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선 두세 달 전만 해도 48시간 내에 받은 코로나19 유전자증폭(PCR) 검사 음성이 있어야만 공항에 들어갈 수 있었다. 더구나 중국 내 다른 지역을 가려면 해당 지역이 요구하는 중국 건강 코드 미니프로그램 ‘젠캉바오’(健康寶)를 설치하고 인증받아야만 항공권이 발권됐다. 그나마 이렇게라도 이동을 할 수 있으면 다행이었다. 베이징에 일정 수준 이상 감염자가 나오면 다른 지역에서 베이징발 항공기를 막았다. 더 큰 문제는 방문한 지역에서 감염자가 나오면 일정대로 베이징에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단순 여행을 위해 베이징을 떠나 중국 내 다른 지역을 간다는 것 자체가 모험이던 때였다.
이귀전 베이징 특파원© 제공: 세계일보
지난달 7일 전면적 방역 완화 조치 시행 후 처음 맞는 춘제(春節·설) 연휴(21∼27일) 부근에 찾은 베이징 서우두 공항은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공항은 기본적인 보안 검사만 하면 입장이 가능했다. 해당 지역 젠캉바오 설치 없이 바로 항공권 발권이 가능했다. 이전보다 과정은 단순해졌지만 시간은 비슷하게 걸렸다. 춘제를 앞두고 고향에 가거나 여행을 가려는 가족 단위 여행객들이 몰렸기 때문이다. 수치상으로도 나온다. 중국 문화여유국은 춘제 연휴 기간 자국 내 관광객이 3억800만명에 달해 작년 동기보다 23.1% 늘었고, 코로나19 발생 이전인 2019년의 88.6% 수준으로 회복됐다고 밝혔다. 중국의 준비 안 된 방역 완화 조치 이후 약 한 달간은 일상 생활에 큰 지장을 받았다. 코로나19가 재확산하자 감염 우려로 식당을 찾는 이가 없었고, 도로는 썰렁했다. 이 시점을 넘기자 코로나 이전으로 빠르게 회복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한국을 오가기는 쉽지 않다. 중국 입국 시 거대한 장벽이었던 격리 조치는 사라졌다. 이번엔 한국이 벽을 세웠다. 중국에서 감염자가 급증하자 한국은 지난 2일부터 중국 입국자 대상 PCR 검사 음성 증명 외에 단기비자 발급을 제한했다. 한국 정부는 “과학적 근거에 따른 것이며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중국발 입국자에 대한 방역 조치를 취하고 있는 10여개 국가가 PCR 검사 정도만 유지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한국만 유독 강한 조치를 취한 것이다. 한국은 중국의 감염자 폭증으로 새로운 변이 출현이 우려되고, 통계도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불과 한 달 전까지 ‘인민지상 생명지상(人民至上 生命至上)’이라며 해외 입국자에 대한 격리 조치를 유지했던 중국은 한국의 조치에 발끈해 한국인을 대상으로 단기 비자 발급을 중단하며 받아쳤다. 중국은 자국의 격리 조치는 특정국가를 대상으로 하지 않았고, 전파력이 강한 XBB 변이가 유행하는 미국이 아닌 자국에 대해서만 규제를 한다고 주장했다. 세계보건기구(WHO) 등에서 투명한 정보 공개에 대한 지적이 이어지자 중국은 지난 25일 사망자, 중증자 등이 정점일 때보다 크게 감소했고 새로운 변이 출현은 없다고 잇달아 발표했다. 양국이 평행선을 달리며 한 달가량 보낸 후 한국은 이달 말까지였던 중국에 대한 단기 비자 발급 제한 조치를 다음달까지 연장키로 했다. 중국발 한국 입국자에서 변이가 발견됐다는 발표는 없었다. 변이가 나오고 있는 미국 등에 대해 추가적인 규제 조치도 없었다. 그렇다고 한국에 변이가 유행되고 있다는 발표 또한 없었다. 중국 외 지역 입국자에 권고에 불과한 PCR 검사와 격리 조치 등을 취하고 있지만 방역엔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이를 방증하듯 국내에서 의료기관·약국, 교통수단, 감염 취약시설을 제외한 실내마스크 착용 의무를 해제키로 했다. 그럼에도 ‘국민의 건강과 안전 최우선’을 강조하며 중국에 대한 비자 발급 제한 조치를 유지한 것이다.상반된 조치를 보면 정부가 강조하던 ‘과학적 근거’보다 정치적 판단과 감정이 우선했다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국제 외교무대에서 낯부끄러운 일을 수시로 만들고 있는 이번 정부가 방역 외교에서조차 아마추어 같은 모습을 보이는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