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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석의 감상 방법
(Thomas S. Elias)
Vasana 세미나는 수석에관한 교육목적의 시리즈로서 옛부터 아시아의 예술이라할 수석에 대해 수석을 모르는 일반인 들에게 알리기위한 목적이다.
수석 수집가들은 자신만의 방법을 통해 수석전문가가 되었다고 믿고있다. 수석평가에 대한 아시아 수석들은 한국, 일본, 중국 등의 서로 중복되는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아시아 수석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들 나라가 어떻게 서로 영향을 끼쳤고 접근방법이 서로 어떤것이었는지를 아는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믿는다.
이 Vasana 세미나에서는 각국의 수석 평가방법에 있어서 어떤 특정국가에 대해 호불호를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늘은 한국수석에 대해 소개하려고 한다.
Viewing stone은 한국어로 수석이라는 뜻이다. 오늘 이 세미나 주제에서는 한국과 중국 두 나라의 수석특징을 살펴보려고 한다.
옛부터 한국인들은 근대에 이르기까지 공식적인 언어로써 한자도 사용했고
고유문자인 한글을 사용했다.
아시아에서 한국은 수석을 즐기는데 오래된 역사를 갖고있다. 아마 중국에 이어 두번째로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있다고 본인은 확신하고있다.
본인이 판단하기에는 일본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세계에서 두번째로 많은 수석을 수집, 전시하고 있다고본다.
서구의 많은 수석 수집가들은 어느정도 중국과 일본의 수석 패턴과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들은 한국 수석에 대한 지식이 전연 없고 한국인들이 수석을 즐긴다는것을 잘 모르고 있다.
이런 현상은 부분적으로 영어로된 정확한 정보가 없었기 때문이다.
수석이란 말은 이끼가 낀 돌 연못에 세워진 정자가 세워졌던 시기인 1800년대 중반 shusha Jim Yangi에 의해서 사용되었다.
이는 일본에서 처음으로 쓰이세키(壽石, 水石)란 단어가 공식적으로 사용된것보다 100년전 이 아닐까 생각된다.
오늘날 수석이란 단어는 장수를 상징하는 돌로 해석되고 있다. 고대 한국학자들은 돌이 영생과 같이 영원하고 불멸을 상징한다고 믿고 있었다. 이같은 믿음은 중국에서 출발하고 있다.
한국의 수석은 중국의 당나라와 송나라의 영향을 많이 받고있다.
초기에는 중국의 방법을 따라했지만 이후 서서히 한국적인 독특한 미를 나타내는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했다.
수석 본래의 자연스러운 미적감각은 일본이나 중국보다 큰 역할을 하고있다.
즉 장대함이나 과장된 화려한 분위기등을 애써 피하고 있으며 부자연스러움 보다는 자연스러운 패턴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수석에 대해 값으로 메긴다든가 조금이라도 가공하는 것을 철저히 금기시했다.
중국의 모형변경과 일본의 절단석은 금기시했다.
이로써 한국수석은 중국이나 일본 보다도 순수 자연석으로
널리 보급되어있다.
한반도는 대략 미국의 미네소타주의 넓이이며 유럽의 그리스나 영국보다는 약간 작다. 아울러 엄청나게 긴 해안선과 3900개의 섬을 가지고 있다. 일본에 비해 지정학적으로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변성암과 퇴적암이 다량으로 매장되어 있고 성명미상의 돌은 거의 없다고 생각된다. 수많은 섬에는 5,000마일이 넘는 해안선을 끼고 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수석은 강이나 산 바다에서 수집되고있다.
그러나 강에 댐이나 수력발전소가 건설되 있어 좋은 수석을 수집하는 장소가 줄어든게 현실이다.
이런 결과로 수집활동이 해변이나 도서등으로 장소도 바뀌고있다.
