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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힐에 찍힌 남자 (최신작)
작가: 백화 문상희 (단편소설)
낭독: 김인희 소설가
(댕댕이와 책을..)유투브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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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kupK3nPSLvQ?si=CNq3n24YdMOTkYgi
1부) 느지막이 만난 여인
비 내리는 토요일 오후 진기태는 습관처럼 시장으로
향했다.
시장을 한 바퀴 도는 것이 일상이 된 기태였다.
"사장님!
코다리 찜과 꼬막 무침이 맛있게 보이네요!"
"네~, 조금 전에 한 것이라 맛이 아주 좋아요!"
"예~, 그럼 두 가지 싸주세요!
얼마 드리면 되지요?"
"여기 있습니다.
만원 주시면 됩니다."
기태는 반찬을 해먹기도 어렵고 재료값도 비싸서
언제나 시장 반찬 가게에서 조금씩 사다 먹었다.
기태가 봉지를 받아 들고 돌아서는 순간
옆에서 지켜보던 오십 대 여자가 따라왔다.
여자는 기태가 수시로 반찬을 사러 오니까
홀아비로 인정을 하고 그때부터 눈독을 들였다.
여자는 양장에 빨간색 하이힐을 신고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뒤따라 왔다.
"아이고 비도 오는데 우산 좀 같이 쓰고 갑시다."
"아~ 예, 뭐 우산이 크니까 그렇게 하세요!"
"아이고 고맙습니다 아저씨!
반찬으로 산 거예요,
아니면 술안주로 산 거예요?"
"예~, 그냥 뭐
저녁 겸 반주도 한잔 하려고 샀답니다."
"그런데 아저씨는 어디쯤 사시나요?"
"예, 저는 마천역 근처 빌라에 산답니다."
"아이고 그러시군요!
저도 전철 타고 거여역으로 갑니다.
주택이 전철역 근처면 비쌀 텐데 아저씨는
부자인가 봐요! 호호호"
"네~, 그냥 사는 집인데요 뭐!
그러면 어차피 가는 길이니까 마천역까지
모셔다 드릴게요!"
"아이고 고맙습니다.
그나저나 비도 오고 날씨가 우중충한데
술맛이 좋겠습니다."
"예, 비 오는 날은 막걸리가 최고입니다."
"그러면 다음에 저도 한잔 꼭 사주세요!
아저씨는 뭐 풍채도 인물도 좋고 성격도 시원시원
한 것 같으니까 친구 했으면 좋겠네요!"
"예, 기회가 되면 사 드리겠습니다."
"아이고 연락처를 알아야 만나든가 말든가 하지요!"
기태는 머뭇거리다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들었다.
"이거 제 명함인데요
초면에 명함을 드리기가 좀 그러네요! 허허허허"
"초면 아니에요!
나는 예전부터 아저씨를 지켜보았는데요?"
"아~, 저는 그냥 제가 사는 반찬을 좋아하시는
줄로만 알았지요!
아이고 얘기하다 보니 금방 전철역이네요!
아저씨 꼭 전화드릴게요!
오늘 우산 씌워주셔서 고맙습니다."
"네~, 아주머니 안녕히 들어가세요!"
기태는 반찬가게에서 그 여자를 본 기억이 있었다.
그 여자는 올림머리를 하고 항시 머플러에 빨간색
하이힐을 신고 있어서 기억을 했다.
그 여자는 기태가 반찬을 살 때면 언제나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같은 반찬을 샀기 때문이다.
기태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집으로 돌아와
사가지고 온 반찬에 막걸리를 마셨다.
기태는 저녁 겸 반주로 막걸리를 마시며
뉴스를 보다가 술이취해 잠이 들었다.
이튿날은 장마철이라서 기태는 늦잠을 잤다.
9시쯤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늦은 아침을 먹으며
습관처럼 뉴스를 봤다.
그때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따르릉따르릉 전화 왔어요!
따르릉따르릉 전화 왔어요!"
기태는 일요일 아침에 전화 올 때가 없는데
하면서 전화를 받았다.
"네~, 진기태입니다."
"안녕하세요!
어제 마천 시장에서 만났던 여자입니다.
아침은 드셨나요?"
"예~, 지금 막 아침을 먹었습니다."
"아이고 그러시군요!
그나저나 웬 8월 장마가 이렇게 긴지요
아직도 비가 오네요!"
"예~, 저도 비가 와서 며칠을 쉬었답니다."
"그러면 오늘은 뭐 하시나요?"
"예, 비가 너무 와서 등산객도 없을 것 같아서
가게 문을 안 열었답니다."
"예~, 명함을 읽어보니 남한산성 입구 도깨비
등산복이라고 되어있네요?"
"예, 맞아요 아주머니!
저는 그냥 난전으로 동대문 시장에서 저렴한
조끼와 장갑 등 등산복을 떼다가 팔고 있답니다."
"네~, 비도 오고 하니까 저도 막걸리 생각이 나서요
오후에 별일 없으면 저에게 한잔 사주세요!"
"뭐, 그것이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그럼 4시쯤 산성 입구 병천순댓국 집으로
오실 수 있나요?"
"예~, 저도 한번 가본 적이 있답니다."
"그럼 4시쯤 거기서 만날까요?"
"예, 그럼 이따가 뵙겠습니다."
기태는 명함을 달라기에 줬지만 이렇게 빨리
전화가 올 줄은 몰랐다.
기태는 오후 3시쯤 샤워를 하고 가게부터 들렸다.
가게는 주인집이 세를 준 편의점 옆에 한 평남짓
공간을 편의점 주인에게 월세 십만 원을 주면서 하고 있었다.
기태는 비가 스며들지 않도록 단도리를 하고
4시가 되어 병천순댓국 가게로 들어갔다.
"아저씨, 여기예요 여기!"
그 여자는 손을 흔들며 기태를 반겼다.
의자에 앉아있는 여자는 어제와 전혀 다른
파격적인 의상에 화려한 화장을 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아주머니, 저보다 먼저 오셨군요!
그럼 뭐 드실래요?
이 집은 도토리 묵무침과 순댓국을 잘한답니다."
"그럼 묵무침하고 순댓국에 막걸리 먹지요 뭐!"
"예, 그럼 그걸로 주문할게요!
