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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청악과 함께한 99년, 한 해
김 경 희
한 해를 마무리 하면서...
올 해의 한장만이 달랑 남아 있는 달력, 불과 스물하고도 며칠밖에 남지 않은 올 한 해를 마무리 하는 이 시점에서 내가슴을 따뜻하게 채워주는 것이 있다. 바로 "청악과 맺은 인연" 그 인연속에 여러 선배님들 그리고 우리 99회원들과 함께한 추억들이 이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이 시점에서 무엇보다도 내가슴 한자리에 아름답게 간직된다. 그런 추억들로 인해 올 한해가 더욱더 풍요롭지 않았나 싶다. 올 한해동안 참으로 많은 시간들을 산에서 선배님들이랑 우리 회원들이랑 같이 했다.
입회를 하고 나서는 얼마 동안 많은 망설임도 있었다. 아 선배님들이 닦아 놓은 화려한 청악의 길, 그 길을 가는데 혹시나 누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몇 십년간이나 형성되어 온 이 유대감속에 같이 잘 융합해 나갈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정말 내가 이길을 가고자 하는가 하는 의문들. 청악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으면서도 정작 내 자신은 청악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 것 같아서 죄송스럽다.
누군가 나에게 ‘많고 많은 산악회 중에 왜 청악을 택했냐고?’물은적이 있다. 그때 난 ‘그냥, 일반산악회 사람들이 모여 자연스럽게 형성된 산악회 같아서, 그래서 청악을 택했다’라고 말한적이 있다. 어떤 집단의 소속이 아닌 산에서 오고 가면서 만난 사람들일 것 같은 느낌, 그 느낌 때문에 청악에 문을 두드렸다. 고맙게도 그문은 쉽게 열렸고 그리고 청악이란 울타리 또한 따뜻했다.
매주 주말이면 선인에 올라 밤새도록 삼겹살에 소주잔을 기울이며 등반이야기를 나누었던 시간들, 비맞으며 내려오는 하산길도 무작정 좋았던 시간들, 집회후면 들렀던 곱창집(처음엔 곱창이라면 입도 못대었는데 지금은 어느덧 선수가 되어있다), 호프집, 닭집들.... 장비를 구입하기 위해 갔던 여러 산악장비점, 우승컵을 위해 모든 청악인들이 뛰었던 4월의 체육대회, 신입생교육을 위해 선인에 올라 등산교육을 받으면서 배웠던 산악가 등, 등반후 한선배님께서 매번 사주시던 그 감자탕 맛, 선배님께서 만들어 주신 산에서 먹은 해물파전의 별미, 안개낀 새벽길을 달려 밤새 걸었던 명지산 야간산행, 매주 목요집회장소인 전원다방의 바지락칼국수의 맛, 선배와 후배가 함께 모여 2000년도 청악의 발전과 안전등반 기원을 위해 명지산에서 지낸 시산제...... 그 모든 추억들이 하나 하나 쌓이면서 더해만 가는 청악과의 정, 어느새 깊어져 있는 청악과 맺은 정을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해진다.
99년 한해동안 모든 선배님들이 우리 신입회원들을 위해 여러가지로 고생하셨지만 뭐니뭐니 해도 등반대장의 위치로서 항상 저희들과 함께 산행해 주시고 지도해주신 이합승 선배님께 무지하게 감사드리고 싶고, 그리고 많은 이들에게 청악을 알리기 위해 홈페이지 제작 및 관리에 노력하셨던 원종민 선배님, 그리고 개인적으로 박성호선배님이랑 바다건너 일본으로 유학가 있는 미선언니에게 감사드리고 싶다. 그리고 우리 99회원들에게도.
청악과의 첫 만남
인터넷 검색엔진을 통해 청악을 처음 만난 것은 3월 둘째주 어느 날인 것으로 기억한다. 일반인들로 구성된 산악회란 사실이 무엇보다도 내 마음에 들어왔지만 막상 가입을 하려고 보니 전문적인 암벽, 빙벽 등반을 추구하는 산악회라는 사실에 많이 망설여진다. 홈페이지만 들락날락 거리면서 마음의 결정을 내리기까지는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매번 매스컴을 통해서만 보아오던 클라이머들에 대한 호기심, 새로운 분야를 접해보자라는 생각, 아무리 암벽/빙벽을 전문으로 한다고 해도 그래도 산사람들인데 많은 산을 다니겠지 하는 기대감, 그리고 무엇보다도 산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로 인해 3월 25일 전원다방을 찾아 청악과 만나게 된다.
입회원서를 작성한후 간단한 소개인사와 선배님들의 소개를 받고 집회가 시작된다. 이번 집회에 참가해 입회원서에 내이름 석자를 적음으로써 난 "99-4" 번이라는 준회원의 번호를 부여받았다.(개인적으로 숫자 4를 좋아하는 내겐 99-4번이란 번호는 참 행운의 번호였다) 내 자신이 과연 이 울타리에 잘 융합되어 나갈 수 있을지 하는 의문과 동시에 청악과 나도 이제 한가족이구나 하는 생각들이 내 마음을 들뜨게 한다.
지난 주 산행이 보고 되고 이번 주 산행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가고 하지만 첫만남이라 어색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되었는데, 산사람들의 특유의 허허털털함이 느껴져 편안하다. 집회가 끝나고 모두들 곱창집으로 가자고 하지만 오늘은 그냥 일찍 집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에 바로 지하철역으로 향한다. "99-4 이제부터 시작이다. 시작이 중요한 만큼 잘해야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이렇게 청악과의 나의 만남은 시작되었다.
함께 나누고픈 산행이야기
4월 3일 - 5일 도봉산 선인봉
청악과 함께하는 두번째 산행이다. 지난 주 너무 무리한 탓에 어깨가 많이 놀라나 보다. 주말이 되면 산에 가야 되는데 며칠이 지나도 지난주 무리한 어깨가 이상해서 병원까지 찾아가 엑스레이를 찍고 물리치료에다 별별 조치를 다 취해본다. 일단 엑스레이 결과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한다. 심리적 탓일까 엑스레이 결과가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하니 좀 덜 한 것 같고, 크크크. 주말이 되기까지 그렇게 며칠 동안 물리치료를 받으려 다녀야 했다.