지도상에서 한국을 바라보면 오른쪽을 따라 엷은 노란색이 보일것이다. 이는 낮은 산들이 북쪽에서 남측방향으로 걸쳐있다는 뜻이며 따라서 강들은 주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고있다. 남한강과 점촌 영강이 가장 유명한 수석수집 장소로 꼽히고 있다. 서울에서 가까운 오른쪽 편으로 한강과 남한강이 자리잡고 있으며 이 두강은 서로 이어져있다. 한국의 남부지역에 위치한 강들은 서남쪽 또는 남쪽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중국의 고대 수석에 대한 미학적인 관점에서 살펴보자면 약 2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특히 당나라 이후부터 중국인들은 매력적이거나 특이한 괴석을 좋아했다. 고대 중국문학에서도 빼어난 괴석을 묘사한 많은수의 시들이 있음을 볼 수 있다. 당나라 최고의 시인 Bairu Lee?는 2800수의 시를 섰다. 그가 애호하는 후대의 시는 몇점의 Lake Thai?수석에 대한 내용이었다. 송나라의 서예가이며 열렬한 수석 수집가인 Mi Fu는 이미 1,000년전에 수석에 대한 기초를 확립했다.
중국의 수석을 수집하는 관습이 한국에 큰 영향을 미쳤다. 여기에서 보여주고 있는 3점의 큰 괴석 사진은 베이징의 황궁인 자금성의 정원에 전시되어있는 것이다.
약 1,600년전 고려시대 소수림왕은 인공연못을 팠고 여기에 괴석을 연결시켰다. 이시기에 많은 돌들을 이용해 인공적으로 산을 연출했는데 그 방법은 중국의 석가산 형태를 따랐다.
당시 고려는 중국에 학자와 관료들을 파견해 어떻게 국가를 통치하는가를 배우도록했다. 그당시 학자와 관료들이 중국 정원의 석가산들을보고 영향을 받았던것으로 추정된다,
여기 보여주는 쑤저우의 사자림 정원이나 기타 중국의 석가산 정원이 고구려때 소수림왕을 위한 정원으로 꾸며졌을것이다.
이들의 특징은 정원 내외에 인공적으로 전혀 변형을 가하지 않은 자연스러움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한국인들이 사용하는 돌에 정으로 만든 돌확수반과 동수반, 수석 수반들은 중국에서 사용하고 있는것과 비슷하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가 1392년 시작부터 1910년 까지 지속된 조선왕조를 살펴본다면 이 연대가 예술이 꽃피던 시기였던것같다.
양와루는 조선의 화초원예를 다룬 서적으로 조선왕조시대인 1462년에 최초로 발간되었으며 여러가지 식물과 화분에 대해 설명을하고 있다. 아울러 정원에 사용되고 있는 수석에 대한 평가 및 사용방법등을 나열하고 있다. 물을 흡수한 이끼가 낀 수석이 한국의 고유한 수석으로 평가되고 있다. 내가 지금 지적한 이런 내용들이 이 책에 수록되어있다.
초기의 수석 수집가들은 수석이 그 시대상을 반영하는 고전적인 미가 담긴 것이라고 믿었다. 한국의수석을 나에게 알려준 나의 수석 친구인 박열은 오랜 세월 바람과 물과 모래에의해
수마가 잘되고, 모진 풍파를 견뎌낸 骨石 (bone susekis) 같은 추상미가 넘치는 수석들을 좋아해서 수집했다는데 사진으로만 봐도 중국과 일본의 수석들과는 완전히 격이 다른 수석을 즐기고있는것 같아
골석이 무엇인지 너무나 보고싶다.
11월에 초대를 받아 한국 곳곳의 수석들을 보기로해 하루하루 그날을 기다리고있다.
한국에 수집가들은 단단하면서도 강이나 해안에서 발견된 수마가 잘된 질적으로 우수한 수석을 수집한다.
19세기 펴낸 책에서 중국의 수석이 한국에 많은 영향을 끼쳤음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사군자(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 사진첩이었다. 이 사군자는 동아시아 지역의 예술가들에게 사랑을 받은 8개의 잎을 주제로 한 것이었다. 이 책에는 유명한 수석이나 벼루도 소개되고 있다. 이는 이미 언급했듯이 한국 문학에서도 빼어난 수석에 대해서 심미적인 특징을 지적하는 증거라고 할것이다.