사장님, 도토리 묵무침 하고 막걸리 주시고요!
이따가 순댓국도 두 그릇 주세요!"
"예, 도깨비 사장님!"
주인은 기태가 등산복가게 하는 것을 아는지라
친절하게 막걸리와 기본 반찬을 내왔다.
"자~, 안주가 나오려면 조금 기다려야 하니까
우선 한잔합시다."
기태는 여자에게 먼저 한잔 따러 주었다.
"아이고 제가 먼저 드려야 하는데요!"
"뭐, 아무려면 어떻겠습니까. 하하하하"
기태와 여자는 술잔을 부딪치며 첫 잔을 마셨다.
조금 후 도토리 묵무침이 나오고 서로가 두 번째
잔을 따러주었다.
"저는 이름도 촌스러운 이 복자라고 합니다.
저기 학교 급식소에서 반찬 담당 일을 한답니다."
"아~, 그래서 반찬가게를 수시로 들려서
반찬 아이템을 연구하시는군요!"
"예, 맞아요!
수시로 반찬을 바꿔 쥐야하는데 어떨 땐 뭘
만들어야 할지 생각이 안 날 때도 있어요! 호호호"
둘이서 막걸리 한 병을 비웠을 때 순댓국이
나왔다.
"술은 원래가 일인 일병이니까 한 병만 더 합시다."
"아이고 저는 두 잔 마셨는데 벌써 취기가
올라옵니다. 호호호"
"그럼 한잔만 드시면 나머지는 제가 마실게요!"
기태도 막걸리 한 병 반을 마시자 얼큰하게
취기가 올랐다.
"그나저나 오늘은 우산을 가져오셨으니 제가
안 씌워드려도 되겠네요! 하하하"
"뭐, 그래도 전철역 까지는 같이 가야지요! 호호호"
두 사람은 우산을 받쳐 들고 전철역으로 걸어갔다.
"여기가 저의 등산복 가게입니다."
"아~, 비 때문에 천막으로 가려놓아서 못 봤네요!
안 그래도 오면서 살펴봤답니다."
"그래도 여기가 남한산성 입구로 요지라서
장사가 잘 되겠네요."
"네~, 그럭저럭 밥은 먹고 산답니다."
두 사람은 기태의 가게를 지나서 전철역으로 향했다.
복자는 빨간색 하이힐을 신었고 구두 때문에
비틀거리며 기태에게 기대어 걸었다.
기태는 술도 한잔 들어간 상태에서 화사한 옷차림에
국화향이 물씬 풍기는 복자가 싫지는 않았다.
"복자 씨,
이제 가을도 눈앞이라 그런지 국화향이 참 좋네요!"
"호호호 호호호.
향수가 마음에 드신다니까 다행이네요!"
"저기 저기가 저의 집입니다."
"아이고 전철역 하고 백 미터도 안되네요!
전철역과 시장이 가까워서 정말 좋겠네요!"
"예, 그런 편리함은 있답니다."
"아이고 그러시면 저에게 집 구경도 좀 시켜주시고
얼큰한데 커피도 한잔 주세요!"
"뭐, 보셨자 홀아비 사는 게 다 그렇지요 뭐!"
"기태 씨,
그래도 구경 좀 시켜주세요!"
"흉보지 않는다면 뭐 그럽시다."
복자는 기태를 따라서 집으로 들어갔다.
"아이고 새집이라서 그런지 엘리베이터도 엄청
크고 좋네요!.
"네~, 뭐!"
기태와 복자는 거실로 들어갔다.
"아이고 집이 엄청 넓고 좋네요!
그나저나 이 넓은 집에서 혼자 사세요?
혼자 사시기가 적적하겠네요 정말로!"
"예, 아이들 커서 시집 장가 들고나니 이렇게
혼자서 살고 있답니다."
"아이고 이렇게 큰집도 있겠다 재혼만 하시면
되겠네요 뭐!"
"말이 그렇지 환갑이 다 되어서 재혼이 어디
쉬운 일인가요?"
"에구요~,
나 같으면 바로 들어와서 살겠다. 호호호"
기태는 복자에게 방석을 내어주며 원목으로
만든 탁자로 안내했다.
"잠깐만 계시면 커피 타 드릴게요!"
"아니에요 기태 씨!
아까 마신 술이 집 구경하면서 다 깨 버렸어요!
차라리 막걸리 있으면 한잔 더 하고 싶어요!"
"예, 어제 사온 코다리 찜과 꼬막 무침도
있으니 막걸리로 드릴게요!"
기태는 술상을 챙겨서 탁자에 앉았다.
"마침 막걸리 한 병이 남아있었네요!"
기태는 유리잔에 막걸리를 따렀다.
"자~, 한잔 하십시다."
"예~, 노후의 건강을 위하여 건배~!"
"건배~!"
오늘따라 가슴이 브이자로 푹 패인 티 셔츠를
입고 나온 복자가 건배를 하자 뭉클한 가슴이
기태의 눈에 들어왔다.
기태는 못 본 척하면서도 수시로 쳐다보았고
복자는 보라는 듯 살짝 돌아앉았다.
"기태 씨!
재혼할 생각은 없으세요?"
"아이고 늘그막에 홀아비에게 와줄 여인네가
어디 있나요?"
"아이고 저는 기태 씨 같은 분만 있으면
전 지금이라도 재혼을 하겠네요! 호호호"
기태는 술기운도 오르고 조금 민망해서 티브를 틀었다.
그때 복자가 기태 옆으로 바싹 다가와서 앉았다.
기태는 복자가 어깨에 살짝 기대자 복자의 가슴이
닿아 물컹하는 느낌이 온몸에 전율을 일으켰다.
"저도 저 동물의 왕국 좋아하는데요!"
때마침 티브이에선 동물들의 교미장면이 나왔다.
두 사람은 그로 인해 묘한 흥분에 사로잡혔다.
복자는 술기운에 코맹맹이 소리를 했고
기태는 야릇한 욕정이 꿈틀거렸다.
거기에다 복자가 기대면서 오른쪽 손을 기태의
허벅지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복자는 기태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기태는 순간적으로 무의식적 반응에 키스롤 해버렸다.
복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기태를 받아들였다.
