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시강좌 19강
이번주 디카시 강좌입니다.
【디카시 강좌】
"신춘문예와 디카시."
정 유 지
(부산디카시인협회 회장)
"가슴 설레는 신춘문예의 계절이다.
11월말부터 12월 말까지 신춘문예에 대한 애틋한 기억이 새롭다. 대학 시절, 선배들이 신춘문예에 대한 각오를 들을 때마다, 나 역시 신춘문예를 가벼이 넘길 수 없던 시절이 있었다.
수동 타자기로 찍힌 시들을 지방지로부터 중앙지까지 보내는 작업을 하고 나면 선배 집에 막걸리와 라면을 사들고 가서, 시를 쓰질 못했다며 너스레를 떨며 선배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그 선배도 지난번에는 전태일 문학상을 보냈고, 소식이 없다며 쓴 소주를 많이 마셨다는 이야기로부터, 이제는 지방의 신춘에 올인하고 있다는 이야기와 어우러진 막걸리 파티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1980년대 후반기로부터 1990년대까지 가장 화려한 등단이 일간지 신춘문예였다. 나는 신춘에 투고한 시를 제외한 작품을 다시 추스려서, 문예지에 투고했다. 신춘문예에 버금가는 문예지를 골라, 완성도를 갖춘 작품 위주로 투고를 했다. 신춘문예는 소식이 없었고, 1월말에 전보를 통해 월간지 신인작품상 당선 소식을 접했다.
나는 신춘과 인연이 없는지 투고할 때마다, 최종심에 이름이 거론된 적이 많았지만 언제나 당선자를 위한 조연일 뿐이었다. 솔직히 고백하면, 신춘문예를 준비했던 작품들이 결국 나를 성장시키는 촉매제로 작용했다. 어디 작품을 내놓아도 결코 손색 없는 작품군을 형성했다.
국내 디카시 신춘문예는 그리 많지는 않지만, '오륙도신문'을 비롯한 네 군데 신문이 2024년도 신춘문예 디카시 공고가 된 것으로 안다. 모 신문 신춘문예 심사위원을 한 기억으로 볼 때, 일단 제목이 중요했다. 제목부터 눈길을 끄는 작품이 결국 선자의 손에 오래 남게 된다. 좋은 제목은 울림을 가지고 있다. 뇌리에 각인되어 자꾸만 돌아보게 만든다. 마치 인상 좋은 사람을 자꾸만 뒤돌아 보게 만드는 것처럼, 좋은 제목은 메아리가 되어 남겨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춘문예 투고 작품 중에서, 항상 제일 좋은 작품을 첫번째 응모작으로 배치하는 것이 유리하다.
디카시는 한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는 중독성 매력이 넘친다. 디지털 영상이 일단 나를 설레게 만들고, 디지털 글쓰기가 나를 되돌아보게 만들고, 디지털 제목이 나를 성장시킨다.
요즘, 신춘문예 디카시 부문에 2메가(M) 이상의 사진 용량의 원본 파일과 날짜를 제출을 요구한다. 이것은 선명도 확보라는 차원에선 어쩔 수 없는 요구지만, 스마트폰에 내장된 디카의 용량에선 다소 동떨어진 면이 없지 않다. 2메가(M) 용량을 스마트폰에선 맞추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생활문학으로서 스마트폰의 특성상 디카로 생성시킨 사진을 고려할 때는 엇박자가 나는 요구이다.
아무리 신춘문예 공고라고 하더라도 스마트폰을 고려한 디카시임을 간과해선 곤란하다.
신춘문예는 심사위원의 성향에 따라, 그 작품의 방향성이 다를 수 있다. 물론 일정 수준에 대한 판단은 누구나 공감대를 형성하지만, 최종 지향하는 그 방향성은 심사위원마다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비록 심사위원의 추구하는 그 성향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워낙 작품이 뛰어나다면 그를 초월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작품의 잣대는 항상 상대성이 작용한다.
"나는 심사위원을 잘못 만나서 떨어졌다."란 표현의 절반은 맞는 이야기지만, 절반은 맞지 않는 야야기이다. 왜냐하면 작품은 혼자 절대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출품된 전체 작품마다 형성된 미학의 우열로 가려져 선발되기 때문이다. 일명 상대 평가다.