여기 왼쪽 윗편 박스에 적혀있는 글귀가 이를 잘 증명하고있다. 정자에 있는 소규모의 수석을 Bro Jin?이라고 불렀다. 이런 형태는 수세기 동안 꽤나 귀한 대접을 받았다. 나는 램프 불빛을 배경으로 실루엣을 비쳐 보았다. 나의 창의적인 작업은 Mi Fu 것과 비견할만 것이었다. MI Fu는 바로 약 1000년전 수석을 평가하는 특징들을 설명하고 있다. 한국에서 이런 흐름은 약 4-500년 후에도 계속되었다.
20세기에 들어와서도 한국 예술가들은 영생을 상징하는 꽃과함께 보기드문 수석이나 수석 자체만을 나타내는 괴석도등을 그렸다.
중국 작가들은 꽃을 배경으로 하든지 아니면 아무런 배경이 없는 수석그림들을 내놓았다. 한국 작가들은 수석은 장생의 심볼이며 규모가 큰 수석은 산의 정기를 품은 고향이다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한국역사에서 이황은 가장 중요한 철학자로 꼽히고 있고 그가 새롭게 주장한 성리학은 전 아시아 지역에서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학설이 너무 주목할만한 것이어서 그의 얼굴이 1001년 발행된 화폐에 등장할 정도였고 시 문학에서도 남다르게 조예가 깊었다. 그로부터 300년후 옥수 조면호는 수석을 찬미하는 책을 발간했지만 이런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의 학자들이 진귀한 수석들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라고 생각된다. 옥수는 조면호의 필명인 아호다. 그는 그의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었던 책상위에 놓인 수석을 테마로 시를 짓기도 했다. 바로 그 수석은 미래를 넌즈시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수석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언급하기도 했다. 나는 한국 수석에 대한 모든것을 영어로 알리려는 작업을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고 이 계획은 내년에는 가능할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현재 생존하고있는 시인이 수석에 대한 작품을 쓰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김민종이라는 이름의 시인이다.
김씨 부부는 두 권의 책을 2001년과 2020년에 걸쳐 발간했고 두번째 발표한 작품집은 김씨 부인이 수집한 수석을 테마로해서
시조 스타일로 발표했다.
일본은 1910년부터 1945년까지 한국을 점령했는데 이들은 한국의 언어와 예술을 모두 일본화시키려고 시도했고 이런 사실은 최근 김한나 여사가 발표한 논문에 잘 요약되어있다. 이 논문은 일본이 한국을 침탈한지 얼마되지 않은 시기에 한국인의 정체성을 일깨우기 시작한 한국의 미적정서에 대한 내용이었다. 이 당시 일본은 한국예술에 대한 모든것을 일본어로 바꾸려고 시도했다. 정전협정이 서명된지 70년이 지난 후 한국은 예술과 미적감각을 자신들의 언어로 바꾸기 시작했다. 아울러 수석에 대한 미를 평가하려는 노력도 수반되었다. 70년이 흐른 후 한국의 수석인들은 비로소 수석에 대한 독특한 미를 발전시키는 계기를 맞이했다.
수석에 대해 인기가 높아 빠른 속도로 확대되고 있으며 중국, 한국, 일본등에서의 수집가들도 1960년대부터 시작해서 1990년대까지 계속되어 증가되고 있다. 이후 중국 및 일본에서는 수집가들의 숫자가 줄어들었지만 지금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나는 특히 한국에서 수석을 평가하고 수집하는 인구가 많고 전국에서 끊임없이 전시회가 열리고 매년 몇차례에 걸쳐 전국규모의 전시회도 개최되고 있다.
한국에서 수석인들은 전통적인 골동가구위에 수석을 배경으로 전시회를 열기도 한다.
이들의 전시방법은 일본의 Tokenoma 스타일 보다는 중국의 전시방법과 조금더 가깝다고 하겠다.
나는 이제 한국의 실내전시 방법을 알아가고 있다.