토요일 저녁 9시, 할머니가게에 속속들이 모이는 회원들, 자기 자신보다 더 큰 배낭을 어찌 저리도 씩씩하게 메고 당당하게 걸을수 있는지 존경심 마저 든다. 거기에 비하면 내 배낭은 에고고... 처음 야영때는 선배님께서 침낭이랑 메트리스를 챙겨 올라가 주셨는데, 이번엔 내 배낭에 넣어가기 위해 나름대로 큰배낭이라고 생각해서 가져온 배낭이 선배님들것과는 비교도 안된다.
9시가 조금 넘어 우린 선인봉으로 향한다. 10여분 정도 지나니 땀의 감촉이 느껴지고 두근두근 거리는 나의 심장박동소리, 씩씩대는 내 숨소리, 내숨소리가 이렇게 컸나? 너무나도 크게 들린다. 난 힘들어 죽겠는데, 큰배낭을 메고도 씩씩하게 오르시는 선배님들 앞에서 힘들다는 말은 못하겠고, 어떻게 되었든간에 뒤쳐지지 않게 같이 보조를 맞춰 가야 된다는 생각밖에 없다. 그래도 이번산행은 신입회원인 윤희(99-2)가 있어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면서 가니 좋다. 도봉산장 아래의 첫번째 휴식! 배낭을 내려놓고 공기를 한껏 들어마시고 나니 왠지 살 것 같자. 폐깊숙이 들어오는 찬공기의 느낌도 좋고. 그렇게 잠깐의 휴식을 취한후 우린 또다시 아영장을 향하여 발걸음을 재촉한다.
야영장에 도착. 텐트를 치고 가져온 야채를 씻고 간식먹을 준비를 한다. 원선배님이 준비하신 LA갈비에다가 소주로 간단히 먹고 난뒤 이번산행의 목표였던 신입회원교육에 들어간다. 코오롱등산학교 교재를 펴 놓고, 원선배님의 지도하에 교육을 받는다.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쌓여 온 지식 그리고 등반에 대해 체계적으로 정리된 지식에 의해서 교육은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도중도중 등반경험을 토대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신다. 산악인의 노래도 가르쳐 주시고 우린 밤새도록 그 노래를 따라 부르는 가운데 밤은 점점 더 깊어지고 있었다.
이번교육을 하면서 교육도 교육이지만 교육도중에 느겼던 산을 향한 선배님의 그 열정, 또 나로서는 상상도 할수 없는 수많은 지식들, 그런 것들이 나에게 더욱 더 자극을 주었다. (이후 생략)
1999년 7월 10일 - 11일 도봉산 선인봉
금요일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가 토요일 아침 여명이 밝아와도 그칠줄 몰랐다. 비가 와도 산행은 예정대로 진행된다고 하는데 쏟아지는 굵은 빗줄기를 보니 산을 오르고자 하는 마음이 저하된다. 그러한 망설임과 함께 전날 밤을 샌 피로가 확 밀려온다. 이번 부식 당번이 나인데, 그래서 안 갈 수도 없고.
정오가 가까워지면서 빗줄기는 가늘어지기 시작했고, 오후가 되자 흐렸던 하늘이 차츰 개었고 구름사이로 가끔씩 햇살이 비치기도 했다. 저녁 간식으로 뭘 준비해 갈까하는 고민끝에 오징어불고기에다 소주로 결정. 퇴근길에 시장을 보고 집으로 와 후다닥 먹거리를 준비해 오후 5시 30분쯤 집을 나섰다.
21시에 할머니가게에서 모이기로 약속되어 있어지만 야영허가증 발급 때문에 일찍 출발해야 했다. 19시 10분쯤에 관리소사무실에 도착하여 야영허가증을 발급 받을수 있었다. 약속시간 21시까지 너무 여유가 남아 있었다. 그 많은 시간을 할머니가게에서 보내기 보다는 혼자서 천천히 산을 오르기로 하고 등반대장님게 먼저 출발하겠다 유선상 승인을 받은 후 홀로 산행길에 올랐다. 혼자 산에 오르는게 얼마만인지 모른다.
배낭의 무게 때문에 가끔씩 팔에 쥐가 났지만 한적한 산행길은 내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비가온 뒤라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 또한 너무나 맑고 경쾌하게 들려 정말 산에 오길 잘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9번야영장 위치를 몰라 휴식처에서 2시간 가량, 올라오는 회원들을 기다려야 했다. 1시간 정도는 시원하고 괜찮았는데, 1시간이 좀 지나가 서늘해지면서 나중에 닭살까지 에궁... (산에 다닐땐 항상 여유분의 옷을 준비해왔는데, 오늘따라 바쁘게 나오다 보니...)
22시 20분에 올라 오신 한계남선배님, 전명준회원, 이택수회원, 2시간 20분의 기다림이였다. 올라 오신 분들과 합류하여 9번 야영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9번 아영장에 도착한 시간이 23시. 등반대장님인 이합승선배님은 집안일 때문에 조금 늦게 도착하신다고 하셨다. 애기도 같이 데리고 오신다고 하시던데. ( 재영일까? 원영일까? )
나중에 올라오시는 선배님을 기다렸다가 같이 야식을 먹어야 겠지만 그렇게 하기엔 우리의 위장이 가만 있지 않았다. 배낭을 풀고 푸짐한 야채랑 갈비, 오징어불고기, 쇠주한잔을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벌써 자정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아직 합승선배님은 도착하시지 않았고 모두들 이젠 피곤한 몸을 빨리 침낭속에 뉘이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나도 많이 피곤하였지만 그래도 선배님을 기다려야 된다는 생각에...
