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차 경북 상주/영주 일원(2003. 11. 1~2)
1. 상주 남장사 2. 영주 부석사 3. 영주 소수서원
3. 영주 소수서원 영상자료(1)
3. 영주 소수서원 영상자료(2)
3. 영주 소수서원 사진자료 (제29차 탐방 참조)
[영주 소수서원 입구 숙주사지 당간지주(보물 제59호)]
경북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의 소수서원(紹修書院)은 국사책에 나오는 대로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이다. 서원이란 훌륭한 선현의 영정이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곳인데, 이 내용은 사당과 별 차이가 없고, 서원에서는 사당과 달리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까지 했다.
서원에서 뽑힌 학생들이 성균관 등 대학에 진학을 했으니, 요즘으로 말하면 사립고등학교의 역할도 한 셈이다. 이런 서원중에서 임금에게 서원의 이름과 전답 등을 하사받은 서원을 사액서원이라 한다. 쉽게 말해 사액서원은 임금의 허가를 받은 공식 서원인 셈이다.
[소수서원 앞 숙주사지 석물들]
[소수서원 앞 취한대 지상(紙上) 탐방]
[소수서원 취한대]
소수서원의 자리는 원래 고려말의 유학자였던 안향이 태어나 자란 곳이다. 그후 조선 중종 37년(1542년) 풍기군수였던 주세붕이 안향을 기려 백운동서원을 설립했는데, 이것이 서원의 효시가 되었다. 그후 퇴계 이황이 풍기군수로 재직할 때 임금에게 공식적인 승인을 요청해, 명종 5년(1550년) 임금이 친필로 쓴 '紹修書院'이란 편액을 하사함으로써 최초의 사액서원이 되었다.
소수서원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울창한 송림(松林)이 눈길을 끈다. 수령이 수백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소나무들이 한여름에도 시원한 그늘을 만들고 있다. 길 오른쪽으로는 천(川)이 흐르고 있는데 이것이 죽계천이고 그 앞으로 숙주사지 당간지주가 있다. 이 숙주사지 당간지주는 보물 제59호로 이 자리가 원래 숙주사라는 절이 있던 자리임을 말해주고 있다. 주세붕이 이 자리에 백운동서원을 세울 때 원래 있던 숙주사를 깔끔하게 정리해 버리고 서원을 세웠는데, 당시 유교와 불교의 위상 차이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소수서원 경렴정]
취한대 옆으로는 '경자바위'라 불리는 큰 돌이 있는데, 붉은색으로 쓰여진 '敬' 자가 아직도 선명하게 보인다. 이 글씨에는 연유가 있다. 세조가 단종에게 왕위를 빼앗자 단종복위운동이 있었는데 이 지역에서 단종복위운동을 하다가 죽은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들이 처형당하면서 흘린 피가 죽계천을 붉게 물들일 정도였다고 하는데, 그후 그들의 귀신이 출몰해 주세붕이 이 바위에 붉은색으로 '敬' 자를 새기고 위혼제를 지내고부터는 귀신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소수서원 강학당]
경렴정 옆의 서원 문으로 들어서면 강학당(講學堂)이 있다. 현판에는 백운동이라 쓰여 있다. 강학당 뒤로 원장과 선생님들의 집무실이었던 일신재(日新齋)와 직방재(直方齋), 서고를 모아놓았던 장서각(藏書閣), 문성공 안향 선생을 제를 올리던 문성공묘(文成公廟), 제기를 보관하고 제사를 준비하던 전사청(典祀廳), 학생들의 기숙사였던 학구재(學求齋)와 지락재(至樂齋)가 있고, 주세붕의 영정이 있던 영정각과 유물관이 있다. 이 부분이 본래 소수서원이고 이 뒤로는 새로 지은 사료전시관과 충효교육관이 있다.
[소수서원 영정각]
[소수서원 일신재(우)와 직방재]
[소수서원 탐방을 마치고 영귀봉 학자수 아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