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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화와 기하급수의 법칙
35억년 전에 단세포(박테리아류)가 생겼다. 세포핵이나 리보솜은 있지만 세포핵과 세포기관은 없는 원핵생물이다. 그러다 이 불완전한 단세포들이 약 16억년 동안 노력하여 핵을 갖고, 소포체와 미토콘드리아를 갖춘 더 안전한 진핵생물이 되었다. 단세포의 완성이다. 지금으로부터 21억년 전 일이다.
이 단세포가 오늘날 거의 모든 생명의 시조인데, 이 단세포는 약 4억년간 꾸준히 노력하여 다세포가 되었다. 세포연합이다. 17억년 전 일이다.
세포연합체인 다세포는 마침내 단순 연합을 넘어 약 10억년간 끈질기게 노력하여 세포들이 서로 다른 기능을 하는 '꿈틀거리는' 동물로 진화하였다. 지금으로부터 7억년 전 일이다.
한편 다세포의 일부는 12억년간 노력한 끝에, 마침 산소량이 증가한 탓(O2의 뛰어난 산화능력으로 원자들의 급격한 결합에 따른 변화가 일어날 수 있었다)이기도 하지만 식물로 진화했다. 지금으로부터 5억년 전이다. 식물은 이 당시 출현하여 오늘날까지 5억년간 잘 살고 있다. 지구 생존 역사가 매우 길고, 가장 적응을 잘한 종이라고 할 수 있다. 식물의 진화는 동물의 진화에 비해 극적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식물도 엄청나게 뇌를 쓰면서 생존을 모색한다.(다른 데 참고할만한 글이 있다.) 지구에 무한한 햇빛과 물을 먹이로 삼았으니 얼마나 현명한가. 먹이를 찾기 위해 헉헉거리는 동물보다 한 위라고 할 수 있다.
'꿈틀거리는 생명체'인 동물은 약 2억년간 노력하여 척추동물이 되었다. 꿈틀거리는 생명체가 다세포 덩어리였다면 척추동물은 제법 모양을 갖춘 동물이다. 이때가 5억년 전으로 식물 발생기와 같다.
척추동물은 동시에 생겨난 식물을 먹이로 삼거나 단세포, 다세포류를 먹으면서 생존해나갈 수 있었다.
그렇더라도 인류 비슷한 수준에 오르면 까마득히 멀다.
다세포가 모여 만든 원시적인 척추동물은, 1억년간 애를 써서 단순한 기능분화와 협업을 넘어 드디어 신경세포 다발인 뇌간(세포에서 뻗어나온 통신선 즉 신경을 묶은 다발)을 만들어냈다. 다세포 동물을 이룬 그 단세포들이 각자 통신망을 구축한 것이다. 이 뇌간이 바로 진정한 뇌의 출현이다. 이때가 4억년 전이다. 여기서부터 뇌의 역사가 시작된다.
척추동물에 뇌간이 형성되고, 풍부한 식물이 자라는 지구에 가장 먼저 생긴 동물은 공룡이다. 두뇌는 겨우 158CC였다.(티라노사우루스 렉스) 스테고사우루스의 경우 몸무게 5톤에 두뇌가 겨우 80g이다. 파충류뇌의 전형이다. 이 뇌는 냄새를 맡는 부분만 발달되어 특정 냄새가 감지되면 덥썩 물어대도록 설계되었다. 상대가 무엇이든 상관이 없고, 맛이나 모양 따위는 보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거대 공룡의 틈바구니에서 작은 파충류들이 살아남기는 매우 어려웠다. 공룡의 먹이가 될 뿐 생존이 막막하였다. 이들은 재빨리 달아나거나 숨는 법을 익혀야만 했다. 그러자니 운동뇌가 필요했다. 생각하면 이루어진다는 법칙에 따라 원시적인 소뇌가 뇌간을 뚫고 부풀어 올랐다. 공룡이 지구에 나타난 지 5000만년이고, 뇌간이 나온 지 2억년 만이다. 지금으로부터 2억 5천만년 전이다.
