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한 생명력! 합천 역산마을 느티나무
점필재의 손자 김유가 심었다고 전해오는 마을 앞 들판의 느티나무(2016. 5. 13)
옛 88고속도로를 달리다가 해인사 나들목 부근에서 남쪽으로 넓은 들에 우뚝 서있는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지금은 고속도로의 노선이 변경되어 남쪽으로 난 높은 교량에서는 이 나무를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합천군 야로면 구정리 역산마을 앞 넓은 평야의 십자로 농로 한가운데 서 있는 이 느티나무는 마을 사람들의 쉼터이면서 이 마을의 상징물이다.
역산마을의 향토 사학에 조예가 깊은 원로 권병석(85세) 선생의 증언에 의하면 점필재 김종직의 처가가 역산 마을이라고 한다. 점필재는 부인이 두 명인데 첫 부인은 창녕 조씨(曺氏)인데 아이를 낳다 얻은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후처로 남평 문씨 사복시 첨정(司僕侍 僉正) 문극정(文克貞, 역산마을 출신)의 18세난 딸과 혼인 하였다. 재혼 당시 점필재의 나이는 55세였다. 두 부인과의 사이에 모두 4남 3녀를 두었으나 장남 김곤을 비롯하여 아들들은 모두 요절하고 문씨 부인과의 사이에 난 김숭년(金嵩年, 1486-1539)만이 장성하였다.
점필재가 무오사화(연산군 4년, 1498년)로 부관참시를 당하고 정부인 문씨 부인은 전라도 운봉현에 관비로 정속되어 9년간 귀양살이를 하였고, 아들 김숭년은 13세의 어린 나이라 연령미만으로 화를 면하여 외가인 합천 야로(구정리 역산마을)에 안치되었다.
중종반정으로 점필재는 신원이 되고 부인도 풀려나서 친정인 역산마을에 와서 아들과 함께 살게 되었다.
김숭년은 성년이 되어 세 아들을 두었는데 셋째인 김유(金紐, 1527년생, 선조 1년 증광시 진사)가 이 나무를 심었다고 전해져 오고 있다. 점필재의 손자인 박재(璞齋) 김유는 문화 유씨 유치흔과 함께 이양서원(伊陽書院)에 배향된 분이다.
이 나무를 심은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동래 정씨 정영국(鄭榮國, 시조의 23세손)이 250년 전 성주에서 이 마을로 입향하면서 심었다는 설도 있다.
점필재의 손자 김유가 심었다면 나무의 나이는 500년, 정영국이 심었다면 250년이 된다.
양파 수확이 한창인 역산마을 사람들(2016. 6. 15)
수해가 났을 때 주막집 사람들은 이 나무에 올라가서 생명을 구하였다.
이 나무에 얽힌 이야기는 병자년(1936년) 수해 때 가야천 제방이 붕괴되어 이 나무 밑에 있던 주막이 침수되자 이 집에 살던 가족이 나무에 올라가 화를 면하게 되었다고 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 후손들이 매년 이 나무에 와서 주과포를 차려놓고 절을 하면서 생명을 건져준 은혜에 감사하는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이 수해로 말미암아 논밭을 덮친 돌을 이 나무 주변에 쌓아서 나무의 키가 줄어들었으며, 따라서 뿌리가 깊게 묻혀서 숨쉬기가 어려워져서 나무는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새마을 운동이 한창 물어 익어 갈 무렵인 70년대에 동민들이 다 죽어가는 이 나무를 10만원에 팔기로 하고 계약까지 하였으나 동네 노인들이 “나무가 죽더라도 그대로 두어야지 벨 수는 없다”고 못 팔게 하여 계약을 파기하고 나서 다시 살아나 오늘과 같이 왕성하게 자라고 있다고 한다.
노인들의 나무에 대한 애정에 보답하는 느티나무의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마치 이 나무를 심은 김유의 아버지 김숭년이 무오사화로 죽음에 직면하여 이 마을로 안치되었다가 중종반정으로 다시 신원되어 점필재의 대를 이을 후손들을 번창시킨 것과 너무나 닮은꼴이다.
여름이면 마을 사람들의 휴식처가 되고 역산마을의 상징이기도 하다.
양파수확기에 이 나무 아래에 모여서 점심을 먹으면서 휴식을 취하는 주민들(2016. 6. 15)
이 나무를 심고 지켜온 역산마을은 마을의 이름이 순임금이 밭을 갈고 살았다는 중국의 역산(歷山)과 같다고 하여 물 좋고 넓은 들에서 나는 풍요로운 물산으로 살기 좋은 고장이라고 자부심이 대단하다. 지금도 벼농사와 양파를 2모작하여 높은 소득을 올리는 부지런하고 지혜로운 주민들이 사는 마을이다.
이 느티나무를 찾는 사진작가 등 외부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동민들의 건의로 합천군에서 보호수로 지정(2015. 7. 7)하고 나무를 관리하고 주변을 정리하여 마을 주민들의 편한 쉼터가 되고 이 나무를 찾는 사람들에게 느티나무의 풍요로움과 강인한 생명력, 그리고 고목나무의 소중함을 보여주려고 하는 노력에 감사드린다.
※나무정보
•나무등급 : 보호수(2015년 7월 7일 지정)
•위치 : 경남 합천군 야로면 구정리 147-3
•나무나이 : 500년
•나무높이 : 14.6m
•가슴높이둘레 : 595cm
※나무높이와 가슴높이둘레는 필자가 직접 측정한 것으로 표지석의 것과 차이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