얼마지나지 않아 합승선배님이 도착하셨다. 커다란 배낭에다가 원영이까지 무등태워 올라오신 선배님 얼굴엔 땀이 흥건하다. 선배님이 도착한 후 다시 고기파티가 시작 되었으며 새벽 한시쯤에 잠자리에 들었다. 여름날씨 치고는 기온이 좀 낮은편이었고 바람도 이리저리 휘몰아 치는데 장난이 아니였다. 선배님께서는 이런 날씨에는 잠도 잘 오고 모기도 없어 좋다고 하신다. 선배님 말씀대로 잠자기에는 정말 끝내줬다.
아침 합승선배님의 “택수야”하는 소리에 일어나 보니 해님이 벌써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후다닥 식사준비를 하면서 시간을 보니 6시 10분. 에게게 시간이 이것밖에 안되어나 싶어 다시 시계를 쳐다보지만 여전히 6시 10분이다. 평상시면 자고 있을 시간인데. 7시 모든식사준비 완료! 평상시 보다 좀 이른 식사로 인해 일요일 올라오시는 회원님을 기다려야 될 시간이 1시간 하고도 20분 정도 남아 있었다.
아홉시 정각 장준상선배님이 야영장에 도착하셨고 10분정도의 휴식을 취한 후, 오늘 등반코스에 대해 등반대장님이랑 상의 결과 오전에 박쥐와 표범을 등반하기로 하고 오후에는 내려가 슬랩등반연습을 하기로 결정했고, 합승선배님께서는 캠프장에 남아 일명 멍멍이를 해주시기로 했다. 어제 비로 인하여 오늘은 바위가 아주 깨끗해서 등반하기 좋을 거라면서 잘 다녀오라는 등반대장님의 말씀을 뒤로 하고 9시 20분 박쥐길로 향했다.
우리가 박쥐길 아래에 도착했을 때는 벌써 다른 팀이 등반을 하고 있었고, 대기중인 사람도 많았다. 등반대기자, 등반을 구경하시는 등산자등 30명이 넘는 인원이 그 좁은 공간을 가득히 메우고 있었다. 박쥐길을 등반하고 내려와 표범길을 등반하려던 첫번째 계획을 바꿔 표범길 등반을 먼저 하고 박쥐길을 오르기로 했다.
앞팀의 등반자 모두가 1피치를 올라을 때 우리는 등반준비를 완료한 상태였다.(10:30). 준상선배님, 전명준회원, 이택수회원, 나, 한계남선배님 이렇게 등반자의 순서가 정해졌다. 준상선배님께서 자일의 매듭을 묶고 ‘출발’소리와 함께 드디어 우리의 등반이 시작되었다.
표범길은 첫 스타트가 어렵다고 하셨는데 모두들 잘 올라 가시는 걸 보니 나도 잘할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그리고 선등자는 아니지만 새로운 바위길을 접한다는 사실이 마음을 설레게 한다. 나의 차례가 되었을 때 잘해야지 하는 마음과 함께 바위에 붙였는데, 내가 표범길을 너무 만만하게 본건가? 레이백 등반자세에서 더 이상 오르지 못하고 번번히 떨어졌다. 4번째 시도!! 드디어 위의 홈까지 손이 닿았지만 또 추락하고 말았다. 너무 오랜시간을 매달려 있었어 그런지 힘이 다 빠져 나가는 것 같았다. 잠시 휴식을 취하는 사이 한계남선배님이 먼저 오르기로 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한선배님도 오르신다. 작년에는 오르지도 못했는데, 이번에 오르는 것 보면 그 사이 실력이 늘었나 보다 하시면서 흐뭇해 하셨다. 나도 좀 더 연습해야 되나, ‘표범은 아직 나에게 무리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남들 다 하는데, 나라고 못할게 뭣 있나? 하는 오기로 다시 바위에 붙었지만 2번 모두 추락하고 말았다. 휴식을 취하고 다시 도전하겠다고 먼저 올라가 계신 선배님들에게 말했지만 나 때문에 벌써 지체한 시간 때문에 다시 도전해 보겠다는 말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내가 휴식을 취하는 사이 다른 등반팀이 등반을 시작했는데, 부드럽고 매끈한 등반자세로 표범길을 쉽게 오르는 거였다. 난 고생고생해도 안 되는 길을 너무 쉽게 오르니 왠지 비참한 기분까지 들었다. 그러는 사이 준상선배님, 전명준회원, 이택수회원은 2피치까지 올라가고 준상선배님은 하강준비를 했다. 난 아직 포기하지 않고 다시 도전하기로 하고 준상선배님께서 1피치 내려와 나의 빌레이를 봐주시고 난 다시 7번째 시도를 시작했다.
구경하시는 분들조차 안타까워던지 힘내라면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다. 7번째도 추락, 정말 안되는 것일까, ‘이번 한번만 더 해보고 안되면 포기할께요.’라고 선배님들에게 말하고 다시 재 도전을 했다. 8번째 도전, 정말 마지막인데 잘해야 될텐데, 하면서 바위에 붙어지만 오랜시간 바위에 매달려 있어 그런지 팔에 힘이란 힘은 모두 소진 되어 버린 것 같았고, 힘 조차 들어가지 않았다. 다시 추락하는 일이 있더라도 오르고 봐야겠다는 생각에 마지막 도전에 나섰다.
8번째 시도 끝에 힘겹게 첫 스타트를 오를 수 있었다. 나보다 아래에서 구경하시는 분들이 더욱 더 좋아하시는 것 같았다. 첫 스타트를 넘어 섰을때 몇번의 실패로 정말 기분이 저하될때로 저하 되어 있었는데, 언제 그랬냐 싶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1피치 확보를 조금 남겨두고 자일을 잡고 바위를 넘어 가야 했었는데, 자일을 붙잡고 넘어갈 힘조차 남아 있지 않는 것 같았다. 30초정도 휴식을 취한 후 자일을 잡고 준상선배님의 지시에 따라 바위를 넘기 시작했는데 자일을 붙들고 있던 팔에 힘을 가하려고 해도 감각이 무디어지고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떨어질것 같았는데 버티어 봐야지 하면서 힘을 주는 순간 내손은 벌써 자일을 놔 버리고 있었고, 머리속에서는 과연 얼마나 떨어질까? 하는 생각이 제일 먼저 스쳐 지나갔다.
