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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11:9-13(P.531) 자녀에게 이어지는 선한 대물림 2026. 5. 10
지금은 사라져 버린 제도였지만, 한 때 우리나라에는‘연좌제’(緣坐制)라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연좌제는‘범죄자와 일정한 친족 관계가 있는 자에게는 연대적으로 그 범죄의 형사 책임을 지우는 제도’를 말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조선후기까지 법으로 연좌제가 있었습니다.
사극 드라마를 보면 어떤 사람이 왕위 찬탈 등 역모를 하다가 발각되면, 그때 항상 등장하는 말이 있습니다. ‘삼족을 멸하라’는 말입니다. 3족이 무엇이에요? 3족은 친족과 외족과 처족을 멸합니다. 아버지 쪽 가문을 멸하고, 어머니 쪽 가문을 멸하고, 그리고 아내 쪽 가문을 멸해 버리는 것이 3족을 멸하는 무서운 처벌입니다. 역모 죄를 지은 사람은 한 사람인데, 죄를 지은 그 사람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3족이 전부 죽임을 당하면서 가문 자체가 없어져 버립니다. 이것이 바로 한 사람의 잘못을 집안 전체의 사람에게 연결시키는 연좌제입니다.
대한민국헌법 제13조 3항에는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분명히 대한민국 헌법에는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않는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음으로 양으로 연관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죄는 묻지 않는다고 하지만, 도의적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자녀가 국가의 녹을 먹는 공무원을 평생 직업으로 가지려고 한다든지, 또는 자녀가 사관학교에 입학한다고 할 때에 ‘부모와 친족 중에서 사상범이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은 보편적 상식입니다.
고로 우리나라의 헌법이나 상법에서는 연좌제를 허락하지 않고 있습니다. 엄연히 부모와 자식이 다르고 아내와 남편이 다릅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는 연좌제도는 사라졌지만, 놀랍게도 성경에는 부모의 것이 자식에게 이어지는 연좌제 개념과 같은‘연좌죄’(緣坐罪)가 있습니다. 단어가 비슷하여 헛갈리지만 이어지고 물려지는 죄가 있습니다.
롬 5:12절,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인류의 조상 아담이 이미 지은 원죄(original sin)가 후대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어집니다. 그 결과 나 역시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 존재가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한 사람 아담이 지은 죄가 모든 사람의 원죄로 이어지는‘율법의 연좌죄’입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보면 여기에 아주 중요한 내용이 있습니다. 나사로는 죽어서 낙원에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있고, 부자는 음부에 떨어져 매우 큰 고통을 당합니다. 이때 음부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 부자는 ‘땅에서 살아남아 있는 자신의 형제들은 이 지옥에 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사로를 자신의 아버지 집으로 보내 형제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전해 달라’요청합니다. 부자의 생각에 죽은 나사로가 살아나서 지옥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 부자의 모습을 말하면, 형제들이 정신 차리고 올바르게 살아 갈 것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이때, 아브라함은 부자의 요청을 단호하게 거절하면서 이런 말을 합니다.
눅 16:31절,‘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느니라’
여기서 깨닫는 교훈은 이 땅에 살아 있는 동안 진실하게 살아야 하고, 구원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받을 수 있음을 말합니다. 부모님이 신앙생활 잘한다고 해서 자녀들이 공짜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3대 신앙인 가족, 4대 신앙인 가족이라는 아름다운 칭호가 ‘자녀들에게 공짜 구원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성경은 부모의 신앙과 행동이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을 잘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다윗 왕의 충성 때문에 아들 솔로몬이 큰 복을 받은 왕이 됩니다. 그러나 아들 솔로몬이 믿음에서 추락하여 하나님을 떠나게 됨으로, 그 아들들에게 형벌이 돌아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은 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부모의 신앙적 책임이 매우 크다는 점을 잘 보여 줍니다.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자녀 된 입장에서 부모님을 사랑으로 섬겨야 함을 보여주는 날입니다. 그러나 어버이주일을 맞이함에 있어서 어버이 된 자로서 우리들의 자녀를 어떻게 믿음으로 양육해야 되는지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 때문에 복을 받았습니다.