여러분들은 한국에서 수석전시와 관련된 몇가지 사실을 알고 있는지요. 한국에는 약 8만명에 달하는 수석인구가 있고 (한국수석회에서 준 자료)
이는 중국을 제외한 여타 국가나 일본보다도 많다는 것이다. 또 200개의 수석협회와 동호회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2003년에만 수석 자체만을 타이틀로한 공식적인 수석전시회가 100회에 걸쳐 열리고있다. 다음해에도 그 숫자가 비슷했다. 전국적으로 수석을 거래하는 상점만도 200여곳에 달하고 ,
그림 경매와같이 수석을경매하는 경매장이
전국에 10여곳이있고
인터넷을 통한 수석거래 경매채널도 10여곳에 이르고 있다. 한국의 수석 수집가들은 인터넷을 통해 거래를 하고 특히 비디오를 이용해 수집활동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으며 이런 현상은 일본이나 중국보다도 더 활발하다고 하겠다.
15개의 수석 박물관이 있으며 이들중 몇곳은 사설 박물관으로 일반인들을 초대해서 전시회도 갖는다. 또한 수석박물관들이 각지방정부에서 보조금을 받으면서 일반인들이 볼수있도록 공개하고
각 지방정부에서 보조를받아
매년 전시회도 하고있다..
1981년 한국수석협회가 창설되었고 매년 정기총회를 개최하고 있다. 이 협회는 자연보호대회와 아울러 봄과 늦가을 20차례에 걸쳐 탐석및 전국수석전시회도 주최하고있다. 이외에 개인이 수석문화라는 잡지를 발행하고 유튜브 동영상으로 수석의미 대표적인 동영상 으로는 (A stone in the Dream )있고
수석전문지책과 수석 전문 동영상으로 활발하게 움직이고 전국의 많은 수석인들과 수석 동호회를 끈끈하게 묶어주는 큰 역할을 하고있다.
이 잡지와 동영상은 각 동호회의 전시회 기사, 수석사진, 많은 수석 판매업체에 대한 각종 정보를 싣기도한다. 매달 200-300 페이지에 걸쳐 발행을 하고 동영상도 매달 수차례
수석인들에게 판매를하고 있다.
한국에는 어떤 종류의 수석이 눈길을 끌까 눈여겨 보았는데 풍경을 나타내는 문양 수석(landscape),
어떤 형상을 나타내는 수석(object), 특정한 색체나 양식(pattern)을 나타내는 수석, 추상적인(abstract) 수석등이 있었다. 자연상태에서 특이한 수석을 판단하는데 여러방법이 있다. 수석을 구분하는데 가장 많이 사용되는 방법은 넓은 의미에서 크게 4가지 부류로 정하고 또 그 밑에 세부적인 부류로 나누어서 평가한다.
수석의 받침대로 나무를 깍아 만든 스타일은 중국과 일본의 전형적인 방법이다.
이 모든 수석들은 자연스러운 수석이고 어떤 목적을 가지고 변형시키려고 하지 않았다.
한국의 전형적인 수석은 엷은색의 나무 밭침대 위에 놓고 이런 받침대는 실제같은 나무의 질감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한국에서는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색상이나 형태를 가진 많은 수석이 발견되고 있고 이는 보는 사람들에게 많은 상상력을 불어넣고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가장 많은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고있는 추상적인 수석을 좋아한다. 그래서 오랫동안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런 돌들을 연구하는것이 즐거웠다.
어떤 수석은 마치 부처님(Dao's benefits)과 연결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래서 이런것들이 수석이나 받침대등을 감상하는 가장 큰 재미인 것이다.
이제 수석이 발견되는 장소(source)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수석은 발견된 장소에 따라 그 부류를 분석할 수 있다. 오랫동안 계속해서 수집을 하고있는 장소는 주로 강, 산, 바다등이다. 그러나 강의 다규모 댐공사 때문에 많은 수집장소가 없어지고 이같은 개발로 수집가들은 그 장소를 해안, 얕은 강가, 해안쪽에서 떨어진 섬으로 옮겨지고있다.
