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큐어의 추어탕(鰍魚湯) 이야기
잉어목 미꾸리속 기름종개과에 속하는 민물고기로 미꾸라지와 미꾸리(새코미꾸리, 얼룩새코미꾸리, 쌀미꾸리, 수수미꾸리)는 생물학적으로는 다른 종으로 분류되며 형태에서 다소 차이를 보이지만 일반인들 눈에는 구분이 어려워 미꾸라지로 통칭해 부르는 경우가 많다. 모기의 유충인 장구벌레를 주로 먹어 모기의 개체수를 줄이는 역할을 하는 이로운 물고기로 물속의 산소가 부족하면 아가미가 아닌 장으로 호흡을 하며 탁한 물에서도 잘 견딜 뿐 아니라 날씨가 추워지거나 가뭄이 들면 진흙 속에서 휴면을 취하는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한다. 7월에서 11월까지가 가장 맛이 좋고 특히 벼가 무르익는 가을 논에서 마지막으로 물빼기를 할 즈음에 잡히는 미꾸라지를 최고로 친다. 그래서 가을 추(秋)에 고기 어(魚)를 합쳐 추어(鰍魚)라 부르며 가을철 보양식의 대표격으로 오랜 사랑을 받아 왔다. 문헌에는 고려말 송나라 사신 서긍의 기행문인 '고려도경'에 처음 등장하지만 워낙에 서민적인 음식이라 기록에서 소외되고 주목을 받지 못했을 뿐, 농사를 경제활동의 근간으로 하는 우리의 농경 역사가 시작된 이후 벼를 재배했던 기록 등에 비추어 이전부터 추어요리는 이미 존재하였다고 추정할 수 있다.
추어탕은 지역에 따라 남원식으로 불리는 전라도식, 원주식으로 불리는 강원도식, 추어탕과 구분해 추탕으로 부르는 서울식, 털래기로 부르는 경기도식, 청도식 혹은 대구식으로 불리는 경상도식으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지만, 그 지역 내에서도 흔히 구할 수 있는 부재료에 따라 나름의 특색을 보이고 있다. 민초들의 논뚜렁 메뉴로, 농사일에 지친 농사꾼의 보양식에서 출발해 오늘날 온 국민의 보양식으로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다. 불포화 지방산과 생리 활성을 촉진하는 비타민이 고루 들어 있어 정력감퇴와 고혈압의 예방 효과에 탁월하며, 점액 물질인 뮤신에 황산콘드로이친(chondroitin sulfate)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세포의 노화와 위축, 색소와 칼슘의 침착에 의한 피부 윤기의 떨어짐을 치료하거나 예방하는 데에도 특효로 알려져 있다.
가장 대중화 된 추어탕 - 남원식(전라도식)
서울에서 가장 대중화 된 추어탕으로 들깨가 들어간 구수하고 걸쭉함이 특징인 남원식은 1959년 경남 하동 출신의 서삼례 할머니가 남원 광한루 옆 옛 육남시장 자리 천변에서 문을 연 새집추어탕을 시작으로 남원의 추어마을에는 50여 군데의 추어탕 전문식당을 형성하며 성업중이다.
뚜껑이 있는 용기에 산미꾸라지를 넣고 소금을 뿌리면 놀란 미꾸라지끼리 부대끼며 해감이 되게 하여 몸 속의 진흙을 빼고 소쿠리에 담아 호박잎으로 문질러 거품이 나지 않을 때 까지 비비고 행군 다음 솥에 삶아 으깨어 채에 걸러내는 방식은 경상도식과 비슷하지만, 미꾸라지 육수에 된장, 다진마늘, 생강즙을 넣고 다시 끓인 후 시래기와 파, 미나리, 부추, 토란대, 숙주 등을 넣고 들깨를 넉넉히 넣어 걸쭉하고 들기름을 넣어서 풍미를 더하는 것이 가장 대중화 된 남원식 추어탕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멸치, 닭, 소고기, 장어머리 등을 우린 육수를 가미하는 경우도 있다. 미꾸라지를 삶은 물에 된장을 풀어 사용하고 별도의 육수를 가미하지 않은 맑은 경상도식과는 다르게 진하고 걸죽함이 대조적이다. 추어탕 외에도 남원은 미꾸라지를 잡아 대파 속에 넣고 구운 별미인 미꾸라지 대파구이를 비롯하여 추어조림, 추어전 등 추어요리에 관한한 가장 다양한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지역이다.