12절, ‘그러나 네 아버지 다윗을 위하여 네 세대에는 이 일을 행하지 아니하고, 네 아들의 손에서 빼앗으려니와’
솔로몬은 지혜로운 왕으로서 참으로 나라를 크게 부강 시키면서 잘 다스린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의 노년을 보면, 가지고 있는 부와 재물로 인해 하나님을 떠나고 크게 타락해 버린 안타까운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타락한 솔로몬에 대하여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심판의 경고가 내려집니다. 그런데 좋으신 하나님은 솔로몬이 지은 죄와 타락함에도 죄에도 불구하고, 즉각적으로 솔로몬을 멸망시키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가 아버지 다윗 때문에 아들 솔로몬에 대한 심판을 약하게 하신다고 말씀합니다.
그 내용이 본문에 ‘다윗을 위하여’라는 말은 ‘다윗으로 말미암아, 인하여’라는 말입니다. 아버지 다윗을 봐서 솔로몬에게 자비를 베푸신다는 뜻입니다.‘네 세대에는 이 일을 행하지 아니하고’라는 말이 그 뜻입니다. 비록 솔로몬이 지은 죄이지만 솔로몬 시대에는 징계하지 않고 용서하고 자비를 베풀겠다는 말입니다.
솔로몬이 잘나서 이런 특혜를 주는 것이 아니에요. 아버지 다윗과 맺은 언약 때문에 아들 솔로몬에게 은혜를 베풀어서 솔로몬 당대에 멸망시키지 않고 자비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으로부터 너무나 큰 복을 받았지만, 노년의 솔로몬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괴합니다. 가지고 있는 재물과 부귀영화에 탐닉하여 헛된 우상을 섬기고, 처와 첩과 빈을 많이 두어 타락한 삶을 삽니다. 하나님이 싫어하는 행동만 골라서 범죄하는 솔로몬이 됩니다.
이렇게 타락하고 범죄한 솔로몬에게 여지없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해야 하는 것이 정석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버지 다윗을 생각해서 솔로몬에게 자비를 베푸신 것입니다.
요나단과 다윗의 아름다운 관계를 보세요. 다윗을 자신의 생명처럼 아끼고 보호하였던 요나단은 말 그대로 최고의 <절친>이었습니다. 그러나 요나단의 아버지는 다윗을 죽이려고 눈 부라리며 혈안이 되어 있었던 사울 왕이었습니다. 아버지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모든 간계를 낼 때마다, 요나단은 온갖 욕을 얻어먹으면서도 다윗을 끝까지 지켰습니다.
훗날 사울 왕과 요나단이 전쟁터에서 죽고 난 뒤에 사울의 집안은 완전히 망해 버립니다. 그리고 다윗이 왕이 되고 난 뒤에‘사울의 집에 죽지 않고 살아남은 자가 있느냐?’라고 신하들에게 물어 봅니다. 사울 집안의 모든 사람들이 다 멸문지화 된 것으로 알았는데, 다행이도 ‘요나단의 아들인 므비보셋이 유일하게 살아 남아 있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가문이 망할 때 유모가 어린 므비보셋을 품에 안고 도망을 가다가 그만 땅에 떨구어 버립니다. 그 결과, 므비보셋은 걷지 못하는 불구자가 됩니다.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불구자는 하나님의 버림을 받은 대상으로 생각해서 매우 천대 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다리를 심하게 절었던 므비보셋을 데리고 와서 왕궁에서 왕자처럼 대접하고 살게 합니다. 삼하 9:11절 ‘므비보셋은 왕자 중 하나처럼 왕의 상에서 먹으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그 아들 므비보셋이 다윗에게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성경에는 이와 비슷한 사례들이 많이 열거되고 있습니다. 부모로 말미암아 자녀들이 복을 받는다는 것은 성경에서 보여주는 일반적인 사례입니다.
요즈음 우리사회에‘수저계급론’이란 말이 널리 표현되고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이 있는 반면, 흑수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수저계급론’이 마치 ‘인간 등급표’처럼 여겨집니다. 내가 부모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잘난 부모를 만난 덕분에 태어나면서부터 일반사람들과는 구별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만 수저론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서양 격언에도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다(born with a silver spoon in one's mouth)’라는 말이 있듯이, 서양사회에도 가진 것이 많은 부모에게서 태어나 평생 부모의 덕을 보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돈 많은 부모, 권력을 가진 부모를 만나서 쉽게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복’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것이 진정한 복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내가 좋은 부모를 만나지 못하였다면, 나에게서 태어나는 자녀들에게는 내가 좋은 부모가 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는 점입니다.
