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下之達道五,所以行之者三,
曰:君臣也、父子也、夫婦也、昆弟也、朋友之交也。
五者,天下之達道也。知、仁、勇三者,天下之達德也。
所以行之者一也。
천하지달도오 소이행지자삼
왈 군신야 부자야 부부야 곤제야 붕우지교야
오자 천하지달도야 지인용삼자 천하지달덕야
소이행지자일야
● 達道(달도) : 모든 상황에 통하는 도, 달통한 도
● 達(통할 달) : 통하다, 통달하다, 막힘이 없이 트이다, 통용되다, 도달하다
● 所(바 소) : 장소, 경우, 곳, ~한 바, ~인 것, ~까닭(이유), 방법(수단), 그러므로
● 以(써 이) : ~로써, ~을 사용하여, ~ 때문에, ~에, ~에 있어, ~와, ~로 여기다, 하다, 생각하다
● 所以(소이) : 그래서, 그러므로, 그런 까닭에, 때문에, 그러니까, 이유, 까닭, 방법
● 昆(맏 곤) : 맏이, 형, 자손, 자손, 후손, 뒤
천하에 공통으로 통하는 도는 다섯이고 그 도를 시행하는 방법은 세 가지입니다.
즉, 군신, 부자, 부부, 형제, 벗의 사귐입니다.
이 다섯 가지는 천하에 모두 통하는 도입니다.
지혜, 어짊, 용기 이 세 가지는 천하의 공통되는 덕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실천하는 방법은 같습니다.
<해설>
중용은 초심자는 이해하기 어렵다고 주자가 이야기 했습니다. 유학과 성리학에 정통할 생각이라면 중용을 철학적으로 깊숙이 들어가 읽어야 겠지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 책인가를 알려는 수준에서는 너무 고민하면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재미있게 읽다가 기억해두고 싶은 말이 있으면 어디 한 두구절 메모해두고, 다시 읽다가 어려우면 대강의 뜻만 알고 넘어가고...
이렇게 읽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차피 성리학이 하늘의 이치를 다 파악한 것 같지도 않으니까요... 성리학과 퇴계학, 굉장히 독특한 학설인데 사단칠정이나 理와 氣 같은 이렇게 볼 수도 저렇게 볼 수도 있는 것에 너무 죽자고 매달려 조금 공감이 어렵습니다. 그리스의 철학자 탈레스의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 라는 설보다는 정교하지만 모두 지금도 절대적인 우주의 원리라고 말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로 보입니다. 한때 사람들은 저런 생각을 했구나 정도로 파악해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위의 구절에서는 인간관계의 다섯 길을 공선생님이 제시하고 있습니다.
오늘날과는 아주 다른 다섯 길입니다. 당시로서야 가장 중요한 다섯 길이지만 시공간을 뛰어넘는 절대성은 없어 보입니다. 지금은 농경을 중심으로한 봉건 씨족사회가 아니기 때문이겠죠. 오늘날은 차라리 상점주인과 손님의 도나 회사 상사와 아랫사람의 관계가 형제나 군신의 관계보다 더 중요할 듯합니다.
어쨌던 공선생님은 이런 신경써야 하는 세계 공통의 다섯 인간관계를 잘 해내기 위해서는 세가지 덕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것은 지혜, 어짊, 용기라고 합니다. 어짊만 있어서는 다 해결되지 않는 모양입니다.
마지막 구절에 이 세가지를 실행하는 방법은 하나라고 합니다. 이 하나가 무엇일까요? 며칠 뒤에 나오겠지만 정성(誠)입니다.
정성, 진실한 마음 정도의 뜻입니다. 그러나 중용에서는 誠을 그 정도의 지위에 두지 않습니다. 하늘의 도(天之道)라고 까지 격상시킵니다.(誠者,天之道也)
논어에서 전혀 등장하지 않았던 신개념입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논어 전체에서 '誠'이란 글자는 단 두번만 등장하는데 단순히 '진실된' 정도의 뜻으로만 등장합니다(자로편 '誠哉是言也'.-진실되구나 이 말이여). 과연 공자가 이 誠이란 개념에 저렇게 큰 의미를 부여한 것 일까? 왠지 자사의 생각인데 공자가 말한 것으로 살짝 돌린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或生而知之;或學而知之;或困而知之:及其知之,一也。
或安而行之;或利而行之;或勉強而行之:及其成功,一也。」
혹생이지지 혹학이지지 혹곤이지지 급기지지 일야
혹안이행지 혹리이행지 혹면강이행지 급기성공 일야
● 或(혹 혹) : 혹, 혹은, 또, 어떤 이, 의심하다, 미혹하다
● 其(그 기) : 그, 그것, 만약, 어찌, 장차, 이미, 이에, 그래서
● 勉強(면강) : 억지로 시킴
● 勉(힘쓸 면) : 힘쓰다, 부지런히 일하다, 권하다, 강요하다
어떤 사람은 태어나면서 아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배우고 나서 아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매우 피곤하게 노력해야 그것을 아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알게 되었다는 점은 모두 같다.
어떤 사람은 편안하게 그것을 실천하고, 어떤 사람은 이익을 따져서 실천하고, 어떤 사람은 억지로 열심히 해서 그것을 실천합니다. 그러나 그 성공은 모두 같을 뿐입니다.
子曰:「好學近乎知。力行近乎仁。知恥近乎勇。
知斯三者,則知所以脩身。
知所以脩身,則知所以治人。
知所以治人,則知所以治天下國家矣。
자왈 호학근호지 력행근호인 지치근호용
지사삼자 즉지소이수신
지소이수신 즉지소이치인
지소이치인 즉지소이치천하국가의
● 乎(어조사 호) : 어조사, ~느냐?, 이도다, 겠지, ~에(於)
● 所以(소이) : 그래서, 그러므로, 그런 까닭에, 때문에, 그러니까, 이유, 까닭, 방법
● 恥(부끄러울 치) : 부끄러워하다, 부끄럼, 욕, 부끄럽게 여기다
● 脩(포 수) : 육포, 건육, 닦다, 수양하다(修)
공자 말하셨다. 배우기를 좋아함은 지혜(知)에 가깝고, 힘써 실천하는 것은 인(仁)에 가깝고,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용기(勇)에 가깝습니다. 이 세 가지를 알면 자신을 수양하는 법을 알게 됩니다. 몸을 수양하는 법을 알면 사람을 다스리는 법을 알게 됩니다. 사람을 다스리는 법을 알면 천하의 국가를 다스리는 법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해설>
역행(力行)이 인(仁)에 가깝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인(仁)은 '사랑'이 아닌 '사랑을 주는 것',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라 논어에서 그렇게(외롭게) 주구장창 주장했던 것입니다.
<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