 집에서는 저명인사들의 파티 장소로 유명했다. 실내 수영장, 실외 수영장은 영화 촬영 장소로도 나올 만큼 경관이 뛰어나다. 포도주 저장고, 식당, 손님방, 극장, 침실, 서재, 당구장, 테니스 코트... 잘 관리되어 있는 건물들은 주인의 완성품을 이루지 못한 채 100년 가까운 세월을 묵묵히 지키고 있다. 미국 부자들은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정말 멋지고 건전한 사고를 가졌다. 이곳도 캘리포니아 주정부에 기증하여 많은 사람들이 보고 느끼며 배우는 장소가 되었다.
바다를 따라 북상하면 포인트 피아드래스 블랑카스(Point Piedras Blancas)를 만난다. 수온 차가 크고 날씨 변화도 심해 먹이가 많다보니 바다코끼리들의 서식지로 조건이 맞는다고 한다. 출산과 휴식, 털갈이를 하는 곳으로 수 백 마리의 무리들이 뒹굴고 있는 모습은 장관이다. 자식이 뭔지 품안에 꼭 안고 있는 암놈의 모습에서 모성애의 그림이 보여 진다. 낮잠을 자며 숨을 내쉴 때 마다 콧바람으로 날리는 모래가 구린내 속에 같이 날아오지만 구수하다며 지나갔다.
빅서(Big Sur)를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차를 세웠다. 통신 사정이 역시 형편없는 외진 동네이다. 급한 일이 생기면 연락할 수단이 작동되지 않아 불편할 때가 종종 있는 미국이다. 붉은 태양이 바다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근사한 사진을 찍어 보내주려니 전혀 전송이 안 된다. 포기하긴 아깝지만 방법이 없다. 절벽에서 바다로 떨어지는 맥웨이 폭포(Mcway Falls)는 꽤 유명세를 타지만 그리 웅장하지 않아 실망이나 흔하지 않는 풍경이라 보고 또 보게 된다.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 98m 높이의 빅스비 크릭 아치(Bixby Creek Arch) 다리를 건너 카멜로 향한다.
영화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시장으로 재직해 더 유명해진 곳이다. 아기자기 예쁘게 꾸며 놓은 집들과 상점은 발걸음을 멈추고 들어가 보게 만든다. 길가에 차를 세우고 기웃거리며 한 시간 남짓 쇼핑을 했지만 산 것은 없고 허기진 끝에 식사만 거창하게 했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나와 차에 오르니 운전대 앞 유리에 종이쪽지가 꽂혀 있었다. 아니 그건 교통위반 벌금고지서였다. 내용인즉 앞차와의 간격을 가까이 했다는 것이다. 살다가 별일! 맛있게 먹은 밥맛이 순간 딱 떨어졌다. 다신 여기 오지 말아야지 중얼거리며 몬트레이 17마일로 접어들었다. 부자들이 모여 사는 경치 좋은 해변 가의 집들은 창문만 열면 거대한 바다가 눈앞에 펼쳐지니 마음들도 시원스럽게 화통할까? 볼만한 장소가 20여 군데 되는 곳 중에 버드락(Bird Rock)이라는 돌에는 온갖 바다 새들과 물개, 바다사자들이 모여 떼를 이루고 있었다. 왜 그 바위를 좋아하는지 이유가 궁금한데 새똥과 오물로 범벅이 되어 바위 전체가 하얗게 포장이 돼 버렸다. 돌아 나오는 길 절벽 위에 아스라이 서있는 사이프러스 나무는 갖은 풍상을 이겨내며 꿋꿋하게 서있어 이곳의 모델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골프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단 한번만이라도 꼭 라운딩하고 싶은 페블 비치라는 고급 리조트 안의 골프코스에는 U.S Open 우승자였던 타이거 우즈의 기념비도 새겨져 있다. 여유 있는 사람들의 천국을 여유 없는 우리가 와서 기웃거리며 돌아보고 떠난다.
무심코 길을 가다 살리나스를 들리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죤 스타인백의 생가와 박물관이 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은 고향에서 체험한 인간미 넘치는 글로서 퓰리쳐 상과 노벨 문학상을 받은 미국의 유명한 문인이다. 글의 밑받침이 된 동네를 둘러보는 재미도 귀하지 않을까.
샌프란시스코를 올라가는 길에 스탠포드 대학을 들려본다. 명문학교를 가서 보면 나도 지금 공부하라면 저렇게 열심히 할텐데... 하는 후회와 부러움으로 코끝이 찡해온다. 기다려주지 않는 세월을, 돌이킬 수 없는 회한을 곱씹으며 후버 타워를 뒤로하고 운전 페달을 밟는다. 1937년 완공된 1.7 마일의 금문교(Golden Gate Bridge)를 건너보면 왜 유명세를 타는 장소인지 느낌이 온다. 또한 해마다 수십 명의 사람이 몸을 날려 죽음을 택하는지도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 이른 아침 안개 자욱한 다리를 보면 심상치 않은 그 뭔가가 내게도 다가온다. 매일 50여명의 페인터들이 2만 리터 이상의 페인트로 일 년 내내 색칠을 하니 그 붉은빛이 가관이다. 이제는 피어(Pier)1~45 까지 있는 선착장 중에 39를 찾아가서 시장기도 해결하고, 관광객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상점과 마술사의 쇼를 보고 회전목마와 마차, 인력거도 타본다. 유람선 티켓도 사서 악명 높은 죄수들만 가두었던 앨커트래즈 섬의 교도소를 둘러보며 시카고의 마피아 대부 알카포네가 수감됐던 독방도 기웃거려 본다. 탈옥을 시도한 죄수가 있었다는 점이 대단했으나 성공한 예는 없다고 한다. 시내로 나와 전차와 버스, 케이블카도 타면서 언덕길을 오르내리면 동성애자들을 자주 보게 될 것이다. 남을 의식치 않는 진한 사랑의 표현을 그냥 멀거니 쳐다보게 된다. 골든 게이트 공원, 알라모 스퀘어, 미션 돌로레스, 코잇 타워, 시빅 센터, 노브 힐의 롬바르트 스트릿, 많은 박물관들은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1865년과 1906년 두 차례의 큰 지진으로 도시가 심히 파괴되어 새롭게 재단장을 하였으나 캘리포니아 주는 늘 지진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긴 힘들다.
가는 중간 간 널려있는 포도밭과 와이너리, 유명세를 타지 않은 숨어있는 비경들. 어찌다 짧은 글로 쓸 수 있을까. 보고 싶은 곳도, 볼 곳도 무진장인 캘리포니아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참으로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