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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11장5-13절 친밀감의 기도 강청기도 251025 원주희목사
구술원고 전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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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략적인 요약
I. 기도의 배경: 아버지로서의 하나님 인식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달라는 요청을 받으셨을 때 주기도문을 전하셨습니다. 주기도문은 다른 종교의 기도와 구별되는 여러 특징을 가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호칭한다는 점입니다.
1. 최고신 개념의 비교
다른 종교에서의 최고신(예: 옥황상제, 상제, 하느님)은 주로 심판의 주관자 개념으로 인식되었습니다. 한국의 "하나님/하느님" 호칭 역시 고대 상제 신앙에서 유래하였으며, 기독교 선교 시 그 지역의 최고신 개념을 차용하여 복음을 전하게 된 결과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최고신들은 주로 사후세계에서 심판하는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2. 기독교의 아버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하나님은 이와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시며 기도의 첫마디를 헬라어로 **"파테르(Pater), 아버지여"**라고 시작하셨습니다.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은 불경으로 여겨졌고, 심지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죄목 중 하나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 곧 친아버지라 칭했다는 점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성령을 부어 주셨을 때, 제자들은 영혼 속에서 성령의 역사로 비로소 **"아버지"**라고 감격적으로 고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예수께서 가르치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아버지처럼 다가오시는 분이며, 심지어 아들을 내어주신 좋으신 하나님이시라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 고백입니다. 또한 기독교 신앙은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라는 죄 사함을 말한다는 점에서 타 종교와 구별됩니다.
II. 친밀감의 기도와 강청 기도 (눅 11:5-8)
예수께서는 밤중에 벗에게 가서 떡 세 덩이를 꾸어 달라고 간청하는 비유를 들어 기도의 정신을 설명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주기도문 이후, 기도 문장 자체보다 더 중요한 기도의 정신에 대해 덧붙여 말씀하셨는데, 그것이 바로 강청(強請) 기도입니다.
1. 벗됨을 넘어선 강청기도의 눙력
"또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꾸어 달라. 내 벗이 여행 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 하면 그가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실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 하겠느냐?" (눅 11:5-7)
인간은 벗의 긴급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이미 문이 닫혔고 침실에 누웠다는 번거로움 때문에 거절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밤늦은 요청, 혹은 갚지 못할까 염려되는 요청을 거절하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그 벗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강청함으로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 (눅 11:8)고 선언하셨습니다. 이는 기도의 중요한 두 가지 요소를 강조합니다.
벗됨(친밀감): 우리는 하나님과 친밀한 자녀이자 벗의 관계입니다. 미국 사람들이 **“아빠, 이것 좀 주세요”**라고 하듯이, 친밀감을 가지고 기도하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강청함(간절함): 하나님은 우리의 포기하지 않는 간절한 태도를 보시고 응답하십니다.
2. 답답함의 시간과 포기하지 않는 기도
성도가 기도의 세계에 들어섰을 때, 마치 **“문이 닫혔고 침실에 누웠다”**는 듯한 답답함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기도가 상달되는지 알 수 없고, 상황은 깜깜하기만 합니다. 그때 우리는 **“하늘문이 닫힌 게 아니라 내 마음문이 닫힌 것”**일 수 있음을 깨닫고 포기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 답답함의 시간은 내 안의 불순물을 정화하는 시간이 될 수 있으며, 이 임계치를 지나면 기도는 가속도가 붙어 응답으로 나아갑니다. 따라서 주님은 포기하지 않고 강청하면서 구해야 함을 가장 중요한 기도의 팁으로 주셨습니다.
III. 뱀과 전갈을 뛰어넘어 생선과 알을 취하는 영적 전투의 기도 (눅 11:9-13)
예수님은 강청함의 원리를 구함, 찾음, 두드림의 반복 행위를 통해 다시 한번 강조하십니다.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눅 11:9-10)
1. 기도 응답 과정에서 나타나는 뱀과 전갈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눅 11:11-12)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악한 것을 주실 리 없음을 확신시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할 때 응답을 구하는데 **'뱀'**이나 **'전갈'**처럼 보이는 장애물과 고난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라, 기도의 응답을 막고 있는 사단의 역사입니다. 다니엘이 나라의 회복을 위해 기도했을 때 사단이 그의 기도를 막고 그를 어려움(뱀)에 던져 넣은 것처럼, 성도는 두려워 뒤로 물러나지 않고 이 영적 전투를 뚫고 나아가야 합니다.
