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이상한 정상가족’,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용기에 대하여
김희경의 이상한 정상가족은 단순히 가족 제도에 대한 비판서로 끝나지 않는다. 이 책은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당연하다고 여겼던 가족이라는 개념을 해체하며, 그 틀 안에서 숨 막히는 듯 살아가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이상한 정상가족은 가족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들춰내는 동시에, 우리가 각자의 삶 속에서 불완전한 관계를 어떻게 마주하고,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에 대해 묻는 책이다.
‘정상’이라는 단어의 무게와 위선
책의 출발점은 '정상가족'이라는 단어다. 한국 사회에서 정상가족은 흔히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핵가족’을 의미하며, 이 틀을 벗어난 가족은 종종 사회적 편견과 차별의 대상이 된다. 이 '정상'이라는 단어는 어떤 면에서는 위로가 되기도 한다.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정상가족의 틀이 얼마나 배타적이고 편협한지 날카롭게 지적한다. 정상가족이라는 신화가 실은 많은 사람을 상처 입히고, 가족 내부에서도 억압과 권력의 구조를 정당화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단순히 이 개념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이런 질문을 떠올렸다. 왜 우리는 정상이라는 틀에 그토록 집착할까? 단순히 사회적 인정 때문일까? 아니면 그 틀 속에서 심리적 안정감을 얻고 싶기 때문일까?
나는 이 책이 단순히 "정상가족은 틀렸다"라는 선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가진 두려움과 위선을 마주하게 만든다고 느꼈다. 정상이라는 틀이 깨졌을 때 나타날 혼란, 그리고 그 혼란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는 두려움이 우리로 하여금 이 허상을 고수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김희경은 그 두려움을 직면하라고 말한다.
‘부모’라는 이름의 권력과 그 이면
책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가족 내 권력 구조, 특히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조명하는 대목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부모는 종종 아이를 자신의 소유물처럼 대한다.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야"라는 문장은 부모의 애정을 증명하는 동시에, 아이의 자율성을 무시하는 핑계로 작용한다. 저자는 이를 비판하며, 부모의 사랑이 사실은 통제와 억압의 다른 이름일 수 있음을 경고한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부모의 권력 자체를 비난하기보다는 그 권력이 형성된 배경에 주목하고 싶었다. 한국 사회에서 부모 역시 끊임없는 압박 속에 살아간다. "좋은 부모"라는 기준을 강요받으며, 아이의 성공을 자신의 책임이자 업적으로 여기도록 내몰린다. 그 과정에서 부모는 자신이 가진 불안을 자녀에게 투영하고, 이를 사랑으로 포장한다. 부모가 가진 권력은 실은 매우 취약한 기반 위에 서 있는 것이다.
이 책이 지적하는 부모-자녀 관계의 문제는 단순히 부모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다. 그것은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만연한 경쟁주의와 성과주의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부모와 자녀 모두가 이 구조 속에서 피해자가 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 권력 관계를 단순히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서로의 약점을 인정하고 함께 변화를 모색하는 일이 아닐까?
다양성의 함정
책은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다양한 가족 형태를 포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부모 가족, 재혼 가족, 동성 부부, 비혼 동거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은 현대 사회에서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들 가족이 사회적으로 더 많은 인정과 지원을 받아야 한다는 데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나는 이 논의를 읽으며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만으로 충분할까?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하는 것은 출발점일 뿐이다. 그들이 처한 구체적인 현실과 어려움을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다양성이라는 단어는 또 다른 구호로 끝날 위험이 있다. 예를 들어, 한부모 가족이나 동성 가족이 법적으로 인정받는다 해도, 그 안에서 벌어지는 관계의 갈등이나 개인의 고통이 자동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가족의 형태가 무엇이든, 중요한 것은 그 관계가 서로를 존중하고 지지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가족’이라는 개념의 재구성
이상한 정상가족을 읽으며 한 가지 확실해진 것은, 우리가 가족이라는 개념 자체를 재정의해야 할 시점에 왔다는 것이다. 가족은 혈연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선택적 가족, 즉 혈연이나 혼인 관계가 아니더라도 서로를 가족처럼 여기는 관계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런 변화는 단순히 가족 구조의 다양성을 넘어, 가족의 본질적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가족이란 결국 서로를 지지하고 존중하는 관계일 것이다. 전통적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해서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바꾸어야 할 것은 가족의 형태가 아니라, 가족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과 태도다.
결론: 불완전함 속에서 피어나는 관계
김희경의 이상한 정상가족은 단순히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의 문제를 비판하는 책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관계 속에서 얼마나 불완전하며, 그 불완전함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를 묻는 책이다. 가족은 완벽할 필요가 없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서로를 억압하고 통제하는 대신, 불완전한 모습을 받아들이고 함께 성장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이 책을 읽고 가족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가족은 '정상'이라는 이름 아래 완벽함을 강요당하는 곳이 아니라, 서로의 결핍과 약함을 드러내도 괜찮은, 그런 안식처가 되어야 한다. 이상한 정상가족은 우리가 가족이라는 관계 속에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묻는 깊이 있는 철학적 질문으로 남았다. 그리고 나는 그 질문을, 내가 속한 가족과 나 자신에게 던져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