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기 2005~2020]/정기산행기(2006)
2006-01-09 18:12:36
2006년 1월 7일, 치악산 산행기
- 정기산행도 아니고 번개산행도 아닌, 특별 산행인데 카테고리상 <정기산행>에 넣었음.-
* 일시 : 2006년 1월 7일(토)
* 참가 : 병효, 문수, 인섭, 재봉, 민영, 경남, 상국. 이상 7명
* 오전 7시 20분 잠실 롯데월드 앞에서 다솜산악회 차에 승차.
9시 50분 산행 시작 - 오후 4시 주차장 도착 - 6시 출발 - 8시 상일역 하차.
1. 1월 6일.
일주일째 계속 무리했던 몸, 결국 입술이 터졌다. 내일 산행을 위해 오늘 하루는 충분히 쉬기로 했다. 점심 무렵 은행에 들렀다가 오는 길, 추운 날씨에 길에서 생선을 파는 아줌마가 안돼 보여 4,000원 주고 양미리를 한 줄 샀다. 20마리란다. 어떻게 구우면 되는 지 물었더니 소금을 뿌려주며 후라이팬에 식용유를 조금 두르고 구우면 된다고 알려준다. 산에 가서 먹을 컵라면과 간식거리를 사려고 마트에 들렀다. 후라이팬에 구우면 나중에 물기라곤 없어 맛이 떨어지기 때문에 좀 성가시더라도 석쇠에 구울 생각에 마트를 뒤져 석쇠를 하나 샀다.
얼어 있는 상태라 소금기가 골고루 배이게 하려고 아줌마가 일러준 대로 볕이 드는 베란다에 두고 좀 녹기를 기다려, 몇 차례 뒤적거려두었다.
저녁 식사시간, 양미리를 구웠더니 처음에는 비리다고 안 먹을 것처럼 하던 초아도 맛을 보곤 잘 먹는다. 저녁 9시 30분, 양미리를 더 구웠다. 아내도 양미리구이는 처음이라며 잘 먹는다. 내일 험한 산에 가려면 술을 많이 마시면 안 되었기에 양미리를 안주로 소주를 반병만 먹었다.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먼 길 떠나기 전엔 늘 그랬듯이 잠을 설쳤다.
2. 1월 7일, 05:40분.
휴대폰에 맞춰둔 모닝콜을 신호로 행동 개시. 급히 밥을 안치고, 밥이 되는 동안 샤워를 하고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혹시 안 갖고 온 친구가 있을지 몰라 컵라면 두개에 뜨거운 물을 담은 보온병도 두개를 챙겼다. 김총에게 선물로 받은 1,000ml 짜리 좋은 물통이 있지만 배낭 옆구리에 안 들어가, 500ml 물통 두개를 넣으면서 나중에 김총에게 쿠사리 먹지는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른 시간에 혼자 먹으려니 밥맛도 모르겠다. 해서 다른 반찬통은 두껑도 열지 않고 김치만 갖고 대충 반 공기쯤 먹었다.
6시 30분, 아파트 앞, 조금 기다리니 인섭이 차가 온다. 35분에 재봉이를 픽업하기로 했는데 조금 늦겠다. 오늘따라 재봉이는 정확하게 나왔는데 차가 안 오니 길에서 덜덜 떨었던 모양이다. 입에서 연기가 펄펄 나는데, 춥다고 담배를 물고 입에 불을 때고 있던 중이었다.
7시 10분, 잠실에 닿았다. 기사로 따라 왔던 인섭이 처에게 고맙고 잘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하고, 커피 자판기를 찾아 지하로 내려가다가 수원에서 버스로 먼저 온 문수를 만났다.
“반갑다.” “오랜만이다.” 악수를 하며 무의식중에 우리는 서로 그런 말을 하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다. 하도 자주 만나니 ‘언제, 어디서 만났더라?’ ‘어느 산을 같이 갔더라?’ 기억이 늘 가물거린다는 말을 하면서 서로들 까마귀라고 깔깔 웃었다.
3. 7시 20분, 정확하게 약속시간에 맞춰 버스가 왔다.
쫄고 민영이가 타고 있었다. 상일동에서 병효대사랑 경남쫄, 허샘이 탔다. 병효는 자기 아파트 사람 한분과 같이 왔다.