**"못 먹어도 고"**의 자세로 두려움을 포기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 전투를 이겨냈을 때, 다니엘의 중보기도는 예레미야의 예언 성취와 합쳐져 이스라엘 백성이 고국으로 돌아가는 놀라운 열매를 맺었습니다. 기도의 열매를 보기 원한다면 영적 전투를 싸워 이겨낼 줄 아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2. 가장 좋은 선물: 성령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눅 11:13)
하나님께서는 구하는 자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데, 그것은 바로 성령이십니다. 우리가 원했던 생선(기도 응답)과 알(기도 응답)을 얻기 위해서는 그 과정을 뚫고 나갈 성령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뱀과 전갈이 나오는 고비를 뚫고 나갔을 때, 주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고, 성령과 함께 우리가 원했던 기도 응답이라는 놀라운 열매들을 받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믿음의 세대들은 기도할 때가 있고 기도 열매 거둘 때가 있음을 믿고 이 축복의 순환 역사를 가정과 교회에 풀어내야 합니다.
구술원고 전문
I. 기도 강론의 배경: 아버지로서의 하나님 인식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달라는 요청을 받으셨을 때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주기도문은 세상 사람들의 기도나 다른 종교의 기도와 구별되는 여러 특징을 지니고 있는데, 그중에 한 가지는 하나님을 향하여 **"아버지"**라고 호칭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종교에서는 최고신 개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옥황상제(玉皇上帝), 중국의 상제(上帝)와 같이 하늘에 가장 높은 분을 일컫습니다. 우리 고대인들은 하나님, 하느님 등의 용어를 사용하였는데, 하느님이라는 말은 하늘님에서 다왔으며 상제(上帝)를 의미합니다. 이 하늘님이 평양 사투리로 가면 하날님입니다. 그래서 평양 사람들은 **"하날님, 하날님, 하날님 천재 비나이다"**라고 하였고, 다른 지방에서는 하늘님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ㄹ이 탈락하면서 하느님이 되고 하나님이 되었습니다. 기독교가 선교지마다 그 지역에 있는 최고신 개념을 차용하여 복음을 전하였는데, 신교는 특별히 평양에서 부흥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라는 호칭을 우리 기도의 대상, 예배의 대상으로 채택하며 **"이분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시다"**라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하나님 신앙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종교에도 최고신 개념들이 있으나, 그 신들은 주로 어떤 신들이냐 하면 심판의 주관자입니다. 옥황상제가 무엇을 합니까? 작두를 대령하라 하여 사람이 죽고 난 뒤 사후세계에서 심판하는 그런 최고신, 그런 존재들입니다.
기도의 대상 아바 아버지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시면서 첫마디가 “파테르(Pater), 아버지여” 이렇게 시작합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기도할 때 아버지라고 호칭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이후 제자들도 아마 처음에는 그러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그리고는 부활하시고는 성령을 그들에게 부어 주시니, 그들의 영혼 속에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였고, 성령 안에서 **"아버지"**라고 고백할 때 여러분은 기도하면서 아버지라고 해 본 적이 있습니까? 그 감정이 어마어마합니다. 아마 그때부터 아버지라는 고백을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전까지는 예수님을 죽인 제목 가운데 하나가 예수님을 자기 친아버지라고 부른다는 제목이 있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호칭하는 것은 굉장한 불경이며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가르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마치 아버지와 같이 다가오신 하나님, 할렐루야, 그런 하나님, 우리에게 아들을 내어주신 그 좋으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이 다른 종교와 구별되는 기독교 신앙 안에서의 기도의 대상인 하나님에 대한 고백입니다.
다른 종교와의 또 다른 점은 기독교 신앙은 바로 죄 사함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어쨌든 그런 주기도문 강의를 쭉 하고 난 뒤에 주님께서 덧붙여서 기도에 대한 얘기를 조금 더 이어 나가고 계십니다. 조금 더 나눠 봅시다. 주님은 강청(强請)하라는 것입니다. 그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시는데, 기도 문장 중에 이 문장도 중요하지만, 기도의 정신도 대단히 중요한데, 그 기도의 정신이 무엇인 줄 아느냐 하면서 강청 기도에 대한 얘기를 하십니다.
