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건의 경위
가. 복도식 구조인 본건 아파트는 각 세대의 수도 계량기가 세대 출입문 밖 복도 외벽의 수도계량기함 내에 설치돼 있다. A는 본건 아파트 거주자인데 위층 세대의 수도계량기 본체가 파손돼 누수가 발생하는 바람에 각 방과 거실 천장이 젖고 물이 흘러내리는 등의 피해가 발생했다. A는 목공사와 도배 공사 등 약 400만원 상당의 비용을 보수비로 사용했다.
나. 이에 A는 공용부분 관리책임을 부담하고 있는 관리주체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A의 손을 들어줬다.
2. 법원의 판단
가. 공용부분인 수도계량기 파손에 따른 누수 피해-관리주체의 손해배상책임 인정
본건 아파트 관리규약에는 ‘전용부분 및 공용부분의 범위’라는 제하로 공용부분과 전용부분을 구체적으로 구별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세대별 전기·수도·가스·급탕 및 난방의 배관·배선·계량기 등과 관련해 계량기까지는 공용부분으로 하고, 그 후의 배관 및 배선은 전용부분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공용부분에 대해 1차적인 관리책임을 부담하는 관리주체는 A의 위층 세대 수도계량기가 파손되고 누수됨에 따라 A세대에 발생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나. 수도사업소 민원회신, 관리주체의 면책사유가 될 수 없음
본건 아파트 상수도를 관할하는 서부수도사업소의 민원회신 내용은 ‘서울시 수도조례 제40조 제1항[대지경계선 안의 급수설비(수도계량기, 수도배관 등)의 관리는 수도사용자 등의 책임으로 한다]에 따라 위 사업소는 문제가 된 수도계량기 누수 사고에 대한 법률상 배상 책임을 부담하지 않고, 이는 수도사용자의 책임이므로 수도계량기 사용자와 관리주체가 서로 원만히 협의해 해결할 문제’라는 취지의 견해를 밝혔다. 이는 수도 사업소가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에 불과하고 손해배상책임이 A의 위층 세대에만 있으며 관리주체는 책임을 면한다는 의미로 보기 어렵다.
민원회신에서 사용된 ‘수도사용자’라는 표현이 ‘파손된 수도계량기가 속한 세대’를 가리키는 것으로 단정할 수 없고, 실제로 서울시 수도조례 제2조에서는 ‘수도사용자 등’이란 급수설비의 사용자·소유자 또는 관리인 등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가사 수도사업소의 민원회신이 파손된 수도계량기 세대의 책임이라고 해석되더라도 본건 아파트 관리규약에 수도계량기 본체를 명시적으로 공용부분으로 규정한 이상 이를 배제하고 관리주체의 책임을 부정할 만한 법적 준거가 될 수는 없다.
다. 관리규약 제25조, 관리주체의 면책사유가 될 수 없음
본건 아파트 관리규약 제25조에 따르면 입주자 등이 고의 또는 과실로 공동주택의 공용부분 또는 다른 입주자 등의 전용부분을 훼손했을 경우 원상 회복하거나 보수에 필요한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이 경우 제3자에게 손해를 끼쳤을 때는 그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관리주체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수도계량기의 파손 및 누수에 관해 그 입주자 내지 소유자 또는 제3자의 고의 또는 과실이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기 부족하다. 가사 그러한 고의 또는 과실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위 관리규약 규정의 내용은 그와 같은 손해가 발생할 경우 그 원인을 제공한 입주자 등의 손해배상책임을 규정한 것일 뿐, 공용부분의 관리책임을 부담하는 관리주체의 책임이 면책된다는 의미로 볼 수는 없다.
3. 판례평석
관리주체는 공동주택의 공용부분 유지·보수 및 안전관리 업무를 수행한다. 따라서 공용부분에서 발생한 문제로 손해가 생기면 공용부분을 관리하는 관리주체의 책임 여부가 문제 되기 마련이다.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된 수도계량기는 관리규약에 따르면 공용부분에 해당한다.
이 판결은 공용부분인 계량기 파손으로 인해 누수 피해가 생겼으니 공용부분 관리 책임이 있는 관리주체가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용부분에서 발생한 모든 사고와 그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은 언제나 관리주체에게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관리주체라고 해서 대비가 불가능한 모든 피해를 무한히 책임지는 것은 아니므로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의무를 다했는지 살펴야 함은 물론이다. 아파트에서 파손 등 사고로 인한 손해가 발생한 경우 관리주체가 손해배상책임을 지는지 여부가 문제 된 사건에서 주요 쟁점은 두 가지다.
해당 사고가 관리주체의 책임 범위인 공용부분에서 발생한 것인지, 만약 공용부분이라면 관리주체에게 귀책사유가 있는지 말이다. 이 사건에서 수도계량기가 관리주체의 관리책임 범위인 공용부분에 해당한다는 점이 다툴 여지가 없으니 남은 쟁점은 관리주체의 귀책사유 여부였을 것이다. 수도계량기가 파손된 원인과 누수 피해가 발생한 과정에서 관리주체에게 고의 또는 과실이 있는지를 따졌다면 좋았을 텐데 관리주체가 수도사업소의 민원회신이나 관리규약 제25조 정도만 주장한 것을 보면 귀책사유를 다툴만한 다른 사정이 없었나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