좀 잤으면 좋겠는데 옆자리에 앉은 재봉이는 소풍나온 아이처럼 마음이 들뜬다고 내가 눈을 붙이게 가만두질 않는다. 날씨가 찬지 버스 유리창에 성에가 끼었는데, 재봉이가 조용할 때는 밖을 쳐다보려고 유리창의 성에, 그걸 동그랗게 갉아내느라 열중할 때뿐이다. 재봉이가 1983년에 매화산 근방에서 고시공부를 했던 추억이며, 그때 만난 사람들과의 재미난 인연 하나를 소개할 땐, 앞자리에 앉은 민영이도 고개를 뒤로 돌리고 재봉이 이야기에 열중했는데 진짜 법보다 주먹이 먼저라더니, 우리가 잘 모르는 조폭세계의 무시무시한 한 단면을 느낄 수 있었다.
맨 앞자리에 앉은 허샘이 산악회 총무 역할을 하는 모양이다. 유인물을 나눠주고 회비를 걷느라 버스 통로를 다니면 경남이는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지난 12월 속리산 문장대에서 힘이 빠졌을 때 허샘 전화 목소리를 듣고 힘이 솟았다는 이야기부터, 그냥 ‘허’짜만 들어도 힘이 솟는다는 요상한 체질이다.
산악회 산행대장님이 브리핑을 했다. 1진, 2진, 선두와 후미, 그리고 중간을 맡을 대장들을 소개하고, 등반 코스를 설명하는 데 상당히 체계가 잘 잡힌 산악회인 것 같았다.
매화산을 넘어 천지봉, 다시 치악산 정상인 비로봉을 돌아오는 1진은 아주 부지런히 걸어야 6시간 만에 올 수 있고, 가다가 체력이 안 되면 절대 욕심내지 말고 중간에서 빠지는 B코스를 택해야한다고 설명을 한다. 그런데 나중에 안 것이지만 눈이 많이 쌓여있어서 애당초 6시간 만에 비로봉을 다녀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4. 09:50 산행시작.
아까 차에서 재봉이가 “나는 처음부터 B코스다.”라는 말을 할 때만해도 나는 ‘6시간이면 걸을만한데. 어지간하면 비로봉까지 갔다 오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치악산, ‘치 떨리고 악 받치는 산’이라는 농담도 있더라만, 발목까지 빠지는 눈은 예사고 좀 많은 곳은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을 쉬지 않고 올라가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다.
산행 시작할 때 병효대사가 바로 내 앞에 걸었기에 목격할 수 있었던 장면 하나.
산행 초입, 산길에 무슨 용도로 쳐두었는지 몰라도 새까만 삐삐선이 군데군데 길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병효대사가 아무 생각없이 점퍼 주머니에 두 손 넣고 가다가 거기에 발이 걸려 눈밭에 그냥 넘어진 게 아니고, 완전 철퍼덕! 하고 앞으로 꼬꾸라지며 자빠진 것이었다. 얼굴 그대로 눈밭에 파묻혔는데 눈이 많았기에 안 다쳤지, 맨땅이었으면 코 깨지고, 이빨 다 나가고 엄청난 사고 아니었겠나? 얼마나 놀래고 혼이 났으면 나중에 뒤풀이 할 때 병효가 실토하기를.
“아, 씨. 나는 초장에 자빠질 때, 그 때, 힘 다 빼뿌따. 그 때 벌써 오늘 안 되겠다 싶더라.”
- 나중 이야기지만 다음날 8일, 분당의 맹산을 갔다 오면서 길래한테 그 얘기를 해주었더니, 길래가 웃느라 턱이 다 빠질 뻔 했다.
“뭐, 뭐? 병효가 철퍼덕! 앞으로 꼬꾸라졌다고? 카카카. 뱅효대사, 대사 스타일 다 구깄겠네?” 이러면서 말이지. -
1시간을 채 못 걸었는데 땀이 너무 나 겉옷을 벗었다. 우리 일행을 챙긴다고 중간에 끼어가던 허샘이 땀을 엄청 흘리는 재봉선사를 보고 지적을 한다.
“아이고, 쯧쯧. 내가 내복 입고오지 마라 했는데, 왜 제 말을 안 들어요?”
매화산, 이름은 참 예쁜데 오르는 데 만만치가 않았다. 툭 트인 헬기장에서 순전히 쉬어갈 욕심으로 허샘에게 부탁, 사진 몇 장 찍을 수 있었다.