II. 친말감의 기도 강청 기도(눅 11:5-8)
“또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꾸어 달라. 내 벗이 여행 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 하면 그가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실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 하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그 벗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강청함으로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 (눅 11:5-8)
또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꾸어 달라. 내 벗이 여행 중에 이 밤중에 왔는데 내가 먹일 것이 없다”**라고 말한다면 꾸어 주겠느냐는 겁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떡 세 덩이를 꾸어 달라고 했는데 밤중입니다. “아,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실에 누웠고, 나 지금 다 벗고 지금 샤워하고 지금 다 잠옷 입고 자고 있는데, 침실에서 일어나서 번거롭게 주방에 가서 떡 준비해 가지고 나한테 줄 수 없다” 그렇게 말할 수 있겠느냐? 반죽 해 가지고 뭔가 준비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해 줄 수 있겠느냐?
어떻습니까? 사람마다 이럴 때 “아, 그런 오버하는 요청도 하면 안 되고 밤늦게 그랬으면 그 있는 사과 하나 먹고 자야지 뭐 그 밤에 뭘 먹는다고” 뭐 그런 분도 계실 테고. 근데 이 대상이 누구여야 된다는 것입니까?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대상이 하나님이라면 어떻게 할 것 같으냐라는 겁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강청하면 거절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밤늦게 떡 세 덩이 빌려 달라 할 정도면 이 사람 굉장히 가난해서 갚을 수도 없을 것 같고, 그리고 또 번거롭기도 하고 그래서 “마 차버려!” 막 이럴 수도 있는 것이 사람의 인지상정입니다.
예. 그런데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아들까지 내어주신 좋으신 분이십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우리가 기도의 세계에 들어가 보면 마치 **“문이 닫혔고 침실에 누웠고 일어나 줄 수 없다”**라고 하는 답답하고 쾅 막힌 것 같은 것들을 느낄 때가 더러 있습니다. **“하나님, 이걸 주세요”**라고 하는데, 정말 그 기도가 하늘에 상달되는지 어떤지 마음에 아무런 느낌도 없고 답답하기만 하고, 길은 안 보이고, 기도하면 깜깜하고, 밖에 나와서 눈을 봐도 깜깜한 그런 상황들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그때 포기하지 않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한번 따라 합시다. “하늘문이 닫힌 게 아니라 내 마음문이 닫힌 거다.” 하늘문은 열려 있습니다. 근데 내 마음문 하나가 닫히면 밥도 깜깜하고 앞도 깜깜하고 속도 깜깜한 겁니다. 그래서 그 답답함의 시간은 사실은 내 안에 것들을 헤쳐 나가는 정화의 시간들이에요. 그 시간을 지나서 어떤 임계치를 지나면 기도는 가속도가 붙습니다. 확 빨려 들어갑니다. 그러면서 응답이 되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기도의 태도 안에서 주님께서 가장 중요한 팁은 뭐냐면 너희는 포기하지 말고 강청하면서, 강청하면서 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하기를, 벗됨, 친하다는 것 때문에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강청함, 간절하게 청하는 것 때문에 일어나서 그 요구대로 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보세요. 기도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벗됨. 우리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과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벗이라고 그랬어요. 하나님의 벗이다. 그래서 하나님과 친밀감을 말합니다. 미국 사람들은 기도의 동인이 뭔 줄 압니까? 우리 같이 많은 기도는 안 해요. 세 시간 기도 뭐 그런 거 안 합니다. 그 사람들 5분 기도하고 5분 기도합니다. 근데 그 사람들이 기도하는 것을 보세요. 굉장히 아버지한테 과하듯이 합니다. “아빠, 이것 좀 주세요.” 이렇게 해요. “이 사람 고쳐 주세요.” 이렇게 합니다. 우리는 성령의 능력을 내가 받아서 내가 저 사람을 고치는 것처럼 막 몸부림을 치는데, 미국 사람들은 “아빠, 저 사람들 만져 주세요” 이렇게 친밀감을 가지고 기도합니다.
이제 기도의 세계에는 친밀감으로 구하는 게 있고, 강청함으로 구하는 게 있습니다. 강청함의 태도가 났을 때 그 친밀감과 함께 같이 역사하면서 놀랍게 역사하는 겁니다.
III. 뱀과 전갈을 뛰어넘어 생선과 알을 취하는 영적전투의 기도 (눅 11:9-13)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눅 11:9-10)
그래서 더 이어서 말하기를,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라고 말합니다. 근데 기도하면 뱀이 나옵니다. 그 뱀은 하나님이 주신 게 아니에요. 우리가 어떤 문제를 놓고 기도하다 보면 “하나님, 생선을 주세요. 하나님, 우리 가정에 이 문제를 해결해 주세요. 우리 자녀가 이렇게 아픈데 귀를 열어 주세요” 막 이렇게 기도하다 보면 뱀 나옵니다.
