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치 않은 인간 닭 두 마리를 받은 치환은 패대기친 소주와 찬영을 파란의 케이지에 우악스럽게 집어넣었다. 배터리를 쌓은 철망처럼 보여서 붙여진 배터리 케이지는 사각형의 대형 닭장으로, 고층 아파트처럼 여러 단에 걸쳐 수백 개가 쌓인 쇠로 만들어졌다. A4 용지보다 작은 공간에 세 마리씩 들어 있었다. 찬영은 처음 겪는 동물 신세와 괴상하고 악취 나는 공장식 축산환경에 구역질이 났다. 끔찍하고 더러운 배터리 케이지의 위생상태를 익히 알던 소주조차 닭이 되어 마주한 현실 앞에 아연실색했다. 둘 다 “살려 주세요!”를 힘껏 외쳤지만, 치환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잠시나마 날개를 펴고 운동을 즐기던 파란은 새로 들어온 소주와 찬영이 반가울 리가 없었다. 파란이 퉁명스레 둘에게 어디서 왔는지를 물었다. 구석에 나란히 있던 둘은 잔뜩 움츠린 채 더욱 밀착했다. 반응 없는 둘을 보다 못한 파란이 소리를 질렀다.
“야! 답답해 죽겠어!인사부터 하지?”
소주는 망설이다 입을 뗐다.
“난 소주. 처음이라 낯설어 그래.”
“난 찬영.”
“여긴 여기 규율이 있어. 각오하는 게 좋아. 괜히 파란이 아니야. 파도 높이가 만장이라는 파란만장 알지? 그 파란언니가 하는 조언이니 새겨듣는 게 좋을 거야.”
“무슨 말이야? 억울해 미칠 지경인데...”
최대한 감정을 자제하며 소주가 말꼬리를 흐렸다. 계획이 틀어지거나 통제 불가능한 상황을 유달리 싫어하는 소주에게는 숨 막히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여긴 양계장 아닌 공장! 푸다닥 날개 짓은 흉내도 못내. 닥치고 공장은 닥치고 알 낳는 공장. 살아나가는 건 꿈도 꾸지 마. 남은 생은 치킨과 삼계탕 행.”
라임을 넣어 속을 긁어대는 파란의 말에 찬영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만해, 제발. 이런 데서 못 살아. 어떻게든 도망칠 거야.”
“어라, 이런 데서 못 살아? 꼭 딴 세상에서 온 애들 같아. 대체 너희, 뭐야?”
“아이 씨, 내가 닭대가리들이랑 이러고 있어야 해? 난 연구원이었고, 검사실에서 음료수를 마셨을 뿐이라고. 소주씨, 말 좀 해봐요.”
“동물권리를 존중한 내게 왜 이런 일이? 닭들과 같은 신세라니 말도 안 돼요!”
소주가 겪는 현실도 찬영처럼 이해 불가한 지옥이었다.
“이 인간들, 정말 가관이네. 양계장에 들어온 인간 닭이 궁금했었는데, 바로 너희였어. 다들 주목! 우릴 괴롭히고 탐욕스럽게 먹어대는 인간 놈들이 들어왔어.”
파란의 선동에 발로가 제일 먼저 나섰다.
“너희, 잘 걸렸어! 우리와 다르다고 잘난 척했지. 어때, 닭이 된 소감이 어떠신가. 여기선 우리가 우세해. 너희를 보호할 인간 놈들이 일절 없단 말이지. 어이 인간들, 쌍으로 덤벼보시지. 내 펀치의 매운 맛을 톡톡히 보여줄 작정이니까.”
발로가 머리는 잔뜩 낮추고 꼬리를 한껏 추켜올린 공격자세를 취했다. 그는 옳다고 생각한 일에는 눈에 불을 켜고 제 능력을 증명해야 직성이 풀렸다. 소주와 찬영은 고양이 앞의 생쥐마냥 오그라들었다.
“우우, 발로를 이길 자 없지.”
“이제 너희 목숨은 간당간당하다 말이야.”
“재밌는 걸. 쪼그라든 인간이라니.”
“인간을 직관하다니. 발로, 우릴 대신해 복수해줘.”
발로와 같은 케이지 닭은 물론, 여기저기서 소주와 찬영을 향한 야유가 쏟아졌다.
“그만하지. 곧 죽을 텐데.”
파랑의 맞은 편 케이지에서 상황을 관망하던 노랑이 마침내 입을 뗐다. 닭으로 변한 인간들은 치욕과 절망으로 며칠을 못 견뎠다. 세균에 감염되어 죽거나 정신적 쇼크로 죽어나갔다.
“인간들이 널 망가뜨렸는데, 인간 편을 든다고?”
파란이 서운한 듯 노랑을 흘겨보았다.
“날 이렇게 만든 건 이 사람들이 아니잖아.”
골다공증이 악화된 노랑은 벌써 마비가 진행되고 있었다. 좁은 케이지에서 못 움직이는 것이 주요 원인인 골다공증 병력의 닭들은 종종 케이지 뒤편에서 탈수와 배고픔으로 죽어갔다. 노랑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예견한 파란은 반박하려던 말을 간신히 집어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