존 웨슬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가면 하나님께서 세 가지를 반드시 물어보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1)“내가 너에게 준 물질을 어떻게 사용했느냐?”2)“내가 너에게 준 시간을 어떻게 활용했느냐?”3)“내가 너에게 맡겨준 자녀를 어떻게 양육했느냐?”라고 물어보실 것입니다. 믿음으로 자녀들을 양육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현재 우리 주위를 살펴보면 부모의 자격이 없는 자들이 많습니다. 자신이 기분 나쁘다고 자녀를 마구 학대해서 죽이는 사악한 부모들이 종종 있습니다.
몇 해전에 일입니다. 경북 구미의 한 원룸에서 28살 남자와 아들로 보이는 2살 난 남자아이가 함께 숨진 채 발견됩니다. 경찰에서 조사를 해보니 더 안타까운 사연입니다. 아버지가 병으로 먼저 숨졌고, 남아 있던 2살 아이가 방에서 굶어 죽은 것입니다.
죽지 않아도 될 아이가 이 좋은 세상에서 안타깝게도 굶어 죽은 것입니다. 아이의 아버지가 직접 아이를 학대해서 죽인 것은 아니지만, 이처럼 부모의 잘못과 실수로 사망하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통계자료를 보니 아동학대의 최대 가해자는 부모라고 합니다.
우리 모두가 자격이 있는 부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나로 말미암아 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기를 소망합니다. 솔로몬이 다윗 때문에 복을 받은 것처럼 나 때문에 자녀가 복을 받게 합시다. 내가 가문의 복의 근원이 되며, 하나님의 복의 발원지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2. 솔로몬 때문에 그 아들이 벌을 받았습니다.
13절 ‘오직 내가 이 나라를 다 빼앗지 아니하고, 내 종 다윗과 내가 택한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네 아들에게 주리라 하셨더라’
13절의 뜻은 이런 것입니다. 솔로몬이 잘못하였고 그 잘못을 심판한다면 모든 것을 다 빼앗아야 하지만, 사랑의 하나님은 다 빼앗지 아니하고 솔로몬의 아들에게 한 지파만을 주겠다는 뜻입니다. 즉 솔로몬이 누렸던 부귀영화가 아들에게는 다 전해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솔로몬이 범한 여러 가지 범죄로 인해 솔로몬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버지 다윗과 맺은 언약 때문에 솔로몬에게 완전한 멸망을 내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범죄는 눈 감고 묵과할 수 없는 것이기에, 아버지 솔로몬에게 주어지는 형벌의 일부분이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에게 재앙이 물려진 것입니다. 고로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왕의 덕은 톡톡히 보았지만, 아들에게는 화를 물려준 왕이 되었습니다.
솔로몬이 세상을 떠난 후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됩니다. 르호보암이 왕이 되어서 어떤 일이 발생합니까? 르호보암은 백성들에게 악정을 베풀었습니다. 세금을 감면해 달라는 백성들의 요구를 듣지 않고 백성들을 폭압하고 학대하는 왕으로 활동합니다.
그 결과 결국 이스라엘 나라가 남북으로 나뉘게 되어, 북은 이스라엘, 남은 유다가 되었습니다. 남 유다는 르호보암이 왕이 되었고, 북 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이 왕이 됩니다. 솔로몬 사후에 통일 왕국이 분열되면서 두 나라가 원수처럼 싸우는 큰 비극이 일어난 것입니다.
<대물림>이란 말이 있습니다. 그 뜻은 ‘사물이나 가업 따위를 후대의 자손에게 남겨주어 자손이 그것을 이어나감 또는 그런 물건’이라 합니다. 좋은 부모는 사랑하는 자녀에게 좋은 영향력을 대물림하는 부모입니다. 믿음의 선한 영향력을 대물림해야 하며, 자녀들의 인성을 올바르게 성장하도록 참된 어른으로서의 모습도 본을 보여야 합니다. 자녀들 앞에서 거짓말하지 말아야 하며, 부부간에 사랑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선한 영향력을 대물림해야 합니다.