모두들 추락할 곳도 아니고 전혀 추락을 예상하지 못하셨는지 선배님들이나 아래에 계신는 모든분들이 놀라는 눈치였다. 3m정도 추락하고 나니 왠지 부끄러웠다. 다시 재도전해 1피치 확보물에서 잠시 숨을 돌렸다. 전명준, 이택수회원이 하강을 해서 아래에 내려가 계셨고, 한계남 선배님께서 2피치를 등반하고 계셨다. ‘계속등반할래?’하는 선배님의 물음에 그만 하강하겠다고 말씀 드리고 1피치 지점에서 하강을 했고, 준상선배님께서는 내려오신 길을 다시 올라 퀵도로우와 슬링을 회수한후 한선배님 등반을 도와 한선배님 하강후 등반을 마무리 하셨다. 이렇게 우리가 표범길 등반을 마친 시간이 오후 2시였다. 박쥐를 등반하려고 했지만 대기 등반자들도 많고 해서 야영장으로 내려 가기로 결정했다.
야영장에 도착해서 간단히 점심식사를 한후 14시쯤 아래에 내려가 슬랩등반연습을 하고 오늘 등반을 마치기로 했다. 김치 볶음밥, 인절미, 오징어불고기, 야채등이 즐비했지만 왠지 식욕이 없었다. 완전히 의욕상실 그 자체였다. 점심식사를 끝낸후 합승선배님께서는 준상이 선배님에게 암벽화와 자일을 매고 따라 오라고 하시고는 등반연습을 하려 구조대근처로 향하셨다. 전명준, 이택수회원도 함께 갔지만 난 그냥 쉬고 싶어 야영장에 남아 있기로 했다.
15시쯤에 야영지로 돌아 오신다던 팀들이 16시가 다 되어 야영지로 돌아왔다. 합승선배님께서는 ‘선배 체면 세우고 왔다’ 하시면서 자랑스러워 하셨고, 다른 회원님들은 많이 힘들어 보였다. 과연 어떤 코스였길래. 16시 20분쯤 준상선배님과 전명준회원님이 먼저 내려가 슬랩등반 준비를 하시고 나머지 회원들은 30분쯤에 야영지를 떠나 내려왔다.
등반장소에 도착했을 때 벌써 준상선배님께서 톱로핑으로 등반연습을 할 수 있도록 줄을 미리 설치해 놓으신 상태였다. 한선배님, 전명준,이택수회원, 나 이렇게 돌아가면서 각자 2번씩 슬랩등반 연습을 했다. 자일을 사리고 배낭을 다시 정리한후 하산하기 시작한 시간이 오후 18시가 조금 지나서였다.
산을 내려와 한선배님께서 오늘 수고한 기념으로 감자탕을 사 주신다고 해서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감자탕을 먹으면서 ‘다시 표범길에 도전해 3피치까지 오르리라’는 말을 한선배님이 하셨다. 그말에 덩달아 ‘저도 다음에는 3피치까지 올를수 있을것 같아요.’하고 말하자 ‘그럼 다음 주에는 다시 표범길 가야겠네’하면서 합승선배님 말씀하셨다. 정말 다음에 표범길을 오르면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크크크) 맛있는 감자탕을 먹고 난후 21시가 조금 넘어 오늘 등반을 마감하고 각자 집으로 향하기 위해 버스 또는 전철에 몸을 실었다.
1999년 8월 14일 - 15일 도봉산 선인봉
목요집회에서 이번 주 등반지를 인수봉으로 결정하고 토요일 휴무인 회원들이 많아 토요일 오후 3시에 만나서 인수봉을 오르기로 했지만 이번 등반에 참석하시기로 하신 선배님들께서 갑자기 일이 생기는 바람에 인수봉에서 선인봉으로 등반계획이 변경되었다. 다른 분들은 연락이 되는데, 신입회원 고정숙회원에게 연락을 취해보지만 연락이 안된다. 벌써 약속장소로 출발했는지 아무리 집으로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았다. 할수 없이 고정숙씨 쪽에서 먼저 연락 오기만을 기다리기로 했다.
토요일 오후 3시 30분 재석선배님으로 부터 전화가 왔다. 어떻게 된거냐고. 고정숙씨에게 연락을 취해야 된다는 생각에 재석선배님께 연락하는걸 깜빡했다. 엄완용선배님에게서 핼맷을 받기 위해 오후에 약속장소로 나오기로 한 재석선배님을 깜빡한 것이였다. 약속장소에 나왔는데 고정숙씨랑 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재석선배님께 앞뒤사정을 이야기 하고, 고정숙씨는 할머니집에서 21시에 만나기로 했다.
도봉산 입구에 도착해 야영허가를 받고 20:50분에 할머니집에 도착했지만 일행들은 아무도 없었다. 친구랑 같이 할머니집에 앉아 시원한 맥주로 갈증을 해소하고 내일 등반시 먹을 간식거리를 보충하고 일행들이 오기만 기다렸다. 21시가 다되어 합승선배님으로부터 조금 늦는다는 연락이 있었고, 신입회원인 고정숙씨가 도착했는지 물었지만 그때까지 도착하지 않았다. 또 조금 지나자 할머니집 아주머니가 ‘청악에서 오신분 전화 받으세요’라는 소리에 뛰어가 받은 전화의 주인공은 재석선배님이다. 22시쯤엔 도착해서 올라갈 것 같다고.
21:25분 "삐삐” 하는 휴대폰 소리에 휴대폰을 켜보니 8:52분에 고정숙씨가 넣은 음성메시지가 남겨져 있었다. 사정이 있어 등반에 참석못한다는 내용이었다.(이번 등반은 왜 이리 시작부터 꼬이는지) 다시 합승선배님에게 전화하여 상황을 이야기 하고 친구랑 둘이서 먼저 출발하기로 결정. 제2휴식처에서 선배님들이랑 합류하기로 하고 친구랑 둘이서 야영지로 향했다.(21:30)
야간산행은 초행인 친구랑 랜턴도 없이 깜깜한 등산로를 하늘에 떠 있는 초생달 하나만을 의지하고 산을 오른다고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었지만, 어느새 익숙해진 등산로와 초행 치고는 산을 잘 오르는 친구 또한 나의 걱정을 덜어 주었다. 도봉산장아래에서 첫 휴식을 가졌다. ‘힘은 들지만 흔건히 젖어오는 땀방울들을 보니 기분이 좋다’고 동행한 친구가 말했다. 나 또한 ‘그렇다고...’ 20분정도의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야영지를 향해 출발하였다.
