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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합02장 01절 ~ 20절
1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 그리하였더니
2:2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 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2:3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
2: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2:5 그는 술을 즐기며 궤휼하며 교만하여 가만히 있지 아니하고 그 욕심을 음부처럼 넓히며 또 그는 사망 같아서 족한 줄을 모르고 자기에게로 만국을 모으며 만민을 모으나니
2:6 그 무리가 다 속담으로 그를 평론하며 조롱하는 시로 그를 풍자하지 않겠느냐 곧 이르기를 화 있을진저 자기 소유 아닌 것을 모으는 자여 언제까지 이르겠느냐 볼모 잡은 것으로 무겁게 짐진 자여
2:7 너를 물 자들이 홀연히 일어나지 않겠느냐 네가 그들에게 노략을 당하지 않겠느냐
2:8 네가 여러 나라를 노략하였으므로 그 모든 민족의 남은 자가 너를 노략하리니 이는 네가 사람의 피를 흘렸음이요 또 땅에, 성읍에, 그 안의 모든 거민에게 강포를 행하였음이니라 하리라
2:9 재앙을 피하기 위하여 높은데 깃들이려 하며 자기 집을 위하여 불의의 이를 취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2:10 네가 여러 민족을 멸한 것이 네 집에 욕을 부르며 너로 네 영혼에게 죄를 범하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2:11 담에서 돌이 부르짖고 집에서 들보가 응답하리라
2:12 피로 읍을 건설하며 불의로 성을 건축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2:13 민족들이 불 탈 것으로 수고하는 것과 열국이 헛된 일로 곤비하게 되는 것이 만군의 여호와께로서 말미암음이 아니냐
2:14 대저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리라
2:15 이웃에게 술을 마시우되 자기의 분노를 더하여 그로 취케 하고 그 하체를 드러내려 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2:16 네게 영광이 아니요 수치가 가득한즉 너도 마시고 너의 할례 아니한 것을 드러내라 여호와의 오른손의 잔이 네게로 돌아올 것이라 더러운 욕이 네 영광을 가리우리라
2:17 대저 네가 레바논에 강포를 행한 것과 짐승을 두렵게 하여 잔해한 것 곧 사람의 피를 흘리며 땅과 성읍과 그 모든 거민에게 강포를 행한 것이 네게로 돌아오리라
2:18 새긴 우상은 그 새겨 만든 자에게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 스승이라 만든 자가 이 말하지 못하는 우상을 의지하니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2:19 나무더러 깨라 하며 말하지 못하는 돌더러 일어나라 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그것이 교훈을 베풀겠느냐 보라 이는 금과 은으로 입힌 것인즉 그 속에는 생기가 도무지 없느니라
2:20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천하는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
언젠가 제가 여러분에게 들려준 이야기를 다시 한번 하겠습니다. 한 젊은 전도사가 어떤 가난한 집에 전도를 갔습니다. 그 가정을 보니 참으로 딱하기 작이 없었습니다. 남편은 병들어 누워 있고, 자식들은 몇 명이나 되는 데 학비가 없어서 학교를 보내지 못하고 엄마는 행상으로 겨우 입에 풀칠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있었습니다. 이런 가정에 무슨 소망이 있겠는가? 그런데 그 젊은 전도사는 참으로 용기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아주머니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주머니 이번 주일에 모처로 나오십시오. 그러면 제가 당신 남편의 병원비도 대주고 당신 자녀들의 학비도 대줄 수 있는 분을 소개 해드리겠습니다.” 이 부인은 반신반의로 한번 속아 본 셈치고 주일이 되어 개끗한 옷을 입고 그 젊은 전도사가 일어준 장소에 가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곳에 가보니까 천막을 쳐놓고 몇 사람 모이지 않는 곳에 그 젊은 전도사 침을 투기며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열변을 토하고 있었습니다. 집회가 끝나자 그 젊은 전도사가 찾아 와서 하는 말이 잘 오셨습니다. 매 주일 이곳에 나오시면 그분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다음 주일에도 이 시간에 나오십시오. 너무나 한심하기 작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부인은 "당신 신세나 내 신세나 마찬가지군요. 그러나 한번 당신 말대로 교회나 다녀 보겠습니다". 그리고 그 후 열심히 교회를 다녔는데 정말 하나님은 얼마 안 되어 남편은 병원비가 마련되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 건강하게 되고 자녀들은 학교에 들어가서 훌륭한 아이들로 자라고 큰 부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천막 교회는 크게 부흥이 되어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가 되었다는 이야기 입니다.