재봉이는 초장에 업무상 전화가 연방 오는 바람에 페이스가 흔들린 모양으로 저 뒤에서 좀 고전해서 사진에 나오지 않는다. 그래도 병효대사, 김총, 황선달은 마음만 먹었으면 비로봉까지 돌아올 건데 결국은 쫄들을 위해 단체 행동을 하자는 쪽으로 마음을 굳힌 모양이었다.
11:35분 매화산(1,085m) 정상 도착. 병효대사는 10분 정도 먼저 올라와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 허샘이 저 뒤에 보이는 제일 높은 봉우리가 비로봉임을 알려주었다.
“아이고, 저게 까지 언제 가노? 그것도 매화산, 여기서 거의 다 내려가서 천지봉까지 다시 올라야 되는데. 천지봉에서 비로봉가는 길도 두 시간은 잡아야 된다했잖아? 허샘! 마, 우리들은 비로봉이 나오게 사진만 찍어 조!”
매화산에서 내려가는 길은 처음에 엄청 험했다. 칼바위처럼 생긴 바위틈을 돌고 돌아 조금씩 내려갈 때는 간이 조마조마하고, 나중에 아예 미끄럼 타듯이 급경사로 내려가는 길은 무섭지는 않은데 이렇게 많이 내려간 만큼 다시 올라가야할 생각에 내려가는 게 눈물나도록 아까웠다. 배가 고팠다.
허샘이 “자리 펴고 먹을 시간이 어딨냐?”며 놀란다.
“아이고, 다들 묵고 살자고 이 짓인데, 마... 묵고 갑시다.”
컵 라면에 물을 붓고 익힐 동안, 민영이는 아까부터 찰밥을 다섯 덩이나 넣어왔더니 무거워 죽을 뻔 했다고 “빨리 이거 쫌 묵어라”고 강요를 한다. 맨손에 받았더니 손가락에 찰밥이 붙어 떨어지질 않는다.
허샘과 산행대장 및 주최측 3인은 저쪽에 서서 우리가 식사끝내기를 기다려 준다. 와서 좀 라면이라도 나눠 먹자해도 정중히 사양한다. 허샘을 통해 들은 바로는 산행 중에 우리처럼 퍼질러 앉아 먹는 법이 없단다.
춥고 힘들어도 식사시간은 즐겁다. 전부 다 의자를 꺼내 앉는 걸 보고, 정말 먹는 자세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대단한 산우회라며 허샘이 감탄을 한다. 먹고 오래 쉬면 체온이 떨어져 안 되기에 바로 출발이다. 출발하기 전, 재봉이는 “짐 쫌 굴자.”며 귤을 다 꺼내놓고 하나씩 배급받으란다.
천지봉을 향해 올라가는 길은 눈이 많아 거의 무릎까지 빠졌다. 경남이는 허샘 주위에 있으면 잘 가는 데, 조금만 벗어나면 핵핵댄다. 나중에는 허샘이 좀 밀어주기도 했다더라. 허샘의 기를 느낄 수 있는 바운대리 안에서만 힘을 쓰는 꼴이다. 나중에 버스 안에서 자기 입으로 그러대. “나는 기체적인 사랑을 한다. 끈적끈적한 액체적 사랑은 싫고, 기체적 사랑은 말이지, 손으로 잡을 수도 없고 그냥 느끼기만 하는 거지, 차원 높은 그런 사랑, 왈왈(이건 개소리라고 내가 붙인 것)” 그 말을 듣던 옆자리의 쫄고, 나는 그런 거 안 할란다. 난 오로지 고체적인 사랑.
5. 14:00분. 산행 시작한지 4시간 10분만에 천지봉(1,087m)에 올랐다.
1진은 보이지 않고 우리를 데리고 하산할 대장이 지키고 있었다. 비로봉을 쳐다보니 아직 까마득한데, 1진은 정말 쌔빠지게 가고 있을 거란다. 얼굴에서 비로봉에 대한 미련을 읽었는지 랜턴이 있느냐고 나에게 묻는다. 있다고 하자, 그럼 체력만 되면 거기까지 갈 수는 있는데 하산해서는 시외버스를 혼자 타고 와야 한단다. 그건 싫고, 힘도 부치는 것 같아 그냥 내려오기로 했다. 내려올 땐 주로 계곡을 끼고 내려왔다. 방심하면 계곡으로 굴러 떨어질 것 같아 조심조심 걸었다.