22시 40분 드디어 제 2휴식처에 도착, 생각보다 시간이 꽤 많이 소요될 줄 알았는데 빨리 온 것 같다.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친구랑 같이 이런 저런 이야기 한바탕 웃고 있으니, 올라와서 휴식을 취하시는 분이 어느 산악회냐고 물으신다. ‘청악산악회예요’ 라고 대답하니, ‘청악이 예전에는 조용했었는데...’하신다. 그 말씀에 우리가 너무 떠들었나 하는 생각에 둘다 갑자기 조용해 진다. 아저씨가 무안하신지 자기는 산악구조대 소속이며 재미있는 산행하길 바란다는 말씀을 하시고는 다시 등반길에 오르신다. 23:30분 선배님이 도착할 시간이 된 것 같은데,.. 아직 소식이 없다.
23:40분이 조금 지나 선배님들이 도착하셨고, 발걸음을 재촉하느라 많이들 고생하셨는 것 같다. 4번 야영장으로 허가를 받았으나 칼야영장으로 가서 야영하기로 하고 칼야영장으로 향했다. 몇차례의 태풍이 자나가고 난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서 그런지 야영장이 완전히 폐허였다. 대충정리한후 배낭을 풀고 매트리스에 둘러 않아 가져온 야식을 먹으면서 하계 설악등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고, 한계남선배님께서 비밀로 하시라는 비밀(?) 또한 그 내막을 들을 수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후 자정이 훨씬 넘은 시간에야 잠을 청할수 있었다.
일요일 아침 ‘경희야! 9시다.’라는 소리에 깜작 놀라 잠을 깼다. 이론!!!!! 산에 와서 아침해가 중천에 뜰때까지 잠을 자다니,(이론~~~) 빨리 쌀을 씻어 밥을 지어놓고 이 시간이면 준상선배님이 올라 오실 시간인데, 하면서 재석선배님이 4번 야영장으로 준상선배님 마중을 나갔다.(메모함에 4야영장에서 야영한다는 메모를 남겨 놓았으므로) 아침을 준비하면서 정말 9시가 넘었을까 하는 생각에 시계를 들어다보니 7시 15분이다. (그럼 그렇지 아무리 그래도 9시까지 잠을 잤을까)
아침을 먹으면서 합승선배님께서 북분리해수욕장에 계신 선배님들에게 전화를 하신다. 돌판에 구워먹는 고기 냄새가 그쪽까지 나지 않느냐는 농담도 하시면서 그쪽 선배님들의 안부도 물으시곤 하신다. 통화도중 선배님이 전화를 나에게 건내 주신다. 윤용문선배님이었는데 이런 저런 당부의 말씀과 함께 오늘 등반도 재미있게 하라고 하신다.
아침식사를 끝낸후 9시쯤 준상선배님이 올라오셨다. 휴식을 취한후 재석선배님은 다친 발 때문에 캠프에 남으시고, 이합승선배님, 준상선배님, 그리고 오늘의 객식구인 나의 친구랑 같이 오늘 등반길인 경송A길로 향한다.(10:00)
암벽등반이 처음 접하는 친구를 위해서 이합승선배님이 경송A길 아래에서 등반교육을 해 주셨다. 친구로 인해 선배님들의 등반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래도 해보고 싶다는 친구를 거절하지는 못했는데, 선배님이 잘 이해해주시고 거기에다 교육까지 해주시니 무척 고마웠다. 친구가 잘 할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막상 바위에 붙여 놓으니 생각보다 잘했다.
드디어 준상선배님의 선등이 시작되었고, 그다음 친구랑 합승선배님께서 연등으로 등반을 시작하셨다. 겁이 많은 친구라 소리를 꽤꽤 지르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고 등반도중 무서워 계속 ‘하강! 하강!’을 외치는 친구 모습에 한바탕 웃음을 터트리곤 한다.
아래에서 계속 같이 지켜보던 타 산악회팀중 한 명이 어느 산악회인지 물어 보신다. 청악이라고 대답을 하고, 조금 지나자 물이 있으면 좀 나누어 주었으면 하길래 한번 드렸는데, 얼마 지나자 또 달라고 하신다. (우리도 물은 부족할 것 같은데, 그렇다고 거절할수도 없고 한번도 아닌 두번씩이나, 괜히 얄미운 것 있죠. 그래도 어떻해요 같이 산을 사랑하는 사람끼리 나누어 먹어야죠. 그래서 또 드렸어요.) 등반을 지켜보시다가 경송길 옆 진달래길을 한번 가봤냐면서 가보지 않았다고 하자, 그길은 자기네 산악회에서 개척한 길이며 재미있는 길이라고 나중에 시간이 되면 꼭 한번 해보라고 하신다. 난 ‘네’라고 씩씩하게 대답했다. 정말 나중에 기회가 되면 오를 것을 약속하면서.
경송1피치까지 합승선배님이랑 친구가 올랐고, 준상선배님이 다시 2피치를 오르시고, 친구는 1피치에서 하강을 했다. 친구의 하강에 이어 내가 등반을 시작했고, 모두가 2피치까지 등반을 하고 하강했다.