요즘 신춘문예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 예전엔 신춘문예 당선자가 최고의 수준으로 인정되었지만, 지금은 신춘문예 상금보다 훨씬 더 많이 주는 문예지나 기관이 속출하다 보니, 그에 대한 인식도 예년만 못하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문제는 상금이다. 문예지 상금이 1천만원이 넘고, 심지어는 1억원 고료를 주는 곳이 생겨났다. 기관도 몇 천만원을 상금으로 내걸고 문학상 공모전을 하다보니 신춘문예에 목숨 걸던 그런 간절함도 사라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신춘문예에 대한 그 간절함을 가진 이들 덕분에 신춘문예에 대한 열기기 사라지지 않고 있다.
삶에 대한 가치는 스스로 결정한다. 디카시에 대한 가치는 마찬가지로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 누가 보든 보지 않든 디카시에 대한 애정이 넘치게 되면, 삶의 방향성이 달라진다.
신춘문예에 디카시 부문이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 참으로 신선하고 아름다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디지털 영상으로 눈길을 사로잡고, 디지털 글쓰기로 시적 울림을 낳고, 디지털 제목으로 선명한 이미지를 각인시켜 준다면 이보다 더 좋은 디카시는 없을 것이다.
다른 작품보다 더 흡입력을 가지려면 어떤 디카시를 창조해야 할까. 정답은 노력이다. 아침부터 잠들 때까지 단 한번도 디카시를 놓치지 않은 사람이 결국 좋은 작품을 세상에 태어나게 만든다.
"간절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다. 축구선수가 축구를 잘 하려면 그라운드에서 축구공을 단 한번도 놓치지 않고 바라보면 기회가 온다.
간절한 사람이 창조한 작품은 설득의 미학이 존재한다. 자꾸만 시선을 가게 만들고, 마음을 요동치게 만든다. 가령 꿀벌이 향기가 머문 꽃을 다시 찾듯, 예심을 거쳐 본심에서도 선자의 손에 마지막까지 남겨지게 된다. 선자의 손에서 버려지지 않고, 마지막까지 남겨진 작품은 분명 독특한 자기미학을 가진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신춘문예는 99%의 노력과 1%의 기획으로 결정된다. 퇴고와 퇴고를 반복한 작품들 가운데 시대적 경향을 반영한 테마로 기획한 작품이 더 빛날 수 있다. 앞서 진술한 바와 같이, 설득의 미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부산디카시인협회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담보한 디카시 전문 단체다. 디카 총으로 포획해 생산한 신선한 디카시들이 밴드를 통해 24시간 활어처럼 꿈틀거린다.
#디카시
#디카시
-조선영
[금주의 디카시 한편]에 박서희 님의 <무용수>와 조선영 님의 <소문>을 소개한다. 두 편 모두 디지털 사진을 촬영하면서 동시에 디지털 글쓰기, 디지털 제목 모두를 융합시킨 수작이라 할 수 있다. 디지털 영상(사진), 디지털 글쓰기, 아울러 디지털 제목의 3종세트가 유기적으로 연동된 우수작으로 평가할 수 있다.
특히 박서희 님은 숲을 형성하는 나무들의 유연함을 디카로 찍은 후, '골다공증이 없는 뼈들의 유연함 / 늙어서도 춤추는 유지'란 디지털 글쓰기로 이를 뒷받침하는 시적 역량이 돋보였다. 바람이 일정한 질서를 통해 불어오는 세상의 이치를 담아내면서, 이를 '무용수'라는 세련된 디지털제목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조선영 님은 '소문'이라는 디지털제목을 통해 궁금증을 자아내면서, 칠게의 횡보를 디지털영상으로 선명하게 보여주고, 칠게의 '구애의 왈츠'를 디지털글쓰기의 시적 언술로 풀어내고 있다. 순천만 칠게의 이동을 '소문'의 이동경로로 바라보는 시선이 참으로 신선하다. 보통의 작가가 엄두를 못낼, 기막힌 창조적 상상력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디카시는 디지털 세상의 뜨거운 심장이다. 스마트폰이 켜져있을 때 디카시 심장소리 즉, 디카, 디카, 디카 소리가 들리면 디카시를 진정 사랑하는 존재다."
“디카시는 디지털 대한민국을 세계에 알리는 멀티언어다. 2004년 대한민국이 세계 최초로 디카시를 발명했고 대한민국이 디카시의 종주국이다."
디카시는 K-리터러쳐 한류 열풍을 이끄는 디지털문학의 선발대다. 디카시를 아끼고 사랑하면 할수록 디카시 세계화는 앞당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