믿음은 참으로 위대한 힘이 됩니다. 우리는 어떤 형편에 처하든지 참으로 믿음으로 산다면 거기에 놀라운 기적이 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2003년을 보내는 마지막 주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지난 한해 우리 각자는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더욱 큰 믿음을 갖도록 하기 위하여 각자에 어려움도 주는 경우가 있는 줄로 압니다. 특별히 교회적으로도 금년에 어느 해 보다도 놀라운 일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큰 믿음을 체험 하도록 하시기 위하여 어려움도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금년을 보내면서 믿음의 위대한 힘을 경험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누구나 다 믿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믿음의 정도는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큰 믿음이 있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적은 믿음을 가진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믿음의 분량대로 우리를 시험 하시며 그 믿음의 단계를 높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어떻게 큰 믿음을 가질 수 있을 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큰 믿음을 가질 수 있는 비결을 살펴보겠습니다.
I.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우리가 큰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은혜란 무엇입니까? 은혜의 반대 개념은 삯입니다. 삯이란 우리의 노력의 대가를 바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결과는 우리의 노력에 좌우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은혜는 하나님이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삯을 바라보며 살기 때문에 인간의 가능성을 가지고 미래를 내다 보기 때문에 쉽게 절망하고 소망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은혜를 사모하게 될 대 우리는 얼마든지 미래에 대한 큰 소망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삯을 바라지 말고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본문을 보십시다. 하박국은 많은 질문을 가지고 하나님께 계속 나아갑니다. “내가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파수하는 곳은 적이 침입 하는가 동향을 살피는 곳이요 성루는 예루살렘의 성벽 위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파수하는 곳이나 성루는 같은 의미를 반복하는 병행구절입니다. 이것은 상징적인 표현으로 하박국이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자 하는 간절한 자세를 의미한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자세입니다. 파수군은 아군의 승리와 생명에 관계가 있기 때문에 정신을 바짝 차려서 경계심을 가지고 적군을 살핍니다. 마찬가지로 하박국은 온 정신을 집중하여서 파수군 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린다.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할런지 보리라”(1). 이와 같은 하박국의 자세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활 가운데 일어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 하는데 있어서, 우리 자신의 이야기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수 있는 여유를 갖지 못합니다. 자신의 문제에만 열중하고 골몰하지 눈을 밖으로 돌리지 못합니다. 이와 같은 자세는 곧 무덤을 파는 일과 같습니다. 구원은 언제나 자기 스스로 해결할 수 없고 밖으로부터 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은혜로만 주어진 것입니다. 자신의 문제에서 용기 있게 벗어나 하나님께 그 답을 얻고자 하는 하박국의 자세를 봅시다. “무엇이라 말씀하시는지” , “나의 질문에 대하여” 똑같은 질문을 다른 말로 반복한 말로서 강조해준 말입니다. “기다리고” “바라보며”도 같은 의미를 강조해준 말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해답을 찾고,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바라는 하박국의 자세야 말로 우리의 신앙의 위대한 모범이 됩니다. 많은 사람이 평소에는 하나님을 잘 믿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막상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인간의 지혜를 짜내고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우리는 참으로 간절히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할 때 하나님은 반드시 그의 자녀들의 소원을 들어 주십니다.
드디어 하나님의 응답이 하박국에 임했습니다. 2,3절을 읽어 봅시다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 (2:2-3)
2절에서, 하나님은 메시지의 내용을 말씀하시기 전에 그 메지지를 기록하고 전파해야 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기록하되 명백하게 기록하고 전파하되 달려가면서 전파하라는 뜻입니다. 하박국에 주어진 메시지는 받는 사람마다 마음 판에 새기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곳에 달려가서 그들에게 읽어주어 야할 메시지입니다.