친구는 캠프장으로 내려가기로 하고 우리는 다시 요델길을 등반하기로 했다. 캠프장을 혼자 찾아갈 수 있느냐는 질문에 찾아갈 수 있다고 해서 혼자 보냈는데, 우리가 요델길에 도착해서 휴식을 취한 후 준상선배님이 1피치를 오르을 때 아래에서 ‘경희야’하는 소리가 들리기에 내려다 보니 친구였다. 길을 잃어 버렸다는 것이다.(에고고~~~ 시간이 40분정도 지난 것 같은데, 40분이나 이리저리 헤고 다녔을 친구를 생각하니, 괜히 산에 와서 고생만 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다행히 친구는 요델길 아래로 올라오려다가 하산하는 등산객에게 푸른샘터 위치를 물어 보고 같이 내려 갔고, 우리는 요델 3피치까지 오르고 난뒤 하강하였다. 요델길 1피치를 오르고 나니 힘도 들고 그만 하강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합승선배님의 격려로 3피치까지 오르고 나니 흐뭇하다. 캠프장으로 내려와 9번 야영장에 비치해둔 라면을 찾아와 끊여 먹으면서 오늘 있었던 해프닝들을 이야기 하면서 한바탕 웃곤 한다. 19:00가 다되어 배낭을 꾸려 우리의 안식처인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1999년 10월23일 - 24일 용추계곡산행
23일 저녁, 장준상, 차재석, 전명준, 이동만, 정범진, 이택수 회원들은 10:22분 춘천행기차를 타고 먼저 가평으로 출발하였고 이합승, 김경희,신동은, 김유진은 자정에 종로에서 만나 출발하기로 하였으나 출발시간이 지연되어 새벽 1:30경에 서울을 빠져 나갈 수 있었다.
새벽공기를 맞으며 달리는 차속에서 가을단풍, 선배님들이 이야기하신 거대한 잣나무숲, 매년 산제를 지내는 잣창고가 자리한 곳에 대한 나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었다. 산에 오르기 전부터 벌써 호기심에 잔뜩 들떠 있었다. 가는 도중 김양중선배님과 통화를 하였고, 가평역에 이미 도착해 있는 회원들과도 통화를 하였다. 쌀쌀한 새벽공기에 장시간 있어서 모두들 추위에 떨고 있을텐데, 감기나 걸리지 않을까 걱정이다.
서울을 빠져 나와 가평으로 도착할수록 새벽안개는 짙어 졌다. 새벽 3시 가평역에 도착. 미리 와 기다리던 회원들이 나와 우리를 반겼다. 모두들 피곤한 것 같다. 긴 시간을 밖에서 보냈으니, 빨리 자리를 정리한뒤 용추계곡으로 차를 돌린다. 가평역에서 택시를 타고 들어가려고 했지만 이른 새벽이라 택시 잡기가 힘들었다. 할수 없이 동은언니 차로 두번에 걸쳐 왕복을 한후 모두들 용추계곡 아래에 도착할수 있었다. 서울 하늘에서는 한 두 개의 별을 바라보는게 고작이었는데, 여기서는 수많은 별들의 투명하고 맑은 별빛을 볼수 있었다. 둥근 보름달 덕택에 랜턴 없이도 산행이 가능할 것 같았다.
새벽 3시 30분 드디어 우리의 산행이 시작되었다. 이제부터 야간산행이다. 용추계곡 입구에서 산을 올라 등산로를 찾으려고 했지만 어둠속인데다가 산아래 전원주택를 짓기 위해 산아래를 모두 깎아 놓아서 진입로를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어디가 어디인지 정말 분간할 수 없었다. 길도 없는 풀숲사이를 헤쳐 등산로을 찾으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다시 계곡으로 내려와 계곡을 따라 오르기 시작했다.
계곡사방으로 흩어져 있는 크고 작은 바위들이 달빛을 받아서 빛을 반사시키고 있었고 시원하게 흘러 내리는 물소리를 들으면서 우리의 산행은 계속되었다. 계곡은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잠도 못자고 계속되는 산행에 모두들 지쳐는지 가끔씩 잠타령도 들러오고 아침을 해 먹고 가자는 의견도 쏟아져 나왔지만 우리의 산행은 계속되었다. 가야될 길이 아직도 멀기에. 계곡을 건너다가 물속으로 빠지는 경우도 있었지만 다행히도 크게 젖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새로 산 등산화가 좀 미끄러운 편이었지만 바위에서 이렇게까지 쥐약인줄은 몰랐다. 두번 정도 빠지고 나니 그 다음부터 계곡을 건너 바위를 디딜 때 마다 초긴장상태에서 계곡을 건너야 했다. 나외에도 몇몇 회원들이 빠졌지만 큰사고 없이 모두들 무사히 계곡을 따라 올랐다. 꽤 깊이 들어 왔는데도 도중도중에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막사가 눈에 띠었고 도로 또한 차가 다닐수 있을 정도로 넓게 자리하고 있었다.
새벽 5시 30분이 지나자 새벽이 점차 밝아 오고 있었다. 모두들 조금 쉬었다 가기로 하고 바위에 걸터 앉아 말자 얼마나 더 가야 되는가? 하면서 등반대장님에게 질문을 던진다. 아직 절반도 오르지 못했다고 한다. 아이고, 언제쯤 도착해서 내려올까 하는 생각밖에 없다. 오늘안으로 갔다가 내려와 설땅을 디딜 수는 있을까?
점점 날이 밝아오면서 산에 대한 색깔이 선명해지면서 계곡을 따라 아록다록 하게 물들어 있는 단풍과 떨어져 있는 낙엽들을 보면서 모두들 감탄사를 자아낸다. 막 떠오른 아침햇살과 조화를 이룬 단풍들을 보면서 그동안의 피로를 잊은 듯 이번산행에 동참하기를 잘했다고 이야기한다. 산을 찾아 다니면서 많은 단풍들을 보았지만 매번 산에 오를 때마다 다르듯이 오늘은 유난히 더 아름다워 보였다. 이번 산행에 같이 오기로 한 정숙이도 이 아름다운 자연을 같이 볼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아름다운 자연의 조화를 카메라에 담고 싶었지만 카메라를 가져 오기로 한 회원이 깜박하고 잊고 오는 바람에 그냥 가슴속에만 간직해야 했다.
약간의 평지가 나오자 모두들 여기서 한숨 자고 아침을 해먹고 다시 출발하기로 하고 배낭을 내려 놓는다.(7:00) 모두들 배가 고픈지 간식을 먹고 자자고 하지만 난 피곤함에 그냥 침낭속으로 들어갔다. 아침시간이라 잠이 잘 올까 하는 걱정을 하였지만 그런 걱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바로 꼴아 떨어진다. 도중에 깨워 보니 모두들 곤히들 자고있다. 많이들 피곤했는 것 같다.
