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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도 픽켈을 잡을 시간이 있었다. 김종선 지난해인 1989년 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들뜨기 시작했고, 동계등반의 목표를 설정하여야 했다. 매일같이 만나는 회원들은 "이번 동계에는 xxx를 토왕에 올려야 겠죠?..." 이번에 yyy와 zzz는 대승에 올려야겠다" 등등의 이야기중에 "이번에 모두 토왕에 붙어 보죠?"하는 의견에 손가락을 꼽아 보며, 이미 토왕을 등반했던 회원, 앞으로 가능성잇는 회원등을 선정하니, 10여명, 신입회원만 열심히 해 준다면, 5-6개조는 무난하리라는 계산이 나온다. 이렇게 시작된 이야기가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의 목표로 자리하고 있었고, 월간지 '사람과 산'의 기자 탐방시 이 목표가 지상에 발표됨으로써, 우리는 스스로의 올가미에 조여 들게 되었다. 회원들 개인의 시간과 군입대한 회원들을 감안하면, 등반목표 달성은 훈련도 훈련이지만 어떻게 동시에 동원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제일 큰 문제였다. 안되면 4개조, 그것도 안되면 3개조만이라도 등반하려는 우리의 계획은 이유 없이 5개조 이상이어야만 했다. 5개조를 4개조로 변경했다 해도, 부끄러울 것 없고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은 절대로 아니지만, 말이 앞서는 팀이라는 평을 받고 싶지는 않다. 어째든 최대의 노력을 해야 할 것이고 그 결과가 어떻하던가 우리는 스스로 만족하기로 했다. 다시 한번 손을 꼽아 본다. 운회, 금석, 합승이는 전천후 선등자이고, 석근, 문기와 고참중에 명식, 종민이가 선등 가능하니, 훈련만 조금하면 선등자 선정에 아무런 무리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5개조가 등반을 마치려면, 등반시간을 최소한으로 해야 한다. 용문, 혜영 그리고 의욕을 보이는 신입회원 완용, 인호, 수현 이중에서 후등자를 선택하고 조편성만 잘 하면 문제가 없다. 동계시즌이 열리자 제일 먼저 문기가 자신의 목표인 토왕에 픽켈을 던지고, 석근이는 동계 등산학교 수료후 선등자의 능력으로 탈바꿈 하겠다는의욕을 보이고, 명식이도 종민이도 서로 선등을 하겠다 한다. 결구 우리는 후등자 선정에 고민을 해야 했고, 훈련결과에 의하여 등반 직전 등반대장이 대원을 선정하고, 조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하였고, 훈련결과가 좋을 때에는 선등경험이 없는 대원을 우선적으로 선등에 넣고, 선등경험이 있는 대원이 후등자가 되자는 무언의 약속도 있었다. 모든 회원이 휴일은 물론 월차, 년차휴가 한 시즌을 몽땅 털어 넣는다. 이제 구곡은 장터와 같다. 한순간에 33동이 자일이 걸려 있고, 상단 하단에 대기중인 인원을 빼고도 보통 20명 이상이 항시 등반을 하고 있다. 낙빙의 위험도 크다. 시간이 자유스러운 회원들은 평일에 훈련을 하고, 주말에만 시간이 가능한 회원은 주말에 집중적으로 훈련을 쌓는다. 이번 겨울에 나에게 주어진 임무는 한가지, 회원들의 등반기술향상에 뒷바라지한다는 목적으로 목소리만 높히면 되는 것이다. 각 회원들의 등반능력 및 훈련가능 시간을 계속 체크하고 조정하는 과정에서 회원들의 다른 등반계획도 무시하고, 여유있는 회원들의 희생도 요구하며, 하루, 하루를 보냈고, 모든 회원들은 우리의 이런 뜻에 따랐다. 등반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등반조 편성에 신경을 쓰며, 조별 등반순서, 방법등을 훈련경과에 따라 변경하며 적절히 대처했다. 책임감이 큰 등반대장인 운회를 비롯한 선발대원들은 등반 전날엔 소화도 안되고 잠도 못 이루었다고 한다. 결국 2월 11일 우리는 5개조 10명의 동시등반을 마쳤고. 모든 회원들이 서울로 떠나 가고, 용문, 금석, 운회, 문기, 혜영, 미숙과 함께 콘도에서 장비를 정리하며 휴식을 취한다. 아직도 만족하지 못한 회원들은 휴식도 마다하고, 소토왕폭을 등반한 후 장수대로 옮긴다. 비가 내리는 날씨이다. 실폭이 통통하게 보이고, 만년 세컨드 체질이라는 용문이는 선등의 탈바꿈을 실폭에서 갖겠다 하고 나에게도 같이 등반할 것을 권한다. 올해는 그냥 지나치려나 했는데... 결국 용문이의 자일에 매달려 실폭을 오른다. 내게도 픽켈을 잡을 시간이 비로소 주어진 것이다. 장수대서 소승폭 간다는 희윤이 소식을 접하고, 소승폭에 가서 희윤이와 용희를 태우고 내려온다. 한계리에서 민박을 하고 내일 우리가 소승폭을 등반하고 구곡으로 캠프를 옮기기로 한다. 민박집에서 희윤이가 일행까지 8명의 저녁 식사를 하고, 오늘이 운회의 생일이라 용문이가 양양에서 급히 구입한 케익을 모래가 생일인 희윤이와 같이 촛불을 끄고 조촐한 생일파티를 갖는다. 이제 내일이면 모두 구곡으로 갈 것이고, 나는 집으로 갈 것이다. 승용차에 3명, 버스에 5명 무전기로 교신하며, 춘천에 도착, 한일막국수집에서 합류한다. 구곡민박집에 장비를 내려 놓고, 강촌에 2회 왕복하여 모든 인원과 장비를 옮기고, 혜영이와 구곡을 떠나 비로소 서울로 향한다. 피곤하여 부르튼 입술이 걱정된다... 1990년 2월 15일 토왕 5개조 등반을 마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