기태는 자신을 제어할 수 없어 탁자를 밀치고
서로의 옷을 벗기고 일순간 합체가 되었다.
두 사람은 술기운에 흥분이 고조되어 누가
먼저랄것 없이 옷을 벗고 쾌락에 빠져들었다.
기태 역시 오랜만에 여체를 느껴본지라
황홀한 느낌이었다.
복자는 옷을 입으면서 기태에게 말했다.
"기태 오빠, 오늘 너무 좋았어요!
저 사실은 너무 오랜만에 해가지고 좋아서
죽을 뻔했어요! 호호호"
"아, 정말요?"
"예~, 그럼요!
이렇게 힘이 좋은데 어떻게 혼자 사셨나요? 호호호"
"아이고 나는 복자 씨가 실망할까 봐 나름대로
노력을 했답니다. 하하하 하하하"
"기태 오빠만 좋다면 나 여기 와서 살고 싶어요!
내가 그래도 반찬 하나는 자신 있어요! 호호호"
기태 역시 싫지는 않았기에 미소를 지으며
복자의 말을 듣고 있었다.
"기태 오빠!
나 사실 집에 가기가 싫어요!
근데 내일은 월요일이라서 앞치마 챙겨서
5시에 학교 취사실로 가야 해요!
다음 주 토요일에 나 좀 재워주세요!"
"뭐 복자 씨가 좋다면야 그렇게 하세요!"
두 사람은 차례대로 대충 샤워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복자는 우산을 접은 채로 기태에게 기대어 전철역으로 걸어갔다.
"기태 오빠 안녕!
다음 주 토요일에 뵈어요!"
"그래요 복자 씨!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두 사람은 전철역에서 아쉬운 인사를 했다.
다음 주 토요일 점심때쯤 기태의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따르릉따르릉 전화 왔어요!
따르릉따르릉 전화 왔어요!"
기태는 가게 간이의자에 앉아서 티브이를 보다가
리모컨으로 티브이를 끄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진기태입니다."
기태는 등산복 장사를 하고 있기에 언제나 친절하게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기태 오빠!
저 복자예요 이복자!"
"아, 네~, 복자 씨 안녕하세요!"
"아이고 오빠!
벌써 제 목소리를 잊어버리면 어떡해요!
섭섭하네요! 호호호 호호호"
"아이, 그게 아니고요!
수시로 단골손님 전화가 와서 습관적으로
그렇게 받았답니다."
"호호호, 그러시군요 오빠!
근데 지금은 어디 계시나요?"
"네~, 도깨비 등산복 가게에 있는데 6시까지는
장사를 해야 한답니다."
"그렇군요!
토요일이라서 등산객이 많아 장사가 잘
되겠네요! 호호호"
"네, 가을철이면 좀 바쁘답니다."
"그나저나 오빠!
오늘은 반찬 사지 마세요!
학교에서 남은 반찬 가지고 왔으니 이따가
가게로 가지고 갈게요!"
"네~, 고마워요 복자 씨!"
한 시간쯤 지나서 복자가 등산복 가게로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손님!"
"응?
난 손님 아닌데요! 호호호호"
"아~, 복자 씨 오셨군요!
이쪽으로 좀 앉으세요!"
기태는 앉아있던 의자를 복자에게 내주었다.
"아이고 복자 씨!
오늘은 어쩐 일로 등산복을 입으셨네요?"
"아이고 오빠!
등산복 가게에 오는데 등산복을 입어야지요!
눈치코치 없이 여기세 양장을 입으면 안 되지요!"
"네~, 하긴 그것도 그러네요! 하하하하"
"그나저나 포장을 쳐놓았을 땐 몰랐는데요
생각보다 가게가 널찍하고 디스플레이를 아주
잘해놓으셨네요!"
"아이고 그거야 뭐 장사를 하다 보니 요령이
생겨서 그렇지요 뭐!
벽 쪽에는 바지를 걸어놓고 좌판엔 장갑과 모자
머플러를 펴놓고 앞에는 조끼를 걸어둔답니다."
"아이고 한눈에 딱 들어오도록 정리를 참
잘해 놓으셨어요!
최고입니다 최고!"
복자는 기태의 기분을 맞춰주려고 갖은
아양을 떨었다.
2부)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
기태가 퇴근준비를 할 때 사십 대 여자손님이
도깨비 등산복 가게에 들어왔다.
"사장님, 저번에 주문한 빨간색 발목토시 왔나요?"
"예, 손님!
다른 사람이 가져갈까 봐 여기 아래에 넣어놨어요!"
"여기 만원 있습니다 사장님!
역시 우리 도깨비 사장님은 신용도가 최고입니다!"
"예, 고맙습니다 손님!
뭐 다른 것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사장님!
오늘은 예쁘신 사모님도 나오셨나 봐요?"
"아, 예, 뭐 친구가 잠깐 들렀답니다."
기태는 가게에 여자가 있어본 적이 없는지라
민망해서 머리를 긁적거렸다.
"오빠, 그런데 가게이름이 왜 도깨비 등산복
이예요?"
"응, 처음에 저기 귀신 쫓는다고 도깨비 탈을
걸어놨더니 사람들이 이름을 붙여준 거야!"
"오~, 그럼 오빠도 미신을 믿는구나! 호호호"
기태는 6시가 되자 복자의 말을 들으면서
부지런히 가게 정리를 했다.
"아이고 오빠!
장사 수단이 아주 좋아요!
장사하시는 걸 보니 금방 부자가 되겠네요! 호호호 호호호호"
기태는 마지막으로 포장을 두르고 집으로 향했다.
"오빠, 여기 반찬이요!
꽤나 무거우니까 오빠가 좀 들어주세요!"
"아이고 뭘 이렇게나 많이 싸왔어요 글쎄!"
"아~, 학교에서 가져온 반찬하고 제가 집에서
담근 총각김치와 겉절이도 좀 가지고 왔어요!
근데 총각 무가 왜 총각 무인지 아세요?"
"그거야 모르지요!
누가 이름을 붙였는지 좀 그러네요! 허허허 허"
"아이고 모르시는구나!
총각 거시기가 무처럼 빳빳하게 생겨서 그렇답니다.