그런데 소뇌를 가진 일부 파충류 중에서 공룡을 피해 생존하려는 '특이한 파충류'가 하나 있었다.
바로 이 놈이다. 수궁류(獸弓類, Therapsid)다.
공룡에 맞서 살아남으려면 우선 공룡이 지배하는 낮보다 밤 시간에 활동하는 것이 낫다. 그래서 이들은 낮에는 굴로 들어가 숨고 해가 지면 밖으로 나와 공룡 등 다른 파충류의 알따위를 훔치러다녔다. 정교한 동작이 필요한데 그에 맞춰 원시적인 파충류뇌인 뇌간에 소뇌가 부풀어 올라왔다.
파충류는 후각이면 만족하지만 파충류에 맞서 생존하려는 이 '특이한 파충류'는 청각, 시각이 더 필요했다. 그래서 간상체가 생기고 시각과 청각을 담당하는 뇌가 더 부풀어 올랐다. 뇌간을 뚫고 새로운 뇌가 부풀어 오르면서 소뇌가 생기고 해마 등 그밖의 변연계의 여러 두뇌 기능이 더 생겼다.
파충류는 자기들 세상이니 아무 데나 알을 낳아두면 저절로 부화해 알아서 살아가지만, 파충류를 피해다녀야 하는 이 '특이한 파충류'는 그럴 수가 없었다. 부화해도 갈 곳이 없다. 그래서 알을 자궁에서 부화시켜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 어미 품에서 젖을 먹여 길렀다. 이것이 포유류의 시작이다. 그러자니 포유류처럼 알 낳는 것으로 새끼를 잊어버리면 안된다. 그래서 모성애가 나타났다. 뇌간을 뚫고나온 변연계뇌 중 뇌하수체에서 나오는 옥시토신(Oxytocin) 호르몬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런 끝에 마침내 포유류가 완성되었다. 그러기까지 이 '특이한 파충류'가 노력한 시간은 5000만년이다. 지금으로부터 2억년 전 일이다.
- 옥시토신 호르몬의 분자식. 산소, 수소, 질소의 결합이다. 파충류와 포유류를 가르는 절대 기준이 되는 호르몬이다.
포유류는 공룡 멸종 이후 낮에 활동하기 시작했다. 물론 굴에 계속 사는 포유류도 있었지만 대낮에 과감히 세상으로 나간 포유류들은 사바나에서 무럭무럭 자랐다. 포유류만 갖는 옥시토신 호르몬은 이들을 서로 사랑하게 만들고, 애틋하게 만들어 집단의 결속을 더 강화시켰다.
그러던 중 이 약육강식의 사바나에서 좀 더 효율적으로 기억하고, 판단하려는 '특이한 포유류'가 나타났다. 이들은 본능대로 움직이는 대신 주시하고, 판단하고, 예측하면서 사냥을 하거나 방어하였다. 이들의 머리에 혹이 부풀어오르기 시작했다. 대뇌 즉 좌뇌와 우뇌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드디어 영장류의 뇌가 나타났다. 그러기까지 '특이한 포유류'는 무려 1억년간 고생했다. 지금으로부터 1억년 전 일이다.
다만 대뇌는 기억용으로만 활용되었다. 그래도 기억 정보를 조합하여 지혜를 만들어내는 방법을 알아내려 애쓴 영장류가 나타났으니, 6500만년간 노력하여 드디어 자그마한 지혜를 쓰기 시작한 원숭이다. 3500만년 전 일이다.
'특이한 원숭이'는 1500만년간 대뇌를 써서 지혜를 많이 만들어내는 연습을 꾸준히 했다. 거기서 뇌량으로 좌뇌와 우뇌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전략 전술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걸 알아내고, 그들은 유인원이 되었다. 2000만년 전 일이다.