2시간 정도 자고 9시에 일어나기로 했는데,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다시 누웠다가 10분정도 지났을까, 시간이 얼마나 되었나 일어나 시계를 보니 정각 9시다. 내가 일어나는 인기척에 옆에 있던 동은언니가 일어나고 유진언니도 일어난다. 나 때문에 괜히 잠을 깬 것 같다. 우리의 부시럭 거리는 소리에 이택수회원이 일어나서 아침준비를 도와주신다. 좀더 자고 싶을텐데 일어나 아침준비를 도와 주시니 무척이나 고맙다. 맑은 계곡물에 세수를 하고 나니 개운하다.
오늘 아침 메뉴는 원종민선배님이 말씀하신 부산오뎅으로 오뎅국을 끊이고 밑반찬으로 풋고추, 지포조림, 김, 마늘장아찌, 삼겹살로 푸짐한 아침식사를 준비했다. 준비완료!! 자고 있던 회원들을 깨워 맛있는 아침을 먹고 디저트로 숭늉까지 끊어 먹고 다시 발걸음을 재촉해야 했다.
어제, 아니지 오늘 새벽이구나. 오늘 새벽의 피로탓인지 첫 내딛는 걸음은 몹시도 힘이 들었는데, 차츰지나고 나니 몸도 풀리고 괜찮아졌다. 무엇보다도 계곡과 함께 어우러져 있는 산세의 아름다움이 우리의 피곤을 싹 가시게 했다. 이리저리 우거진 단풍을 바라보면서 또다른 목적지를 향해 우린 나아갔다. 등산로가 가파르지 않아 힘은 들지 않지만 장시간 계속되는 산행에 모두들 지쳐 보인다. 이 높은 곳까지 차가 오를수 있을 정도로 길이 잘 닦여져 있었다. 아마 잣수확기를 대비해서 만들어진 길같아 보였다. 가끔 가다가 억새풀도 보이고 이름모를 들꽃들도 보이지만 내가 이름을 알고 있는 것은 들국화 뿐이다.
12시가 조금 지나 산악회에서 산제를 지냈다는 장소에 도착, 언덕 크기만한 거대한 잣무덤을 기대하고 왔는데, 의외로 작았다. 화려하지는 않더라도 시골의 전원적인 분위기를 느낄수 있는 그런 장소이길 바랬는데, 여기저기 사람들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긴 하지만 왠지 삭막함이 느껴졌다. 너무 많은 기대를 했었나? 잣수확기때 주변 마을사람들이 이곳까지 올라와 며칠동안 머물면서 잣을 수확하고 내려간다고 한다. 방문을 열어보니 생각보다 잘되어 있었고 군불까지 땔수 있게 되어 있다고 한다.
30분정도 휴식을 취한후 각자의 물통에 물을 채워 산행을 계속한다. 여기서부터는 능선을 타고 계속가야 하기에 물이 없다고 한다. 도중 도중 한두명의 등산객을 만날법도 한데, 개미한마리 지나가지 않을 정도로 고요하고 등산객이라고는 우리 일행이 전부이다.
전패고개를 지나 억새풀이 우거진 곳을 지나 잣나무숲을 거쳐 능선에 오른다. 이제 매봉까지 가야된다. 능선을 타고 가는 도중 두분의 아저씨들이 휴식을 취하고 계신 모습이 보인다. 산에 와 처음 보는 등산객들이다. ‘수고하십니다’라는 인사를 건네고 싶어지만 두분 모두 잠을 청하고 계시길래 그냥 지나쳐 왔다. 산의 작은 봉우리를 내리락 오리락 하면서 드디어 매봉(929m)에 도착. 모두들 배낭을 등지고 눕는다. 힘들다. 동은언니는 장시간 운전에다가 눈까지 아파서 더욱 더 힘든가 보다. 간식을 먹으라고 건네지만 모든 것이 귀찮은 것 같다. 그냥 고개숙여 휴식을 취한다. 앞으로 내려가야 될 일이 걱정이다.
충분한 휴식을 취한후 다시 걸음을 재촉한다. 능선을 타고 조금 지나가니 헬기장이 보였고 조금 지나다 보니 관제탑 같은 것이 설치되어 있었다. 여기 갈림길에서 밑으로 내려가야 되나 계속 능선을 타고 가야 되나를 결정해야 했는데, 능선을 계속 타고 가야 된다는 결정하고 계속 능선을 따라 걸었다. 도중에 중년 부부의 등산객을 만난다. 매봉으로 가는 길인 것 같다. 함께 등산을 온 두분의 모습이 참 아름답게 보인다.
계속되는 능선을 따라 한참후에 우리가 도착한 곳은 깃대봉(911m). 에고고... 길을 잘못 선택한 것이다. 계획대로라면 용추계곡 방면으로 내려 가고 있어야 하는데, 조금전 갈림길에서 아래로 바로 내려 가야 했는데, 길을 잘못 들어선 거다. 그렇다고 지금와서 되돌아 갈수도 없는 노릇이다. 깃대봉 정상은 매봉보다는 확트여 있어서 단풍이 들기 시작한 능선이 아래에 보였고 주능선도 환하게 보였다. 여기서 매봉산, 화악산, 응봉이 다 보인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길게 뻗어있는 능선은 어디가 어디인지 구분이 안된다. 다음부터는 산에 오르기전 사전 지식을 좀 습득하고 와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휴식을 취한후 우린 능선을 타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내려가는 등산로가 가파른데다가 낙엽들이 떨여져 있어 미끄럽기 까지 하다. 자연히 내려가는 다리에 힘이 들어가고 장시간 계속되는 산행으로 다리에 무리가 오는 것 같다. 예전에는 내려막길을 만나면 그냥 뛰어 내려가고 했었는데, 이번은 아닌 것 같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고 차근차근 내려가야 다리에 무리가 덜 갈 것 같아서 속도를 조금 줄여 내려간다. 그렇게 한참을 능선을 내려가다가 거대한 잣나무숲이 나온다. 이런 산속에서 질서정연하게 서있는 거대한 잣나무을 보니 신기하다. 그런 기분도 잠깐, 잣나무숲속 급경사 길은 길게 이어져 있었고 몇 년동안의 잣나무잎의 누적으로 인해 내려가는 길은 푸석푸석 하면서 쭉쭉 미끌어 지기가 일수이고 언제쯤 이길이 끝날까, 내려가도 내려가도 정말 끝이 없었다. 날은 점점 저물어 오는데...