호호호 호호호호"
"그렇구먼요! 하하하 하하하"
"저번에 보니까 오빠 거시기도 아직도 총각 무
같았어요! 호호호 호호호호"
복자는 기태의 팔짱을 낀 채 걸으며 호들갑을
떨면서 한참을 웃었다.
"근데 오빠!
집에 막걸리는 있어요?"
"아, 예!
일 끝나고 출출할 때 먹으려고 두 세병씩 사다가
냉장고에 넣어둔답니다."
"그럼 됐네요!
거기 계란말이와 오징어무침에 제육볶음도
있으니 그냥 집으로 가면 되겠네요!"
기태는 복자의 호들갑이 그리 싫지는 않았기에
대답을 해가며 집으로 들어갔다.
복자는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거실 탁자에
가져온 반찬을 주섬주섬 내놓았다.
"자~, 오빠 이제 막걸리만 가져오시면 됩니다."
"응, 그래요 복자 씨!"
두 사람은 원목탁자에 앉아서 주거니 받거니
막걸리 두 병을 비웠다.
두 사람은 어느 정도 취기가 올랐고 복자는
술자리 청소를 시작했다.
"오빠, 내가 식탁 청소와 설거지를 할 테니
오빠는 그동안 샤워하고 나오세요!"
"아이고 손님에게 그런 일을 시키면 안 되지요!"
"저의 본업이니까 걱정 마시고 얼른 씻고 나오세요!"
기태는 머뭇거리다 목욕탕으로 들어갔다.
기태가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 복자는 벌써
설거지까지 말끔하게 해 놓았다.
"아니, 벌써 설거지까지 다 했어요?"
"그럼요, 제 본업이 주방장 이잖아요! 호호호
그럼 저도 샤워하고 나올 테니 그동안 오빠
잠들면 안 돼요 알았지요?"
"아이고 걱정 마시고 얼른 목욕탕에 들어가세요!"
기태는 거실에서 기다리기가 뭐해서 방으로 들어가
스탠드만 켜놓은 채 침대에 누웠다.
기태는 술기운에 눈을 감았으나 순간적으로
잠시 잠이 들었다.
그때 침대가 흔들리는 느낌에 눈을 떴을 때
매끄러운 살결이 기태의 몸을 스쳤다.
복자는 기태의 온몸을 마사지하듯이 애무를 했다.
기태는 생전 처음으로 받아보는 느낌이었다.
기태가 흥분이 최고조에 오르자 복자는
상위 자세 그대로 관계를 시작했다.
기태는 오래 지나지 않아서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그대로 사정을 해버렸다.
복자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기태의 옆자리에 누웠다.
"오빠, 좋았어요?
사실 오늘은 나보다도 오빠가 좋으라고 내가
최선을 다해서 해드린 거예요 알았지요?"
"응, 사실 결혼생활 하면서도 이런 일은 없어서인지
몰라도 너무 좋았어!"
복자는 기태가 만족스러워 하자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이튿날 아침에도 복자는 부산을 떨며 아침상을
준비했다.
"오빠, 아이들 학교 반찬이라서 좀 싱겁지 않으세요?"
"응, 티브이에서 성인병이다 뭐다해서 요즘은 나도
싱겁게 먹어요!
여하튼 덕분에 편하게 잘 먹었어 고마워요?"
"아이고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호호호호"
기태는 계면쩍어서 시계를 쳐다보았다.
"벌써 8시가 되었구먼!
일요일엔 빨리나가야 되는데 말이야!"
"그럼 오빠 먼저 가게로 나가세요!
내가 설거지랑 청소해 놓고 가게로 갈게요!"
"응, 나중에 내가 해도 되는데 이거 미안해서 어떡해요?"
"아이고 오빠도 별말씀을 다 하시네요!
걱정 마시고 얼른 가게나 가보세요!"
기태는 잠시 머뭇거리다 아무런 의심 없이 밖으로 나왔다.
일요일 아침이라서 남한산성 입구에는 벌써
등산객들이 가게 쪽 골목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기태는 부랴부랴 포장을 걷어내고 장사 준비를
했다.
기태는 문을 열자마자 등산용 스틱과 골프장갑
등을 여러 개나 팔았다.
그때 복자가 가게 쪽으로 들어왔다.
"아이고 오빠,
일요일엔 장사가 잘되나 봐요?"
"응 토요일과 일요일이 제일 잘돼요!"
"아이고 우리 오빠 돈 버는 재미가 쏠쏠하겠네요!
호호호 호호호호"
"그 대신 일요일은 4시면 장사가 일찍 끝나요!"
"그렇군요 오빠!
그나저나 저도 오후엔 학교 급식실에 들려
식품 재고 파악을 해서 내일 쓸 물품을 가락시장에
주문을 넣어야 한답니다."
"아~, 그것도 그렇구나!
그럼 믹서커피라도 한 잔 하고 가보도록 하세요!"
기태는 커피포트의 뜨거운 물로 커피를 타서
복자에게 주었다.
"우와~, 커피가 정말로 맛있어요 정말!"
"응, 가게 손님들이 원해서 파는데 주말엔
그래도 하루 스무 잔 넘게는 팔아요!"
"오~, 그것도 괜찮은 수입이네요!"
"뭐 커피 마시다가 물건도 사고 등산용품 사다가
커피도 마시고 그래요!"
"오호라, 그것 참 일거양득이네요! 호호호
오빠 커피 잘 마셨으니 저는 이만 가볼게요!"
"그래요 복자 씨,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예~, 오빠 다음 주 토요일에 또 전화드리고 올게요!"
그 이후로도 복자는 매주 토요일에 반찬을 가지고
기태의 가게에 들렀다.
이제 기태는 토요일이면 은근히 복자를 기다렸다.
그러나 복자는 기태의 마음을 꾀뚤고 볼일이
없으면서도 일부러 바쁘다는 핑계로 한주씩
걸러서 왔다.
그럴수록 기태는 토요일이면 휴대폰을 수시로
쳐다보았고 가게를 보면서도 복자가 올까 해서
골목 입구를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복자는 두 주를 연속해서 가게에
오지를 않았다.
기태는 혹시나 복자가 다른 남자가 생기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도 가지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손님이 뜸해진 11월 초 복자에게
전화가 왔다.
기태는 반가움에 후다닥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복자 씨!