재산을 물려주는 것도 중요합니다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적 대물림입니다. 예수안에서 모든 부모들은 좋은 신앙을 대물림하는것은 중요한 그리스도인의 사명으로 여겨야 합니다.
지난 주간에 김장로님 가정에서 특송을 하였습니다. 목회를 하고 있는 장남 김목사님 가정을 제외한 모든 가족들이 함께한 특송이었습니다. 제가 너무나 놀란 것은 어린 시현이와 유현이가 함께 찬양하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는 점입니다. 아름다운 신앙의 대물림입니다.
제가 기억하기로 현수집사님과 지혜집사님이 2018년 5월 12일에 결혼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제가 집사람과 결혼한 날짜가 5월 11일이기에 기억하고 있는 날자입니다. 하나님께서 두 분 집사님의 가정에 유현이와 시현이라는 아름다운 믿음의 선물을 주었습니다.
‘사랑스러운 이 아이들이 내 것이라’생각하면 내 마음대로 아이에게 행패부리는 부모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아이들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부모 된 나에게 맡겨 주신 믿음의 선물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항상 선한 영향력을 아이들에게 보여 주어야 하며 믿음의 대물림이 이어지도록 부모로서 늘 노력해야 합니다.
현수집사님 가정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가정을 꾸리고 있고 자녀를 두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 적용되는 말입니다. 여러분들의 자녀를 믿음으로 양육하십시오. 부모의 믿음이 자녀들에게 끊기지 않고 이어지도록 늘 노력하며 기도하는 부모가 되기를 축원 드립니다.
민 14:18절,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가 많아 죄악과 허물을 사하시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사하지 아니하시고 아버지의 죄악을 자식에게 갚아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셨나이다”라고 합니다. 부모의 선한믿음으로 자녀가 천대까지 복을 받을 수 있고 부모의 잘못된 범죄로 자녀가 3-4대 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믿음의 선한 대물림이 이어지도록 당부 드립니다. 악한 영을 대물림하는 것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교회를 잘 섬겨 후손이 잘 되는 집이 많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본인이 교회를 잘 섬기고 좋은 영적 대물림을 하여 후손이 잘 되게 해야 합니다.
아담증후군과 요나증후군이라는 색다른 말이 있어서 소개합니다. 남의 탓이라고 하고, 남에게 결과의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아담증후군>입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다음 하나님께서 책망하자 어떻게 합니까? 아내에게 책임을 떠넘깁니다. ‘너 때문에 그래’라는 말로 책임을 외면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반면에 <요나증후군>도 있습니다. 요나는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다가 바다에 큰 폭풍이 일어나자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모든 잘못을 자신에게 돌립니다.
저는 우리사회에 ‘요나증후군’이 더 많아 졌으면 좋겠습니다. 남 탓하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비난하는 손가락질을 하지 말고, 아내나 남편에게 또는 자녀들에게 탓하지 맙시다.
골 3:21절,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고 합니다. 부모는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녀를 낙심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노인과 바다’의 작가 헤밍웨이의 가문은 명문 기독교가정이었지만 ‘은혜가 떠난 가정의 모델’로 뽑히고 있습니다. 조부 때부터 명문가문이었던 그 집안은 명예를 더럽힐 위험과 행동은 절대 불허하였습니다. 그런데 훼밍웨이는 교회를 멀리하고 술과 여자에 빠져 있다가 1961년 권총으로 자살합니다. 그의 아들 그레고리는 의사였지만 성전환 수술을 하여 여자로 살다가 2001년 플로리다 마이애미의 여자교도소에서 알콜 중독과 우울증으로 사망합니다. 신앙을 떠나니 집안이 망합니다. 할아버지, 삼촌, 고모 모두가 자살로 인생을 마감합니다.
다윗으로부터 솔로몬에게 이어진 아름다운 신앙의 대물림이 우리교회 모든 가정에 이어지기를 소망합니다. 나로 말미암아 나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믿음을 잘 지켜, 자녀를 잘 양육하고, 우리 교회 모든 성도님들의 가정이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의 명문가문>이 다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