이들은 기억 용량을 늘이고, 감각 기능을 다양하게 활용했다. 그럴수록 전두엽이 자라고, 지혜를 다루는 기술이 날로 향상되었다. 이들은 400만년 전의 최초 직립인간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되고, 마침내 200만년만에 언어를 쓰는 호모 하빌리스가 되었다. 40만년 전에는 아프리카를 떠나 아시아와 유럽으로 이주하면서 두뇌 정보를 혁신적으로 늘려나갔다. 드디어 좀 더 복잡한 정보를 처리하고, 기억하고, 판단예측하는 호모 사피엔스가 나타났다. 지금으로부터 25만년 전이다.
그뒤로도 호모 사피엔스는 두뇌를 활용하는 능력을 키우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자, 지금까지 생명의 진화를 보면서 혹시 기하급수의 법칙을 보지 못했는가?
처음에는 한 종이 다른 종으로 진화하려면 몇 억년 걸렸다. 그러다가 1~2억년으로 진화의 시간이 줄고, 다음에는 몇천만년으로 줄더니 가까이 오면서 수백만년으로 줄었다. 그러면서 지능이 폭발하고, 종의 다양성도 풍부해졌다.
이처럼 진화는 기하급수의 법칙으로 일어나는데, 최근 이를 완성하는 듯한 놀라운 진화가 단 10년만에 일어났다는 보고가 있었다.
- 우렁이솔개는 어떻게 10년만에 진화했나?
미국의 우렁이솔개는 1999년 조사에서 미국 내 개체가 약 3500마리로 집계된 바가 있다.
그런 중 2004년에 미국에 남미원산의 대형 우렁이가 수입되었다. 기존 토종 우렁이보다 몇 배 더 컸다. 그러자 솔개들은 이 큰 덩치의 우렁이를 발톱으로 잡아가지 못하고, 쪼아먹지도 못하게 되었다.
20007년, 우렁이 도입 3년만에 우렁이솔개의 개체가 700마리로 줄었다. 학자들은 우렁이솔개가 미국에서 멸종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 우렁이솔개가 먹던 미국 토종 우렁이(왼쪽), 남미산 대형 우렁이(오른쪽)
하지만 이 예측은 틀렸다. 생명의 진화능력을 무시한 예측이었던 것이다.
놀랍게도 우렁이솔개는 멸종하기는커녕 현재 2000마리로 늘어났다 한다.
학자들이 그 이유를 알아보니, 우렁이솔개의 부리와 발톱이 외래종 우렁이에 맞춰 진화했다는 것이다. 솔개도 자신의 몸통을 2-3배로 불리면서 부리를 더 길게 내밀고 발가락을 키운 것이다.
10년만에 이런 변화가 일어났으니, 1세대를 5-8년으로 보는 우렁이솔개는 거의 1년마다 새끼를 쳐가며 진화를 꿈꾸었던 것이다. 그래서 마침내 새로운 먹이에 적합한 종으로 재탄생했다.
- 10년만에 진화한 우렁이솔개
- 누가 진화하는가
생명의 진화가 10년만에 일어났다는 건 사실 그리 대단한 뉴스가 아니다.
한민족 중 한국에 사는 사람들의 체형 변화도 실은 지난 몇십 년 사이에 일어난 것들이 많다. 성형과 더불어 진화가 동시에 진행됐지만 한민족의 상체와 하체 비율이 달라지고, 쌍꺼풀이 늘어나고, 광대뼈가 들어가고, 안짱다리가 줄고 있다.
나는 <인연의 힘>이란 저술을 통해 진화 혹은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지점을 '생각하는 임계점'으로 보았다.
생각이 없으면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진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반드시 생각이 있어야만 한다. 다만 임계점의 뚜껑을 깨고 나아가는 부화가 필요하다. 이런 걸 고타마 싯다르타는 깨달음이라고 표현했고, 그걸 깨는 도구를 반야라고 이름했다.
이런 이유로 나는 1996년부터 바이오코드 슬로건을 <생각하는대로 이루어진다>로 정했던 것이다.