어디 아픈데라도 있는 거 아니에요?"
"아이고 오빠,
그런 것은 아니구요!
주말에 친구 자식들 결혼식이 많아서 여기저기
다니느라 못 왔고요
또 학교 학생 한 명이 식중독에 걸려서 주말에
급식실 대청소 하느라 못 왔답니다."
"네~, 그런 일이 있었군요!"
"오늘은 시간이 되니까 이따가 반찬 가지고 가게로
갈게요!"
"예, 그래요 복자 씨!"
기태가 손님이 뜸해서 잠깐 졸고 있을 때 누군가
어깨를 툭 쳤다.
"아이고 오빠가 졸고 있기에 놀라게 해 주려고
했지요! 호호호 호호호호"
"복자 씨 왔구나!
난 또 누군가 했지! 하하하 하하하하"
두 사람은 오랜만에 가게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한동안 얘기를 했다.
"자~, 이제 가게 단도리를 했으니 갑시다."
"네~, 오빠!
나도 오랜만에 오빠 집으로 가니까 기분이 좋아요!"
두 사람은 원목 탁자에서 복자가 가지고 온
반찬으로 막걸리를 마셨다.
어느 정도 취기가 오르자 복자가 정색을 하면서
말을 이어갔다.
"오빠, 우리가 서로를 알만큼 알았으니
이제 살림을 합쳤으면 해요!
저도 혼자 살기가 적적하고 오빠도 장사를 해가며
밥을 해먹기도 어렵잖아요?"
기태는 복자의 말을 듣고 고개만 끄덕이며 한참을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이십 년이 다 되도록 혼자서 살던 내가 재혼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아이고 오빠도,
나하고 서로서로 맞춰가면서 살면 되잖아요
안 그래요?"
"그래, 그렇기는 하지만 걱정이 돼서 그렇지!"
"이제 조금 있으면 추워지고 등산복 장사도
덜 되잖아요!
그때는 내 월급도 조금씩 보태면 되지요 뭐!"
"그래요, 복자 씨 생각이 그렇다면 그렇게
하도록 합시다."
"고마워요 오빠!
이제야 외로운 밤을 지새우는 일은 없겠네요!
그 대신 나는 오십 대 중반 오빠는 후반인데
굳이 결혼식은 안 해도 될 것 같아요!"
"나도 한번 해봤으면 됐지 결혼식을 두 번 할
생각은 없어요!"
"아이고 어쩜 우리는 그런 생각까지 똑같을까
우리가 느지막이 천생연분인가 봐요! 호호호호"
그날 밤 두 사람은 오랜만에 침대에서 오래도록
진한 사랑을 나누었다.
3부) 재혼이라는 아픈 상처
이튿날 기태와 복자는 1톤 용달차를 불러서
기태의 집으로 짐을 들여왔다.
복자는 이미 살림을 합칠 준비를 했는지 허드레
옷이나 쓸데없는 물건은 재활용으로 버리고
이삿짐은 단출했다.
"오빠!
아니, 이제는 여보라고 불러야지요! 호호호호
지금 자기 기분은 어때요?"
"응, 넓은 집에 살림살이가 없어서 허전했는데
이제 뭔가 사람 사는 집 같기는 하네! 허허허허"
기태는 복자가 들어오고 나서부터 빨래와 청소
걱정은 안 해도 되었다.
또한 학교 급식실에서 남은 반찬을 가져와서
반찬 걱정할 일도 없어졌다.
복자는 살림을 합치고도 매주 주말에는 외출을
했다.
"아니 여보!
오늘은 토요일인데 어딜 가려고 외출준비를
하는 거야?"
"여보, 미안해요!
생활용품 대리점을 하는 친구 경애가 심심하다고
자꾸 불러서 가는 거예요!
아셨지요?"
"알았어요!
그럼 늦지 않게 일찍 들어와요!"
기태는 친구 가게에 간다니까 말릴 수도 없기에
그냥 두었다.
그러나 집안 생필품 구입용으로 준 카드 하나가
문제였다.
다음 달 결제일에 날아온 카드 명세서에 적힌
금액이 백만 원이 넘었다.
기태는 밖으로 나가려는 복자에게 말했다.
"아니, 여보!
당신에게 준 카드를 백만 원 넘게 썼네요?
의상도 그렇고 화장품도 그렇고 당신 사치에
지출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아이고 여보!
내가 들어와서 보니 살림에 필요한 게 너무 많아서
이것저것 샀어요!
그리고 친구들 만나면 창피하지 않게는 하고
다녀야지요!
내 친구들에 비하면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여보!
호호호"
"그래도 그렇지 여보!
나는 절약하며 사는 게 습관이 된 사람이요!"
"알았어요 알았어 여보!
없는 화장품도 사다 보니 내가 좀 심했네요!
"그래도 다음부턴 좀 절약해서 쓰도록 해요!"
"알았어요 여보!
담달부턴 쓸데가 별로 없으니 이제부턴 줄이도록
할게요!"
복자가 외출할 때는 언제나 양장에 하이힐을
신고 나갔다.
4시쯤 되어서 보따리를 들고 복자가 가게로 돌아왔다.
"아니, 여보!
그건 또 무슨 보따리야?"
"네~, 경애가 물건을 싼값에 덤핑으로 많이
구입했다고 이것저것 싸줬어요!
그리고 오랫동안 혼자 살던 내가 무슨 콩깍지가
끼어서 결혼했냐며 궁금해하더라고요!"
"그거야 뭐 인연이 닿았으니 그런 것이지 뭐!"
"그래서 경애가 비 오는 날 한번 모시고 오라네요?
오면 경애가 한턱 쏜다고 그랬어요!"
집으로 돌아온 복자는 보따리를 열었다.
"아이고 오빠,
경애가 많이도 싸줬네요!
치약 칫솔에 비누 설거지 퐁퐁까지요!
이건 또 뭘까?
아, 오빠 면도기하고 스킨로션까지 줬네요!"
"그래요!
주는 것은 고맙지만 그게 다 빚 아니에요?"
"아이고 오빠,
경애는 스케일이 크니까 그런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이후 몇 달간 복자는 약속대로 카드를 거의
쓰지 않았다.
