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실업계냐 인문계냐?
당당하게 고등학교 입학 검정고시를 패스했으나 이제부터는 고등학교 입학을 위해 고민을 하였다.
중학교 과정은 야학당에서 베풀어준 은혜로 부담 없이 잘 마쳤지만, 고등학교에서는 그런 곳은 찾아볼 수가 없었기에
학교에 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현실이었다.
먹고 살기에 급급한 가정형편을 고려하면 나 혼자 욕심을 내서 고등학교에 간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더구나 형님과 누님은 학교 문 앞에도 가보지 못 한 채 집안일에만 몰두하고 있는 상황에 고등학교 가겠다고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 같이 학교를 다녔던 친구들도 가정 형편상 고등학교를 간다는 것이 어려움을 잘 알고 있기에
모두들 포기를 하고 한 친구만이 일단 시험을 치루어 합격한 후 생각해 보자고 했다.
내 개인적인 적성을 봐서는 인문계 쪽으로 가서 대학교를 다녀야하는 과정이지만 지금 나의 형편에서는
꿈같은 희망일뿐 앞길을 장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실업계 쪽으로 간다면 졸업 후 바로 취업을 할 수 있어 나같은 환경에서는 실업계를 가야 하는 것이 맞는다고
결론을 내리고 친구와 상의하니 그 친구도 나와 같은 의견으로 내가 가는 곳에 자기도 가겠다고 했다.
실업계 학교를 알아보니 상고와 공고로 나누어졌는데 사회에 빠른 진출을 하기 위해서는 공고계통이 나을 것 같았다.
그때 당시에는 공고로 충남기계공고가 공립으로 되어있고, 중도공고는 사립으로 되어있었다.
전공을 보면 충남기계공고는 기계과와 전기과 건축과가 있었고 중도공고에는 통신과와 철도과가 있어
어느곳에 어느과를 선정할지 고민을 하였다.
시험 일정은 충남공고가 전기고 중도공고는 후기였다.
그러나 문제는 중학교 때처럼 학비가 제일 문제였다.
의욕만 가지고 시험을 보기에는 괜히 마음의 상처만 클 것 같았다.
여러모로 궁리를 해도 뾰족한 수가 없어 진학한다는 것이 어려울 것 같아 망설이고 있었다.
마땅히 상의할 사람도 없고, 한다고 뚜렷한 해결책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더욱 가족들한테
입장만 난처하게 만드는 꼴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만 착잡하고 갈등만 하다 전기는 지나가고 얼마 남지 않은 후기시험을 놓고
마음의 결정을 하여야 했다.
이것마저 놓치면 1년을 기다려야 하고 진학하는 것이 무산될 위기라 일단 시험을 보고 합격하면
그때 대책을 세우자고 친구와 상의했다.
많은 학생들이 수업료도 싸고 장래에 취직도 잘된다는 충남공고를 선정했지만 우리는 가정형편을 고려하여
가느냐 마느냐 고민하느라 시간이 지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남은 후기학교인 중도공고에 입학원서를 내고 시험을 보니 무난히 합격을 하였다.
그런데 중학교처럼 그렇게 기쁘지가 않았다. 문제는 이 소식을 전하고 학교에 가겠다고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합격 소식을 전하지 못하고 침울하게 며칠 동안 집안일을 도우며 있으니까 눈치 빠른 어머니가 무슨 일 있느냐며
얘기해보라고 하셨다.
나는 별일 없다고 흘려버리고 며칠을 지났지만, 이번에는 가족이 한자리에 있을 때 큰 형님이
무슨 고민 있으면 말해보라고 하셨다.
이제는 더 이상 숨길 수도 없는 처지라 그동안의 과정을 다 말씀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