하지만 '생각하는 임계점'의 그 생각이 어떤 생각이냐에 대해서는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하다. 아무 생각이나 한다고 금세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기로 말하면 모든 기도와 염원이 다 이뤄져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인연의 힘>을 통해 확인된 임계점의 이 '생각'은 반드시 '간절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간절한 생각을 가질 수 있을까?
결론은 배부른 자는 간절하지 않다는 점이다. 배부르고도 간절해질 수 있다면 최상이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증거를 너무 많이 보아왔다. 임계점이 형성되느냐 안되느냐의 문제도 있으니 말이다.
일본제국의 경우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는 과정에서 어느 시점(일종의 임계점이지만)에 미국 및 연합군에 패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일본인들은 많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브레이크를 걸 힘이 없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포유류다. 두뇌사용법이 달라져서 호모 사피엔스라고 부를 뿐 실제로 그 생물학적 기반은 포유류에 있다. 그렇다 보니 떼를 지어 몰려다니는 습성이 그대로 남아 있다. 즉 전체주의에 빠지는 것이다. 태평양전쟁을 통해 이익을 본 일본인들은 천황이라는, 사실 1세기 전만 해도 무늬만 왕일 뿐 실권은 하나도 없었던 상징적인 존재에 불과했다, 이 인간떼들은 가상의 개념을 신의 경지까지 끌어올렸다. 그러고는 달렸다. 아무도 반대할 수도 이의를 제기할 수도 없는 막다른 상황으로 치달았다. 결국 일본은 핵폭탄을 두 발이나 맞고서야 항복한다. 그전에도 도쿄에 2400만톤의 네이팜탄이 뿌려졌지만 그들은 '천황에 대한 신앙의 힘'으로 견뎌냈다.
잘못된 근거에 의한 확신을 가진 이 '천황 유일 신앙 집단'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한 간절한 생각을 하기는 했으나 기껏 인간폭탄이라는 가미가제, 혹은 집단자살, 1억옥쇄 같은 부정적인 아이디어만 만들어냈다. 그들은 끝내 임계점에서 '생각'을 하지 못했다.
즉 간절한 생각이란 있는 그대로의 사실, 즉 Fact에 기반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자면 일단 Fact를 찾는 지혜의 눈을 갖고 있지 않으면 어떤 '간절한 생각'도 자칫 오류에 빠지기 쉽다.
노키아는 세계최초로 스마트폰을 개발했지만 그들은 일반휴대전화를 1억 대 이상 판매한다는 통계의 오류, 매출의 함정에 빠져 몇 년 내에 들이닥칠 새로운 통신 문화를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말이 그렇지 휴대폰을 1억대 이상 팔면 노키아 주주들에게 천문학적인 수익이 쏟아졌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간절할 이유가 부족했다. 이미 충분했다. 노키아1100 시리즈는 무려 2억 5000만 대나 팔렸다. 노키아의 국적인 핀란드를 먹여살린다는 말이 나왔다. 따라서 시장성이 불투명한 스마트폰을 굳이 뒤적거릴 필요 혹은 여유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 엄청난 수익으로 세계여행을 즐기고 우아한 만찬을 즐겨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아이폰이 나온 뒤 갑자기 몰락했다.
두 가지 이유다.
1. 노키아는 1999년에는 태플릿 PC를, 2000년에는 스마트폰을 이미 개발했다. 누군가는 미래를 보고 대비를 했다. 그런데 그 누군가는 의사결정권자가 아닌 하급 세포에 불과했을 것이다.
2. 아이폰이 출시되었을 때 노키아는 아이폰이 왜 망하는지 그 이유를 수없이 열거한 보고서를 내놓았고, 경영진은 이를 수용했다. 그래서 아이폰이 망할 줄 알았다.
이런 실패 속에서도 노키아 경영진은 해마다 적자행진을 하던 2008년이 돼서야 겨우 스마트폰 운영체제 개발에 나섰다. 그때는 이미모든 전쟁이 끝났을 때다.