집으로 날아온 명세서는 거의 십만 원이었다.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어느 날 두 사람이
티브이를 보고 있을 때 복자의 휴대폰 벨이 울렸다.
"응 , 경애야!
어쩐 일로 전화를 했니?"
"너네 신랑 비 오는데도 가게에 나가니?"
"아니?
비가 와서 지금 둘이 티브이 보고 있단다."
"그래?
오늘 주말인데 비도 오고 하니까 나도 마음이
싱숭생숭하니까 신랑하고 같이 가게로 와라!
가락시장에 가서 맛있는 것 사줄게!"
"알았어!
오빠에게 물어보고 내가 전화할게!"
복자는 스피커 폰으로 받던 전화를 끊고 기태에게 말했다.
"오빠,
비도 오고 가게도 못 나가니까 우리
경애네 가게로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
"에이, 초면에 뭘 어떻게 얻어먹어요 창피하게!"
"에구요?
내가 예전에 경애 가게로 가서 많이 도와줬으니
얻어먹을 자격이 충분해요 오빠!"
기태는 복자의 성화에 못 이겨 점심때쯤
복자를 따라나섰다.
복자는 문정동 로데오거리 버스정류장에 내려서
기태를 데리고 경애 가게로 들어갔다.
가게 간판은 다팔아 생활용품 대리점이었다.
"아이고 복자 왔구나, 반갑다 복자야!
"응, 잘 있었니 경애야?
우리 신랑 기태 씨야 인사해라!"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복자에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아, 예 안녕하세요!
저도 우리 복자 씨 에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그나저나 가게가 엄청나게 넓네요?"
"예~, 바깥에 주차장도 우리 건물 땅이랍니다."
"그럼 이 건물이 사장님 건물이에요?"
"아이고, 별것 아닙니다.
이쪽 응접실로 앉으세요!"
경애는 간이 부엌에서 마실 차를 준비했고
기태는 본인도 가게를 하는지라 여기저기
가게에 진열된 물품들을 살펴보았다.
"오빠, 커피 나왔으니 빨리 이쪽으로 오세요!"
"응, 알았어요!"
경애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커피잔을
기태 앞으로 내려놓았다.
"아~, 커피 향이 엄청 좋네요?"
"네~, 그거 에티오피아에서 직수입한 최고급
원두로 내린 커피입니다."
"네~, 그래서 향이 이렇게 좋군요!"
세 사람은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면서 커피를
마셨다.
"저도 복자가 온다고 그래서 점심을 안 먹고
기다렸답니다.
가락시장에 단골 한우집이 있으니 오늘은
제가 대접을 하겠습니다."
경애는 수화기를 들고 누군가를 불렀다.
"미스터 리!
2층 정리는 나중에 하고 내려와서 가게 좀
봐줘요!"
잠시 후 와이셔츠 차림의 말쑥한 30대 남자가
2층에서 내려왔다.
"나 손님하고 점심 먹고 올 테니까 가게 좀 봐줘요!"
"네, 알겠습니다 사장님!
맛있게 드시고 오세요!"
세 사람은 경애가 미리 불러놓은 택시를 타고
가락시장으로 향했다.
경애는 능숙하게 가락시장몰 식당가로 두 사람을
안내했다.
"여기가 횡성 한우 전문점입니다.
이 집은 횡성에서 도축한 고기가 매일 새벽에
직송된답니다.
경애는 그 비싼 살치살에 쪽갈비까지 푸짐하게
시켰다.
기태는 오늘 두번씩이나 놀랐다.
하나는 복자 친구인 경애가 그렇게 큰 사업을
하는데 놀랐고 또 하나는 여자답지 않게 씀씀이와
배포도 커다는데 놀랐다.
"저도 한잔 하려고 차를 놓고 왔으니
술은 뭘로 할까요?"
"예, 저는 뭐 아무거나요!"
기태가 우물쭈물하는 사이 경애는 복분자 술을
시켰다.
"이 복분자 술이 정력제라고 하니 복자를 위해서도
많이 드세요! 호호호 호호호호"
세 사람은 건배를 했고 기태는 복분자라는
고급술은 처음으로 마셨다.
기태는 주눅이 들어 조신하게 음식을 먹었고
경애와 복자는 문정동 로데오거리 가게 사업얘기까지
수다를 떨면서 먹었다.
"성함이 기태 씨라고 하셨지요?
"예, 진기태입니다."
"여기는 제 단골집이니까 마음 놓고 많이 드세요!
복자야, 너네 신랑 범털같이 멋지게 생기셨다.
드시고 싶은 것 물어보고 얼마든지 시켜라!"
복자는 기태가 쪽갈비 고기를 잘 먹으니까
쪽갈비 한 쟁반을 더 시켰다.
음식을 어느 정도 먹고 나자 경애는 능숙하게
휴대폰으로 택시를 불렀다.
"야~, 오늘 경애 너 덕분에 그 비싼 최고급
횡성한우를 실컷 먹었다.
고마워 경애야!"
"애는 친구 좋다는 게 뭐니?
기태 씨도 비가 와서 장사가 안 되는 날 수시로
놀러 오세요!"
"예, 고맙습니다.
덕분에 오늘 잘 먹고 갑니다."
세 사람은 가락시장몰 승강장에서 콜을 부른
택시를 탔다.
"기사님!
저는 문정동 로데오거리 중간 횡단보도에
내려주시고 마천동으로 가주세요!
요금은 2만 원이면 충분할 겁니다."
경애는 만 원귄 지폐 두 장을 기사에게 주었다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경애는 먼저 내리고 기태와 복자는 5시쯤
마천동 집 앞에서 내렸다.
기태는 오늘 최고급 원두커피도 마셔보고
그 비싼 횡성한우에 복분자 술도 마시고
어쨌든 기분 좋은 날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복자는 경애가 하고 있는
생활용품 자랑을 늘어놓았다.
"여보, 경애가 어떻게 돈을 많이 버는지 아세요?"
"아이 참, 내가 그것을 어떻게 알아요!"
"내 말 좀 들어보세요 여보!
경애는 월말이나 연말에 대대적으로 나오는
제품을 덤핑으로 사가지고 2층에 쌓아놓고
소매상에게 되팔아서 세 곱절 장사를 해요!