3절에서 이 묵시의 말씀은 정한 때가 있다고 했습니다. 반드시 때가 되면 이르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속히 이루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더딜지라도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모순 되게 들립니다. 그러나 그것은 모순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 편에서 보면 속히 이루어지나 우리 편에서 보면 더디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인내하고 기다리지 못하고 너무 초조하게 안달해 할 때 약속을 받지 못하고 포기해 버리기 쉽습니다. 히10:35-38에서 보면 우리의 믿음 생활은 인내가 필요함을 강조해 줍니다. 성도들을 섬기다 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지 못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도중에 넘어 지는 사람이 많은지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하나님님의 축복이 임할 것인데 조금을 참지 못함으로 축복의 문턱에서 넘어지는 것을 볼 때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속히 이르리라. 우리가 깊이 새겨두어야 할 말씀입니다.
4절을 봅시다. 이것은 묵시의 내용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하였습니다. 이 의미가 무엇인가. 4절을 자세히 읽어보면 믿음으로 산다는 의미가 무엇인가 명백해집니다.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여기서 믿음의 반대는 불신이 아니라 교만이다. 교만이란 히브리말의 의미는 자만심으로 인하여 잔뜩 부풀어 있는 마음을 뜻합니다. 당시 바벨론은 자만심에 가득 차 있으며 오만해 있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결국 패망하게 되었습니다.
본문에 나온 바벨론의 교만을 봅시다. 그들은 정당하지 못한 것을 자기탐욕을 체우기 위하여 추구했습니다. 그것을 얻기 위하여 자신의 무력을 의지했습니다. 자기들이야 말로 얼마든지 주위 모든 나라를 정복하여 굴복할 힘이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만 불손하여 함부로 살육 하고 빼앗았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여 자기가 곧 신인 것처럼 믿는 자들은 영혼의 자살 행위와 같은 것입니다(단 4:30 참조). 오늘날에도 남보다 많은 것을 소유 했다고 해서 그것을 의지하여 자기가 대단한 힘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결국 쓰라린 패배를 맛볼 날이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사는 자는 결코 교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자신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참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그분에게 모든 것을 맡기며 그가 모든 일을 이루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주 우리 자신을 바라보며 그레도 무엇인가 자기 자신에게서 어떤 가능성을 찾기 때문에 교만해집니다. 그 결과 심한 무력감을 맛봅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만이 우리의 삶을 겸손하게 해주고 항상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합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이 말씀은 신약에 와서 더 깊고 풍성해졌다.
첫째, “의인”에 대한 설명이 로마서 1:17에 나와 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여기서 의인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에 이른다는 뜻이 강하게 내포 되었다. 죄인이 어떻게 의롭게 되는가? 그리스도께서 온전히 이루어 놓으신 의를 오직 믿음으로 덧입기만 하면 된다. 루터는 이 진리를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가 칭의의 교리라고 부르는 굳건한 반석은 우리가 우리 자신에 의해서가 아니라 밖에서 오는 도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 사탄으로부터 구원 받아 영원한 생명에 참여한바 되었음을 의미한다. 인간의 모든 권력과 책략, 그리고 지옥문에서 유일하게 우리를 지켜주는 칭의 조항은 바로 이것이다. 행위로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의와 구원이 선포 되었다.”
둘째,“믿음”에 대한 신약의 설명은 히10:36-39에서 설명한다.
여기서 믿음의 본질적인 요소를 인내에 두고 있다. 믿음은 침륜에 빠지지 않고 유혹과 고난에도 흘러 떠내려가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경우에도 항상 그리스도에게 매달려 있는 자세가 믿음이다.
세째, “살리라”에 대한 설명은 갈3:10,11에 있다.