한국 남한강에서 출토된 수석들은 개인적으로 정말 최고의 수석들이라 생각한다.
윤이 나면서 여러겹의 층으로된 추상미가 넘치는 우아한 흑색과
초코렛 수석은 중국과 일본에서는 볼수없는 최고의 수석들이다
나는 이런 남한강 수석에대한 느낌을 좋아한다.
오랜세월동안 풍화된 돌의 응축되고 절제된 미적감각을 보는것 같다. 이런 형태나 고색창연한 표면을 간직할때까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을까.
오랜세월 자연의 힘으로 만들어진 수석의 심오한 미를 짧은 우리 인생의 지나가는 찰라의 미와 비교하면
웃음이 절로 나올뿐이다.
한국은 다양한 꽃무늬를 연상시키고있는 무기물 성분의 뛰어난 수석들도 가지고 있다.
이런 화문석은 꽃 모양의 형태를 띄고 윤기가 나는 돌들이다. 한국의 많은 수석인들은 꽃을보기위해 가공한 이런 형태를 진정한 수석으로 평가하지 않고있다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꽃돌에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나에게는 이런 수석들이 어떤 지정학적인 과정으로 형성되었는지 알고싶은 것이다. 이런 아름다운 꽃무늬 형태의 수석들은 꽃을 상상시키면서 아름다움이 넘쳐 사랑을 받고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이런 꽃과 같은 형태의 수석을 미석(美石)이라고 부른다.
이 어원은 아름다운 돌이란 뜻인 중국문자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런 수석은 아시아에서 수집된 여러 형태의 돌들중 하나로 2001년 뉴욕의 한국문화원에서 전시된적이 있다.
이제 훌륭한 수석의 중요한 요소들을 살펴보자.
이 정보들은 한국어로 출판된 수석에 대한 내용에서 비롯된 것이다.
인간의 손으로 변형하지 않고 원래 돌 그대로의 모습 ,
일체 가공하지않은 자연스러운 형태를 갖추어야한다.
또한 심오하면서도 견고함, 위엄이 깃든 품위와 무한한 상상력이 뒷받침되어야한다. 이 중에서도 짙은 흑색 초코색 수석이 압권이다.
또 짙은 갈색 및 푸른 빛이 도는것도 수준급이다. 그러나 바다의 돌이라할 해석(海 石)은 가끔 화려하지만 수석의 본령은 아니다. 최근에는 수석을 평가하는 안목이 새로운 단계로 전개되고있다. 즉 재질과 표면에 주름(구김), 미세한 구멍들이 있어야 하는데 이런 요소들이 수석을 더욱 매혹적이고 독창적으로 꾸며주고 있다. 아울러 견고한 형태를 띄지만 쉽게 흠(긁힌자국)이 나서는 안되며 긴 연륜의 우아함 묻어나야한다. 주름은 긴 세월의 품격을 가늠하는 중요한 열쇠다. 또 하나의 색다른 특징은
자연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있느냐가 관건이다.
여기에는 우리 인간이 결코 소유할 수 없는 미적감각과 함께 영생, 불사조 같은 요소들이있다. 만만치 않은 많은 컬렉터들은 수석에 미적감각이 존재해서는 안된다고 믿고있다. 오히려 수석을 감상하는 관람자들의 미적인 감성속에 녹아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수석이 품어내는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바로 감상자들과 수석 사이에 일체감을 의미한다. 또 다른 서적에서 수석에 대한 아름다움을 소개하고 있다. 여기에서 미를 구분하는데 3가지 요소를 열거하고 있다. 아주 소박한 수석에서도 감지 되는데 이는 기호주의(symbolism)와 연관성(association)이다. 크든 작든 그 크기와 관계없이 감지되고 거대한 자연, 이상적인 자연미, 기품이 우러나오는 우아함에서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수석에서 이상적인 자연미가 어떻게 느껴지든 연륜의 자태가 보이지 않으면 그 수석은 은은한(serenity) 미적감각을 보여주지 못한것이다.
