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차산의 유래에는 여러 설이 전하여져 온다. 흥미위주의 재미로 만든 것 같은 이야기도 있고, 그럴듯한 내용이 있는 것도 있다. 어느 것이 진실이든 역사적 사실에 관심을 돋우는 이야기로 들여 줌직한 이야기라 정리하여 본다. 그 하나는, 고구려 온달(溫達) 장군에 관련된 이야기인데, 고구려가 장수왕의 남진 정책으로 이 지역을 차지한 후 고구려 영양왕 때, 평강공주의 남편이며 돌아간 평강왕(평원왕)의 사위인 온달 장군이 신라에게 빼앗긴 이 지역을 비롯한 죽령(竹嶺) 이북의 땅을 되찾기 위해 신라군과 싸우다가 이곳 아차산의 산성에서 신라군의 화살에 맞아 전사(戰死)하였다는 것이다. 이때 고구려 군이 온달 장군의 시신(屍身)을 평양으로 옮겨 가려 하였으나 장군의 한(恨)이 맺혔음인지 영구(靈柩)가 움직이지를 않았다. 이에 아내인 평강공주가 평양으로부터 와서 관(棺)을 어루만지며 “사생(死生)이 이미 결정되었으니 아아, 돌아 갑시다. ” 하자 관이 움직여 돌아가 장례를 치룰 수 있었다. 그래서 오늘날 이곳 주민들은 “아차! 온달 장군이 이곳에서 그만 죽고 말았구나.”라는 의미로 이곳을 아차산이라 불렀다고 전하여 진단다. 그러나, 이것은 물론 역사적 사실은 아니다. 온달 장군이 전사한 이야기와 평강공주가 와서 달래어 돌아갔다는 것은 역사 기록(삼국사기)에 나오는 이야기이지만, 그 장소는 아차산이 아니라 훨씬 남쪽인 충북 단양의 온달산성이라는 것이 현재로서 설득력 있는 학설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아차산의 이름 유래에 대한 설화로는.... 조선 명종(明宗) 때 복술가(卜術家) 홍계관(洪繼寬)이 어느 날 자기 명(命)을 점쳐 보고는 아무 날에 횡사(橫死)할 것이라는 점괘가 나오자 살아날 길을 찾아보니 임금이 계시는 용상(龍床) 아래 숨어 있으면 횡사를 면한다는 점괘가 나왔다. 홍계관은 왕에게 아뢰어 승낙을 받고 용상 아래 숨어 있었다. 그때 쥐 한 마리가 마당을 지나가자 왕은 홍계관에게 “지나가는 쥐가 몇 마리인지 점쳐 보라” 하였고, 홍계관은 “세 마리입니다” 하였다. 왕은 이 말을 듣고 노하여 홍계관의 목을 베라 하였다. 홍계관이 끌려 나가 형장(刑場)에 도착하여 급히 점을 쳐보니 한 시간 정도만 버티면 살 수 있다는 점괘가 나왔다. 이에 형 집행을 조금만 늦추어 달라고 사정하자 형리(刑吏)가 잠시 기다려 주게 되었다. 한편, 홍계관을 형장으로 끌고 가게 한 왕은 그 쥐를 잡아 배를 갈라 보게 하자 뱃속에 새끼 두 마리를 배고 있었다. 홍계관의 신기한 점술에 놀란 왕은 급히 한 신하를 보내어 참형(斬刑)을 중지시키게 하였다. 그 신하가 급히 달려가 형장이 멀리 보이자 집행을 중지하라고 소리쳤으나 잘 들리지 않는 듯하였다. 이에 손을 흔들며 중지하라는 표시를 하였다. 그러나 형리는 사형 집행을 빨리 하라는 신호로 오해하여 홍계관의 목을 베고 말았다. 신하가 왕에게 돌아와 결과를 아뢰자 왕이 “아차 늦었구나.” 하며 매우 안타까워하였다. 그 후로 사람들은 이 형장이 있었던 고개를 ‘아차 고개’라 하였는데 그 고개가 곧 아차산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 설화는 아차산의 이름이 이미 있은 후 산 이름과 연관하여 홍계관의 일화를 끌어 들인 이야기일 것이다. 일설에는 이 아차 고개가 지금의 노량진동 사육신묘(死六臣墓)가 있는 마루턱이라고도 한다.
아차산은 원래 아단산(阿旦山)으로 생각되는 바, 삼국시대에 이미 이곳에 아단성(阿旦城)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아주 오래된 이름이며, 그 뜻을 보면, 아단의 아(阿)는 한강의 옛 이름인 “아리수”의 준말이요, 단(旦)은 돈. 탄 등과 같이 고구려의 지명(地名) 끝에 흔히 붙는 곡(谷 : 골짜기)을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하는 학설이 있다. 또, 아차산, 아차성이란 말이 ‘나의 산’, ‘나의 성’ 이라는 말의 고어(古語)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한편, 아단(阿旦)이 아차(阿且)로 바뀌게 된 것은 조선시대에 태조 이성계가 왕이 되자 이름을 단(旦)으로 바꾸었기 때문에 임금의 이름과 같은 글자를 피하려는 의도에서 비슷한 글자인 차(且)를 쓰게 되었다고 한다. 아마 새겨진 글자를 고치기가 쉬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추정은 근거가 확실치 않다는 반론도 있다. 오히려, 옛 기록에서 단(旦) 자와 차(且) 자가 함께 보이는 것으로 보아 아단산과 아차산이 다른 산이거나, 단(旦) 자를 차(且) 자로 잘못 판각(板刻)한 것이라는 여러 견해가 있는 실정이다. 조선시대 이후에는 아차산(阿且山)의 한자가 바뀌어 아차산(峨嵯山)이라 부르고 있으며, 아차산의 이름에 얽힌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는 학자들의 견해가 아직 일치하고 있지 않다. 역사는 현재의 사람이 과거의 사실을 기록하는 것이다. 산이름뿐 아니라 역사적 사실과 원인, 그리고 결과에 대한 이야기는 후세의 사람들의 의식이 과거를 빌미로 투영된 것이 많을 것이다. 아차산의 유래도 이와 같은 생각으로 본다면.... 될 듯하다. 여하튼 아차는 한자말이고... 아차는 우리에게 항상 실수하지 말라는 교훈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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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선웅의 오늘 삶이야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웅-ibara
첫댓글 오래전남한강을 두번씩이나 배를타고건너서 영춘에있는 온달산성과 산성밑에있는 온달동굴(산성굴)을 답사했던적이있습니다 그시대의역사흐름으로볼때 온달이죽은곳은 충북단양(춘양)의 온달산성이 설득력이높습니다 영춘,하리 주민들도 아차산에서처럼 평강공주가 "이만돌아갑시다"하자 관이움직였다고합니다 그리고 아차산의정확한 한자풀이 많은도움이됐습니다 한번쯤 밤이새도록 역사이야기를 나눠봅시다
어찌 경선생님과 밤새 역사이야기를 나눌수 있것습니까? 다만 말벗으로... 정도만 생각하여주시는 것만으로도 족합니다. 저는......역사적 사실보다 의의에 관심이 많습니다. 경선생님을 바라보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 느낍니다.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