추어탕을 즐기는 지역이지만 서울에서 대중화 되지 못한 추어탕 - 경상도식
1950년대 초 상주출신의 천대겸 할머니가 문을 연 대구의 상주식당과 1963년 청도 의성식당의 김말두 할머니로 부터 대표되는 경상도식 혹은 청도식 추어탕은 으깬 미꾸라지, 혹은 미꾸라지와 잡고기에 된장을 풀고 우거지나 배추를 넣은 맑은 국물이 특징이며, 부산, 경남 등 지역에 따라서는 우거지나 배추 외에도 토란대, 부추, 방아잎 등이 들어가기도 한다. 풋고추와 마늘다짐이, 산초 등을 넉넉히 넣어서 먹는 편인데, 국물이 유난히 맑아 한 그릇으로는 부족할 정도여서 경상도 지역의 가정을 중심으로 많이 해먹지만 서울에서는 상업적으로 대중화 되지 못했다. 청도식은 유독 미꾸라지보다 잡고기를 많이 사용하는 것이 또 다른 특징인데, 미꾸라지와 잡고기는 동일하지만 열무보다 작은 크기의 파종한 무를 솎아낸 무청을 우거지를 대신해서 사용한 추어탕을 경상도 사람들은 최고로 치지만 9월~10월 경에만 맛볼 수 있어 가정집 외에 상업적으로 선보이는 곳은 아직 없다.
묵힌 고추장을 푼 통마리 추어탕 - 원주식(강원도식)
반세기 가까이 원주식 추어탕의 원조인 원주복추어탕으로 대표되는 강원도식은 된장 외에 묵힌 고추장을 풀어 미꾸라지의 잡내를 다스리고 묵직한 느낌이 특징이며, 강원도에서 흔한 감자와 미나리, 버섯이, 시래기, 부추 등이 들어가는데 지금은 전통적인 방식의 통마리 추어탕 외에도 남원이나 청도 스타일의 으깬 추어탕 두 가지 모두를 맛볼 수 있으나, 서울식 추탕과 마찬가지로 미꾸라지를 통마리로 사용하는 것이 오리지날 원주식이다. 원주식 본래의 통마리 추어탕은 크게 대중화 되지는 않았지만, 미꾸라지를 갈아서 만드는 추어탕은 남원식 다음으로 서울에서 대중화되었으나 남원식과 크게 구분이 되는 특징이 다소 약하여 원주식 특유의 정체성이 훼손된 다소 혼란스러운 스타일이다. 경기도식이 통마리 추어탕은 털래기란 고유의 이름을 고수하지만 으깨어 만든 추어탕은 우거지 추어탕으로 구분해서 부르는 데 반해 원주식은 별도의 이름을 붙이지 않아 일반인들은 전통적인 원주식이 통마리에 고추장을 푼 추어탕이라는 사실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청계천 걸인들이 처음 선보인 통마리 추탕 - 서울식
1926년 신설동에서 시작한 형제추탕, 1930년대 초 안암천의 곰보추탕, 1932년 홍기녀 할머니가 문을 연 용금옥으로 대표되는 서울식 추탕은 청계천의 걸인들이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먹던 미꾸라지 탕으로, 추어탕과 구분해 추탕으로 부른다. 양지머리 혹은 곱창, 양, 사골 등을 고은 육수를 사용하고 미꾸라지를 으깨지 않고 통으로 끓이는 게 특징으로, 두부, 유부, 목이버섯, 느타리버섯, 대파, 양파, 호박, 동이, 청양고추 등을 넣고 고추장과 고춧가루를 풀어 얼큰하고 시원하며 겉으로 보기엔 육개장과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조선시대 청계천 다리 아래에는 거지들이 살았는데 거지의 두목을 '꼭지'라고 불렀다. 이 거지들은 관이나 포도청의 특별 임무에 자주 동원 되었는데 그 댓가로 포도청에서 미꾸라지를 잡아 추탕을 팔 수 있는 이권을 주었는데 그때부터 청계천 다리 밑에는 추탕을 비롯해 국밥을 파는 집들이 생기게 되고 서민들의 입소문을 타면서 꼭지탕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 당시 청계천에는 미꾸라지가 지천이었기 때문에 재료 조달이 쉬웠고 그로부터 장안의 명물이 되어 오늘의 서울식 추탕이 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경기 북부지방의 토속 별미인 경기도식 추어탕 - 미꾸라지 털래기