여기서 잠깐 한국에서 나무로 깍아서 만든 좌대(座臺)를 잠깐 살펴보자.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 좌대들은 착색제를 가미하지않고 아주 가벼운 색체로 마감을 하여 눈에띄게 자연적인 결이 나타나고있다.
윗부분에 있는 좌대를 보면 수석을 바치고 있는 테두리(lip, 입)가 일본것 보다 아주 특이하다는것을 알 수 있다. 또 짧고 둥글납작한 좌대의 다리가 또다른 특징을 보여주고있다. 물론 한국의 모든 좌대가 그런 모양을 갖추고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모양은 그 영향이 다른 어떤 곳에서 끼쳤다는 이야기다.
바다(sea)수석, 해변(beach)수석이라고 불리는 해석(海石)은 또 다르게 취급되고 있다.
이 수석들은 둥굴며 길쭉한 달걀모양으로 좌대는 컵모양 을 띄고 전시되고있다.
내가 보기에는 소나무나 보다 부드러운 나무로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받침대의 재질은 순 한국산으로서 느티나무가 있는데 이는 느릅나무과로 색상은 엷은 금갈색, 황갈색과 아름다운 녹색등이 있다. 가래나무 재질은 엷은 녹색, 녹색 줄 무늬를 띤 검정 초콜릿 색이 있다. 이들은 아주 단단하고 미국이나 남유럽의 검정 호두색과 비교될만하다. 다릅나무색은 콩과식물과로서 부드러운 재질로 나무 중심부는 엷은 노란색으로 되어있다. Bruises Serata Oriente 벗나무는 그 재질이 매우 단단하고 섬세한 결과 불그스럼한 갈색을 띄고있어서 받침대를 아름답게 장식하고있다.
한국의 부드러운 소나무 재질은 작업을 쉽게 할 수 있어서 바다수석의 받침대로 유용하다. 또 가끔은 토종 나무를 사용하기도한다. 잭푸르트나무는 연륜이 벤 불그스럼한 백단유(향수의 원료로 사용), 암갈색나무등으로 변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나무 받침대가 없는 수석을 살펴보자. 일반 쟁반인 윤기가 나는 도자기 수반은 동으로 만든것보다 보다 일반화되고 자주 사용되었음을 볼 수 있다. 쟁반. 한국어로 수반은 널리 사용되었고 수석을 전시할때 도자기수반은 그 효과를 배가시기는 역할을했다. 도자기수반은 매우 고가였고
일부 좋은 수석 연출을위해
일본 명품수반을 사용하였고 대부분의 열열한 애석인들은 소유하고있다한다.
한국인들은 아주 좋은 도자기 수반 뿐만아니라 동(銅) 또는 구리합금 수반도 사용했고 한국 동수반의 디자인은 아주 독특했다.
또 수석의 무게나 크기에 따라 그 상하길이가 얕거나 깊은 동으로된 수반을 사용했다. 실내에서의 조각을 한 수반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메뉴얼에 따라 수반을 사용하는 기본원칙은 아주 매끈한(neat) 수석에는 직각의 수반을 사용했던 사례를 볼 수가 있었다. 세계적으로 매끈하다는 의미는 무슨 뜻인가. 내가 생각하기에 여기에서 매끈하다라는 뜻은 각(角)이지고 아주 예리하게 각이 진, 사각형을 뜻한다고 하겠다. 즉 풍경화수석이나 산을 연상시키는 그런 종류의 수석이란 의미다. 오봉? 수반은 장엄한(majestic) 수석 뿐만아니라 각진것에 상관없이 사용했다. 한국어 수반은 수이반?과 매우 흡사한데 이것은 깊이가 제법있는 금속수반이나 냄비를 뜻한다.
수석을 연출하기위해
수반에 모래를 깔았고 한국 수집가들은 이 경우 중국, 일본에서 보았듯이 정기적으로 모래에 물을 뿌려주었다. 그 패턴을 보면 물이 마를 경우 천천히 뿌려주는데 그 이유는 잠깐 동안만이라도 아름다운 수석으로 보여주기 위해서다.

첫댓글 체계적인 역사와 감상법 공부잘하고 갑니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