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여호수아 20장 9절, 시편 46편 1절, 마태복음 11장 28절
이 성읍들이,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이나 그들 가운데 살고 있는 외국인 가운데서 누구든지 실수로 사람을 죽였을 때에, 그 곳으로 피하여 회중 앞에 설 때까지, 죽은 사람에 대한 복수를 하려는 사람의 손에 죽지 않도록 하려고, 구별하여 지정한 도피성이다. <여호수아 20장 9절, 새번역>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시편 46편 1절, 새번역>
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모두 내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마태복음 11장 28절, 새번역>
하나님께서는 도피성을 지정하셨습니다. 고의가 아니라 실수로 죽인 사람을 그 곳으로 피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죽은 사람에 대한 복수를 하려는 사람을 피하는 곳이 되도록 하였습니다. 그런 도피성이 가나안에는 총 6곳이 지정되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렇게 지정된 도피성의 주민들은 최선을 다해 주어진 그 사명을 감당했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고의든 실수든 살인자를 받아들이고, 그가 있을 곳을 마련해 주고, 함께 살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복수하러 온 사람으로부터 이 살인자를 지키는 것도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정말 사명감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그래서 도피성은 정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공동체여야 했을 것입니다.
그런 도피성이 오늘날에도 있을까요?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실수든 고의든 살인을 한 사람은 처벌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형량에 차이는 분명히 있겠지만 도피성처럼 완전히 보호 받을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어떨까요? 실수든 고의든 살인한 사람들이 다시 사회로 나올 때 사회는 그들을 받아 들이고, 있을 곳을 마련해 주고, 함께 살아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할까요? 아쉽게도 지금 사회는 도피성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도피성의 의미를 품고 존재해야 하는 곳은 있습니다. 바로, '교회'입니다.
이 땅에 도피성이 있다면 그 곳은 바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억울한 자, 눌린 자, 실수로 잘못을 저지른 자, 용납받지 못하는 자, 나아가 차별에 시달리는 자, 가난한 자 등 그 어떤 이들에게도 열린 성이 되어야 하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가 목마르고 지친 이들의 피난처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예수님을 머리로 하는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고 살면서, 모든 면에서 자라나서,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에게까지 다다라야 합니다. 온 몸은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속해 있으며, 몸에 갖추어져 있는 각 마디를 통하여 연결되고 결합됩니다. 각 지체가 그 맡은 분량대로 활동함을 따라 몸이 자라나며 사랑 안에서 몸이 건설됩니다. <에베소서 4장 15~16절, 새번역>
머리되신 예수님이 바로 우리의 피난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피난처되신 예수를 머리로 하는 공동체를 형성했기에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닮아 마땅히 우리가 먼저 그러했듯이 뒤에 오는 이들에게 피난처가 되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시편 46편 1절, 새번역>
그리고 그런 피난처가 된 교회는 이렇게 행동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겸손함과 온유함으로 깍듯이 대하십시오. 오래 참음으로써 사랑으로 서로 용납하십시오. 성령이 여러분을 평화의 띠로 묶어서, 하나가 되게 해 주신 것을 힘써 지키십시오. <에베소서 4장 2~3절, 새번역>
그렇다면 우리는 현재 어떤 모습일까요? 도피성으로서의 교회일까요? 누구나 찾아올 수 있는 교회일까요? 피난처된 교회일까요? 겸손함과 온유함, 오래참음, 사랑으로 서로 용납하는, 평화의 띠로 묶여 있는, 하나된 교회 공동체일까요? 혹여나 예수님의 이 말씀을 여전히 실행하지 못하고 있는 교회는 아닐까요?
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모두 내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마태복음 11장 28절, 새번역>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모든 사람이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곳이 우리들의 교회인가요? 하늘의 쉼과 땅의 쉼이 모두 존재하는 쉼의 장소가 우리들의 교회인가요? 도피성까지 되지는 못할 지 몰라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교회는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누군가를 위해 언제나 따뜻한 손길을 준비하고 있는 공동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찾아오는 이들마다 생명수를 마실 수 있도록 좋은 다리가 되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장 17절, 새번역>
하나님은 출애굽기에서 율법을 주신 후 첫번째 도피성을 언급하셨습니다. 여호수아에서는 땅을 분배한 후 도피성을 가장 먼저 언급하셨습니다. 굉장히 중요한 기능을 가진 곳이 '도피성'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2022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도피성을 지정하고 싶어 하십니다. 그리고 그 도피성은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사람을 살리는 공동체로, 함께 울고 웃는 공동체로, 은혜와 사랑의 공동체로 교회를 부르고 계십니다. 교회에 도피성이 되어야 한다는 사명을 부어주고 계십니다.
주님의 영이 내게 내리셨다. 주님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셔서, 가난한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셔서, 포로 된 사람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눈먼 사람들에게 눈 뜸을 선포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 주고,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누가복음 4장 18~19절, 새번역>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하는 동역자 여러분, 우리의 교회가 도피성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한 가지 작은 전제를 동시에 가지게 합니다. 바로 성전인 우리도 '도피성'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각자가 삶 속에서 이런 도피성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예수님을 닮아가는 그리스도인이기에, 받아 주고, 마련해 주고, 함께 살 수 있도록 스스로를 내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도피성이 되어야 하는 사명을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셨습니다.
이렇게 걸어다니는 도피성으로부터 교회 공동체라는 도피성이 생겨나기 시작한다면 이 세상은 엄청난 변화의 물결 가운데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사랑' 그 위대한 역사가 낳은 결과를 우리 모두는 보게 될 것입니다. 도피성 되시는 그리스도인 여러분, 도피성이 되어야 할 교회 공동체여! 이제 이 땅에 '도피성'이 되어 수많은 이들의 '피난처와 안식처'가 되어 주십시오. 무엇보다 사랑받고, 칭찬 받는 교회로 거듭났으면 좋겠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zn8uk56Hmc
https://www.youtube.com/watch?v=Z_CSKjpmnn0&list=PLVbVhDrpd5BfwFUzCYS-5-pZLF5BQ5gKF&index=70
https://www.youtube.com/watch?v=iFQ6E-OnHhU
https://www.youtube.com/watch?v=dAHr4Ng4mXk&list=PLVbVhDrpd5BfwFUzCYS-5-pZLF5BQ5gKF&index=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