먼저 내려간 준상선배님이 이제는 길이 보이다면서 다왔다고 이야기한다. 모두들 그소리가 반가운 것 같다. 잣나무숲을 내려와서 평지에 내려서서 관목숲과 마른 덩굴속을 빠져 나오는데 이리저리 엉클어진 덩굴 때문에 꼭 타잔에 나오는 밀림지역에 온 것 같다. 계곡으로 내려와서 일단 차가운 계곡물에 세수도 하고 발을 담그니 피로가 싹 가신다. 라면을 끓여 먹고 삼겹살에 소주 한잔씩 마시고 나서 점점 어두워져 오는 길을 재촉한다. 오늘 안에 정말 서울에 도착할수 있을까 하면서. 쭉 이어진 계곡이 험난하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차가 다닐수 있을 정도로 길을 평탄했다. 조금만 가면 끝일 것 같은 계곡이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합승선배님이랑 재석선배님, 동은언니, 나 이렇게 선두에서 가다가 동은언니랑 나랑은 뒤로 쳐저 걸어간다. 두분 선배님은 너무 빨리 가시는 것 같다. 아직 우리 뒤에도 회원들이 저만큼 뒤에서 따라 오고 있는데.
날은 어두워졌지만 달빛 때문에 램프을 밝히지 않아도 괜찮았다. 동은언니랑 오늘의 산행에 대해이야기하고 또 각자 산에 대한 나의 생각, 산악회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이야기 하면서 오는 사이 하나둘 인가가 보이기 시작하고 불빛이 보였지만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고 공허속에 개짖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이런 산속에 들어와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이런 산속에 집을 짓고 살아가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세상의 문명을 등진채, 무엇이 여기 사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묶고 있을까 하는... 한편으로는 세상속에 찌들어 살아가는 도심의 사람들보다 자연과 함께 어울려 사는 여기 사람들이 부럽다.
마을을 지나다보니 왼쪽편에 공장 같은 건물이 자리잡고 있다. 아마 현재는 버려진 건물 같아 보였는데, 달빛아래에 비친 건물이 꼭 드라큐라성 같다면서 동은 언니가 이야기한다. 긴시간을 걸어 나온 것 같은데. 아직 계곡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한참을 내려가고 있는데, 뒤에서 차불빛이 비쳐온다. 트럭이면 부탁해서 모두 같이 타고 나가면 참 편할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걸어가고 있는데, 불빛이 승용차다. 동은언니랑 앞서 걸어가고 있는데 뒤에서 빨리와서 차를 타고 나가라고 한다. 마음씨 좋은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태워주시겠다고 하셨다. 여자회원들만 차태워 보내고 나머지 회원들은 걸어 나오겠단다. 모두들 지쳐 있을텐데, 미안하다. 배낭이라도 가져가겠다고 해도 그냥 가란다. 우릴 먼저 생각해주는 회원님들이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미안한 생각이 든다.
승용차를 타고 보니 안면이 있는 분들이다. 매봉에서 깃대봉을 갈 때 만났던 중년부부들이다. 두분은 지도를 보면서 가보지 않은 산들을 주말마다 계속 찾아 다니고 있다고 하신다. ‘왜 산을 찾는냐?’는 우리의 질문에 ‘그냥 건강하려고’하면서 말씀하신다. 걸어서 30분정도만 나오면 된다던 길이 아마 1시간은 족히 걸릴 것 같다. 뒤에 남아 걸어오는 회원들이 걱정이다. 가평읍에 도착해서 우리를 내려주시는 두분에게 거듭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우린 내렸다. 정말 고마운 분들이다.
등반대장님과 통화하여 용추계곡 입구에 세워둔 동은언니 차를 몰고 와서 가평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택시를 타고 처음 출발지점인 용추계곡으로 향했다. 새벽에 왔을땐 불빛이라고는 없었는데 지금은 조그만 마을에 불빛이 환하게 밝혀져 있어 생소한 길처럼 느껴졌다.
가평역에 도착. 벌써 19시 30분이 지나고 20시가 다되어 가고 있었다. 아마 전회원이 다 도착하려면 21시나 되어야 될 것 같았다. 자판기 커피를 뽑아 차안에서 셋이서 이런저런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우면서 한참 이야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창문을 두드렸다. 합승선배님이었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하셨다. 도중에 내려오다가 차를 얻어 타고 왔다고 하신다.
기차를 타고 갈 사람, 동은언니 차로 갈사람이 결정되고 나서 목요일 집회때 만날 것을 약속하면서 헤어졌다. 다른 분들은 괜찮지만 장시간 운전을 하고 갈 동은언니가 걱정되었다. 차도 많이 막힐텐데, 대신 운전대를 잡을 사람만 있어도 괜찮을텐데, 그럴 사람이 없다.
청량리역을 지나고 있을 때 합승선배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제 성북역을 지나고 있다고, 이시간이면 벌써 집에 도착했을 시간인데. 물어보니 기차표가 없어 조금 늦게 기차를 타고 왔다고 하신다. 모두들 괜찮냐는 질문에 괜찮다고 하고 전화를 끊는다. 종로3가에 도착에서 동은언니는 인천으로 향하고 지하철을 타기 위해 가야 되는데 난 도저히 지하철을 타고 갈 힘이 없다. 나머지 회원들에게 인사를 한후 도저히 안되어 난 택시를 타고 바로 집으로 향한다. 아마 오늘 너무 무리를 한 것 같다. 하루 24시간이 무척이나 길게 느껴지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