뭘까. 무엇이 이들의 '간절한 생각'을 방해했을까. 그들은 왜 자신들이 임계점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을까.
매년 최고점을 찍는 매출에 눈이 멀어 미래를 내다보지 못했을까?
돈이 아까워 연구개발비를 줄였을까?
아니다. 그들은 엄청난 연구개발비를 쓰고도 휴대폰 시장에 처음 진출하는 애플에 밀려버린 것이다.
돈이 없어서, 연구개발비를 덜 써서 노키아가 실패한 건 아니다. 엄청나게 돈을 썼지만 그들은 기술자지 경영자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노키아를 오판시켰을까?
그런 사례는 코닥에서도 똑같이 찾아볼 수 있다.
코닥은 전세계 필름시장의 90%를 장악한 글로벌 대기업이었다. 이들도 미래를 예측하며 디지털카메라를 세계최초로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똑같은 이유로 이들은 디지털카메라를 방치했고, 이들은 순식간에 몰락의 길로 내몰렸다.
코닥도, 노키아도 한때 중간까지는 기하급수의 법칙으로 회사를 키웠다. 하지만 어느 순간 정체기를 맞고 그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자 몰락한 것이다. 주역에 나오는 '항룡(亢龍) 유회(有悔)’가 바로 그것이다. 1등 너는 죽는다는 말이다. 로지스틱함수는 기하급수의 법칙이 어느 순간 정체된다는 자연현상을 가리킨다.
수천만명을 죽인 페스트 같은 전염병도 기하급수적으로 사람을 죽이다가 어느 순간 평형을 유지한다. 사람을 다 죽이지 못하고 풀이 죽는다. 기업도 개인도 마찬가지다. 로지스틱함수에 걸린 뒤 현상유지만 해도 다행이다. 기업의 경우 대개 망하는 길로 가고, 나라 역시 마찬가지로 사양길로 접어든다. 로마, 대몽골제국, 대영제국이 그러했다.
진화와 변화의 시각에서 보면 '임계점의 간절한 생각'이란 매우 중요하다. 이들이 엄청난 연구개발비를 쓰고도 후발 주자들에게 덜미를 잡힌 것은 생각을 많이 하기는 했으나 간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대기업들이 만나는 운명 같은 것이다. 그래서 삼성 이건희 같은 경우, 회사가 잘 나갈 때 엄살에 가까울만큼 위기라는 말을 강조했다. 시간이 지나고 보면 사실 위기가 맞지만, 아무도 위기로 인식할 이유가 없을 때였다. 연봉은 충분하고, 보너스가 연봉을 넘어설 정도로 잘 나갈 때였다. 이럴 때 회장인 이건희가 나서서 직원들에게 이런 대우가 곧 끊어지고 삼성이 망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주입시켜 연구개발 의지를 살려나갔던 것이다.
운동화 개발에 거듭 실패하여 지친 필 바우어먼의 눈에 띈 와플은 나이키를 만들고, 자살을 꿈꾸는 실패자 레비 스트로스가 본 광부의 해진 바지는 청바지를 만들고, 수심에 가득 찬 아이작 뉴턴이 본 '떨어지는 사과'는 중력을 발견하게 만들고, 월트 디즈니가 망한 사무실에서 마주친 생쥐는 미키 마우스를 만들게 한다.
이런 사례는 얼마든지 더 들 수 있다. 즉 108가지 번뇌와 잡념으로 혼란스러운 인간의 두뇌가, 대개는 돈에 쪼들리거나 망하거나 누군가의 공격을 받을 때, 갑자기 집중(Attention)이 되면서 두뇌의 신경세포 1000억개가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제히 분주해진다'. 거기서 폭발이 일어나 정답을 찾아낸다.
지금까지 생명의 진화는 기하급수의 법칙도 아니고, 로지스틱 함수도 아니고, 다음과 같은 진화의 법칙에
따라 오늘의 세상을 만들어냈다. 물론 인간 중심이다.
