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0장은 예레미야가 제사장 바스훌로부터 핍받받는 내용입니다. 예레미야 당시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은 항상 예루살렘의 평강을 예언하였습니다. 그러나 오직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하였습니다. 19장 7절에서 9절에 보면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를 “내가 이 곳에서 유다와 예루살렘의 계획을 무너뜨려 그들로 그 대적 앞과 생명을 찾는 자의 손의 칼에 엎드러지게 하고 그 시체를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의 밥이 되게 하며 이 성읍으로 놀람과 조롱거리가 되게 하리니 그 모든 재앙으로 말미암아 지나는 자마다 놀라며 조롱할 것이며 그들이 그들의 원수와 그들의 생명을 찾는 자에게 둘러싸여 곤경에 빠질 때에 내가 그들이 아들의 살, 딸의 살을 먹게 하고 또 각기 친구의 살을 먹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제사장 바스훌이 예레미야를 때리고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베냐민 위층에 목에 씌우는 나무 고랑으로 채워 두었습니다(20:2).
그러나 예레미야는 끝까지 예루살렘의 심판을 선포하였습니다. 예레미야가 바스훌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를 “보라 내가 너로 너와 네 모든 친구에게 두려움이 되게 하리니 그들이 그들의 원수들의 칼에 엎드러질 것이요 네 눈은 그것을 볼 것이며 내가 온 유다를 바벨론 왕의 손에 넘기리니 그가 그들을 사로잡아 바벨론으로 옮겨 칼로 죽이리라 내가 또 이 성읍의 모든 부와 모든 소득과 그 모든 귀중품과 유다 왕들의 모든 보물을 그 원수의 손에 넘기리니 그들이 그것을 탈취하여 바벨론으로 가져 가리라”(4,5)고 하였습니다. 사실 예레미야도 이러한 말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도 역시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같이 예루살렘의 평화를 말하고 싶었고 또한 평화가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로 하여금 심판을 말씀하셨기 때문에 예레미야로서는 심판을 선포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로인해 괴로움과 고통을 받았습니다. 9절에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면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라고 하였고 자신의 출생을 저주하였습니다. 14절,18절에 “내 생일이 저주를 받았더면, 나의 어머니가 나를 낳던 날이 복이 없었더면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나와서 고생과 슬픔을 보며 나의 날을 부끄러움으로 보내는고”라고 탄식하였습니다. 이는 욥의 탄식하였던 것과 같습니다(욥3장).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첫째, 의를 위해 핍받을 받은 예레미야입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함으로 핍받을 받았습니다. 다른 선지자들과 같이 예루살렘의 평강을 외쳤다면 그는 평생 고난 받지 않고 호의호식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함으로 핍박을 받았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기를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마5:10)고 하셨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하심입니다.
9절에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면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라고 한 것은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하심입니다.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고후5:14)고 하였습니다.
셋째, 하나님을 찬양한 예레미야입니다.
13절에 “여호와께 노래하라 너희는 여호와를 찬양하라 가난한 자의 생명을 행악자의 손에서 구원하셨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함으로 큰 고통을 받았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건져 주셨고 그에게 찬양을 주셨습니다.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친다”(고후1:5)고 하였습니다.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