다니엘이 열심히 나라 회복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얼마나 선합니까? 창문을 열고 하루에 세 번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합니다. 그랬더니요, 뱀 나왔습니다. 사단이 다니엘의 기도를 막기도 하고요, 사단이 다니엘을 풀무불에 던져 넣기도 하고요, 막 그런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런데요, 뱀 나오는 것은 기도를 응답을 막고 있는 사단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인데, 그것을 뚫고 가면서 기도의 응답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할렐루야. 그때 두려워하면 뒤로 물러가 버리는 거예요. 뒤로 물러가 버리면 그다음 주님이 주시려고 하는 그 놀라운 기도의 열매들을 받아 누리지 못합니다.
다니엘의 중보 기도가 있고 난 뒤에 예레미야 선지자가 **“70년이 지나면 이스라엘 백성이 고국으로 돌아갈 것이다”**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리고 70년이 되었을 때 그 깨달은 다니엘의 중보기도가 합쳐지니까 예레미야의 예언이 성취가 되어서 수룹바벨과 이런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일단 고국으로 되돌아가서 나라를 재건하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 기도의 응답을 보기 원합니까? 두려움을 포기하십시오. 두려움을 뛰어넘으십시오. 그리고 죄송합니다. 고스톱 말을 빌려 말해서 “못 먹어도 고” 해야 됩니다. 못 먹어도 고 하면서 뚫고 나가야 됩니다. 뱀 나타나는 거 새 하면요, 뱀 많이 나옵니다. 마귀 많이 나옵니다. 마귀 나오는 거 겁내면 사람을 회복시키는 사역을 하지 마세요. 못 해요. 근데 영혼을 사랑합니까?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되기 원합니까? 그러면 뱀 나오는 거 어떻게 처리할지를 지혜를 구하면서 뚫고 나가야 됩니다. 그럴 때 그 뱀이 나오는 시간을 지나서 그 뱀이 왜 나오느냐? 내 안에 있는 것들이 나올 때도 있고요. 기도 응답을 막고 있는 사단의 권세가 역사할 때도 있고요. 어쨌든 그걸 뚫고 지나가면 승리하면서 놀라운 열매가 주어지게 되는데, 생선 하나까지 안 먹으면 됩니다. 생선 안 먹으면 고기 먹으면 됩니다. 그런데요, 인생에서 중요한 기도의 제목은 생선 하나의 문제가 아니에요. 자녀의 인생일 때도 있고요, 교회의 부흥일 때도 있고요, 하나님의 놀라운 영광의 역사일 때도 있습니다. 그 축복을 향해서 영적 전투를 싸워낼 줄 아는 저와 여러분 되길 축복합니다.
강청하는 태도와 영적 전쟁에 대해서 주님은 두 가지 팁을 말씀해 주었어요. 내일은 "두드리라, 구하라, 두드리라, 찾아라" 그 말씀 나눕시다.
“알을 달라 하는데 뭘 주겠느냐? 전갈을 주겠느냐?” 알을 구하는데, 응답을 구하는데, 전갈이 나올 때 있다는 겁니다. 뱀이 나올 때, 전갈이 나올 때도 있고, 그걸 뚫고 나가면 그때 그 고비에서 주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시느냐? 성령을 주십니다. 할렐루야. 성령을 주시고, 성령과 함께 이겨 나가면서 우리가 원래 원했던 생선, 본문에서는 알이라고 말했지만, 우리의 기도 응답이라고 하는 놀라운 열매들을 받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믿음의 세대들은요, 기도할 때가 있고요, 기도 열매 거둘 때가 있습니다. 그 축복의 순환 역사가 우리 교회 안에, 여러분의 가정 안에 충만하게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좋으신 아버지셔서 아들도 주셨습니다. 성령도 주셨습니다. 우리 앞에 다친 영적 전투 싸워 이겨 가면서 주님이 정말 주기 원하시는 가장 좋은 열매가 우리 교회 안에, 우리 가정 안에, 이 땅 가운데 풀어질 수 있도록 하나님 역사해 주시옵소서. 금주 가운데 APEC 회의가 있습니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여러 정상이 모여서 중요한 현안들을 논의할 때 하나님, 주의 공의가 풀어지게 하시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이 모든 것들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도록 은총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가정과 삶의 자리 안에도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소망합니다. 여호와께서 한없는 은혜와 사랑으로 함께 해 주시길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