이 진화의 법칙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약한 종 혹은 부적응 종, 위기 종이 더 생각을 많이 한다. 즉 고민한다. 대개 약하거나 부적응하거나 위기를 맞은 종은 자연계에서 대부분 사라진다. 하지만 그중의 몇몇이 기어이 환경에 적응하거나 천적에 맞설 수 있는 무기를 개발해낸다. 그들이 인류와 현재 생존한 생명체들의 조상이다.
- 광해군 때 남인북인으로 갈라진 동인은 서인들의 반정으로 사실상 몰락한다.
하지만 이때 망한 줄로만 알았던 남인은 세월을 펄쩍 뛰어넘어 18세기 중반 정조 이산의 시대에 재등장, 이후 조선이 망할 때까지 이어진다.
- 서인이 갈라진 노론 소론이 대립이 격화될 때 소론을 씨도 없이 말려죽인다며 어린아이까지 죽였지만 그때 살아남은 아이가 기어이 소론 정권을 일으킨다.
2. 권력자나 부자는 간절한 상황을 만들기 어렵다. 하지만 그 권력자나 부자를 노리는 반역자는 언제나 간절하다. 그래서 이방원은 기생 불러 술 마시던 아버지 이성계의 동업자 정도전을 죽일 수 있고, 스티브 잡스는 노키아, 삼성이라는 대기업이 버티고 있는 휴대폰 시장에 맨손으로 뛰어들 수 있었다.
3. 간절함은 인위적으로 만들기 어렵다. 사업에 망해 쫓기거나 추격자에 잡혀 죽을 지경이 되면 겨우 가능할지도 모르는 것이 '간절'이다.
그래서 아무리 기도해도 간절하지 않으면 성취되기 어렵고, 간절하지 않은 희망은 잘 이뤄지지 않는다.
강한 나라 초나라에서 도망친 자서 오원이 아버지와 형의 죽음에 대한 원한을 붙들고 30년 애쓴 끝에 오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고, 그 오나라가 초나라를 깨부수고 춘추패자가 된다. 그러고도 또 오나라에 패한 월나라가 춘추패자가 되는 건 약자의 간절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실제 역사 속의 약자는 대부분 죽거나 도태되거나 사라진다. 극히 일부분의 성공사례를 보편적인 원리로 적을 수는 없다. 그러니 일부러 자살 위기로 빠지지 말고, 사업에 망하지 말기 바란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간절함을 일으키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그것이 아나파나요, 브레인리퍼블릭이다. 자세한 건 아나파나 모임에서 강좌로 설명한다.
우리 용인고려백자연구소에서 고려백자를 굽기 위해 불을 지핀 장면. 지구상에 가장 흔한 규소(sio2)는 800도로 구우면 질그릇이 되고, 1300도로 구우면 불순물을 말끔히 태워버린 청자가 되고, 1400도로 구우면 규소가 보석처럼 빛나는 백자가 된다. 이 차이는 규수분자의 정렬 각도다.
사람도 이와같다.
규소를 1700도로 구우면 규소 결정이 바르게 정렬되고, 가장 안정한 자세를 취한다. 햇빛은 완벽하게 투과하고, 굴절없이 그대로 전달된다. 투명한 아름다움의 결정이 바로 석영 즉 크리스탈이다. 이런 단계에 이르는 것을 도야(陶冶)라고 한다.
질그릇이 호모에릭투스라면 청자는 호모사피엔스이고, 백자는 아이작 뉴턴이나 알버트 아인쉬타인처럼 자신의 두뇌를 적극 활용한 창의적인 인간이다. 마지막으로 석영 즉 크리스탈은 자아가 사라진, 그 어떤 불순물도 다 사라진 니르바나에 이른 붓다에 비유할 수 있다.
- 용인 보문정사가 모시는 붓다의 불사리. 붓다가 열반한 구시나가라 열반당에서 모셔온 진신사리다.
사리장엄구에 모시려고 깨끗한 종이에 조심스레 쏟았는데 이런 형상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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