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20장은 앗수르의 사르곤 왕이 다르단을 블레셋 아스돗으로 보내매 그가 와서 아스돗을 쳐서 취한 해에 기록한 말씀입니다(1). 그 때에 하나님쎄서 이사야에게 말하시기를 “네 허리에서 베를 끄르고 네 발에서 신을 벗을 지니라”(2)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이사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녔습니다. 그 이유는 애굽과 구스로 하여금 회개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장차 애굽과 구스가 앗수르의 침략을 받아 이사야와 같이 벗은 몸, 벗은 발로 앗수르로 끌려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로인해 그들이 바라던 구스와 자랑하던 애굽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놀라고 부끄러워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5).
“그날에 해변 주민이 말하기를 우리가 믿던 나라 곧 우리가 앗수르 왕에게서 벗어나기를 바라고 달려가서 도움을 구하던 나라가 이같이 되었은즉 우리가 어찌 능히 피하리요”(6)라 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앗수르를 일으키신 것은 두 가지 뜻이 있었습니다. 첫째, 앗수르를 통해 열국을 심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둘째, 앗수르를 통해 열국이 구원을 받도록 하심이었습니다. 이사야 19장 23절에서 25절에 “그 날에 애굽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대로가 있어 앗수르 사람은 애굽으로 가겠고 애굽 사람은 앗수르로 갈 것이며 애굽 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경배하리라 그 날에 이스라엘이 애굽 및 앗수르와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 주시며 이르시되 내 백성 애굽이여. 내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 것임이라”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이사야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옷을 벗고 다니라고 말씀하시자 이사야는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하심을 연상케 합니다. 사도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6-8)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벗은 몸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리고 “다 이루었다”(요19:30)고 말씀하셨습니다.
둘째, 자랑이 변하여 수치가 됩니다.
5절에 “그들이 바라던 구스와 자랑하던 애굽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놀라고 부끄러워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모든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목표로 하던 것이 이루어지면 행복해하고 성공하였다는 말을 듣고 기뻐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것이 결코 행복이니라 오히려 불행이고, 축복이 아니라 저주였고 자랑이 아니라 수치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솔로몬은 사람이 얻을 수 있는 영광을 모두 얻고 난 후에 고백한 것이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1:2)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가치 있는 일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지키는 것”(전11:13)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진정 사람의 본분입니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24절에 “그 날에 이스라엘이 애굽 및 앗수르와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유대교를 고집하고 있습니다. 애굽은 이집트로서 아랍국가로서 콥틱교회를 핍박하고 있으며, 앗수르는 오늘날 이란입니다. 이란은 고집스러운 아랍국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이 세 나라를 사랑하시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 세 나라는 교만하고 고집스러운 나라를 대표하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2;4)고 하였습니다.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