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적 표현의 이해
처음 시를 쓰기 시작할 때 빠지기 쉬운 좋지 못한 관습적 표현들
5. 논리적 언어와 통상적 언어
공간 가득한 소리와 문자들이
가로가 되고 세로가 되어
틈을 채운다.
꼬리가 잘린 떠다니는 소리.
석유내 남아 있는 구겨진 문자가
틈을 비집을수록
내가 찾던 길은 보이지 않고
무게감만 더해진다.
어디선가 본 아득한 길을 찾아 두리번거리지만
또다시 다가서는 건 중량감뿐
가로를 긋기 위해
세로를 세우기 위해
틈이 갈라지고 틈이 흔들리고
길을 찾던 두 눈은 어지러운 무게에
하늘을 외면하고 있다. -「길」
「길」과 같은 예의 작품도 처음 시를 쓰는 단계의 사람들이 많이 보여주는 유형에 속한다. 이런 유형의 작품이 어떤 문제를 지니고 있는가는 다음의 작품과 비교해보면 어렴풋이 드러난다.
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
늘 그대 뒤를 따르던
길 문득 사라지고
길 아닌 것들도 사라지고
여기저기서 어린 날
우리와 놀아주던 돌들이
얼굴을 가리고 박혀 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추위 가득한 저녁 하늘에
찬찬히 깨어진 금들이 보인다
성긴 눈 날린다
땅 어디에 내려앉지 못하고
눈 뜨고 떨며 한없이 떠다니는
몇 송이 눈. -황동규, 「조그만 사랑노래」¹¹
좋은 시와 좋지 못한 시라는 구분을 떠나서, 이 두 작품은 우선 사용되고 있는 언어들의 성격에 큰 차이가 난다. 「조그만 사랑노래」에는 ‘어제·편지·돌·얼굴·저녁·길·하늘·금·눈. 땅’ 등의 명사들이 보이는데, 이 언어들은 지극히 우리와 친숙한 통상어들이다. 이에 비해서 「길」의 그것들은 ‘공간·소리·문자·가로·세로·틈·눈·석유내·길·무게감·중량감·무게·하늘’ 등으로 ‘길·틈·석유·눈·하늘’을 제외하면 논리적 성향이 강한 전문어들로 구성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이 작품은 논리적 성향이 강한 언어가 주축이 되어 있다.
이럴 경우, 시가 인간 정서의 표현이고, 또 아놀드의 말을 예로 들어서 “가장 완전한 표현 양식”이라고 할 때, 인간 정서의 가장 완전한 표현 양식에 이와 같은 논리적 성향의 언어가 과연 적합할 것인가를 우리는 질문해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공간·문자·가로·세로·중량감 등과 같은 말은 인간 정서의 표현에 알맞은 기능을 하는 것일까를 살펴보자.
언어에는 정보 기능·표현 기능·지령 기능. 미적 기능. 친교 기능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언어의 어떤 부분이 순전히 정보 기능만을 한다든지 지령 기능만을 하지는 않는다. “나, 차 한잔하고 싶다”고 하는 말은 상황이 제대로 주어지면 동시에 정보적이고, 표현적이고, 지령적이다.¹² 이러한 언어 기능을 두고 볼 때 시에서 중요시되는 것은 미적 기능이다. 이 미적 기능은 작가의 감정과 태도를 나타내는 표현 기능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고, 일반적으로 중립적인 개념을 전달하는 정보 기능과도 관계를 가진다. 그러나 시는 그 어느 쪽도 아닌 ‘전면적’으로 의사소통을 꿈꾸는 언어이다. 시는 작가의 감정과 태도만을 표현하는 언어 행위도 아니고 개념적 의미의 정보만을 전달하는 것도 아닌, 그 자체로 하나의 완성된 언어적 세계인 탓이다.
「길」의 가로·공간·틈이라는 말이 일반적으로 지니고 있는 개념적 의미와 감정적 의미를 도식화해보자.¹³
위의 그림은 흰 부분이 개념적 의미일 때 빗금친 부분이 감정적 의미의 비율임을 나타낸 것인데, 그 비율의 가정 근거는 대략 다음과 같다. ‘가로’란 말은 입체의 아래 · 위쪽이 되는 방향을 표시하는 기하학적 언어이다. 이 말은 감정이 거의 포함되어 있지 않은 중립적 개념이다. 이에 비해 ‘공간’은 기하학적 언어이고, 또한 철학적으로는 시간과 함께 물질의 존재를 성립시키는 기초적인 근본 조건이며, 대체로 모든 방향으로 퍼지는 끝없는 곳으로 직관되는 관념적 의미이다. 그러므로 이런 의미에서의 공간은 ‘중량감’과 마찬가지로 관념어이다. 동시에 ‘빈 곳’이라는 일반적인 개념적 의미도 있다. 그러므로 ‘빈 곳’이 주는 정서만큼은 감정이 개입한다. ‘틈’은 벌어져서 사이가 난 자리이다. 이 말 속에는 ‘세로’나 ‘공간’과 같은 논리적 의미가 없고 또 빈 곳과 같은 정도의 감정이 개입해 있다고 보인다. 그러니까 ‘가로’며 ‘공간’과 같은 언어는 특별한 의도한 바가 살아 있지 않을 때는 시인의 감정과 태도를 전달해주지 않는다. 그러니까 지나치게 감정이 드러나는 언어와 마찬가지로 그런 언어는 보편적으로 시에는 적절하지 못한 것이다. 이런 언어는 정보 전달을 주로 하는 설명이나 논증에 더 어울리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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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황동규, 「풍장』, 나남, 1984, p. 153.
12 G. Reech, 『언어과학이란 무엇인가Semantics and Societys』, 이정민 외 옮김, 문학과지성사, 1977, PP.15~26 참조,
13 같은 책, p. 20 참조.
『현대시작법』 오규원
2024. 4. 6
맹태영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