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지 못하고, 기억속에서 잊혀져 버린 비운의 소녀 ”
- 권비영 ,『덕혜옹주』, 다산책방, 2009, 를 읽고 쓴 서평
박윤희 /충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 고등학교 2학년 4 반pll0984@nate.com
정말 부끄럽지만 나는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에 대해 그리 잘 알지 못하였다. 대한민국의 한 국민으로서,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비참한 삶을 살아야했던 덕혜옹주에 대해 늦게 알게 된 것을 한편으로는 다행으로 또 한편으로는 죄송한 마음이 든다.
조선에선 귀한 황실의 옹주 , 일본에선 조센징
고종황제의 고명딸로 궁에서 태어난 덕혜옹주는 가장 암울하고 힘든 시기에 고종황제를 웃게 하는 귀한 조선의 황녀였다. 하지만 이런 덕혜옹주의 존재는 일본에게는 못마땅한 조센징 중 한명 이였다. 덕혜옹주를 위해 궁 안에 유치원을 설립해주고 황적에 입적하여 황녀로 살 수 있게 해준 고종황제가 승하 하였을 때, 그 시기가 얼마 지나지 않아 강제로 일본에 유학을 가야하는 상황이 눈앞에 닥쳤을 때 덕혜옹주의 마음은 어땠을까 . 아버지의 죽음을 뒤로하고 일본으로 강제 유학을 갈 때 덕혜옹주가 했던 말은 “ 마음은 조국에 두고 떠납니다.” 이었다. 어린 나이에 성숙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현실, 내면은 그 누구보다도 단단해 져야 했던 덕혜옹주의 마음이 느껴진 부분이다. 일본으로 건너가서의 덕혜옹주의 삶은 정말 달라진다. 조선의 황녀라는 이유로 감시를 받고, 독살을 피하기 위해 항상 물을 끓여 먹었다. 혹여 일본 학생들의 장난으로 물이 다 쏟아지더라도 덕혜옹주는 식수도 를 이용하지 않았다. 조선에서는 그 누구 부러울 것 없이 살던 옹주가 일본에서는 조센징이라는 이유로 당한 그 수모와 굴욕이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 그 때부터 비운의 황녀로 덕혜옹주는 외로워했을지도 모른다. 생각을 해봐라. 자신의 조국에서 이루어진 약혼이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 고종, 순종, 그리고 어머니 양귀인 까지 세상을 떠나 버리고 , 홀로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일본인 남편과 결혼한 덕혜옹주 곁에는 유일한 시녀 복순이 외에는 덕혜옹주 편이라고는 아무도 없었다. 얼마나 외로웠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 . 이 부분을 읽을 때 나는 덕혜옹주가 너무 안타까웠고, 안쓰러웠다. 결혼 후 , 그녀의 일본인 남편 다케유키는 덕혜옹주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였다. 하지만 덕혜옹주는 처음부터 그리 마음을 주지는 않았다. 다케유키가 덕혜옹주를 위해 생활복기모노를 건네주었지만 덕혜옹주는 한복을 입은 채 생활하였고, 자신은 조선 사람이라는 것을 꿋꿋이 밝혀왔다. 정말 멋있었다. 외로운 인생 속에서도 자신의 조국을 사랑하고 섬기며 조국의 예절을 지켜오는 덕혜옹주를 보면서 진정한 황실의 황녀라는 것을 느꼈다. 지속되는 조센징이라는 간판에 감시에도 불구하고 나약해지지 않는 덕혜옹주를 보며 덕혜옹주의 존재를 기억하지 못하고 18년을 지내온 내가 너무 한심하고 죄송스러웠다.
힘겨운 생애 , 비운의 황녀
다케유키에게 마음을 열고 난 후, 덕혜옹주는 딸 정혜를 가지게 된다. 덕혜옹주에게 있어 정혜는 유일한 황실의 핏줄이고 , 자신이 더욱 더 강해져야하는 이유이다. 정혜 출산 이후 , 덕혜옹주는 정혜에게 끝까지 한글을 가르치고 , 우리의 예절을 가르치지만 다케유키는 못마땅해 한다 . 정혜는 학교를 들어가고 나서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조선 사람인 덕혜옹주를 원망했다. 하지만 굴하지 않고 덕혜옹주는 정혜에게 조선에 대해 가르치려 하지만 거부하는 정혜와의 사이에서 다케유키는 덕혜옹주를 정신병원에 감금 시켜버린다. 병원에서 지내는 동안 덕혜옹주는 다케유키와의 이혼과 딸 정혜의 실종 소식을 듣고 병세가 더욱 악화된다. 정말 끝까지 비운의 소녀이지 않는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없고 마음속에 지닌 채 생활해야하는 덕혜옹주가 안쓰럽지 않는가. 해방이 된 후에도 일본은 덕혜옹주를 일본에 방치해 두었다. 또한 대한민국마저 덕혜옹주를 외면해 버렸다. 시간이 흘러 덕혜옹주는 조국으로 들어 올 수 있었지만 정신병은 더욱 악화되었다. 그리고 기억이 잠시 돌아왔을 때 덕혜옹주가 쓴 글들 .. “ 나는 조선의 황녀였고, 일본인의 아내였고, 정신병원에서 지내던 나라 없는 여자였다.” 그리고 “대한민국 우리나라 ” 덕혜옹주는 궁에서 태어나 궁에서 생을 마감하였지만 비운의 황녀이다 . 현재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은 일제강점기를 한낮 참혹했던 역사에 불과 하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그랬다. “덕혜옹주? 우리나라 조선의 마지막 황녀라고 ?” 라고 놀랬다. 세월이 흐르고 지나면서 사라진 황실과 기억하지 못하는 후손 대한민국 사람들 . 조국을 대표하여 온갖 수모를 다 겪어야 했던 덕혜옹주를 기억해 주는 사람이 얼마나 더 있을까. 일제강점기 속에서 힘들어 한 덕혜옹주를 조국으로 돌려보내주기 위해 노력하는 박무영(김장한).한 평생을 덕혜옹주 곁에서 때로는 말동무로 , 때로는 애국자로 자신의 역할을 다한 복순이 . 비록 우리가 시간을 거슬러 덕혜옹주 곁을 지켜드릴 수 는 없지만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 한 나라의 후손으로써 , 그들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아직도 책 표지 뒤에 쓰여 있던 글귀가 생각난다. ‘비참하게 버려진 조선 황녀의 삶을 기억하라’ 그녀의 죄는 세 가지였다. 지나치게 영민한 것 , 품어서는 안 될 그리움을 품은 것 , 조선 마지막 황제의 딸로 태어난 것. 덕혜옹주에 관한 이야기에 대한 것들이 이 책 한 권뿐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이 책은 무엇을 우리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마도 그건 책 뒤표지처럼 암울하고 참혹한 시기에 조선 황녀로 태어나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세상 속에서 조국을 그리워하며 살다간 덕혜옹주를 기억해 주길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입시와 취직 그리고 회사 내의 경쟁 속에서 서로를 헐뜯고 싸워대는 오늘 .일제강점기라는 역사 속에서 사라질 뻔 한 우리 조국을 위해 대항하고 맞서 그 누구보다도 대한민국을 사랑하신 독립 운동가들과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를 기억하자. 아마 이를 실천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지닌 채 살아간다면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는 오늘날에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고 대한민국은 더 강해지고 단단해 질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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