나도 예전에 경애네 가게 2층에 가서 수시로
정리를 해주고 일당을 받았어요! 호호호호
그런데 그게 피라미드 식 판매라서 제대로만
하면 떼돈을 벌 수가 있어요!"
"아이고 나는 떼돈이고 때밀이 돈이고 그런데는
관심 없어요 글쎄!"
"돈은 나에게 주지 말고 경애에게 직접 보내면
확실한 증거가 되잖아요 안 그래요?"
"그건 그런데.
물건을 확실하게 준다는 보장이 없잖아요!"
"아이고 당신 눈으로 로데오거리 가게에서
직접 봤잖아요!
2층에 쌓인 물건들이 그 덤핑 물건이에요!
총각 하나가 매일 정리를 하고 매일 택배로
물건을 보낸답니다.
그리고 늙어 꼬부랑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그
도깨비 등산복 난전을 할 거예요?
이참에 큰돈 벌어서 노후에 편하게 살자고요!"
복자는 의심을 하고 있는 기태를 이해시키며
달래고 구슬렸다.
아끼고 절약하면서 지금까지 자가용도 없이
전철로 물건을 해오며 고생을 하던 기태는
복자의 말에 조금씩 기울어져 갔다.
"당신은 고작 등산복 팔아서 푼돈을 만지는
사람이고 나는 큰돈을 벌어서 풍요롭게 살려고
했던 겁니다."
"그래도 나는 큰돈을 투자하는 게 겁이 나요!"
"아이고 걱정 마세요!
제가 그래도 학교 급식소에 다닌 지가 십 년입니다.
계약상 만 60에 정년이니까 11년 치 퇴직금 타면
타면 그 돈도 보탤게요 여보!"
"그래요?
진짜 내년이면 11년 차 퇴직이에요?"
"그렇다니까요 여보!
여기 계약서 있잖아요!
보세요 봐요!"
기태는 복자의 퇴직금이 있다는 소리에 조금의
위안을 가졌다.
"그러니까 가게 얻으려고 모아둔 돈으로 이번에
투자를 해서 큰돈을 만들어 좀 편하게 살자고요!"
기태는 복자의 집요한 설득에 마음이 조금씩
흔들렸다.
"정말, 합법적으로 물건을 싸게 구입해서 다시
마진을 붙여 되팔 수가 있는 거야?"
"나도 다팔아 생활용품 회원이니까 그것은
걱정 마세요 여보!
그리고 물건은 경애네 가게 2층에 보관하고
판로도 개척해 주겠다고 했어요!
고향 친구 좋다는 게 뭐예요?"
이튿날도 어김없이 기태는 가게로 나갔다
저번에 받은 명함으로 경애 씨에게 확인을
해보기로 하고 전화를 걸었다.
"네~, 다팔아 생활용품 여경애입니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저 복자 씨 남편 되는 진기태입니다."
"아이고 반갑습니다.
어쩐 일로 전화를 다 주셨네요!
비 오는 날 놀러 오세요!"
"네~, 다름이 아니고 집사람이 덤핑 물건을 받아서
되팔면 큰돈을 번다기에 궁금해서 전화를 했답니다."
"예~, 저는 이런 사업을 이십 년째 해왔답니다.
저는 덤핑 물건을 받아 공급해서 돈을 벌어
건물도 땅도 샀답니다."
"그러면 집사람이 한 얘기를 믿어도 되는 건가요?"
"아이고 제가 하는 사업을 복자가 보고 있는 그대로
얘기를 했겠지요!
제가 그렇게 돈을 번 것은 맞으니까 복자를
믿으셔도 될 겁니다."
"예~,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기태는 커피를 마시며 생각을 해보았다.
"그래, 하루에 고작 몇만 원을 벌려고 새벽같이
일어나서 남대문으로 동대문으로 정신없이
헤매고 다녔잖아!
합법적으로 큰돈을 벌 수가 있다니까 한번
믿어보자!"
기태는 투자를 해보기로 결심을 했다.
복자는 기태가 생각할 여유를 주기 위해
집안 청소를 핑계로 가게에 나오지 않았다.
기태가 일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갔을 때
복자는 집안 대청소를 하고 기태가 좋아하는
돼지고기 복음탕도 만들어놓았다.
"여보, 오늘도 고생 많으셨지요?
오늘은 특별히 술안주로 맛있는 거 해놨으니
얼른 씻고 나오세요!"
"응 알았어요!"
기태가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 원목 탁자엔
저녁과 막걸리가 올려져 있었다.
"자~, 한잔 받으세요 여보!"
"그래, 고마워요 여보!"
두 사람은 저녁과 반주로 막걸리까지 맛있게 먹었다.
복자는 경애네 가게에서 가져온 커피를 타 가지고
원목 탁자에 앉았다.
"이거 당신이 향기가 좋다고 한 그 커피예요!"
"그래 맞아!
이 커피는 정말로 향기가 좋아! 하하하하"
기태는 저녁 겸 반주로 막걸리를 마시고 기분이 좋았다.
"그래, 여보!
생각은 해보았나요?"
복자는 낮에 기태가 경애에게 전화를 했다는 걸
알면서도 모른 채 했다.
"그래,
내가 십 년 동안 뼈 빠지게 장사를 해도 고작
일억 좀 넘게 벌었는데 큰돈을 벌 수가 있다니
어디 한번 해봅시다."
"아이고 여보, 잘 생각하셨어요!
이런 기회가 자주 있는 것도 아니에요! 호호호호"
복자는 그날 저녁 예전에 해주었던 것처럼
침대에서 기태를 완전히 녹여버렸다.
이튿날 복자는 기태와 함께 은행으로 가서
일억 오천만 원을 경애 계좌로 이체를 했다.
복자는 한 달 후면 물건이 경애 가게로 온다면서
기태에게 이젠 큰돈을 벌었다며 자랑을 했다.
음식도 하루는 낙지볶음 뒷날은 가자미조림에
날마다 고기반찬이 올려졌다.
복자는 기태를 안심시키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을 했다.
"여보, 이거 반찬값이 너무 많이 드는 것 아니에요?"
"아이고 여보,
조금 있으면 우린 부자가 될 텐데 무슨 걱정이에요?