고양을 중심으로 한 경기 북부지방의 토속 별미인 털래기는 미꾸라지 매운탕의 일종으로, 무, 다시마를 우려낸 육수에 미꾸라지나 민물고기를 통째로 넣고 고추장을 풀어 끓인 후 여기에 수제비나 소면을 넣어 어죽과 비슷한 형태를 보인다. 털래기는 여러가지 야채와 국수, 수제비를 털어 넣고 끓인다고 해서 '털어서 넣는다'란 말에서 유래 되었는데, 옛날부터 즐겨먹던 경기도식 추어탕으로 고양이나 김포 등 일부 지역에서만 명맥을 유지할 뿐 널리 대중화 되지는 못했다. 원주식과 마찬가지로 일부 털래기 전문식당에서는 통마리 미꾸라지를 부담스러워 하는 사람들을 위해 미꾸라지를 갈아서 내기도 하고 있는데, 이름은 우거지추어탕으로 불러 털래기의 정체성은 유지하려는 흔적들이 보인다.
중국에서 유래되어 일부 경상도 지역에서 별미로 즐기는 추어두부, 추어두부탕
고려시대에 송나라와 원나라를 통해 전래된 것으로 추측이 되는 추어두부는 초선두부(貂蟬豆腐)로 불리기도 하는데, 서시(西施), 왕소군(王昭君), 양귀비(楊貴妃)와 함께 중국 4대 미인으로 불리는 초선(貂嬋)은 원래 동탁의 시녀로 하얀 두부가 초선의 백옥같이 흰 피부와 야들야들한 몸매를 상징하고 미꾸라지를 교활한 동탁을 비유해 뜨거운 국안에서 추어가 놀라서 급한 나머지 차가운 두부 속으로 비집고 들어가지만 결국 그 요리 속에서 삶아져야 하는 운명을 비유한 중국 강서(江西, Jiangxi)의 대표적인 두부요리로, 베보자기를 깐 두부에 간수를 넣고 끓인 순두부를 붓고 이틀간 해감한 산 미꾸라지를 넣으면 미꾸라지가 놀라 찬 두부속으로 들어가게 된다고 한다. 순두부를 눌러 물을 짜낸 후 두부를 잘라 찜통에 쪄낸 후 김치를 곁들여 내기도 한다. 조선 선조 때 실학자 이규경이 쓴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조선시대 추두부탕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솥에 물을 붓고 미꾸라지를 넣어 불을 지피면 미꾸라지가 뜨거워 놀라는데, 이때 차가운 두부를 넣으면 미꾸라지가 두부 속으로 파고 들어가 추어두부가 만들어 진다. 이 두부를 썰어 참기름으로 지져 탕으로 끓여 추어두부탕으로 즐겨 먹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상업적으로 선보이는 곳은 찾기가 힘들다.
추어탕(鰍魚湯) - 으깬 추어탕의 경상도식, 전라도식 vs 통마리 추어탕의 서울식, 원주식, 경기도식
여름 장마철에서 가을까지 그 중에서도 가장 맛이 좋다는 가을 추어요리는 미꾸라지를 으깨어 된장을 풀어 탕으로 끓이는 전라도식과 경상도식, 그리고 미꾸라지를 통째 사용하고 고추장을 풀어 끓이는 서울식, 강원도식, 경기도식으로 크게 구분할 수 있으나 다양한 지방색 만큼이나 특색있는 재료와 양념, 조리방법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다양하게 발전하여 왔다. 그 외에도 추어 전문점에 따라서는 경상도식이지만 곱창이나 사골을 사용하는 서울식 처럼, 대구의 상주식당은 추어탕에 기름을 뺀 곱창이 가미되고, 서울식이지만 추어탕에 두부 외에 밀가루를 풀어 걸쭉하게 끓이는 서울의 곰보추탕 등 나름의 시도와 특색들이 그 지역 추어탕에 또 다른 매력으로 식도락에 즐거움을 더하고 있다.
2011. 가을. 에피큐어(www.epicu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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