문수, 병효가 앞서 가더니 나중엔 보이지 않고 계곡이 끝나갈 무렵, 인섭이가 따라와 앞질러 뛰어간다. 15시 30분 경, 청소년 수련원에 도착하니 문수는 탁구를 치고 있다가 얼굴을 내밀고 들어간다. 재봉이는 모자에 고드름을 주렁주렁 달고 나타났다. 치악산 상고대가 유명하다더니 상고대는 못 보고 재봉이가 만든 ‘모자 상고대’로 만족할 수밖에.
터덜터덜 주차장을 향해 20분가량 내려왔더니 오후 4시. 식당에서 감자전과 장떡을 놓고 동동주 몇잔 하며 환담, 산악회에서 끓여주는 떡국을 비록 밖에서 찬바람 맞으며 서서 먹었지만 아주 맛있게 먹었다.
아직 1진이 다 오질 않아 다시 동동주 마시러 들어갔더니 아까는 불친절해보이던 아줌마를 누가 어떻게 꼬셔놓았는지 아주 상냥하고 싹싹하게 바뀌었다. 알고 본즉, 대구에서 동생네 집에 다니러 왔다던 아줌씨를 병효대사가 공을 다 들여놓았는데 잠시 동동주 마시는 틈을 타, 여자에 엄청 강한(?) 쫄고님이 순식간에 가로채버리고 실속을 차린다.(내가 찍은 사진이 있는데, 묘하게 나왔다. 병효가 동동주 마신다고 고개를 팍 숙이는 장면 뒤에 쫄고가 아줌마에게 대쉬를 하는 포즈, 정말 무슨 작업하는 사진 같은데 이 사진을 공개하니 마니하면서 우리들에게 나중에 술을 샀다. 근데 공개하라고 산 것인지, 삭제하라고 산 것인지 기억이 잘 안 난다.)
오후 6시에 버스 출발. 오는 길, 잠 좀 자려는데 이번에는 펭귄이 전화로 가만 두지 않는다. 오늘 관악산에 올랐는데 뭔가를 보여준 모양, 선두에 서서 바위를 기어오르고 핑핑 날아다닌 무용담을 늘어놓느라 정신이 없다. 장장 15분의 열변. 치악산 따라오려는 걸 못 오게(?) 막은 친구들, 섭섭했던 마음에 절치부심, 환골탈태하여 다 때려잡을 작정이란다. 첫 타켓은 자기를 할매라고 놀렸던 경남이라고 공언을 한다. 재봉이는 길래한테 확인 전화까지 하고, 아예 배꼽이 빠졌다.
6. 오후 8시, 상일동에 내림.
개롱역 근처까지 택시를 나눠 타고 이동하여 김총의 단골집, 과메기 잘하는 구룡포 식당을 찾아가니 테이블이 하나밖에 여유가 없다. 4명이서 먼저 먹고 있고, 나머지는 근처 호프에서 자리가 날 때까지 입가심하고 있기로 했다. 재봉 선사가 호프집 가면서 경남쫄에게 “이 배낭 좀 갖고 있어라.” 한다. 초등학교 때 주먹 쎈 놈이 약한 아이에게 가방 맡기는 장면이 생각나더라.
과메기 한 접시, 반쯤 먹어갈 무렵 자리가 나서 테이블을 합치고 호프집 갔던 아이들 불러 7명이서 같이 먹었다. 어떻게 낌새를 알아차렸는지 택술이가 양복에 스카프 두르고 영국신사처럼 정장을 입고 나타나 합류한다. 다시 펭귄의 전화, 펭귄의 급을 놓고 쫄고가 판정을 내리기를 병고(兵高 )부종이보다 위라는 결론을 내렸다.
생굴회까지 시켜 맛나게 먹고 집이 먼 문수와 집에 일이 있는 경남이, 내일 중국 출장 갈 재봉이가 먼저 가고, 2차를 민영이가 산다고 택시로 이동했다. 5명이 한차에 타보려고 시도했지만 배낭을 가지고 있어 도저히 불가능했다. 쫄고가 택술이한테 이리저리 찾아오라고 메모를 해주더라만 정작 술집 앞에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있는 택술을 보고 모두 놀랐다.
모래시계 주제가를 부른 가수가 나오는 라이브-바에서 직접 그 노래를 듣고 인섭이가 폭탄주 만드는 묘기도 부리고 즐겁게 노래 부르고 일어선 때가 밤 11시 반경. 각자 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