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5일을 스페인어로 ‘씽꼬 데 마요(Cinco de Mayo)’라 하는데 이는 1862년 5월 5일 멕시코의 수도인 Mexico City 근교 뿌에블라(Puebla) 전투에서 멕시코 군이 프랑스 군을 격퇴한 것을 기념하는 날을 말한다.
1810년 9월 16일, 이달고(Hidalgo) 신부가 스페인에 대항하는 독립전쟁을 시작했으며, 1821년 코르도바 협정으로 독립을 인정받았다.
멕시코가 독립한지 40년, 그리고 미국의 영토 확장 욕심을 감당하지 못해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북서부의 거대한 영토를 전쟁으로 빼앗긴지 12년 후인 1860년에 멕시코 역사상 최초로 인디오 대통령인 베니토 후아레스(Benito Juarez)가 집권하였다.
무책임하고 이기적이었던 전임 지도자들, 식민지 시절의 기득권 세력과 독립 세력 간의 갈등, 경제적 문제와 서방세계의 개입과 전쟁, 내전 등으로 극심한 혼란기를 겪으며 미국, 영국, 프랑스, 스페인, 독일 등에 막대한 빚을 지고 있었던 멕시코는 경제적 기반이 약해서 그 빚을 갚을 수 없었다. 이러한 난국을 타개하고자 Juarez 대통령은 2년간 외채 지불정지를 선언하게 된다.
여러 채권국들은 멕시코 정부와의 협상 끝에 멕시코의 경제가 회복될 때 까지 기다리기로 하고 철군하였으나 프랑스는 이 기회에 멕시코를 식민지화 하려는 욕심을 드러내었다. 당시 나폴레옹의 조카로 프랑스 황제였던 나폴레옹 3세는 1861년 12월 멕시코로 군대를 파견하여 항구를 점령했다.
1862년 멕시코 자유주의 진영의 Ignacio Zaragoza 사령관이 지휘하는 멕시코 군과 프랑스 군대는 멕시코시티 약간 남쪽의 Puebla에서 대 전투를 치른 끝에 멕시코 군이 대승을 거둔다. 이 날이 바로 5월 5일, 즉 스페인어로 "씽꼬 데 마요(Cinco de Mayo)"이다.
Puebla에서의 전투 장면/그림
그러나 프랑스군의 계속되는 공세에 밀려 북쪽으로 퇴각하여 게릴라전을 계속하게 된다.
다음 해인 1863년 5월 드디어 프랑스군은 멕시코시티를 점령 입성하여 당시 오스트리아 황태자였던 Fernando Maximiliano를 멕시코 황태자로 책봉하고 프랑스의 식민통치가 시작되어 약 3년간 계속 된다.
그렇게 멕시코를 통치하는 동안 프랑스 본국에서 소요가 발생하고 프러시아의 위협이 증대하면서 프랑스군의 철군이 시작되었다. 남북전쟁을 끝낸 미국도 남의 동네에 와서 대장 노릇하는 프랑스가 싫어 여러 가지로 반대하기 시작하니 프랑스는 점점 궁지에 몰리게 된다.
1867년 3월 게릴라전을 계속하던 멕시코 정부군은 전열을 정비하여 막시밀리아노의 정부군과 게레타로에서 격돌한다. 이 최후의 대 전투에서 프랑스군은 대패하고 막시밀리아노 황제 및 메히아(Mejia) 장군은 포로가 되어 처형당하였다.
Juarez 대통령은 멕시코시티에 입성하여 주권 회복을 선언하고, 좌절한 프랑스는 멕시코에서 완전히 철수한다.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후 프랑스의 욕심 때문에 주권을 잃고 식민지로 전락했던 멕시코가 Puebla 전투를 통해 국권을 되찾는 계기가 된 것을 축하하는 전승 축제가 바로 “씽꼬 데 마요(Cinco de Mayo)” 이다.
미국내 한 시내에서의 Cinco de Mayo 축제 장면
미국 내 멕시칸 커뮤니티에서는 이 날을 일 년 중 가장 성대하게 축하하며 멕시칸 레스토랑과 대형 상점들, 도서관에서 멕시코 음악이 연주되고 살사댄스 공연을 하고 멕시칸 음식을 먹고 마시며 경품행사를 한다.
멕시코에서는 5월 5일이 공휴일로 지정은 되어 있지만, 미국처럼 성대하게 축하하지 않는다. 멕시코에서는 독립기념일인 9월 16일이 가장 큰 축제일이며, 9월 15일 저녁부터 멕시코 전통의상을 입고 모여서 독립을 축하하고 기념한다.
첫댓글 "미국의 남북전쟁 당시 남군을 지원하던 프랑스군의 패배는 북군이 통일을 이룩하는데 결정적 요소로 작용해 미국 역사에도 중요한 사건이다." ... 5/4 티화나를 내려가다가 SD의 식당에서 점심을 먹다가 한 한국신문에서 보았습니다.
그런데 저의 한국적 사고로는 이해가 안되는 것이 한국의 3.1절이나 8.15 행사처럼 안하고 무슨 명절처럼 완전히 축제(Fiesta)식으로 보내는지... 단순히 문화의 차이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