바울은 생명을 얻게 되는 두가지 길이 있다고 말한다. 하나도 어김없이 율법을 백프로 순종하든지 혹은 완전히 율법을 순종한 예수님을 의지하든지 양자 택일을 해야한다. 그런데 실제로 율법을 백프로 순종할 사람은 아무도 없으므로 영적으로 사는 길은 예수님을 의지하는 길 밖에 없다. 행4:12
이상의 말씀을 종합해 볼 때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의 뜻은 우리가 어떤 환경에 처하든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할 때 살길이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그의 은혜를 의지하면서 사는 자를 외면하시지 않으십니다. 여호와 이래의 하나님께서 친히 모든 것을 준비 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고속도로를 닦아 놓고 항상 거침없이 앞길이 훤히 트이는 길을 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인생의 길은 그런 길이 없습니다. 언제나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언제나 소망이 있습니다.
II. 하나님의 영광을 사모해야 합니다.
우리가 큰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사모해야 합니다
대저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리라 (2:14)
하나님의 영광이 선포되기 전에 먼저 바벨론에 임할 화와 심판을 선언 합니다.
바벨론에 임할 첫 번째 화는 그들의 탐심에 대한 화입니다(5-8).
그들의 탐심은 “그 욕심을 음부처럼 넓히며”라고 하였습니다. 잠언 30장 15, 16에서 족한 것을 모르는 것 중의 하나가 음부라 했습니다. 그는(바벨론을 지칭한 말) 사망 같아서 족한 줄을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자기에게 만민을, 만국을 모은다고 했습니다. 탐심은 반드시 화를 자초하게 되었습니다. 야고보 선생도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약 1:15)고 하였습니다. 이들에게 구체적으로 임한 화는 그들에게 노략 당한 남은 민족에게 노략을 당할 것입니다.
두 번째 화는 높은데 집을 지어놓고 어떤 공격으로부터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교만에 대한 화입니다(9-11).
인간이 어떤 군사력이나, 자연의 요새를 의지하여 어떤 공격도 능히 이길 수 있다고 교만한 자는 언젠가는 반드시 패망하고 말 때가 있습니다.
세 번째 화는 불의에 대한 화입니다(12-13}.
그들이 노력해서 세운 도시가 불태워지게 된다는 화입니다. 불의한 방법으로 취한 것은 반드시 불타 없어지듯이 빼앗기게 됩니다.
이상 세 가지 화를 선포한 후 14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한다. 14절을 다시 한번 읽어봅시다.
대저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리라 (2:14)
여호와의 영광이란 무엇입니까? 여호와의 영광이란 하나님의 모든 속성을 집약하여 나타내는 말입니다. 영광이란 하나님이 가지신 단 한 가지 속성만이 아니라 그분이 가진 모든 속성의 특징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지혜, 능력, 자비, 은혜 등이 나타날 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강대한 나라 바벨론을 산산 조각이 나도록 멸하실 때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온 땅에 덮게 될 것이다. 과거에 인간의 관점으로 볼 때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없었으나 이제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 하나님의 영광이 온 땅을 덮을 것을 바라보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날 때 모든 사람들이 그 영광을 똑똑히 볼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광을 사모하는 사람에게는 현재의 어떤 고통 중에도 큰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는 항상 현재만을 바라보기 때문에 믿음을 잃어버리고 낙심하게 됩니다. 언젠가는 하나님의 영광이 온 세상에 가득하게 되리라는 비전을 바라보는 자는 결코 자포자기 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역경도 이겨 날 수 있을 것입니다.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리라”는 이 말씀이 여기에서 처음 쓰여 진 것이 아닙니다. 성경 다른 곳에서 이 말씀이 어떤 문맥 가운데서 이 말씀이 쓰여 져 있는가를 살펴 볼 때 그 의미를 더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말씀은 민수기 14장 에서 나옵니다. 여기서 이스라엘이 가데스 바네아에서 하나님께 불순종했습니다. 그들은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지 않고자 했습니다. 그 땅의 백성들이 두려움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진멸하고자 했습니다. 이때 모세가 기도했을 때 하나님이 응답하셨습니다. “구하옵나니 주의 인자의 광대하심을 따라 이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되 애굽베서부터 지금까지 이 백성을 사하신 것 같이 사하옵소서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네 말대로 사하노라 그러나 진실로 나의 사는 것과 여호와의 영광이 온 세계에 충만한 것으로 맹세하노니”(민 14:19-21).