그리고 내가 이리저리 다니면서 판로를 많이
개척했으니 판매도 걱정 마세요!"
"응, 그래요?
나는 도통 다단계판매는 몰라서 그래요!"
따뜻한 봄날의 토요일 아침 복자가 말했다.
"여보, 예전에 나와 다단계를 같이하던 친구를 오늘
만나기로 했어요!
그 친구가 가게 수유리에 오픈을 하는데 우리 물건을
오천만 원어치 가져가기로 해서 계약서 쓰고
올게요!"
"그래요, 그럼 나는 가게로 나갑니다."
"네~ 여보, 잘 다녀오세요!"
복자는 기태의 얼굴에 뽀뽀까지 해주었다.
기태는 복자의 그 말을 들어서인지 발걸음도
가벼웠다.
기태는 6시쯤 가게 단도리를 하고 막걸리를
사들고 집으로 들어갔다.
"여보, 나 왔어요!"
기태는 복자를 부르며 거실로 들어갔다.
기태가 몇 번을 불러도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기태는 우선 목이 말라 냉장고에 반찬을 이것저것 꺼내서
막걸리 한 병을 마셨다.
저녁 8시가 넘도록 복자가 돌아오지를 않아
기태는 복자에게 전화를 했으나 전원이 꺼져있었다.
기태는 또다시 두 번 세 번 전화를 했지만
계속 전화기가 꺼져있었다.
기태는 이상하다는 느낌에 큰방 작은방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기태는 의구심에 복자가 쓰는 옷장을 열어보았다.
그러나 옷장은 텅 비어있었다.
"아니, 어제까지만 해도 옷을 입을 때 옷장이
꽉 차 있었는데 어떻게 된 일일까?
기태는 얼른 신발장도 열어보았다.
신발장에는 예전에 신었던 빨간색 하이힐
한 켤레가 남아있었다.
"아니 복자가 집을 떠났다면 하이힐 한 켤레는 왜
남겨뒀을까?"
기태는 아무리 생각해도 해답을 찾지 못했다.
기태는 복자를 기다리면서 막걸리 한 병을 더 마셨다.
자정이 되어도 복자의 소식이 없어 전화를 했으나
전원이 꺼져있어 또다시 문자를 보냈다.
"여보, 왜 아직도 안 들어오는 거요?
이 문자를 보면 빨리 전화를 좀 해줘요!"
기태는 평상시 집에서 막걸리 두 병 이상은 마시지
않았다.
그러나 복자를 기다리다 지친 기태는 막걸리
한 병을 더 마시고 술에 취해서 잠이 들었다.
이튿날 기태는 과음 때문에 무거운 머리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에서 깨자마자 작은방을 열어보고 목욕탕
문도 열어보았으나 복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튿날 기태는 일요일 내내 가게 문도 열지 않은 채
복자가 오기만 기다렸다.
기태는 월요일 아침에도 일손이 잡히지 않아
집에서 넋 놓고 앉아있었다.
10시쯤 되어서 기태의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따르릉따르릉 전화 왔어요!"
기태는 반가워서 단번에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당신이야?"
"안녕하세요!
마천 우체국 집배원입니다.
등기우편이 왔는데 집에 계신가요?"
"네~, 집인데요!
잠깐만 기다리면 바로 내려가겠습니다.
기태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등기우편을
받았다.
등기는 일억 오천만 원에 대한 물품 인수증으로
진기태와 이복자의 이름에 도장이 찍혀있었다.
그것은 법적인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조작된
완벽한 증거였다.
기태는 복자가 떠나고 수십 번 복자에게 전화를
했지만 언제나 휴대폰은 꺼져있었다.
기태는 어떻게 된 일인지 자초지종을 알기 위해
문정동으로 갔다.
그러나 팔아요 생활용품 가게 간판까지 없어져서
가게를 찾기 위해 기태는 길에서 헤메야만 했다.
"아니, 분명히 이 근처였는데!"
기태는 저장되어 있는 번호로 경애에게 전화를
했지만 없는 번호로 되어있었다.
기태는 재차 전화를 했지만 마찬가지였다.
그때서야 기태는 복자와 경애에게 속았다는 것을
알았다.
경애는 그 당시 점포정리를 하고 있었고 젊은
직원은 아들인데 직원처럼 행동하도록 각본을
짠 것이었다.
기태가 복자에게 준 돈은 올해 그럴듯한 가게를
얻어서 떳떳하게 장사를 해보려고 십 년 동안
아끼고 절약해서 모아둔 돈이었다.
기태는 십 년 동안 고생한 돈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자
허탈감에 빠졌다.
"이 넓은 세상에 어디 가서 복자를 찾는담?
가짠지 진짠지도 모르는 이름석자에 사람만 믿고
재혼을 한 내가 바보지 바보 허허 참!"
기태는 길에서 미친놈처럼 중얼거렸다.
그래도 기태는 복자가 퇴직금 운운했던 게
궁금해서 돌아오는 길에 복자가 근무하던 학교에
들렸다.
기태는 학교 행정실로 찾아가서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문의를 했으나 퇴직금은 이미 예전에
정산하고 내줄 것이 없다는 말을 듣고 나왔다.
집으로 돌아은 기태는 어디에도 복자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기태는 허탈한 마음에 밖으로 나왔다.
바깥에는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기태는 복자가 사기를 치고 도망간것에 대해
화가 치밀어 선술집으로 향했다.
막걸리 한 병을 비운 기태는 얼큰하게 취기가 올랐지만
다시 한 병을 시켰다.
술에 취하자 기태는 천장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여보, 당신이 그립소!
내가 느지막이막이 무슨 팔자를 고친다고 재혼을
했으니 내가 지금 죄를 받는가 보오!
당신이 저 하늘 떠난 지 어언 이십 년!
곱디고운 당신, 보잘것없는 나에게 말없이
내조해 주던 당신이 보고 싶소!"
기태는 술병이 온 것도 모른 채 한없이 눈물을
흘리며 선술집 천장을 바라보았다.ㅁ
*하남시와 마천동 경계지점 남한산성 입구 골목*
첫댓글
이 작품은 아직 미완성으로
수정을 위해 올렸습니다 만,
벌써 많은분들이 보셨네요! 😢
오타에 거듭 죄송함을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