이 말씀의 뜻은 “어느 날 분명히 여호와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게 될 것이다. 나를 불신하고 불순종하는 악한 백성들로 인하여 나의 영광이 가려지도록 그냥 버려두지는 않을 것이다”는 뜻입니다. 현재는 유다의 불신과 불순종, 바벨론의 포학 등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있는데 하나님은 계속 그들에 의해 그의 영광이 가려진 것이 아니고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리라”는 말씀이 이루어 질 때가 있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때는 불신과 불순종, 불의한 사람이 서야 할 땅이 없습니다. 현재는 불신이 팽배하고 불의한 자들이 온 세상을 지배한 것 같지만 언젠가는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 차고 이런 자들이 서야 할 땅을 잃고 말 때가 온다는 확신이 하박국의 심령에 넘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인은 항상 그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도 종말에 그리스도의 재림시에 임하게 될 하나님의 영광을 내다 보며 살아갈 때 하박국처럼 큰 기쁨에 넘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언제나 우리의 신앙은 현실에만 고정 시킬 때 경직된다. 그러나 영원하신 하나님 장차 완성하실 종말을 내다 볼 때 항상 활기 있고 생명이 넘치는 기쁨을 맛보고 살게 된다.이것이 믿음으로 사는 자의 삶의 태도이다.
III. 하나님의 다스림을 사모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강해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사모해야 합니다.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천하는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 (2:20)
절망 가운데 있던 하박국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사모하는 가운데 그의 믿음을 온전히 회복하게 됩니다. 이 세상을 다스린 사람은 강대국의 대통령도 아니요 세계의 경제력을 한 손에 쥐고 흔드는 사람도 아닙니다. 오직 성전에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온 세상을 다스리신다면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가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본문에서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바라보기 전에 인간을 지배하는 통치자가 얼마나 쉽게 멸망하는 가를 바라봅니다. 인간의 통치 지나는 음주(15-17)와 우상 숭배(18,19)로 말미암아 화를 당하게 됩니다. 음주에 대한 화는 하나님의 앙갚음에 대한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그 동안 사람의 피를 흘리면서 잔인하게 행동했던 바벨론이 반듯이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마시게 될 것이라는 선언입니다. 생명이 없는 우상을 섬기는 바벨론의 최후가 불을 보듯이 뻔하게 망할 것입니다. 우상은 근본적으로 거짓됩니다. 만든 자가 생명도 없고 말도 못하는 우상을 섬기니 이것은 거짓됩니다. 우리에게 교훈을 줄 수도 생명을 줄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바벨론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그 근원이 생명이 없고 참 지식이 없으므로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손으로 만들지 않은 성전에 계십니다. 온 천하는 그 앞에 잠잠할 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온전히 세상을 통치하시고 심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에 계십니다. 바벨론이 땅에 있는 성전은 파괴할 수 있을지 모르나 하늘에 있는 성전은 파괴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강대한 나라가 큰 군사력으로 세계를 통치하고자 해도 하늘의 성전에 계신 하나님을 대적할 수 없습니다. 하늘의 성전에서 하나님이 온 우주를 운행하는 운전대를 잡고 앉아 계십니다. 그 하나님이 운전대를 잡고 계시는 한 이 온 우주는 안전하게 운행되고 끝내 그의 왕국을 완성하실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굳게 의지하고 사는 자는 가장 완전하고 확실한 보장이 있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아무리 사납고 잔인한 바벨론이 침입해 와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결 론
이상에서 우리는 큰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사모하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사모해야 한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우리가 큰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언제니 이와 같은 하나님을 바라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하나님을 사모하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결과만을 사모하게 됩니다. 우리는 믿음의 결과를 보지 말고 우리의 믿음의 근원 축복의 근원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리 할 때 항상 하나님의 축복의 샘물이 넘쳐 흐르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드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사모 합시다. 하나님의 영광을 간절히 사모 합시다.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간절히 사모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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